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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화 (703/978)

703화 황후마마 납시오! (2) 

이내 시화는 잠시 주변을 살피다, 사방화의 귓가로 다가와 속삭였다.

“어젯밤 경가 공자가 노후야, 최윤 장군님, 임계 공자님을 모시고 경성을 나갔습니다. 충용후부 은위와 천기각 호위까지 함께요. 반드시 세 분을 마마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안전히 모실 테니 염려 마시라고 했습니다.”

“응. 외조부님과 오라버니, 언신의 소식은 알아봤어?”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선배를 재촉해 북제를 나와 서쪽으로 향하게 했으나 아직까진 소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 후야와 언신 공자는 현재 임안에 계신다고 합니다. 임안에 큰 홍수가 나 다리가 무너져 그곳에 발이 묶이셨대요. 하지만 마침 태자전하께서 치수를 하러 오시어 지금 세 분이 모두 다 함께 경성에서 800리 떨어진 곳에 계신답니다.”

“태자전하께서 그렇게 먼 곳으로 치수를 하러 갔다고?”

사방화가 눈썹을 들썩였다.

“임안은 남진에서 양초(*粮草: 군량과 마초)를 생산하는 중심지입니다. 그러나 이번 수해로 모든 남진 양초 공급에 문제가 생겼고 특히나 군량미가 심각히 부족하답니다. 

때문에 태자전하께선 친히 거상 호신들과 각 부랑에서 기증한 은을 나누어 각 지방 관리들과 협조 하에 며칠 전 임안에 도착하셨다 합니다. 임안이 수해를 입어 사 후야께서도 사씨를 동원해 이재민을 구했다고 하시고요.”

“어쩐지 서둘러 치수를 나간다 했더니 군량미와 농작물이 국력에 영향을 끼칠까 그랬던 것이구나.”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마 태자전하께선 열흘 보름 안에는 경성으로 돌아오실 수 없을 듯합니다. 임안의 수해가 큰 만큼 사 후야께서도 할 수 없이 임안에 계셔야 하고요. 자연히 막북 군권을 넘겨받는 것도 미뤄질 것입니다.”

“태자전하께서 오라버니께 초지를 붙여줬다고 했어.”

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줄곧 사 후야 곁을 지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방화는 곧 미간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경성에서 임안이 800리면 그리 멀지도 않으니 언신에게 보낸 서신도 오늘 밤엔 도착하겠지? 언신이 답신을 보내도 내일 밤이나 모레 아침까지는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소왕비마마! 서둘러 입궁하라는 황명이 도착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희순이 낙매거로 들어왔다.

“왜?”

사방화가 물었다.

“오 태감님이 말씀을 전해주신 것이라 자세한 얘기는 없으셨습니다. 소인, 왕비마마의 분부를 받아 소왕비마마에 관한 일은 모두 왕비마마께 먼저 아뢰옵고 있습니다. 

왕비마마께선 소왕비마마의 몸이 좋지 않으시니 뒤로 미루라고 하셨습니다만 오늘 아침 소왕야께서 소왕비마마를 찾는 모든 이들을 숨기지 말고 말씀드리고 마마께서 결정하실 수 있도록 하라하셨기에 이리 찾아왔습니다.”

“정말 몸이 좋지 않으니 황궁에 들어가긴 힘들겠어. 미뤄줘.”

“알겠습니다!”

희순이 물러나자 시화가 다시 사방화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마, 폐하께서 어제는 소왕야를 찾으시고 오늘은 마마를 찾으시는 걸 보니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폐하께선 줄곧 마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잖아요.”

사방화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충용후부에 관한 일일 거다.”

시화는 순간 깜짝 놀랐다.

“마마께서 아무도 모르게 세 분을 경성 밖으로 보내신 걸 아신 걸까요?”

“황실 은위가 줄곧 충용후부를 감시하고 있으니 바람에 풀 한 줄기 흔들리는 것조차 황궁에 다 보고가 되겠지.”

시화가 걱정스레 말했다.

“마마, 폐하께서 질책이라도 하면 어쩌지요?”

사방화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우리 충용후부는 죄지은 게 없다. 조부님, 외숙부님, 임계 오라버니 모두 관직도 없으신데 경성을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니겠니? 내게 무슨 이유로 질책을 하시겠느냐?”

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사방화는 다시 시화에게 분부를 내렸다.

“본원으로 가 왕비마마께 말씀을 전해드려. 내가 어젯밤 조부님, 외숙부님, 임계 오라버니를 경성 밖으로 보내드렸다고. 그 이유는 충용후부를 속세에서 지우기 위해서이고 숨겨진 산에 있는 종사들이 조부님께 손대는 걸 막기 위해서고, 폐하께서 이 소식을 듣고 날 찾아왔다고도 말씀드려.”

“알겠습니다.”

시화는 곧장 본원으로 향했고 사방화가 방으로 들어서자 시묵이 따라 들어와 그녀의 단장을 도왔다.

잠시 후 시화가 돌아와 아뢰었다.

“소왕비마마, 어젯밤 노후야께서 떠나시기 전 왕비마마께 말씀을 드려 이미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간 이 어지러운 경성에 갇혀 힘드셨을 테니 외지로 나가 속세로부터 피신하는 것이 가장 좋은 상책이라고도 말씀하셨고요. 다만 폐하께서 이 소식을 알게 되시면 다른 이도 곧장 알게 될 테니 반드시 잘 호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방화는 때마침 창가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선객래를 비추는 것을 바라보다가 눈에 힘을 줬다.

“다른 이가 소식을 듣는 건 상관없다만, 우리만 그 소식을 듣지 못할까 걱정이구나.”

시화는 사방화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 * *

곧 식사를 마친 사방화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황후마마 납시오!”

사방화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잠시 후, 시화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소왕비마마, 소왕비마마의 몸이 편치 않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황후마마께서 친히 왕부로 드셨습니다. 왕비마마께서 맞이하러 나가셨지만, 본원으로 들지 않으시고 곧장 낙매거로 오셨습니다.”

황후가 어째서 친히 사방화를 찾아온 것일까?

이내 사방화는 화장대로 가 연지와 분을 꺼내 가볍게 화장을 시작했다.

시화는 어리둥절해하며 그저 뒤에서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만 서 있었다.

잠시 후 영친왕비가 황후와 함께 입구에 다다랐다. 황후는 아주 다급한 듯 걸음을 재촉했다.

“황후마마, 무슨 일로 이리 급히 방화를 찾아오신 겁니까? 조금 전 깨어난 데다 몸 상태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형님, 내 실로 급한 일로 소왕비를 봐야겠으니 나중에 말씀드리리다.”

영친왕비도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편, 마침 화장대에서 일어난 사방화는 어느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시화는 깜짝 놀랐다.

분명 가볍게 화장을 했을 뿐인데 갑작스레 병약해진 모습이라니……. 혈색도 찾아볼 수 없이 창백했고, 언뜻 보기에도 상태가 아주 나빠 보여 이 모든 광경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가 큰 병에 걸릴 것이라 철석같이 믿을듯했다.

“소왕비마마?”

“시화, 날 부축해다오.”

시화가 얼른 손을 뻗어 사방화를 부축해주자, 사방화는 아예 몸의 반쯤을 완전히 시화에게 기댔다.

그렇게 시화가 조심스레 사방화를 부축해 방 입구로 향하니 마침 도착한 영친왕비와 황후가 보였다.

곧 휘장이 걷히고 황후는 귀신처럼 창백한 얼굴로 시화에게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사방화를 마주했다. 만일 사방화의 미모가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화창한 대낮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경악시킬 정도였다. 

“소왕비?”

“황숙모님!”

사방화가 힘겹게 인사를 올렸다.

“너 이게…….”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습니다. 염려 마세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사방화가 입술을 깨물며 겨우 답한 뒤, 시화에게 비켜서라는 손짓했다.

황후가 고개를 돌려 영친왕비를 바라보았다.

영친왕비 역시 깜짝 놀라 멍하게 있던 중, 이내 무언가 깨달았던지 태연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우선 안으로 들어가 얘기하시지요.”

* * *

세 사람이 화당에 다다르자 시화, 시묵이 차를 내왔다.

이윽고 사방화는 손수건을 꺼내 기침을 두어 번 하며 말했다.

“몸이 좋지 않아 멀리 나가지 못했으니 황숙모님께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십시오. 송구합니다.”

“한 식구끼리 그리 예의를 차릴 필요가 어디 있니? 몸도 안 좋은데 더더욱 그럴 필요 없다.”

황후도 사방화의 혈색이 아주 형편없는 것을 보며 확실히 금방 의식을 되찾고 깨어난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일이 있어 널 찾아왔다.”

황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금 전 폐하께서도 제게 궁으로 들라 하셨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황숙모님께서 이리 급히 저를 찾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무슨 일이기에 이리도 다급히 오셨습니까?”

사방화가 황후를 보며 말했다.

“황후마마, 방화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요?”

오랜 세월 황궁 생활을 한 황후는 자연히 영친왕비의 말뜻을 이해했다. 만약 사방화를 문책하러 온 것이라면 절대 허락해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오해세요. 경성 내외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몸이 상하는지도 모르고 분주했던 소왕비를 칭찬하고 상을 내리진 못할망정 어찌 문책할 것이 있겠습니까? 폐하께선 다른 일로 소왕비를 찾으신 겁니다. 하지만 폐하의 옥체가 상하시어 궁에서 나오시질 못해 내가 대신 온 것이지요.”

“다른 일이라면?”

영친왕비가 물었다.

“방금 전 폐하께선 임안이 수해를 맞고 역병이 도는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태자는 백성들이 공포에 날뛰는 걸 막기 위해 잠시 임안성을 봉쇄했고 아직 경성에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어요.”

“뭐라고요?”

사방화가 깜짝 놀라 황후를 바라보았다.

“방화 너도 알다시피 폐하께서 태자 곁에 사람을 붙여놓아 상소를 올리기도 전에 소식이 전해졌다. 폐하께선 본래 태자가 귀경하면 모든 중책을 맡기고 퇴위하여 태자를 즉위시킬 생각에 큰 기대를 걸고 계셨지. 

난 태자의 어미로서 오로지 내 아들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다. 손 태의가 변을 당해 이젠 태의원에도 그만한 태의가 없고 아무도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아 폐하께서 걱정스런 마음에 널 궁으로 들라 하신 거였다. 그런데 네가 궁에 올 수 없는 상황이니 내 이리 친히 찾아온 것이지.”

사방화는 이내 사묵함이 임안성에 있다는 것을 떠올리곤 안색이 변했다.

그때, 영친왕비가 입을 열었다.

“황후마마, 그게 정말입니까? 임안에 수해가 심하다는 말은 어렴풋이 들었다만 역병이 돈다는 얘기는 듣질 못했습니다.”

“역병이 도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받았어요. 이번 비로 인해 남진 여기저기가 침수되었다지요. 특히나 임안이 심해 논밭뿐만 아니라 가옥이 무너지고 물이 불어나 익사사고까지 일어났다고 합니다. 

태자가 급히 치수를 하러 가 여럿 구하기도 했으나 일이 이렇게 됐지요. 형님, 폐하께는 아들이 여럿일지 몰라도 내겐 우리 옥이 하나뿐입니다. 태자가 총명하긴 해도 역병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으니 만약 사고라도 생기면 이 어미인 내가 어찌 살겠습니까?”

황후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영친왕비는 곧 사방화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황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 후작도 수해에 발이 묶여 임안에 있다던데?”

“그럼 우리 연이도 임안에 있다는 것이니?”

영친왕비가 급격히 굳어진 안색으로 물었다.

사방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네, 오라버니께서 임안에 발이 묶였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역병이 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황숙모님, 우선 진정하십시오. 오라버니께서 경성을 떠나실 때 태자전하께서 초지를 곁에 붙여주셨으니 두 분 모두 임안에 계실 것입니다. 

초지의 의술로 말할 것 같으면 얼마 전까지도 각 부랑에서 충신들의 진료를 도맡았을 만큼 아주 유능합니다. 태자전하께서도 아마 현재 상황이 통제가능할 거란 생각에 따로 상소를 올리지 않으신 듯합니다.”

황후도 비로소 안색이 조금 가라앉았다.

“억지로 숨기고 있을까 걱정이구나. 영민하긴 해도 고집이 보통 고집이 아니니 말이야.”

영친왕비는 다시 황후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폐하께서는 방화가 의술에 능하니 임안에 다녀오라는 뜻을 갖고 계신 겁니까?”

황후가 답했다.

“폐하께선 태자의 안위가 걸린 문제인 데다 경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800리 정도 떨어진 곳이니 실로 역병이 도는 것이라면 백성들이 공포에 떨지 않도록 지나치게 떠벌려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여 폐하께선 내게 소왕비 의술이 뛰어나니 찾아가 만나보라고 하셨지요. 우리 태자의 안위가 아니더라도 사 후작과 진연까지 임안에 있으니 소왕비도 가만히 앉아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고 하셨어요.”

영친왕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황후마마께서도 보셨듯이 방화의 몸 상태가 이런데 어찌 경성 밖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임안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역병까지 돌고 있다면 더더욱 쉽게 갈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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