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화 알 수 없는 행방 (1)
한밤중, 다시 떠날 채비를 하던 때였다. 갑자기 매 한 마리가 뜰 위를 빙빙 돌다가 잠시 후 마당으로 들어와 사방화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사방화는 한눈에 언신이 보낸 매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서둘러 발에 묶인 서신을 빼냈다. 서신에는 아주 짧은 한마디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임안에 오지 마십시오.」
사방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언신이 아무 설명도 없이 이렇게 간략한 서신을 보내는 건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이었다. 필체에서도 느껴지는 다급함은 그녀에게조차 설명할 시간이 없을 만큼 꽤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임안에 오지 못하게 하는 걸까?
사방화는 한참동안 서신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바깥에서 시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출발할까요?”
사방화는 서신을 없애버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공자님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오늘은 무리인 것 같다고 전해 줘.”
시화는 깜짝 놀라 곧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가씨,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어서 태의를 부를까요?”
사방화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야. 명치가 좀 아프고 숨이 답답한 게 너무 급히 일어난 탓인 것 같다. 이 공자님께 좀 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전해줘.”
시화는 그제야 안심하며 밖으로 향했다.
마침 이목청도 떠날 채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시화의 말을 듣고 마음이 몹시 다급해졌다.
“약 처방은 했느냐? 아무래도 약을 달여 마시는 게 좋을 듯한데.”
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인 생각도 그러합니다만 아가씨께선 절대 듣질 않으십니다.”
“내가 설득해 보마.”
이목청은 바로 사방화의 방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침상에 누워 다시 잠을 청하려던 사방화가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몸이 좋지 않다기에 걱정이 되어 왔습니다.”
“괜찮습니다.”
사방화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게 아니라 탕약이라도 마셔 몸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게 약 처방을 내려주면 이 마을에 명의가 연 약방을 찾아 약을 지어오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 들으세요.”
이목청이 뜻을 굽히지 않자, 사방화도 처방전을 써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약이 다 달여지면 시화 편에 들여보낼 테니 쉬고 계세요.”
사방화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번거롭게 해 죄송하네요.”
“내겐 그런 말씀 마세요. 난 아가씨가 괜찮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목청이 나가고 방은 더없이 조용해졌고, 사방화는 다시 침상으로 향했다.
* * *
한 시진 후, 시화가 바깥에서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하지만 방 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계속되는 부름에도 아무 답이 없자 시화도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칠흑같이 어두운 광경이 나타났다. 시화는 바로 등을 밝힌 후 사방화를 부르려 침상으로 다가섰다.
순간 시화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그녀는 무언가 예감한 듯 서둘러 휘장을 걷었다. 역시, 휘장 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화는 다시 뒤돌아 방 안에서 크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가씨!”
방 곳곳을 둘러봐도 사방화는 아예 흔적도 보이질 않았다. 그에 사색이 된 시화가 밖을 향해 큰 소리를 쳤다.
“시묵! 이 공자님! 어서 와 보십시오!”
시묵과 이목청이 잇달아 방으로 들어섰다.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난 거야? 아가씨는?”
시묵이 물었다.
“아가씨께서 보이질 않아.”
시화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가씨께서 보이질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언제부터 보이질 않았던 것이냐?”
이목청은 빠르게 침상으로 향했다. 분명 잠을 잤던 흔적이 있어 손을 대봤지만 이미 차게 식어버린 뒤였다. 급히 다시 방을 한번 둘러봤지만 이젠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질 않았고 그의 시선은 이내 굳게 닫힌 창문으로 향했다.
“소인 약을 가져다드리려 아가씨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방금 전에야 사라지신 걸 알았어요.”
시화가 다급히 설명했다.
“분명 우리가 뜰을 지키고 서 있었는데 대체 누가 아가씨를 납치해 간 거지? 어째서 우린 아무것도 듣지 못한 거야?”
“그러니까, 혹시 또 무명산 종사가 나타난 게 아닐까? 무공이 뛰어난 종사가 아가씨를 데려간 거라면 우리가 발견하긴 쉽지 않았을 거야.”
“어떡하지?”
품죽과 시녀들은 일제히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목청은 창가로 가 창문을 한번 열었다가 다시 천천히 닫으며 말했다.
“방화 아가씨는 혼자 빠져나간 것 같다.”
“네? 그 몸을 하시고서 어찌 혼자 빠져나갔다는 말씀이십니까?”
시녀들은 동시에 어리둥절해했다.
“열고 닫을 때 아무 소리가 나질 않는 걸 보니 이 창문으로 빠져나간 것 같다. 몸 상태가 좋진 않지만, 절반은 회복했으니 가능한 일이야. 우리를 피해 혼자서 몰래 빠져나간 것일 수도 있지. 이 뜰 안에 내 호위 말고도 아가씨를 따르던 은위의 호흡도 느껴지질 않으니 아마도 함께 떠난 듯하구나.”
이목청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어찌 저희를 버리실 수 있지요?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요?”
시화가 말했다.
이목청은 이내 눈시울까지 붉어진 그녀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 내가 고집스럽게 따라온 탓에 날 떼놓으려 그랬던 것 같으니 모두 내 잘못이지.”
그러자 그녀들은 금세 원망스러운 빛으로 이목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중 품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공자님, 공자님 때문에 아가씨께서 떠나신 것이니 어서 아가씨를 찾아와주십시오. 몸도 좋지 않으신 상태로 떠나셨는데 혹시나 또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어떡합니까?”
“맞습니다. 만일 또 무명산 종사를 만나게 되면 어떡합니까? 아직 두 명이나 더 남아있습니다!”
품훤도 바로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무명산 종사는 아가씨를 죽이려 눈에 불을 켜고 있단 말입니다. 지봉은 아가씨께서 지른 불로 해를 입었고, 장봉은 그 전날 밤에 죽었으니 아직 한 사람이 더 남아있습니다.”
시람이 말했다.
“아가씨를 죽이려 드는 건 무명산 종사뿐만이 아닐 겁니다.”
시만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렇게 시녀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목청을 바라보았다.
이내 이목청은 잠시 미간을 문지르다 그녀들에게 말했다.
“우선 진정해라. 은위를 데리고 떠났으니 짧은 시간 내에 큰일은 나지 않을 거야. 우선 사람을 보내 어느 방향으로 간 건지 한번 찾아보겠다.”
“아가씨께선 줄곧 임안성으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시화가 먼저 입을 열자, 시묵도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서 임안성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아가씨께서도 떠나신 지 한 시진은 넘지 못하셨을 테니 저희가 급히 서두른다면 뒤쫓을 수 있을 겁니다.”
“임안을 간 게 아닐까봐 걱정이다.”
이어진 이목청의 말에 시녀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목청은 잠시간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장담하긴 일러. 임안에 역병이 돌고 있다고 하니 임안으로 향한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목청이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네, 공자님!”
“방화 아가씨께서 언제 이곳을 떠난 것인지 알아 보거라. 오늘 밤 이 성을 나간 이가 있는지, 행방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해.”
분부를 마친 이목청은 다시 뒤돌아 시녀들에게도 물었다.
“먼저 임안으로 가겠느냐, 아니면 나와 함께 여기서 소식을 기다리겠느냐?”
시녀들은 서로의 눈만 바라보며 쉽게 결정짓지 못했다.
“먼저 임안으로 떠나겠다면 소식이 있을 시 바로 알려 줄 것이고, 여기서 기다리겠다면 함께 행방을 찾아 떠나보자꾸나.”
이목청이 말했다.
시화는 잠시 골똘히 생각한 뒤에 입을 열었다.
“이 공자님, 저희끼리 잠시 상의 좀 하겠습니다.”
“좋다.”
시화가 일곱 시녀들을 향해 말했다.
“아가씨께서 단순히 이 공자님이 따라오는 걸 원치 않으셔서 혼자 떠나셨을 리는 없을 것 같아. 내 생각엔 우리가 먼저 임안으로 향해 아가씨의 행방을 뒤쫓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사 후야께서도 임안에 계시니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보는 게 나을듯해. 너희 생각은 어때?”
시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일리 있는 말이야.”
품죽과 나머지 시녀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 시녀들이 의견을 맞춰 이목청에게 작별을 고하자, 이목청도 이미 다 예상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하라는 인사를 건넸다.
시녀들은 뜰을 빠져나와 말을 타고 성 문으로 향했다.
현재 시각은 이경(*二更: 밤 9 ~ 11시) 무렵이라 성 문은 닫혀 있었지만, 시녀들은 나름의 방법을 써 무사히 성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 * *
시녀들이 떠난 뒤, 이목청은 마당에 남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공자님, 참으로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말해 보거라.”
이목청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당에는 방화 아가씨께서 떠난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성 내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을 뿐 아니라 성 안팎에도 아무런 흔적조차 남아있질 않습니다. 대체 어딜 가신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너희들 실력으로도 아무것도 찾아내질 못했단 말이냐?”
이목청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갈피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내가 키워온 너희들조차 찾지 못하는 거라면 정말 찾을 수 없는 것이겠구나. 날 못 믿는 건지, 정말 내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알 수가 없군. 인사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혼자 떠나버리다니.”
이목청은 미간을 매만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화 아가씨께서 정말 떠나신 걸까요? 그런데 어찌 하루 종일 이곳을 지키고 있던 저희도 모르게 나갈 수 있었다는 겁니까?”
이목청은 주변을 둘러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방화 아가씨 실력이라면 내 눈을 피해 이곳을 떠나는 것도 가능한 일이긴 하다. 필경……. 계속해서 찾아 보거라. 내일 날이 밝으면 찾을 수 있는 흔적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는 중간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예, 말씀 받들겠습니다!”
이목청은 그 후로도 정원에 또 다시 한참을 머무르다 방으로 돌아갔다.
* * *
시화와 시녀들은 성을 빠져나와 사방화의 행적을 쫓으며 임안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백리쯤 지나 임안성을 코앞에 두고도 사방화는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동틀 무렵, 시녀들은 임안성에 도착했다.
밤하늘 아래, 성 전체는 쥐죽은 듯 고요했고 굳게 닫힌 성 문으로도 고약한 냄새가 가득 풍겨져왔다.
“모두 입과 코를 막아.”
시화가 시녀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일곱 시녀들도 임안성에 현재 역병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일제히 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막았다.
“성 문을 여시오!”
시화가 소리쳤다.
곧장 성 벽을 지키던 병사가 나와 여덟 명의 여인을 보고 물었다.
“누구시오? 열흘간 성 문을 닫고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태자전하의 명이 있었소. 다 돌아가시오!”
“우린 충용후부의 시녀들로 사 후야를 뵈러 온 것이오.”
시화가 서둘러 답하자, 병사가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말씀을 전할 테니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감사합니다.”
시화가 공수를 올렸다.
그 후로 대략 반 시진 정도 지나자, 병사가 돌아와 성 문을 열어주었다.
시녀들은 안으로 향하며 병사에게 물었다.
“사 후야께선 어디 계십니까?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길을 안내해드리겠소.”
시녀들은 병사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고는 그를 따라 성 안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