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화 배후의 동기 (1)
사방화는 안색이 돌변해 어르신의 맥을 짚었지만, 어르신은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숨이 끊어졌어요!”
사방화의 외침에, 진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응?”
“이 최면술로는 사람이 죽을 리가 없는데. 아무리 연세가 있다지만 그럴 리가 없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사방화가 이윤을 한번 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이오?”
진강이 말했다.
“배후에서 손을 잡았던 그 자와 더불어 이 일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면, 그걸 밝히지 못하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숨이 끊길 순 있지요. 표정에 여러모로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비치는 걸 보니, 죽음보다 사실을 털어놓는 두려움이 더 컸나 봐요.”
사방화가 한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
진강은 눈썹을 까딱이다 쓴 웃음을 지으며 또 다른 어르신에게 다가갔다.
“천하에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있다니 정말 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군. 좌상 대인을 끌어내리기만 하면 집안의 출세한 자손을 일으켜 세워주겠다고 한 이가 누구요?”
“그……, 그는……. 그…….”
그 어르신은 입을 열었지만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공포에 질린 채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방화가 곧바로 외쳤다.
“이러다간 사망자가 또 생겨날 거예요!”
“상관없소, 죽음을 자초한 이는 이들이오.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배후에서 음모를 꾸민 죄, 군영을 혼란케 만든 죄로 구족을 몰살시켜버릴 것이다!”
진강이 어르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무섭게 호령했다.
“아니 됩니다……!”
어르신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말하라!”
진강이 다시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 그가 누군지는 모릅니다. 검은 옷에 복면을 쓰고 있어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작은 벌레가 든 사발을 들고 이 벌레만 있으면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주 대단한 자였습니다.”
“언제 범양 노씨 댁을 찾아왔소?”
진강이 차갑게 물었다.
“자……, 작년입니다.”
“작년 언제?”
“작년 이맘때쯤…….”
“범양 노씨는 누군지도 모르는 자에게 그리 쉽게 집안을 내건단 말인가?”
진강이 물었다.
“좌상은 가문을 먹여 살릴 힘도 없는 늙은 늑대에 불과합니다. 그 좌승상이란 드높은 자리에 올려주고자 우리 범양 노씨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지요. 집안을 이용하기만 하고 홀대한 데다 혼자서만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있단 말입니다…….”
“허면 그대들은 내게 뭘 원하셨소! 폐하의 녹을 먹으며 나라를 위해 힘썼거늘, 날 이용해 사리사욕을 꾀하려 하지 않았소? 내가 아니었으면 범양 노씨는 일찌감치 죽은 목숨이었소!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려!”
어르신의 말에 좌상이 불같이 분노했다.
“좌상 대인, 진정하십시오.”
진강이 담담한 빛으로 좌상을 진정시켰다. 이내 좌상은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멍하니 아무 말도 없었다.
사방화는 좌상을 흘낏 보며, 그와 범양 노씨 사이의 골은 이미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굴도 모르는 이와 손을 잡고 음모를 꾸며 좌상을 끌어내리려 할 리는 없었다. 좌상의 체면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그렇게 망설임도 없이 집안을 내걸어서라도, 좌상 대인을 끌어내리려 했단 게 사실이란 말이오? 한 가문이 좌상이란 관직보다 못하다?”
진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을 완벽한 계획이라 했습니다…….”
어르신이 고개를 내저었다.
“완벽한 계획이라? 고작 그 벌레 몇 마리로 그 자의 말을 믿었다고?”
진강이 코웃음을 쳤다. 어르신은 이 벌레라는 말을 듣자 또다시 공포에 질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범양 노씨 가문은 모든 죄를 지고, 온 집안 사람들이 몰살당할 것이오. 그대들이 노리는 좌상께선 계속 모든 부귀를 누릴 것이고.”
진강이 다시 싸늘하게 말했다.
“제……, 제가 그 자를 믿은 건……, 바로…….”
어르신은 몸부림치듯 다리를 두어 번 흔들더니 이내 말이 없어졌다. 진강은 곧바로 사방화를 돌아보았다.
“숨이 끊겼어요.”
사방화의 답에, 모두가 다시 탄식을 했다. 범양 노씨 가문에서 온 다섯 명 중, 벌써 두 명이나 죽고 단 세 명만 남아 있었다.
진강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가 서늘한 눈빛을 번쩍였다.
“모두 죽는다 한들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다시 똑바로 말하라! 어찌 그 자가 반드시 좌상 대인을 끌어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그대들이 원하는 권익을 준다고 했나? 말하지 않으면 당장 이 자리에서 죽일 것이다.”
어르신이 공포에 질려 말했다.
“죽이지만 마십시오…….”
“그럼 당장 말씀을 하시오.”
진강이 재차 추궁했다.
“저는……, 말……, 말할…….”
그 어르신도 이내 다리를 허둥대더니 죽어버렸다.
진강은 있는 힘껏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영전 안에선 순식간에 싸늘한 기운만 감돌았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사람을 이리 만들어놓는지 내 똑똑히 봐야겠다.”
이내 진강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맞은편 어르신 앞으로 갔다. 그러자 사방화가 얼른 그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더 이상 물어봐도 답이 나오진 않을 것 같으니, 다른 걸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예를 들면 손 태의 살인 사건이라든지, 거대한 바위와 늑대 무리, 한 대인의 살인 사건 같은 것들이요.”
사방화의 말에 진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어르신께서 손 태의를 죽인 거요?”
어르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노예 공자를 군영으로 보내고 범양 노씨는 그동안 뭘 했소?”
진강이 물었다.
“노예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범인을 찾아내, 죽음으로 그 죗값을 치르게 하려했습니다…….”
어르신의 답을 듣고 진강이 더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다른 건?”
“어……, 없습니다.”
어르신이 말했다.
진강이 다시 사방화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이 정도만 하는 게 좋겠어요. 다섯 분을 다 돌아가시게 할 순 없잖아요.”
진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키고는 좌상을 향해 말했다.
“좌상 대인, 좌상 대인께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까?”
좌상은 마음을 가다듬고 진강에게 공수를 올리며 말했다.
“이윤은 노예의 죽음과 관련이 없으니 우선 저 자를 풀어주시구려. 그러나 손 태의 죽음과 거대한 바위 사건, 늑대 무리에 이어 한 대인의 죽음에 선 그 자는 반드시 낱낱이 밝혀내야 할 것이오.”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좌상 대인과 관련 있는 일이기도 한데 이제 어떻게 조사하면 좋을 지요?”
좌상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태자전하께서 소왕야께 모든 걸 넘기셨으니 소왕야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오. 군자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이 좌상도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소.”
“범양 노씨……. 이 두 분은 깨어나는 대로 좌상 대인께서 처리하시지요. 돌아가신 세 분도 좌상 대인께 넘길 테니 원하는 대로 하시고요.”
진강이 몇 걸음을 내딛다 이내 뒤돌아 말했다.
“소왕야께서 결정하심이 옳소. 같은 범양 노씨 족속 종친들이니 나도 혐의를 벗고야 말겠소이다.”
좌상이 곧바로 대답했다.
“좌상 대인,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대의멸친(*大義滅親: 대의를 위해 부모, 형제도 살피지 않음)이야말로 진정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 사건도 그저 최면술로 속에 있는 말을 끄집어내 대충 해결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모든 진상이 명백히 밝혀져야만 황숙께 아뢰어 합당한 죄가 내려질 테니까요.”
진강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 분들은 노신이 처리하겠소.”
좌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진강은 사방화를 향해 말했다.
“남은 두 사람 좀 깨워주시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아남은 두 어르신을 깨웠다.
두 어르신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다, 누워있는 세 사람을 보고는 아연실색하며 말했다.
“대……,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좌상 대인께서 설명해 주시지요.”
진강은 사방화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
“소왕야!”
범양 노씨 어르신이 소리를 쳤지만, 진강은 사방화에게 우산을 더 기울여주며 영전 밖으로 나가버렸다.
* * *
진강이 영전 바깥으로 나와선 사방화에게 말했다.
“우리 저기 한번 봐봅시다.”
진강이 한술이 묵었던 방 창가를 가리켰다.
창가에 다다른 두 사람은 벽을 주시하다가 진강이 먼저 질문을 했다.
“뭐라도 찾아낼 수 있겠소?”
“아니요,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아요.”
사방화가 고개를 내저었다.
“진옥이 심어둔 은위 백 명은 무슨 수로 문초하지요?”
진강이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사방화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은위는 아주 어릴 적부터 길러지니 심지도 예사롭지 않고, 황실의 은위라면 최면술 따위는 걸려들지도 않을 거예요. 게다가 백 명이라니…….”
“그래, 몸이 상할 수도 있으니 최면술은 그만 쓰시오.”
진강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우선 그 은위들을 불러 한번 살펴봐요.”
사방화의 말에, 진강이 크게 소리쳤다.
“월낙!”
월낙이 곧장 진강의 앞으로 왔다.
“예, 소왕야!”
“은위 백 명을 다 불러 오거라.”
진강의 명령에 월낙이 사방을 한번 살피고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고 눈만 내놓은 은위들이 나타났다.
진강이 그들을 살피며 물었다.
“어젯밤 너희들이 이곳을 지켰으니, 누가 한술을 죽였는지 봤겠지?”
“보지 못했습니다!”
은위 백 명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그 바늘은 어디서 난 것이냐?”
진강이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은위 백 명은 또 일제히 고개를 내저었다.
“너도 이곳에 있었느냐?”
진강이 다시 월낙을 향해 말했다.
월낙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소왕야께 아룁니다. 어젯밤 저도 이 자리에 있었으나 한 대인의 방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진강은 은위들을 살펴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뒤쪽을 향해 분부했다.
“어젯밤 영전 밖에서 보초를 섰던 병사들을 모두 불러 오거라.”
얼마 지나지 않아, 오백 명의 병사들이 나란히 줄을 맞춰 섰다.
진강은 사방화의 손을 잡고 병사들 모두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곧 모든 병사를 둘러본 진강이 한 장병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물러가거라!”
장병은 병사 오백 명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
진강은 다시 한참동안 은위들을 살펴보다가 월낙에게 말했다.
“그만 물러가 보거라.”
월낙의 손짓 하나에 은위 백 명이 동시에 사라졌다.
그런데 월낙은 자리를 뜨지 않고 재차 진강에게 말을 올렸다.
“소왕야, 이 은위들은 어릴 적부터 태자전하를 따르며 지금껏 전하의 보위를 위해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한 대인의 죽음과는 분명 무관합니다.”
진강이 천천히 월낙을 돌아보았다.
“그럼 대체 누가 은위 백 명과 병사 오백 명의 눈을 피해 소리 소문도 없이 한 대인을 죽일 수 있는지 말해 보거라.”
월낙은 한술이 머물렀던 방을 바라보았다. 그의 침묵에 한동안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만 일정하게 들려왔다.
그때, 사방화가 입을 열었다.
“밤새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에 아주 작은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 은위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바늘에 발이 달려 혼자 들어가 한 대인의 등에 꽂혔을 리는 없겠지요.”
사방화는 중간에 잠시 멈칫하다 차디찬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 갑자기 이목청이 우산을 쓰고 다가왔다.
“혹시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이 틀린 걸까요?”
“응?”
진강과 사방화가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한 대인께서 창밖을 확인하시곤 문을 닫고 곧장 침상으로 돌아왔을 것이란 이 모든 게 범인이 지어낸 것일지도 모르지요. 진실은 한 대인이 머무른 방에 있을 암실이라든지 다른 도구에 숨어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목청이 말했다.
“일리가 있군. 100명에 달하는 진옥의 은위를 괜히 세워둔 건 아니겠지.”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가 섣불리 판단했을지도 모르지요. 한 대인께서 창문을 열어 옷이 젖었다는 것만으로 바늘이 그때 꽂힌 것이라 보기는 힘들어요. 우리, 방을 한 번 더 살펴봐요.”
사방화의 말에, 진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월낙에게 말했다.
“따라 들어오너라.”
“예!”
월낙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