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7화 (717/978)

717화 행적을 따라오다 

“어딘가 다쳐 이 안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 아무런 악의가 없으니 아무나 나와서 내게 말 좀 해다오!”

진 내에는 여전히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도 답이 없는 걸 보니 상황이 심각한 듯하구나. 내 실로 걱정이 되니 진을 깨트리고 들어가겠다.”

이목청은 횃불을 넘겨주곤 진을 깨트리려 했다.

시녀들도 이젠 이목청이 사묵함에게서 배운 진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더 이상 그를 막을 수도 없었다. 그에 시화와 시묵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후 일제히 진에서 나와 공수하며 예를 갖추었다.

“이 공자님.”

“과연 너희들이었구나.”

이목청이 웃으며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이 공자님. 아가씨께선 다친 심혈을 운기조식으로 회복하는 중이신지라 방해를 받으시면 안 되십니다. 하여 곧장 나서지 못했습니다.”

“크게 다쳤느냐? 치료해 줄 사람은? 내 내공으로 도와줄 수는 없느냐?”

이목청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가씨의 특수한 내력은 아가씨만이 회복할 수 있기에 저희도 도울 수 없다 하셨습니다. 공자님께서도 도움을 주실 수는 없을 듯합니다.”

“무슨 큰 문제라도 있었던 것이냐?”

“오늘 상황이 매우 좋지 못해 이곳을 찾아온 겁니다. 우선 아가씨께서 내일까지 얼마나 회복하시는지 지켜보고 길을 떠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해야 할 듯합니다.”

이목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쪽에 있는 진을 한번 바라보았지만 짙은 안개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10리쯤 떨어진 밀림에서 흔적을 발견해 얼마 못 갔을 거라 생각하고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다.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저리 크게 다치신 것이냐?”

시화는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이목청은 줄곧 사방화에게 잘해줬던 사람이기에 신뢰가 가는 인물이란 판단 하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명산의 세 종사 중 한 명인 장봉 종사를 만났습니다.”

이목청의 안색이 급변했다.

“어찌 그 자를……?”

“아가씨께서 저희를 밀림 바깥에서 기다리게 하셨던 터라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가씨께서 저희를 부르셔서 도착해보니 아가씨께선 말매미 그물에 갇혀계셨고 땅에는 피 주검이 된 장봉 종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가씨께선 모든 힘을 다 쓰신 듯 기력조차 없으셨어요.”

이목청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어쩌다 그리 크게 다쳐 더 이상 가지도 못하고 있나 했더니 무명산 종사를 만난 것이었구나. 그게 아니었다면 따라잡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아가씨께서 서신도 보내셨는데 어찌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으신 겁니까?”

이어진 시화의 물음에 이목청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는데 혼자서 나갔다고 하니 내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말이지. 소왕야께서 경성을 떠나실 수 없으니 내가 대신 온 것이다. 아가씨께선 내가 지칠까 걱정돼 돌아가라 했지만, 난 지침 따위는 모른다. 큰일이 일어날까 걱정되어 온 것도 있고, 내가 도와줄 건 없는지, 마지막으로 나 역시 아가씨와 소왕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

시화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희도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잘 지내시다가 갑작스럽게 싸움이 시작됐고 아가씨께서는 곧장 왕부를 떠나셨지요. 저희가 떠나고 소왕야께선 의식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목청은 시화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아가씨께서 회복하시고 나면 다시 얘기하자꾸나.”

그가 곧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적당한 자리를 찾아 쉬도록 해라!”

이목청의 말에 호위들은 일제히 말에서 내려와 각자 쉴 곳을 찾아갔다.

시화와 시묵은 이목청이 여기까지 온 이상 다시 되돌아갈 것 같진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린 뒤 다시 진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화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목청도 구환산에서부터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 * *

날이 밝을 무렵, 드디어 사방화 주변의 짙은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도 천천히 눈을 떴다.

시녀들은 줄곧 사방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마침내 안개가 걷히는 것을 보고 일제히 가까이 다가왔다.

“아가씨, 좀 어떠십니까?”

사방화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어제 장봉을 죽인 후보다는 훨씬 나아보였다. 또 완벽하진 않아도 어제 그 말 한마디조차 힘겨워하던 모습도 꽤 괜찮아진 듯했다.

“좀 괜찮아졌어. 절반 정도 회복한 듯싶구나.”

“절반 밖에요? 거의 회복할 수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품죽이 깜짝 놀라 말했다.

“비술을 통제하는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내 몸이 축나는 걸 과소평가한 모양이야. 하지만 길을 떠나는 데는 아무 문제없어.”

“정말 이대로 가실 수 있겠습니까? 아가씨의 몸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하루 더 쉬었다 가세요.”

“난 쉴 수 있어도 임안성은 그럴 수 없잖니.”

사방화는 고개를 내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가씨, 이 공자님께서 어젯밤 저희 흔적을 따라 찾아오셨습니다. 지금은 진 밖에 계시고요. 돌아가라는 아가씨의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연이어 시화가 작게 속삭이자, 사방화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예상했던 바야. 목청 공자는 내 말 한마디에 쉽게 그리 돌아갈 사람이 아니거든. 진을 철수시켜라, 나가자.”

사방화는 천천히 진을 빠져나와 멀지 않은 곳, 어느 나무 아래에 기대있는 이목청을 발견했다. 새벽의 차디찬 산바람과 짙은 안개는 그가 입은 청색 옷과도 썩 잘 어울려 보였지만, 그만큼 더 그를 서늘한 분위기로 보이게 했다.

이목청도 쉬지 않고 사방화를 쫓아온지라 잠시 쉬기는 했어도 여전히 피곤한 기색은 역력했다. 존귀한 우상부 공자가 이 험한 산림을 굳이 자처하다니, 사방화는 잠시 멈춰 서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목청은 다른 곳을 보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곧 그도 진에서 나와 자신을 보고 있는 사방화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서둘러 일어났다.

“어떻습니까? 다친 곳은 나아졌습니까?”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 괜찮아졌습니다.”

“그 엄청나다는 무명산 종사를 죽였으니 몸이 남아나질 않는 게 당연하지요. 내가 조금 더 빨리만 왔어도 괜찮았을 텐데……. 아가씨께서 구환산에 쳐놓으신 진법 때문에 길이 막혀 빨리 올 수가 없었습니다.”

자책하는 이목청을 보고 사방화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왕비마마를 돌려보내기 위해 쓴 진법인데, 공자님의 길을 막았을 줄은 몰랐군요. 뭐 하러 힘들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나는 별일 없습니다.”

“이 지경이 되놓고도 괜찮다는 말이 나옵니까? 지금 안색을 좀 보세요. 밤새 운기조식을 해도 절반밖에 회복하지 못했잖습니까. 이렇게 합시다. 20리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올 테니 약방을 찾아 탕약을 마시도록 하세요.”

사방화는 고개를 내저었다.

“약을 챙겨 나온 게 있으니 괜찮습니다. 짐승 몇 마리만 구워 먹고 다시 출발하도록 해요.”

“임안성에 가려는 겁니까? 아가씨 몸이 제일 중요하니 한시도 조급해 마세요. 어차피 태자전하와 사 후야께서 계시잖습니까.”

이목청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라버니께서 임안에 계시니 마음이 놓이질 않는 겁니다.”

사방화의 대답에, 결국 이목청도 하는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정말 갈 수 있겠습니까?”

“네, 염려 마세요.”

이목청은 할 수 없이 뒤쪽으로 손짓을 해 짐승을 사냥해오도록 시켰다.

시화와 시녀들도 진을 철수한 뒤, 멀지 않은 곳의 샘물을 찾아 야생 토끼와 꿩들을 잡아 굽기 시작했다.

* * *

어느덧 둘만 남게 되자, 이목청이 사방화에게 조심스레 물어왔다.

“소왕야와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겁니까?”

사방화가 조용히 고개만 내젓자, 이목청은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내게도 숨기는 것이 있단 말입니까?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그리 힘들게 혼인까지 해놓곤 어찌 이리도 쉬이 모든 걸 다 포기한다는 겁니까? 이제 휴서 성지도 천하에 다 알려지고 두 분이 더 이상 아무 사이가 아니게 된 건 알고 있습니까? 이건 어린아이 장난이 아닙니다.”

사방화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공자님께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말할 수 없는 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장난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녀는 중간에 잠시 멈칫거리며 말을 끝냈다.

이내 이목청은 깜짝 놀랐다.

“그럼 정말 제대로 마음을 먹고 내린 결정이란 말입니까? 소왕야는 아가씨께서 먼저 꺼낸 이야기라던데 대체 왜 그런 것입니까?”

사방화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조용히 고개만 내저었다.

이목청도 자신의 말 때문에 조금 전보다 안색이 더 어두워져 버린 사방화를 보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가씨가 떠나고 영친왕부는 태의를 들였습니다. 그런 뒤 폐하께선 휴서 성지를 내리셨고 소왕야는 그 성지를 찢어버린 후 곧장 궁으로 달려갔습니다. 폐하께선 일찍이 사흘간 조정을 면한다하여 그 누구도 보지 않는다 하셨지만, 소왕야는 결국 시위 대장에게 활을 쏘아 궁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다 돌아가는 길에 날 맞닥뜨렸고 내게 이런 말을 했어요.”

이목청은 진강을 마주했을 때의 상황과 그가 했던 말들을 전해주었다. 진강이 이여벽을 다시 맞닥뜨리는 날에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고 했던 말까지 전하고서, 이목청은 재차 사방화를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 누이 때문에 무슨 오해라도 생긴 겁니까? 여벽은 근래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서 불공을 드린 게 전부였습니다. 나도 아무것도 보질 못했고요. 혹여 나와 아버지 뒤에서 몰래 무슨 일이라도 저지른 겁니까?”

사방화는 일순간 놀란 듯 자리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목청은 그녀가 말해주기를 조용히 기다려주었고, 잠시 후 사방화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땅만 바라보았다.

새벽녘, 해가 뜨기 전이라 나뭇잎 위로는 찬 이슬이 맺혀있었다. 또 그 주위를 따라 서늘한 기운도 감돌았다.

사방화는 그 찬 서리처럼 고요한 침묵을 지키다 서서히 입을 열었다.

“진강이 그런 말을 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건 이여벽 아가씨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염려 마세요. 소왕야께 그러지 말라 전하겠습니다. 이 아가씨는 그저 평소처럼 지내시면 돼요. 저 때문에 곤란해져선 안 됩니다.”

사방화는 한숨을 내쉬며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시녀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목청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더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 * *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다시 길에 올랐다.

사방화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까닭에 사시(*巳时: 오전 9시 ~ 오전 11시)가 돼서야 다음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행들은 쉬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사방화는 면사포를 쓰고, 이목청도 모자를 하나 사서 쓰고 순조로이 마을을 빠져나왔다. 

휴서 성지가 세상에 알려진 지는 벌써 하루가 지났지만, 행인들의 입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이야기로 보아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은 듯했다.

정오 무렵, 일행은 한 객잔을 찾아 잠시 쉰 후 다시 길을 재촉했고, 임안성을 백리 정도 앞둔 지금은 이미 해가 다 저문 상태였다.

날이 저물자 이목청이 사방화에게 말했다.

“벌써 하루가 다 갔으니 잠시 쉬다 갑시다. 한밤중에 다시 길을 떠나도 괜찮으니 무리해선 안 됩니다.”

사방화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일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목청은 자신의 객잔으로 들어가 사방화에게 뜰 하나를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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