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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장. 이뤄지다 (103/126)

102장. 이뤄지다

시험 시작 전 마지막 주말, 신라는 오피스텔 단지 안의 벤치에 잠시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얗게 입김이 그려질 만큼 제법 추운 날씨였지만, 머리를 정리하기에 적당한 추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몸을 빼앗겨 의지 없이 남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과 내 의지를 갖고 각오를 마친 뒤 칼을 휘두르는 것…. 솔직히 뭐가 더 차악의 선택인지조차 잘 모르겠어.’

일용도로 비형랑의 귀혼을 없애야만 한다.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그가 죽으면 그녀 또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생각을 반복하고 있을 때, 오피스텔 건물에서 한 남자가 가디건만 걸친 채 걸어 나왔다. 일찍이 신라가 움직이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녀가 오피스텔 근처에만 머무르려는 듯해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준 신후였다.

“여기에서 뭐 해.”

신후는 신라의 옆자리에 천천히 몸을 앉혔다.

- 연애할까? 우리.

그가 정식으로 제안한 이후로 단둘이 이렇게 제대로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신라는 어색하게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머리 식힐 겸 잠깐 나왔어요.”

“그러다 감기 걸리면 시험 망쳐.”

그의 직업이 교수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만드는 말이었다.

“금방 들어가려고 했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는데?”

나지막이 물으며 신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신후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신라는 작게 웃어버리고는 벤치에서 먼저 일어나려 했다.

“교수님도 얇게 입어서 춥…”

“가지 마.”

신후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 다시 옆에 앉혔다.

“네 생각을 듣고 싶어.”

“…어떤 생각일지, 어느 정도 짐작하시잖아요.”

“네 입으로 하는 얘기를 듣고 싶어. 생각은 짐작한다 쳐도, 네 감정은 어떻지?”

“……”

신후는 잠시 입을 다문 신라를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지금도 충분히 용감하게 버티고 있는 여인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마음을 다잡고 시험공부까지 마친 걸 보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만 그로 인해 저 아래 묵혀뒀을 감정 상태가 걱정됐다. 늘 괜찮은 척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그녀였으니 말이다.

신라는 생각을 정리한 끝에 입을 열었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기분이에요.”

“어째서?”

“어째서냐니…. 그렇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끝은 정해져 있어요. 결국 난 내 의지든 아니든 강 현을 죽여야 하고, 그럼 나도 죽게 될지 모르니까. 어느 정도는 각오를 해두는 거예요.”

신후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먼 경치를 눈에 담았다.

“내가 얘기했었지. 앞으로 너의 앞에 불행은 없게 할 거라고. 그러니까 그 걱정은 그만해도 돼.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줄 테니까.”

“교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하지만 살다 보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화비만큼 용기 있지는 않아도, 저도 제 한 몸 희생해서 모두를 구할 수 있다면 그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근처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입김을 뿜어내며 옷깃을 여몄다. 신후는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신라의 무릎 위에 덮어주었다.

“그렇게 되면 난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무능한 남자가 되겠지.”

“……”

신라는 잠시 말을 잃고 신후를 마주 봤다. 한 치의 부풀림도 없이 진심만을 얘기했다는 듯 깊은 눈빛을 한 남자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감격스럽고, 안타까웠다.

생각해보면 그가 본인의 칠정(七情)을 모두 되찾은 것을 축하해줄 새도 없었던 것 같다. 상황을 곱씹을 새도 없이 감당키 어려운 일들만 파도처럼 몰려왔으니까.

‘그렇게 힘들게 되찾은 감정을, 정말 날 위해 써도 되는 거야?’

그녀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마음이 진심인걸, 장담할 수 있어요? 내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내가 내 마음을 헷갈려서, 너에게 시간을 낭비하기라도 할까 봐 물어보는 건가?”

“네. 그러면 많이 미안할 것 같아서요.”

신후는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신라의 손을 꼭 쥐었다.

“바보 같아서 귀엽네.”

“…놀리지 마세요.”

“쓸데없는 데 자존심 세울 시간에 널 위해 남을 이용하는 방법이나 연구해보지, 그래.”

“교육자인 걸 잊지 마세요, 교수님.”

“그럼 이렇게 하자.”

신후는 목을 가다듬은 다음 짐짓 생기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순간부터 내 이상형은, 이기적인 성품을 가지고 날 이용할 줄 아는 여자야. 어때?”

“풋, 그게 뭐야….”

“그럼 네가 고민할 건 딱 한 가지야. 한신후라는 자가 네 안위를 위해 필요한가, 안 필요한가. 어떻게 생각해?”

“그건 좀….”

신후는 신라의 등 뒤쪽으로 팔을 걸치며 거리를 좁혔다. 순식간에 숨결이 닿을 만한 거리로 다가온 신후를 보고 신라는 당황해서 피할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끝 쪽에 앉아 있었던 터라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신후는 나지막이 말했다.

“집중해서 대답해. 이래 봬도 난 이 순간이 천 년을 기다려 온 순간이니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편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팽팽하기 그지없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몇몇 지나다니고 있음에도, 지구상에 살아 있는 것은 둘뿐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신라는 벤치에 올려놓은 손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반박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화법에 말문이 막히고 만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지척에서 폭발이 일어나도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을 것처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신라는 마치 온 세상이 그녀의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서영의 말이 떠올랐다.

- 교수님도 결국에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야. 아니, 네가 그분을 보통의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어렵게 깊은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단순하게 생각하면, 맞다.

어쩌면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 남자가 평생 곁에 머물면서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것을.

- 서로 더 이상의 오해는 하지 않기로 하는 게 어때. 유신라 양이 어제 일을 꿈처럼 잊어버린다면 난 단순히 당신한테 교수이면서, 위급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텐데. 이를테면, 보호자…랄까.

- 인간이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 네가 날 무서워하길 바라지 않아.

- 약속할게. 그동안 네가 불행했던 과거마저 지울 순 없겠지만, 앞으로의 불행은 없을 거야.

- 사랑해.

네 번의 생을 거쳐 소중하게 지켜낸 감정을 오롯이 쏟아부어 줄 것을.

그럼 이쪽도 마음 놓고 전부를 줄 수 있을 테니까.

“저도 제 남은 시간을 모두 당신한테 줄게요.”

신후의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그럼 난 네 남은 시간을 길게 만들어 주면 되겠네.”

“또 무언가를 거스르고 무리하는 거라면…”

“이번에는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아. 내 최선을 다해서 지켜낼 테니까.”

“……”

신후는 신라의 손을 들어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받아줘서 고마워. 차일까 봐 걱정했거든.”

신라의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교수님이요?”

“날 애태우게 하려고 며칠간 밀당한 거였어?”

“제가 언제 밀당 같은 걸 했다고…!”

“고백한 사람 입장에서는 하루가 일 년 같았다고.”

“거짓말….”

“난 네 앞에서 거짓말 안 해.”

“그런 증명하지도 못하는 소리…”

“사랑해.”

아무래도 이 남자는 상대방의 말을 멈추는 마법이라도 쓸 줄 아는 모양이었다. 신라는 민망함에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어댔다. 그 입술에 시선을 머무르고 있던 신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키스하고 싶어.”

“……”

“괜찮아?”

눈빛으로는 이미 키스를 하고도 남은 주제에, 허락을 구하는 모습은 어찌나 초조해 보이는지. 신라는 잠시 아래로 떨어뜨렸던 눈동자를 심호흡을 하면서 신후에게로 고정했다. 그것을 허락으로 알아들은 신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가가 부드럽게 입술을 머금었다.

차가웠던 입술이 서로의 체온과 만나자 점차 따뜻하게 젖어 들었다. 머리칼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두피를 쓰다듬는 감각에 뇌 곳곳에서 스파크가 터졌다.

신라는 가빠지는 숨을 가다듬기 위해 자세를 고치며 신후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돌리며 호흡하기 좋은 방향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간 해왔던 입맞춤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그때의 신후는 신라에게서 감정을 갈구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키스도 어딘가 초조하고 애처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기분 좋은 감각만을 전해주려는 듯이 차분하고 헌신적이다. 점막 곳곳을 혀로 건드려 입 안을 촉촉하게 만들어 주는가 하면, 강하게 혀를 빨아들여 아찔한 자극을 주기도 했다.

잠시 입술을 떼어낸 신라가 숨을 고르며 그를 올려다봤다.

“다른 사람 같은 거 알아요…?”

“왜?”

“느낌이 좀… 달라서….”

신후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이 눈썹을 살짝 비틀었다.

“칭찬이야, 욕이야?”

“모르겠…”

입술이 다시 틀어 막힌 신라는 체념하듯 눈을 감고 신후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차가운 어둠의 기운을 부릴 줄 아는 남자라서 그런가, 이렇게 얇은 옷만 입고 있는데도 이 추위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

그런데 가만히 느껴 보니 그의 허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분 탓인 줄 알았지만, 점점 뚜렷해지는 떨림에 키스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혹시 추워요…?”

“응.”

신후는 웃음을 터뜨렸다. 덩달아 웃음이 터진 신라가 얼른 무릎 위의 가디건을 신후에게 내밀었다.

“왜 멋있는 척하고 그러세요?”

“눈치챘어?”

“진짜 못 말려….”

신후는 신라의 손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냥 올라가자. 따뜻한 차 내줄게.”

“커피 주세요.”

“속옷만 빼고 그냥 다 가져가.”

그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신라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못다 한 키스는 신후의 집 침실에서 이어졌다. 신후는 신라를 침대에 눕히고 먼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신라는 달뜬 눈빛으로 조각 같은 남자의 몸을 쳐다봤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육신이었다. 그런 남자가 호흡이 가쁠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오롯이 그녀로 인해서.

“신라….”

나지막이 부르며 다가온 남자가 질리지도 않는지 다시 입술을 탐해 온다. 혀를 뿌리째로 맛보려는 듯이 깊숙이 휘감아 당기고, 살짝 깨물어 새어 나오는 타액마저 빨아당긴다. 눈 깜짝할 새 상의와 하의가 벗겨졌다. 신라는 갑작스레 살갗에 닿는 찬 공기에 살짝 몸을 떨었다.

“조금만 참아….”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아 허벅지에 앉힌 신후가 달궈진 그의 체온을 전했다. 브래지어를 끌러 침대 아래로 던지고, 젖가슴을 마사지하며 차가운 유두를 혀끝으로 굴렸다.

“아….”

한껏 예민해져 있던 곳이 따뜻한 타액으로 젖어 들어가니 신라의 입에서 신음이 절로 나왔다. 신후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남은 손은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가져갔다. 조심스레 속옷 위로 음부를 지분거리자 애타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그는 신라의 신음을 계속 듣기 위해 음부를 희롱하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적당히 젖었을 때 즈음, 속옷을 완전히 벗기고 애액을 뱉어내는 은밀한 곳으로 손가락을 하나둘 집어넣었다.

“흐으…!”

신라가 허리를 비틀며 신후에게 매달렸다. 신후는 그녀를 달래며 손가락을 천천히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 전부가 된 그녀가 어떤 곳을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자지러지는지 모두 알고 싶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을.’

붉어진 몸으로 달뜬 신음을 내뱉어대는 여인의 모습은 색정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가장 느끼는 곳을 손가락으로 찌를 때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원망하듯 째려볼 때면 그 모습이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났다.

“싫…어… 이제, 힉, 당, 당신 거…”

“내 거? 어떤?”

“소, 손, 흑, 말고, 당신 걸, 넣어달라고…!”

더 애를 태웠다간 울 것 같아서, 신후는 손가락을 빼내고 그 자리에 단단해진 성기를 가져다 댔다. 그때, 그를 세게 밀어 침대에 눕힌 신라가 불시에 신후의 성기를 깊숙이 꽂아 넣었다. 단번에 뿌리까지 삼켜버린 행동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신음을 쏟아냈다. 신라는 쉬지 않고 그대로 엉덩이를 움직여 위아래로 주저앉는 동작을 반복했다.

“흐읍… 흐…!”

“크윽….”

자칫 사정을 할 뻔했던 신후는 웃는 듯 찡그린 듯 애매한 얼굴로 신라를 올려다봤다. 신라는 복수라는 듯이 개구지게 웃고 있었다.

“당돌한 아가씨가….”

신후는 신라의 허리를 양손으로 쥔 채, 그대로 위쪽으로 성기를 쳐올렸다. 주도권을 쥐었다고 생각하고 안심했던 신라는 더 리드미컬하고 깊숙이 파고드는 신후의 성기 때문에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말았다. 쾌감에 관통당해 힘을 잃은 몸이 이리저리 기울었지만, 그때마다 신후가 똑바로 세워줬다. 신라는 고개를 한껏 젖힌 채 천장을 향해 신음을 뱉어냈다.

“그마… 하…! 그만!”

“이제 시작이야, 신라….”

신후는 시야에서 탐스럽게 흔들리는 젖가슴을 양손에 쥐고 부드럽게 굴렸다. 그러면서도 삽입을 쉬지 않았다. 점점 크기를 키워가는 그의 성기 때문에 신라는 끊임없이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감히 지도교수를 넘어뜨리고 얕본 벌을 받아야지?”

“아…! 으, 응, 그만, 천천히, 해…줘!”

“방금 전의 당돌함은 어디로 갔어?”

작게 웃은 신후는 오히려 삽입질을 더욱 빠르게 했다. 거의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신라의 허벅지 사이로 희뿌연 애액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신후! 아아, 핫, 그만! 나쁜…놈아!”

“이제는 욕설까지….”

“잘…못, 읏, 했…어….”

신후의 가슴팍에 무너져내린 신라가 코앞에서 울먹이며 애원했다. 그 위태로운 얼굴을 본 신후는 가학심과 애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모순을 맛봤다. 그는 결국 그녀에게 빠른 절정을 가져다주는 것을 선택했다. 허리를 꽉 끌어안고 짧은 동작으로 빠르게 박아대자, 바르작거리던 신라가 결국 허리를 번쩍 들며 오르가슴을 느꼈다.

“하앗…!”

전기에 오른 듯 파르르 떠는 여인의 몸이 힘없이 신후에게 떨어졌다. 신후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칼을 넘겨주며 입 맞췄다.

“너무…해….”

신라가 고개를 들고 신후를 째려봤다. 신후는 작게 웃으며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힘들었어?” “당신 너무 멀쩡한 게 불길하네요.”

“나도 불길하네.”

“뭐가요?”

불끈, 내부에서 크기를 바짝 키운 신후의 것을 느끼고 신라의 표정에서 여유가 싹 가셨다.

신후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몇 번 못 하고 기절해버릴까 봐.”

“…한신후 씨.”

“예전처럼 자제 못 할 거야. 네가 너무 사랑스럽고 야해서 주체할 수 없는 중이거든.”

“예전이 자제했던 거라면 도대체 몇 번이나 할-”

다급히 말하는 그녀의 입술은 신후에게 허무하게 삼켜졌다. 신후는 다독이는 듯한 부드러운 키스로 신라를 손쉽게 함락시켰다. 다시 애욕에 젖은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만족한 그는 신라의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읏….”

부어 있던 내부의 주름이 다시 그의 것을 맞이하기 위해 젖어 들고 있었다. 질척이는 소리가 부끄러워 신라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때 귓가에서 신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괴로웠어, 예전에는.”

“……”

“분명히 사랑스러울 네 모습을 보고도 그곳에 어떤 감정도 없었으니까. 지금은 달라. 이렇게 확실히 느끼고 있어.”

‘무엇을 느끼는가’에 대한 답은, 마주친 시선 속 또렷한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오직 ‘사랑’이라고밖에 답할 수 없는 따뜻한 감정이 그 속에 있었다.

“사랑해, 유신라.”

신라는 쾌감을 견뎌내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대답했다.

“나도, 사랑, 해요. 한신후 씨.”

두 사람은 행위 도중 서로의 얼굴을 감싸고 진하게 입술을 탐했다.

달뜬 호흡 소리와 침대의 삐걱거림은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를 때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사귀고 있어.”

응? 누구랑 누가?

뜬금없는 신후의 말에 조교들이 어리둥절 서로를 쳐다봤다.

시험을 치러 간 신라는 빠진 랩 미팅이라 넋을 놓고 있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지도교수께서는 딴생각 중이었던 모양이다.

건우가 너털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누가 사귀는데요? 찌라시라도 떴어요?”

“아니, 나.”

“예?”

잠시 묘한 정적이 흘렀다.

보통 ‘사귀다’라는 단어는 성인이 되면 ‘Friendship(우정)’의 의미보다는 연애 용어의 느낌으로 많이 쓰는 것이었다. 다른 이가 말했다면 ‘아, 너 연애하는구나.’라고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먼저 신후의 말뜻을 알아챈 건 혜령이었다. 그녀는 연구실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문득 짐작되는 것에 우뚝 멈춰 서서 신후를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설마, 신라랑…”

“왜 ‘설마’야?”

그다음 벌어진 아비규환의 현장에 신후는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당장 창가로 달려간 혜령이 창문을 열고 ‘이 도둑놈아-!’라고 소리 질렀고, 건우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삐끗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우선은 들고 있던 종이컵을 떨어뜨려 흰 바지에 그만 뜨거운 커피를 쏟아버렸다. 그가 펄쩍 뛰어오르는 바람에 일어나려던 자세 그대로 넋을 놓고 서 있던 동주의 턱이 단단한 머리에 부딪혔다.

“이게 그렇게 말이 안 되는 일인가?”

신후가 태연하게 물었다. 황급히 근처에 있던 휴지로 바지를 털어내던 우선이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지만 교수님은 아직 되찾지 못한 감정이…”

“감정도 없이 고백했을 리가 없잖아.”

“그럼…”

“되찾았어. 얼마 전에.”

돌처럼 굳어버린 우선에게 다가간 신후는 그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툭 친 다음 먼저 강의실을 나섰다. 덕분에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만 우선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저 제멋대로인 이단아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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