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5화 (715/978)

715화 보이지 않는 그물 (1) 

잠시 후, 사방화가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아가씨?”

시녀들은 깜짝 놀랐다.

“내 말 들어. 내 분부 없이는 절대 따라와선 안 된다.”

사방화는 그녀들에게 이 말을 남기곤 혼자 산길로 들어갔다.

시화, 시묵은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감히 주인의 명령을 어기고 따라나설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눈을 부릅뜨고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 * *

사방화는 산길로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숙한 골짜기로 들어서게 됐다. 그러자 갑자기 나무에서 큰 그물 두 개가 양 옆으로 떨어지며 사방화와 말을 다 덮어버렸다.

사방화는 즉각 검을 꺼내 휘둘렀지만, 쇠를 깎아내 진흙처럼 만든 보검은 그물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순식간에 그녀와 말은 그물에 덮였고, 말은 옆으로 쓰러지며 사방화의 다리 한 쪽을 깔아뭉개버려서 그녀도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그물이 죄어지자 사방화와 말은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어떤 놈이냐?”

사방화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분명 기구에 그물을 매달아 누군가 몰래 조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사방화의 목소리가 울리자 숲속에서 갑자기 냉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방화! 엄청난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하찮은 방법으로 널 붙잡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스스로 묻힐 자리를 찾은 셈이 아니더냐?”

“어떤 놈이냐 물었다!”

사방화가 또다시 소리쳤다.

“무명산에서 그리 오래 지냈으면서 내 목소리마저 잊어버린 것이냐? 지봉 그 우매한 놈이 네가 그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였으나 내 보기엔 그 놈이 한참 덜떨어진 듯한데? 내 손에서는 아주 잘 놀아나겠어.”

“장봉 종사셨군요. 저 같이 연약해 빠진 여인이 뭔가를 배웠다 한들, 어찌 종사보다 잘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 사방화는 잠시 멈칫하더니 자신을 가둔 그물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 그물은 대체 무엇으로 만든 겁니까? 제 보검으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던데요?”

장봉이 코웃음을 쳤다.

“말매미로 만든 그물이니 네 보검으로도 끊을 수 없는 게 당연하지. 끊어낼 수도, 태울 수도 없다. 널 상대하느라 힘을 뺄 필요도 없으니 아주 유용하구나.”

사방화가 웃으며 말했다.

“종사께서 이리도 제 생각을 해주시다니 참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장봉은 드디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옷으로 얼굴을 가린 그는 흡사 지옥에서 나온 마귀처럼, 대낮에도 음산하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가 곧 사방화의 곁으로 다가와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말했다.

“지봉이 네 실력을 칭찬해대지만 않았어도, 이 몸이 요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잡으려 이틀 내내 고생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이틀이나 이곳에서 절 기다리셨다니 그럼 제가 경성에서 나와 반드시 이 길을 지날 것을 알고 계셨던 거군요.”

사방화는 그에게서 나오는 음산한 기운에 얼굴이 다소 하얗게 질렸다. 그에 장봉도 두려움에 떠는 그녀의 눈빛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임안성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길을 지나야 하는데 그럼 여기 말고 어디서 기다리겠느냐?”

“제가 경성을 나설 때도 폐하께선 절 막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황실 은위 종사의 독단적 주장이어서? 아니면 황명을 받들어야 했기 때문에? 대체 경성을 놔두고 이리 먼 곳까지 와서 절 죽이려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널 죽여? 난 널 죽일 생각이 없다.”

장봉이 고개를 내저었다.

“죽이지 않는다고요?”

“그 매족의 술법이 적힌 책만 내놓는다면 널 용서해주겠다.”

장봉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놓지 않으면요?”

“그럼 네 할아비, 오라비와 형제자매, 모든 사씨 가문이 널 대신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장봉이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부님께선 이미 제 사람들과 함께 떠나셨습니다.”

“동쪽 바다로 떠났다고? 애송아, 무명산에서 고작 몇 년 있었다고 머리가 굵어졌다 생각하느냐? 네 할아비는 곧 바다 밑에 묻히게 될 거다. 절대 동쪽 바다로 갈 수 없단 말이다.”

장봉의 섬뜩한 웃음소리는 주변에 있던 새들마저 날려 보냈다.

순간 사방화의 안색이 돌변했다.

“조부님께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네가 세상 물정을 알면 네 할아비도 죽을 일은 없지. 그렇지 않다면 속세에 어두운 네 결말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알려주마. 어떠냐? 도저히 내놓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사방화는 서서히 몸을 떨기 시작했다. 

장봉은 두려움에 떠는 사방화의 모습을 흡족히 바라보았고, 그에 사방화도 최대한 떨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모든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게 사방화는 한참 후에야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절 죽이고 매족 술법을 얻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종사께서 술법을 얻으려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황제? 남진의 그 늙은이를 말하는 게냐? 무능한 주제에 언제까지고 우릴 제 손에만 쥐고 있으려 하지. 참 꿈도 크단 말이다!”

장봉이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그럼 종사께선 대체 매족 술법으로 뭘 하려는 겁니까?”

사방화가 말했다.

“날 떠볼 필요도, 내가 뭘 하려는지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내게 그 술법을 내놓기만 하면 돼. 내놓지 않는다면 네 눈앞에서 사씨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는 걸 보여줄 것이다. 네가 그렇게나 사씨 가문을 아낀다던데 그럼 내가 하나하나 정성스레 죽여주어야지.”

“종사께선 제가 사씨 가문을 지키려 드는 것도 알고 계시군요. 술법을 드릴 테니 이후로 사씨에게 손을 댔다간 저도 종사를 가만두진 않을 겁니다. 이 사방화가 멍청하지 않은 사람인 건 잘 아실 테지요.”

사방화는 안색을 굳히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래. 넌 확실히 보통 여인들과는 다르지. 내 물론 사씨가 마음에 들진 않는다만 네가 술법만 넘긴다면 건드리지 않겠다.”

사방화는 문득 격노한 빛으로 소리쳤다.

“수백 수천 년간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세가대족이 바로 사씨다! 내가 손가락만 한번 까딱하면 이 남진 경제 명맥을 끊어버리고 남진 강산의 절반을 장악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인가? 이렇게 사씨를 얕보고 모욕하면서도 내가 당신 같은 이에게 넘겨줄 것이라 생각하느냐?”

장봉은 웃음을 터뜨렸다.

“약해 빠진 여인 중 조금 더 총명하고 강할 뿐이지 언제까지나 한계는 있는 법이다. 네 사씨 가문, 남진 강산, 북제 강산과 다른 소국들을 합쳐 봐도 매족 하나에 미치진 못하지.”

“매족은 오래전 모두 멸하지 않았나요? 매족은 소국이라 남진 강산과 북제 강산은커녕, 우리 사씨가 지닌 힘 열할 중의 이 할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 매족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는 겁니까? 종사께선 무명산의 산송장들과 뒤섞여 지내시느라 생각하는 것도 모두 어리석어지신 것 같은데요?”

사방화가 장봉을 노려보며 말했다.

“허무맹랑한 소리 집어치워라! 감히 내게 어리석다는 말을 해?”

“어리석은 게 아니라면 뭡니까? 매족은 일찌감치 멸족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몇 사람 외에 대체 이 천하에 매족의 흔적이 어디 남아있다는 겁니까? 남진 강산, 북제 강산과 사씨마저 업신여기는 사람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장봉은 화를 내려다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녀석, 천하 열 개를 쥐여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매족이란 보물임을 모르다니. 어서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잘난 네 놈과 사씨를 살리고 싶다면 매족 술법이나 내놓거라.”

“술법만 얻는다면 정말 저와 사씨를 놓아주실 겁니까?”

“당연하지. 내 한 번 뱉은 말은 지키고말고.”

“이 술법으로 뭘 하실 겁니까?”

사방화가 또다시 묻자 장봉은 돌연 보검을 꺼내 사방화에게 들이밀었다.

“내놓지 않는대도 널 죽이진 않을 거다. 하지만 사씨 가문은 죽이고 널 죽을 때까지 괴롭힐 테지. 먼저 네 이 면상에 그림이나 그려두고 시작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내놓을 것이냐, 말 것이냐?”

사방화는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내놓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종사께서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고 하신 데다 우리 조부님 목숨도 종사의 손에 달려 있으니 드려야지요. 일단 검을 거두시고 절 풀어주시면 드릴게요.”

장봉이 검을 거두었다.

“꾀부릴 생각 마라. 놓아주면 도망갈 것이 아니더냐?”

“기억을 꺼내 써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리 쉬이 절 잡아놓고선 제가 어찌 도망을 치겠습니까? 종사께 상대도 안 되는 제가 어딜 도망갈 수 있겠어요?”

“굳이 쓸 필요 없다. 내게 말로 전해줘도 되니 어서 말해 보거라.”

장봉은 사방화의 꾀에 넘어가지 않았다.

“여기 종사 홀로 계신 겁니까? 만약 누군가 듣기라도 한다면 어떡합니까?”

“아무도 없으니 걱정 말고 어서 말해 보거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용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리 가까이 와 보세요. 그 전에 맹세부터 하세요. 술법을 얻고 나면 저와 사씨에게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뒤집히는 고통에 죽게 될 겁니다.”

“알겠다!”

장봉은 하늘에 맹세하며 어서 사방화가 말해주기만을 기다렸다.

서둘러 맹세를 하고 가까이 다가와 기대에 가득 부푼 눈빛을 빛내는 장봉을 보며 사방화는 속으로 그를 한번 비웃었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손을 뻗어 푸른빛을 쏘아 올렸고 순식간에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장봉은 안색이 급변해 서둘러 칼을 휘둘렀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그가 방심한 사이 사방화가 순식간에 손을 쓴 것이었다. 

푸른빛은 장봉의 목을 움켜쥐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3배가량 커지더니 금세 그의 온몸을 감싸버렸다.

그는 사방화에게 눈에 보이는 그물을 씌웠지만, 사방화는 장봉에게 보이지도 않는 그물을 씌웠다. 그도 결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장봉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푸른빛으로 이루어진 그물은 더욱더 그의 몸을 촘촘히 조여 갔다. 탁월한 능력과 기질을 갖춘 그도 이 순간만큼은 꼼짝없이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봉은 갈수록 두려움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사방화를 바라보았다.

“이……, 이건……, 매족의 비술……! 네가 매족의 비술을 쓸 줄 안다고?”

자신이 얻어내려 했던 것이 사방화의 손에서 나와 자신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라니……. 장봉은 더욱더 공황상태에 빠져갔다.

사방화를 붙잡았다는 생각에 득의양양했던 찰나, 눈 깜짝할 새 자신이 외려 그녀에게 붙들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일순간 놀라움과 함께 분노가 치솟았다.

사방화는 장봉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린 푸른빛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가느다란 빛 가닥은 하나의 날카로운 검이 되어 장봉의 몸을 서서히 파괴하고 있었다.

“장봉. 당신이 나를 죽이게 될까, 아니면 내가 당신을 죽이게 될까?”

“해볼 테면 해봐라!”

장봉은 있는 힘껏 소리쳤지만, 푸른빛에 목이 졸려 찢어지듯 거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림없지!”

사방화는 아주 통쾌하게 답했다.

“네 할아비와 외숙부, 사씨 가문은……, 포기하는 것이냐? 네가 날 죽인대도 누군가 반드시 저들을 처리할 것이다.”

장봉은 사방화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듯 그다지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 사방화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당신을 죽일 배짱도 있는데 지켜낼 능력이 없을까봐? 여기서 죽게 될 사람은 너다. 다른 곳에서도 그 누군가가 죽게 되겠지.”

장봉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같잖은 여인의 입김이 이리도 세서야. 너……, 네 아비를 죽인 자가 누군지 아느냐?”

“말해봐.”

“꿈 깨라!”

장봉은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젠간 찾아내고 말 것이다. 종사, 당신이 말하지 않은 것이니 내 탓은 마세요. 시신은 불살라 드릴 테니 딱히 내겐 감사할 필요는 없고.”

이내 사방화가 손목을 돌리자 푸른빛은 금세 섬뜩한 살의를 띠었고 아주 부드러운 칼날처럼 한 조각씩 장봉의 몸을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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