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화 진상을 밝히다 (2)
진강은 사방화가 젖지 않게 우산을 한껏 기울여 씌워주며 밖으로 떠났다.
“절 버리고 가시면 안 되지요. 전 더욱 여기 남아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이목청도 그들을 따라 전문을 나섰다.
어두운 안색의 진옥은 이목청이 나가는 것 역시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저, 이 공자님, 소왕비마마……!”
사방화와 이목청을 따라 함께 왔던 한술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들을 향해 소리를 치다 이내 진옥의 눈치를 살폈다.
진옥은 심각하게 굳은 안색으로 한술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한 대인도 원하면 가도 좋다.”
한술은 놀라 벌벌 떨며 서둘러 답했다.
“노신, 손 태의님 살인 사건으로 소왕비마마, 이 공자님과 함께 왔으나……, 이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진옥은 한층 더 가라앉은 안색으로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한 대인, 손 태의께서 살해당했다고?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씀해보시게.”
한술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 태의 살인 사건과 이목청, 사방화와 군영으로 오는 길에 겪었던 여러 일들에 대해 진옥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손 태의는 살해를 당한 것이고 마부는 자살을 했다고?”
진옥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소왕비마마와 우상부 이 공자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또 저와 함께 온 호위 두 명도 그리 말했습니다.”
한술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그 마부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군.”
진옥의 말에, 한술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것은 큰 단서에 불과하니 좀 더 알아보아야 합니다.”
진옥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한술에게 물었다.
“바위와 늑대 무리로 살해하려던 그 사건 범인은 잡았는가?”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왕비마마께서 호위를 보내 사방 50리와 땅 석 자를 파내서라도 실마리를 찾아내도록 시켜뒀습니다.”
한술이 중간에 잠시 멈칫하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옥작……. 옥작이 늑대를 다루는 걸 직접 봤다고?”
진옥도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그렇습니다, 태자전하. 노신 반평생을 살면서 그리 끔찍한 일은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옥작 공자님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수백 마리나 되는 늑대에게 물려 사지가 찢기고 지금쯤 늑대 뱃속에 들어앉아 있었을 겁니다.”
한술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자 또다시 심장이 떨리는 듯 몸서리를 쳤다.
“어찌 늑대를 다루었는지 흉내내보라.”
진옥의 말에, 한술은 순간 멍해졌다가 곧장 대답했다.
“태자전하, 저……. 노신이 너무 놀란 탓에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진옥은 한술이 순간 어떻게 흉내 내야 할지 당황한 것을 보고 웃었다.
“됐다.”
한술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어 진옥이 좌상과 영강후를 향해 말했다.
“날이 어두운데 좌상, 영강후께선 군영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좌상이 밖을 한번 보고는 말했다.
“날도 이리 어두운 데다 비도 오고 있으니 산길은 더더욱 위험할 것입니다. 노신 이곳에서 하루 머물겠습니다. 태자전하께서도 그리하시지요.”
반면, 영강후는 곧바로 다른 뜻을 전했다.
“노신은 부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부인이 걱정할 듯하여…….”
“영강후 대인. 어찌 진즉에 소왕야, 소왕비마마, 이 공자님과 함께 가지 않으셨습니까? 보필할 사람이 있다 한들 지금 가시면……. 혼자 이 길을 떠나라 한다면 노신은 감히 엄두도 못 낼듯합니다.”
한술이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태자전하께선……, 경성에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이내 영강후가 진옥에게 물었다.
“이시산으로 노예의 시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우선 일을 해결해야지. 경성에도 별일이 없으니 오늘은 여기에 머물겠소.”
진옥은 잠시 생각하다 손을 내저었다.
“예, 태자전하께서 여기 계셔주신다면 병사들의 마음도 평안할 것입니다. 노예까 독충술에 걸려 죽고 이시산으로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는 이 믿지 못할 이야기가 바깥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군중의 병사들은 삽시간에 공포에 떨게 분명합니다.”
대령 하나가 아뢰었다.
“그럼 저도……. 이곳에 남겠습니다.”
영강후가 한참을 망설이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래, 오늘은 모두 남도록 하지! 이윤을 잘 가둬두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고.”
진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말씀 받들겠습니다!”
누군가 곧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때, 좌상이 돌연 입을 열었다.
“노예의 몸에서 나온 벌레는 소왕비가 가져간 것입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소왕비마마께서 들고 계시던 접시와 그릇을 소왕야께서 대신 들어주셨는데 아마도 그대로 들고 가신 듯합니다.”
사람들은 벌레를 다시 떠올리자 온몸이 간지러운 듯했다.
“소왕비가 가져가지 않으면 그 독충을 누구 손에 묻힐 수 있단 말인가?”
이어 진옥이 사람들을 한번 훑으며 말하자,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그 누구도 그 무시무시한 벌레를 감당할 사람은 없었다.
진옥은 내전으로 향하며 범양 노씨 어르신들이 쉴 곳을 마련해주고 온 오 태감에게 분부를 내렸다.
“우선 모두 쉬도록 하지!”
오권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옥의 뒤를 따랐고, 군중의 하인은 곧장 좌상, 영강후, 한술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비는 꺾일 기세도 없이 하루 반나절이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 * *
진강과 사방화는 우산을 나눠 쓰고, 옥작은 등을 들고 서산 군영 대문을 빠져나왔다.
이내 마차에 오르려는데, 순간 이목청이 마차로 들어와 진강에게 말했다.
“오는 길에 줄곧 비를 맞았습니다. 뻔뻔하지만 가는 길에 함께 좀 얻어 타겠습니다. 소왕야께서도 함께 있으시니 오해는 하지 않으시겠지요.”
진강은 그를 흘낏 쳐다보고는 말했다.
“고맙네.”
이목청은 바깥을 보다 답답한 듯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날도 어두운데 온종일 해도 뜨질 않으니! 해가 서쪽에서 뜨진 않겠지요? 여태 소왕야께서 제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진강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낯간지럽다면 지금 내려도 좋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목청은 웃으며 소매를 털고는 사방화가 든 접시와 그릇을 보며 말했다.
“이리도 작은 벌레를 어찌하려고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아까는 정신이 없어 자세히 보질 못했는데 한 번 더 보여주십시오.”
사방화가 이목청을 보며 눈썹을 살짝 까딱였다.
“몸으로 기어오를까 두렵지 않으신지요?”
이목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사방화는 그를 향해 웃어 보이고는 접시 위에 있던 그릇을 들췄다.
이목청은 접시를 보고 일순간 멍해졌다.
“어찌 된 것입니까? 죽은 건가?”
사방화가 고개를 내저었다.
“죽은 게 아닙니다. 애당초 벌레 같은 건 있지도 않았지요.”
이목청은 깜짝 놀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사방화는 접시에 말라붙어버린 핏자국을 보며 접시를 마차 한쪽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유유히 말했다.
“독충술에 걸리면 벌레는 조금씩 심장을 갉아먹고 자연히 분해돼 죽습니다. 노예는 이미 숨을 거둔지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났는데 몸속에 벌레가 있다 한들 일찌감치 죽는 게 당연하지 어찌 내가 끄집어낼 수 있겠습니까? 난 속임수를 쓴 것뿐입니다. 그 자리에서 봤던 벌레는 내 손목을 그어 흘러나온 피에요. 그것이 얼어붙어 붉은빛을 띠는 벌레가 된 것이지요.”
이목청은 더욱 놀라 진강을 흘낏 봤지만, 그는 전혀 관심도 없어 보였다.
“하다못해 저도 깜빡 속아 넘어갔습니다! 대체 어찌 한 겁니까? 분명 벌레가 실을 타고 올라가 한 대인 손에까지 닿는 걸 봤는데?”
사방화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빙응결(氷凝決)이란 심법 무공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이 심법을 쓰면 물방울이 곧장 얼어 얼음이 되지요. 모두가 놀라 긴장한 틈을 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피를 벌레 모양으로 만들고 한 대인의 손으로 기어가도록 수를 썼던 겁니다. 아주 간단해요. 원하신다면 한 번 더 보여드릴 수도 있고요.”
이목청은 말없이 사방화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에 사방화도 웃음이 터졌다.
“내가 그런 속임수를 쓸 거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이상하다 여기셨던 겁니다. 그런데 다시 또 말하자면 이상할 것도 없지요.”
이목청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저도 속아 넘어갔으니 진짜가 아니라 해도 진짜가 맞지요. 그럼 그리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방화가 말했다.
“그리 하지 않았다면 결국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을 겁니다. 뒤에서 계략을 꾸민 이만 좋게 만들어 줄 순 없지 않겠어요? 진강이 고집스럽게 부검을 하려 했던 것도 분명 독충에게 심장을 공격당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검만 했다면 그 진상을 쉽게 밝혀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범양 노씨 일가가 워낙 완강히 반대했던 데다 이시산까지 맞게 됐으니, 여섯 시진 내에 사인을 밝혀내지 않으면 죽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게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시산은 뼈와 살을 다 분리시켜버리니까요.
때문에 눈속임을 했습니다. 일찍이 독충술에 걸렸다는 걸 알고 있으니, 모두가 똑똑히 벌레를 보게 만들어 믿고 싶지 않아도 믿게 만든 것이지요.”
이목청은 말없이 잠자코 듣기만 했다.
사방화도 일이 여기까지 닥치니 머릿속에 하나 둘 정리가 되는 듯했다.
누군가 독충술로 노예를 죽인 뒤 이윤에게 덮어씌우고, 범양 노씨와 조군 이씨와의 갈등을 부추긴 것이 분명했다.
범양 노씨는 당연히 이윤의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라며 노발대발을 했지만, 이윤은 부친은 일찍이 여의었어도 배후엔 그를 친자식보다 더 아끼는 고모, 영강후 부인이 있었다.
영강후 부인은 청하 최씨, 영친왕부, 심지어 충용후부에게까지 부탁을 해 이 일에 모두를 끌어들였다.
검시관이 사인을 밝혀내지 못한 건 당연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매족이란 그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것이었으니 그들의 주술은 더욱 접해볼 일이 없었을 터였다. 또한 본래 주술에 대해 아는 이는 극히 드물고, 아예 금시초문인 이들도 있었다.
이처럼 사인도 모를 기이한 죽음 앞에 검시관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윤이 노예를 죽였다는, 직접 본 증거만 믿었던 것이었다.
진강은 일찍이 노예의 사인을 간파했지만, 이는 부검을 해야만 증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범양 노씨 일가는 기를 쓰고 반대를 했고, 진옥은 동심술을 써 진강과 함께 정신을 잃어버려서 부검을 아예 할 수가 없었다.
사방화와 함께 군영으로 가려던 손 태의가 한발 앞서 출발을 해 살해를 당한 것도, 뒤에 오던 그녀의 발목을 잡아 시간을 지체시킨 것도 곧장 군영으로 오지 못하게 하려던 속셈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목청이 한술을 데려와 사방화를 곤경에서 구해주어 길을 막는 건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기에 할 수 없이 거대한 바위와 늑대 무리를 이용해 사방화를 죽여 버리려했지만, 이마저 실패하며 단순한 시간만 지체시켰다.
그래도 일단 때만 되면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 사인을 밝히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은 충분히 이루는 셈이었다. 이 은밀한 계획은 하필 거세게 내리는 비까지 합쳐져 모든 게 다 계획대로 흘러갔던 것이다.
사방화가 늑대 무리 공격에서 벗어나 즉시 경가에게 사방 오십 리와 땅 석 자를 파서라도 철저히 조사를 하게 한 연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무사히 군영으로 가기 위해서, 둘째는 당연히 배후에 있는 이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제 겨우 노예는 독충술 때문에 죽었다는 것과 이시산까지 쓰였다는 계략의 한 조각을 간파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증거들을 더 하나씩 찾아 낱낱이 살펴볼 일들만 남은 것이다.
“조금 전 경성이 평온하지 않을 거라 말했는데 순식간에 말이 씨가 되고 말았군요. 소왕야,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꾸미고 있는지 아십니까?”
이목청이 한숨을 내쉬며 진강을 바라보았다.
이내 아무 말이 없는 진강을 보고, 이목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태자전하란 말입니까?”
진강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