719화 알 수 없는 행방 (2)
성 안은 아주 깨끗하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한적했지만, 공기 중엔 무언가 썩어 들어가는 지독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다.
곧 지현의 관아에 이르자, 병사가 시녀들을 향해 공수하며 말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사 후야께선 안쪽에 계십니다.”
시녀들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청언이 안뜰에서 달려 나왔다.
“소왕비마마께서 오신 겁니까?”
시녀들은 청언의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시 이목청의 추측대로 사방화는 임안에 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들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청언은 깜짝 놀라 눈이 커다래졌다.
“소왕비마마께서 오신 게 아니라고? 그럼 어찌…….”
“아니야. 후야는 어디 계셔?”
“방 안에 계세요.”
청언이 길을 내주자 시녀들은 한 방 앞으로 다가가 예를 갖추었다.
“사 후야.”
“응, 들어오너라.”
안에서 사묵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녀들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큰 병에 걸린 듯 아주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는 사묵함을 마주하게 됐다.
“후야! 어떻게 되신 겁니까?”
사묵함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누이는 어딜 가고 너희만 온 것이냐?”
시화는 사방화가 경성을 빠져나오게 된 일과 오늘밤 혼자 떠나버려 어쩔 수 없이 이곳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하곤 무릎을 꿇었다.
“후야, 저희가 아가씨를 잘 돌봐드리지 못한 죄입니다. 아가씨께서 떠나시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렇게 놓치고 말았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죽여주십시오!”
시화와 시녀들은 일제히 자리에 꿇어앉아 사묵함에게 사죄했다.
사묵함은 사방화가 장봉을 죽였다는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내저었다.
“어서 일어나라. 방화가 홀로 떠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희들 탓이 아니야.”
“한없이 보잘것없는 저희의 무공 실력 탓입니다.”
시녀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희의 눈을 피해 떠나려 마음먹었던 거라면 무공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소용없었을 것이다. 목청 공자도 무공이 뛰어나지 않더냐. 그런데 어찌 공자도 발견하지 못했겠느냐? 모두 일어나라.”
사묵함은 기침을 하며 힘없이 말했다.
시녀들도 이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사묵함의 모습을 보고 한없는 걱정을 내비쳤다.
품죽이 먼저 사묵함을 향해 걱정스레 물었다.
“후야,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겁니까?”
“감기에 걸린 것뿐이다. 괜찮아.”
“정말 감기에 걸리신 겁니까? 성에 들어오자마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느꼈는데 역병이 심각한 걸까요? 후야께서도 혹시……. 언신 공자님은요?”
시만이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감기에 걸린 것뿐이니 걱정하지 마라. 얼마 전까지 태자를 따라 치수를 돕던 중 역병까지 돌아 몸이 더 버티질 못하고 감기에 걸린 것이다. 역병에 걸린 이들은 태자가 모두 격리시켰고, 언신은 치료약을 연구 중이다.”
사묵함의 말에 시녀들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어서 가서 쉬거라. 방화 일은 신경 쓸 필요 없다. 언신이 오면 방화가 어디로 간 것일지 상의해 보마.”
사묵함이 다시 시녀들을 안심시키며 손짓을 했고, 시녀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사묵함을 방해하지 않으려 밖으로 물러갔다.
그리고 사묵함은 그녀들이 다 떠난 뒤에야 걱정스런 기색을 내비쳤다.
* * *
날이 밝아올 무렵, 언신이 지친 몸을 이끌고 사묵함의 방으로 돌아왔다.
“좀 어떻습니까? 역병을 물리칠만한 방법은 있는 겁니까?”
사묵함의 물음에 언신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생각해 냈으나 약재 하나가 부족합니다.”
“무슨 약재입니까?”
사묵함이 물었다.
“흑자초입니다.”
“찾기 힘든 약재입니까?”
언신이 고개를 내저었다.
“찾기 힘든 건 아니지만 일찌감치 누군가에게 다 팔리고 남은 게 없는 듯합니다. 임안성 방원 500리 안으로는 이 약재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순간 사묵함의 안색이 급변했다.
“누가 모두 사들였단 겁니까?”
언신이 고개를 내저었다.
“현재 태자전하께서 찾고 계시는 중이십니다.”
“공자도 조금 전에야 흑자초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냈는데 어찌 누군가 일찌감치 흑자초를 전부 사들였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흑자초로만 해결이 되는 거라면 설마 이 역병을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란 말입니까?”
사묵함이 의심의 눈초리를 빛냈다.
“만들어낸 게 아니라 해도 이 임안성을 무너뜨리려 했거나 이곳에 있는 누군가를 없애버리려 했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반드시 저보다 더 뛰어난 의술을 가진 자가 곁에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이틀에 걸쳐서야 비로소 흑자초가 필요하단 것을 알아냈는데 이미 한발 늦어 구할 수도 없게 되었네요.”
언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방원 500리 까지도 그 풀을 구할 수가 없다니! 이 상태라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습니까?”
사묵함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길어봐야 사흘입니다.”
“사흘은 너무 짧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흑자초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임안 십 수만의 생명은 끝내 백골로 산을 이루게 될 겁니다. 도대체 어떤 놈이……! 태자전하든, 우리 사씨를 노려 저지른 일이든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놀아선 안 되지! 어떤 놈인지 아주 모질고 고약하구나. 천벌이 두렵지도 않은 것인가!”
사묵함은 기침을 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인성마저 잃은 자가 천벌 따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런데 주인님 시녀들이 밤새 이곳으로 왔다던데 무슨 말이라도 전해왔습니까?”
언신이 입술을 깨물며 화제를 돌렸다.
“안 그래도 공자가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찾아 나서려 했습니다. 방화는 백리 밖까지 도착했다가 어젯밤 다시 임안으로 출발하려던 중 돌연 시녀들을 피해 혼자서 떠났다고 했습니다. 시화와 아이들은 목청 공자가 따라오는 걸 떼놓으려 자신들까지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언신은 사색에 잠겼다.
그리고 사묵함은 시화가 전한 말들을 마저 다 해주곤 한숨을 내쉬었다.
“휴서 성지가 남진도 모자라 온 천하에 알려졌으니 돌이킬 수도 없게 됐습니다. 참으로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소왕야께서 서신을 보냈지만 지금까지 답신도 받질 못한 데다 방화에게 직접 물어보려 했으나 이렇게 홀로 떠나버렸으니……. 참으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인님께 분명 생각이 있으실 테니 염려마시고 회복에만 힘쓰십시오.”
“혹 방화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사묵함은 항상 침착하고 똑 부러지던 언신조차 근심 가득한 빛을 보이니 좀처럼 걱정을 덜 수가 없었다.
이내 언신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있긴 하지만 당분간은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임안이 위험에 빠졌으니 저희 곁은 더욱 위험합니다. 임안에 오지 않게 하는 것이 제일일 겁니다.”
“그도 그렇지…….”
사묵함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두 사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깥에서 누군가 급히 뛰어들어왔다.
“언신 공자님! 어서요, 큰일 났습니다!”
언신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인가?”
“폭동이 일어나 역병에 걸려 갇혔던 이들이 뛰쳐나왔고 그중 한 사람이 태자전하께 해를 입혔습니다! 초지 공자께서도 약을 구하러 성을 나서신 터라 공자님께서 나서주셔야 합니다!”
언신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사묵함도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밖에 누구 없느냐!”
“네, 후야!”
청언이 곧장 달려왔다.
“옷을 좀 입혀다오. 같이 태자전하께 가자꾸나.”
청언은 바로 사묵함을 말리기 시작했다.
“후야, 고질병은 다 나으셨지만, 며칠째 고됐던 탓에 몸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밖은 역병에 폭동까지 일어나 무척 위험하니 이곳에서 요양에 힘쓰심이 어떨는지요. 만에 하나 역병이라도 옮으시면 어찌 버티시려고 그러십니까? 건장한 사내들마저 역병에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사묵함은 고개를 내저었다.
“태자전하께선 여기서 가장 안전한 곳에 계시니 큰일이 일어날 리 없다. 내가 역병에 걸려 죽는 건 아주 사소한 일일뿐이다. 이 성의 모든 이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아주 큰일인 것이지.”
“그렇게 심각하단 말입니까?”
청언은 질겁해 모기만한 소리를 냈다.
“내가 감기로 몸져눕게 됐으니 스스로 할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다. 기댈 곳은 태자전하뿐인데 만약 무슨 일이라도 있게 되면 누가 이 임안의 백성들을 구할 수 있겠느냐? 청언, 어서 빨리 준비나 해다오.”
사묵함의 재촉에 청언도 서둘러 옷을 입혀주고는 함께 방을 나섰다.
* * *
임안현 관아를 빠져나와 두 길목을 지나자 난장판이 된 광경이 보였다. 병사들은 문 앞에서 포효하는 이들을 잡아끄느라 정신이 없었고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들은 이곳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병사들은 곧 문 앞에 다다른 한 마차를 보고 서둘러 소동을 일으켰던 사람들과 시신을 처리해두었다.
이내 마차에서 사묵함이 내리자 병사들은 예를 갖추며 안으로 안내했다.
사묵함은 곧장 본방으로 향했다.
방에는 팔뚝에 상처를 입고 반쯤 누워있는 진옥이 있었다. 그 곁엔 언신이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었는데, 진옥의 안색은 매우 나빠 보였고 입술까지 꾹 깨물며 언신의 진찰을 받고 있었다.
“태자전하!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겁니까?”
사묵함이 곧장 가까이 다가갔다.
“사 후야, 몸도 안 좋은데 어찌 온 것이오? 별일 아니오.”
“사고가 났다기에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왔습니다.”
사묵함은 진옥에게 예를 갖추고는 팔뚝의 상처를 보며 언신에게 물었다.
“언신 공자, 어떻습니까? 괜찮겠습니까?”
“장담할 수 없으니 일단 반나절 정도 지켜봐야 합니다.”
사묵함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진옥에게 말했다.
“태자전하, 무공도 뛰어나시고 엄청난 호위까지 갖추고 계신데 누가 감히 이 나라 황태자전하께 접근을 했단 말입니까? 범인은 잡았습니까?”
진옥의 낯빛이 차가워졌다.
“엄청난 자였소. 알다시피 월낙과 청암을 뒤바꾼 뒤로 내 곁엔 진강의 사람뿐 아니라 황실의 은위도 없소. 언신 공자가 역병을 통제할 약 조제법을 알아냈음에도 흑자초가 부족해 청암과 모든 이들에게 찾도록 했지만, 그 소식이 배후에 있는 그 자에게도 들어갈 줄은 몰랐소.”
곧 사묵함의 안색도 급변했다.
“그럼 그 배후에 있는 자도 바로 이 성에 있다는 뜻이겠군요.”
“성에 있거나 성 밖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오. 내가 흑자초를 찾아오라 시킨 지 반 시진도 되지 않아 폭동이 일어났으니 시기를 딱 맞춘 것이지.”
“태자전하께 상처를 입힌 그 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사묵함이 물었다.
“죽였소.”
“태자전하께서 죽이신 겁니까? 어찌 살려두지 않으시고요?”
“무공이 엄청나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는다면 내 목숨마저 위험할 뻔했소. 게다가 역병에 걸린 자이니 죽이지 않을 수도 없었지.”
“그 죽은 자는 어디 있습니까? 시신에서 무언가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우선 아무도 가까이할 수 없게 한 곳에 옮겨다뒀소. 의술이 있는 언신 공자가 한번 살펴봐주시오.”
“네, 제게 맡기십시오.”
언신이 진옥의 팔에 약을 발라주며 말했다.
“언신 공자는 북제 소국구시긴 하나 방화 아가씨와의 관계로 남진에 남아 아가씨를 도와줬소. 또 난 지금 임안에 몸이 묶여있고, 함께 계신 사 후야의 몸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지요. 그러니 설령 공자께서 날 아니꼽게 생각한들 방화 아가씨를 생각해서라도 사 후야가 계신 이곳에 사고가 나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거라 믿소. 나는 공자를 믿으니 검시에만 힘써주시오.”
언신은 진옥을 한번 쳐다보고는 서둘러 상처를 감싸준 뒤 자리를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