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9화 (679/978)

679화 최면술 (2) 

이내 이윤이 사방화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잠에 들 수 있습니까?”

“누워있으면 내가 잠들게 만들 거예요.”

사방화의 말에 이윤은 곧장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사방화는 일어나 그의 곁으로 갔다.

“눈을 뜨고 날 봐요.”

이윤이 눈을 뜨자, 사방화는 그에게 조용히 속삭이며 운기조식을 통해 기를 모아 그의 미간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후 이윤은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힘든 듯 눈을 지그시 감았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게 끝이란 말입니까? 소왕비마마, 아무리 우리가 의술을 모른다 할지라도 절대 눈속임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범양 노씨 어르신이 또 간섭하기 시작했다.

사방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 어르신을 향해 말했다.

“지금 당장 이윤을 깨우거나 다른 방법으로 제가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신다면 지금 즉시 떠나겠습니다. 절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게요.”

어르신은 즉시 앞으로 와 이윤에게 사정없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깊이 잠든 이윤은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내 사방화가 나머지 범양 노씨의 어르신들에게도 말했다.

“모두 와 보시지요.”

이에 한 사람은 이윤을 발로 차고, 한 사람은 그를 잡아당겨 보았으나 아무리 해보아도 그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사방화는 범양 노씨 어르신들이 이윤에게 발길질을 하는 것도 모자라 칼로 찌르기까지 하려는 것을 보고 냉소를 지으며 얼른 입을 뗐다.

“충분하시지요?”

영강후도 더는 참지 못하고 대노를 했다.

“당당한 세가 범양 노씨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니 참으로 형편없소!”

“다들 그만하시오!”

좌상의 고함에 어르신들도 그제야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닫고 숨을 골랐다.

진강이 조용해진 주위를 한번 훑으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물어봅시다.”

사방화는 다시 이윤의 곁으로 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이윤, 당신은 노예를 죽였나요?”

이윤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노예에게 원한을 산 것이 있어요?”

이윤은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없습니다.”

“거센 비가 내리던 날 뭘 했죠?”

사방화가 물었다.

“당직을 서는 날이 아니라 일찍이 들어와 잠을 청했습니다.”

이윤이 말했다.

“밤에는? 밤엔 뭘 했나요?”

사방화가 재차 물었다.

“밤에는……. 별일 없었습니다.”

이윤은 생각이 잘 나지 않는 듯했다.

“다시 잘 생각해 봐요. 그날 밤 자시(*子時: 밤 11시 ~ 새벽 1시) 전, 어떻게 방에서 나와 연무장으로 갔고 어떻게 노예를 만났나요?”

사방화의 질문에 이윤은 깊은 상상에 빠진 듯했고, 잠시 후 그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억이 나요?”

사방화가 재차 물었다.

이윤은 돌연 공포에 질려 숨이 멎을 듯 가쁘게 내쉬며 소리를 쳤다.

“노예가 창문으로 들어와 절 죽이려 했고 저는……! 저는 노예를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러다 노예가 절 기절시켰고, 깨어나 보니 연무장에서 순찰병이 제게 노예를 죽였다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사방화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러고는요?”

이윤의 목소리가 다시 잠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많은 이들이 몰려와 저를 지하 감옥에 가뒀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노예가 어찌 방에 쳐들어가 저 자를 죽이려 한단 말인가! 온통 헛소리구만!”

범양 노씨의 어르신이 별안간 크게 소리쳤다.

그에 진강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자 어르신은 바로 입을 닫았다.

“다른 건 더 물어볼 수 없소?”

진강이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시면 지금 말씀하셔도 돼요.”

사방화의 말에 진강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대 손에 죽은 노예란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윤은 즉각 큰소리로 외치며 반박했다.

“전 노예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노예가 절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알겠다, 노예를 죽이지 않았다는 말을 믿는다. 그럼 노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진강이 말했다.

이윤은 또다시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고 한참 후 깔보듯 말하기 시작했다.

“노예는……. 간도 작고, 겁도 많고, 나약하고 쓸모도 없는 이였습니다.”

“그런 쓸모없는 이가 그대를 죽이려드는데 왜 달려들지 못했지?”

진강이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노예는 참으로 어설픈 무공 실력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날 밤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윤은 다시 깊은 무의식에 잠긴 듯했다.

진강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사방화에게 손짓을 했다.

사방화는 기를 모아 조금 전 이윤의 미간에 가두었던 푸른색 연기를 빨아들인 뒤 그를 톡톡 건드렸다.

유유히 잠에서 깨어난 이윤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다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진강을 향해 말했다.

“소왕야.”

진강은 그에게 일어나라 손짓을 했다.

이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이내 다시 넘어졌다. 조금 전 범양 노씨 어르신들이 마구 공격을 했던 까닭에 온몸이 쑤신 듯했지만 그 이유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곧 진강이 이윤을 향해 말했다.

“소왕비의 의술로 미루어 보아 그대는 노예를 죽이지 않았다. 반대로 노예가 방으로 쳐들어가 그대를 죽이려 했지.”

“네? 저는 그 자에게 아무런 원한도 사지 않았습니다만…….”

이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조금 전 잠든 상태에서도 그렇게 말했네. 노예가 그대를 죽이려 했던 이유라……. 소왕비께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진강이 사방화를 향해 물었다.

“노예는 독충술에 걸렸던 거예요. 독충술에 걸린 사람은 그 저주를 건 자에게 놀아나며 꼭두각시처럼 행동하게 되죠. 그래서 그날 밤 노예는 저주에 걸린 채 이윤의 방에 들어가 이윤을 죽이려 했던 거예요.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지요.”

사방화가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어째서 우리 조카인 노예가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냐! 모두 거짓부렁이다!”

범양 노씨 어르신이 길길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사방화는 차분히 그 어르신을 향해 말했다.

“거짓부렁인지는 해보면 알게 되겠지요. 어르신께선 틀림없이 범양 노씨의 높은 지위에 계실 겁니다. 제 의술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니 이윤이 잠든 새에 했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어르신의 속마음을 들어 드릴 테니 누워보세요.”

어르신은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에 사방화가 엷게 미소를 지었다.

“염려 마세요. 전 범양 노씨의 비밀엔 관심이 없으니 말입니다.”

어르신이 또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왕비마마, 소왕비마마께서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범양 노씨는 피해자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리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겁니까! 천하 백성들이 요녀가 나타나 말로 사람들을 홀린다고 떠들까 두렵지 않은 겁니까?”

“어르신, 전 의술을 쓴 것입니다. 범양 노씨에 저보다 의술이 뛰어난 분을 데려오신다면 저도 이렇게 수고스럽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런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의술을 쓰는 것이 언제부터 요녀가 되어버린 걸까요?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방화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진강이 돌연 크게 호령했다.

“게 누구 없느냐!”

두 하인이 곧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 범양 노씨들을 당장 앞으로 끌고 오거라. 노예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알겠습니다!”

좌상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왕야, 이래서는 아니 되오!”

진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럼 제게 어쩌라는 말씀입니까? 이 자들에게 문제가 없다면 자연히 풀어주겠지만, 만약 문제가 있다면 내 범양 노씨의 모든 가문을 절대 용서치 않을 겁니다.”

“노예의 죽음에 마음이 아파 그런 것이잖소.”

좌상의 말에, 진강이 냉랭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좌상 대인, 조정에 그리 오래 계시면서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셨지 않습니까? 경성에서 태어나 황궁에서 자라 온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조카 한 사람이 죽었다고 내내 이윤을 붙잡고 기를 쓰며 놓아주려고도 하지 않는 지금 이 상황이 정상적입니까? 

독충술에 걸린 것이 밝혀졌음에도 줄곧 이윤이 노예를 죽였다며 사지로 몰고 가는데 대체 무슨 수를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좌상께서도 모르신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만약 알고 계셨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반드시 제가 죄를 묻도록 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

좌상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말도 잇지 못했다.

이내 진강은 사방화를 향해 물었다.

“소왕비, 저들의 속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지요?”

“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시작하시오.”

진강이 손짓을 했다.

그 순간, 좌상이 입을 열었다.

“만약 범양 노씨가 한 짓이 아니라면 소왕야께선 어쩔 셈이오? 범양 노씨가 예전 같진 않다고 하나 당당한 세가 집안인 건 변하지 않소.”

“만약 저들이 한 짓이 아니라면 우리 부인께 요녀라며 지껄인 걸 넘어가드리지요.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면…….”

진강이 콧방귀를 뀌었다.

좌상은 진강이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오로지 범양 노씨 집안사람들이 사방화를 모욕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기에 진강을 막으려던 것도 그냥 포기해버렸다.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진 어르신들을 하나하나 바닥에 눕혀놓자 사방화는 동시에 여럿에게 최면술을 걸었다.

일순간 영전에는 그녀의 목소리만 남고 아주 조용해졌다.

잠시 후 사방화가 진강에게 말했다.

“됐어요. 물어보시면 돼요.”

진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을 시작했다.

“노예에게 독충술을 어떻게 쓴 겁니까?”

“무……, 무슨 독충술이란 말입니까…….”

한 어르신이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벌레 한 마리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 말입니다.”

진강이 설명했다.

그 노인은 한참을 몸부림치듯 괴로워하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작은 벌레……, 벌레……. 노예는 범양 노씨의 쓸모없는 자식이니 죽어도 마땅합니다……! 저희에게 응해주신다면 좌상 노용을 조정에서 끌어내리고 우리 문중의 출세한 아들을 내세워……, 그대들과 힘을 합치겠습니다…….”

좌상의 안색이 급변했다.

“누구와? 뭘 힘을 합치겠단 겁니까?”

진강이 재차 물었다.

“힘을……, 힘을 합쳐…….”

그 어르신은 수차례나 발버둥을 치며 끝내 말을 잇진 못했다.

진강은 그를 노려보며 다시 한 번 물었지만, 어르신은 돌연 두 다리를 힘차게 뻗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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