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장. 주술의 완성
어두운 저택에 젊은 남자의 비명이 끊임없이 울렸다. 그의 집을 지키는 파수꾼들과 하인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저택 바깥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인간 남성의 몸을 차지한 하인 하나가 호기심 때문에 저택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그 자리에서 혼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려 쓰러지고 말았다.
덩달아 혼의주도 깨져 몸의 주인인 인간의 혼도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시신으로 변한 육체를 보고 더 두려워진 잡귀들은 삐그덕거리는 몸으로 저 멀리 줄행랑을 쳤다.
“으윽-! 크흑….”
강 현은 상반신을 탈의한 채 서재 바닥의 카펫 위를 기어 다녔다. 어떤 옷을 입어도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금방 찢어버렸기 때문에 입을 필요조차 없었다. 마음대로 할퀴어낸 상반신에는 붉게 부어오른 상흔이 가득했다.
“허억… 허억….”
그가 흐리멍덩한 눈을 들어 서재의 풍경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어….’
마침 젊어진 모습의 윤 노인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슨대는 중절모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강 현의 근처로 다가왔다.
“아직도 괴로우시군요.”
“어디에… 하아… 다녀오는 거야….”
“주군의 귀혼에 입힐 주술을 좀 더 빨리 완성시키려면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고 했었지요. 그걸 직접 찾아오는 길입니다.”
“그걸… 찾아왔다고?”
그슨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강 현에게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곳에 하얗고 작은 것이 빛나고 있었다. 왠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지만, 고통으로 흐려진 정신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이걸 가지면… 이 고통이 끝나게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어서 해…. 지긋지긋해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니까.”
그슨대는 강 현의 동의를 얻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입으로 주문을 읊기 시작하자 손바닥에 떠 있던 빛나는 것이 천천히 강 현에게로 날아가 그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에 닿았다. 반지의 보석으로 스며들어 간 것은 곧 환하게 빛나며 강 현의 귀혼과 하나가 되었다.
‘이 느낌은….’
차츰 고통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한 것을 느끼고 강 현은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나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관찰했다. 어떤 공격을 받더라도 모두 튕겨낼 것만 같은 강한 방어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방어의 주술을 완성하기 위해 몇 날 며칠 동안 고통을 감내한 것이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그슨대가 물었다. 그슨대는 먼 옛날 이미 이 주술을 완성해 불사의 몸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과거에 어둑시니와 길달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그를 끝내 없애지 못하고 어렵사리 봉인만 시켰던 것이다.
강 현은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것이 들어 그슨대에게 물었다.
“주술을 이렇게 빨리 완성시키려면 다른 자의 영혼을 쪼개 넣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예. 그래서 쪼개 왔습니다. 이제 그 영혼의 파편은 주군과 하나가 되었고, 누구도 주군을 없앨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그 인간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유일하게 날 없앨 수 있는 자… 설마.’
뭔가를 눈치챈 강 현이 그슨대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유신라의 혼인가?”
그슨대는 무미건조한 미소로 대신 답했다. 그슨대와 거리를 좁힌 강 현은 주저 없이 그의 뺨을 때렸다. 한 번으로는 화가 풀리지 않아 여러 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올려붙였다. 처음에는 버티고 서 있던 그슨대는 점점 힘이 세지는 손찌검에 곧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코피를 뚝뚝 떨어뜨렸다.
강 현이 그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일갈했다.
“누가 멋대로 그런 짓을 하라고 했지?”
그슨대는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그게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였으니까요.”
“네가 감히 내 속을 들여다봤단 말이냐?”
“모시는 이가 진정으로 갈구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하고 미리 행동하는 게 오른팔이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유신라는 지금 어떤 상태지?”
“잠시 앓아누웠을 뿐,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유신라를 영원히 곁에 붙들어두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혹여나 죽게 된다면 그녀의 손에 죽고 싶었던 것도.
하지만 이렇게 되돌릴 수 없는 사태를 만들어 그녀에게 강압적인 족쇄를 채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 그녀는 더욱 달아나려고 할지도 몰랐다.
“널 어떻게 묵사발로 해놔야 내 속이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피곤하니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다시는 이런 시건방진 행동은 하지 말도록 해.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야.”
강 현은 온몸에서 살기를 흩뿌리며 서재를 나갔다. 그가 나간 문을 조용히 바라보던 그슨대가 잠시 후 어깨를 떨며 웃음을 흘렸다.
“솔직하지 못하시긴….”
건우가 영혼의 조각이 필요한 금지된 주술에 대해 알아 온 것은 다음 날 오후 무렵이었다. 조교들을 비롯해 화비, 그리고 뒤늦게 소식을 접한 최준성까지 신라의 집으로 모였다. 그녀가 누워 있는 침실에는 오직 신후만이 드나들고 있었다.
“상태는 어때요?”
건우의 물음에 신후는 피곤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기운을 불어넣어 주면 일시적으로는 괜찮아. 하지만 눈은 여전히 보이지 않지.”
“그것도 한계가 있죠. 무리하시다간 교수님도 쓰러지십니다.”
“아직까진 버틸 만해.”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준성이 입을 열었다.
“저 고통이야 육신이 모자란 영혼에 적응하게 되면 차츰 사라질 테고, 그럼 신라 양에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잃어버린 시력일 테니 그 부분을 먼저 해결해야 하겠군. 눈의 일부가 도둑맞았다면 그 빈자리에 새로운 눈을 이식해주는 수밖에 없지.”
“눈이라면?”
신후가 물었다.
“신이 기르는 동물 중에 가장 영험한 기운을 가진 것이 공작새야. 그 꼬리에 달린 눈은 맹인의 시력도 되찾아준다고 하지. 다만 한낱 인간에게 쓸 만큼 만만하게 얻어지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이제 와 신라를 ‘한낱 인간’이라고 부르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지. 그렇긴 하지만, 지국천왕의 빽이 있으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 말을 듣자마자 조교들의 심각하던 표정이 어느 정도 풀렸다. 신후는 다시 진지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시력 쪽은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았고…. 조 조교는 주술에 대해 알아 온 걸 모두 말해봐.”
건우는 입을 열기 전부터 낯빛이 좋지 않았다.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영혼의 조각이 필요한 주술이라는 건 방어 쪽 계열인 것 같아요. 물리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공격을 쳐낼 수 있는 강력한 주술이에요. 그슨대도 아마 이 주술을 써서 예전에 저희의 공격을 물 흘려보내듯이 쳐냈던 것 같아요.”
“왜 하필 신라의 영혼을 떼어 간 거지?”
“주술에 쓰인 영혼 조각의 주인만이 그 상대를 죽일 수 있다나 봐요.”
“그 말은…. 이제 비형랑을 없앨 수 있는 자는 신라뿐이라는 소리인가?”
“여기에서 제일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건우는 입술을 짓씹으며 혀끝에서 맴도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했다. 그의 착잡한 시선이 신라의 방 쪽을 향해 있었다.
“대신 비형랑의 혼을 없애게 되면… 신라도 그 충격을 똑같이 고스란히 받게 될 겁니다. 비형랑을 없앨 만한 충격이라면 아마 신라는 버티기 힘들 거예요.”
듣고 있던 동주가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대로 쩌적 갈라진 테이블에서 신라의 전공 서적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누구도 그것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모두 지금 당장 뭔가를 깨부수고 싶은 것은 같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미친놈! 지옥까지 끌고 들어가겠다는 거야, 뭐야!?”
혜령이 발을 구르며 외쳤다.
“그 주술의 해법 같은 건 없어?”
화비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건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런 게 있었으면 그슨대도 진작 없애버렸겠지.”
“그럼 그슨대도 그 주술을 사용하기 위해 끌어다 쓴 다른 이의 영혼이 있었겠네?”
“그럴 수도 있지.”
가만히 듣고 있던 준성이 끼어들었다.
“아무리 신묘한 주술이라도 결국 뿌리는 신들의 능력에 있어. 분명히 누군가의 희생 없이 비형랑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조금만 기다려.”
신후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기다렸다가 그쪽에서 먼저 공격해 오면 방법이 없어. 지금으로선 우리가 월등히 열세인 걸 부정할 수 없겠군. 그리고 신이 이 사실을 빨리 알아봤자 사실 좋을 게 없어. 그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지. 신라를 이용할 명분을 마련해준 셈이니까.”
신이 빨리 알아봤자 좋을 게 없다는 소리에 준성이 수긍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대한 비밀리에 알아보도록 하지. 그 주술의 맹점을.”
신라는 꿈에서 낯선 풍경을 보았다. 너무 생생해서 마치 누군가에게 빙의를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의 몸 같았다. 고급스러운 흰 비단옷을 입은 남자는 인간과 요괴들의 선망의 눈빛을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앞에는 늘 탐욕스러운 눈들과 후회와 절망으로 물든 타락한 눈들이 있었다. 모두 그의 악마 같은 부추김에 넘어간 이들이었다.
- 더…. 좀 더….
누군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아무리 관망해도 채워지지 않는 기분 나쁜 갈증은 여전했다. 즐겁지만 곧 얼마 안 있어 그 감정은 허무함으로 변모했다. 한 번 허무해지고 나면 그게 신호탄이 된 것처럼 끝도 없는 우울감이 찾아왔다.
- 이번에는 더 즐거울 만한 자를 데리고 와.
우울함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기계적으로 타인의 절실함을 쥐고 흔들었다. 일시적으로는 우울함이 걷히고 정신적인 쾌락이 찾아왔지만, 끝은 늘 똑같았다.
- 또…. 또 데려와.
고귀해 보이는 외모, 타고난 리더십, 모든 게 완벽하다고 일컬어지는 남자의 이면에는 그런 마음의 병이 있었다.
신라는 그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외로움….’
남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외로움에 잡아먹히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전부 이해해줄 수 있는 이가 요괴 중에도 인간 중에도 없으니, 그런 이를 발견할 때까지, 아니 발견해달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이 모든 일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꿈에서 깨어난 신라는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 눈을 덮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녀의 혼이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 방의 문이 열리고 신후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신라가 깬 것을 눈치채고 침대맡으로 걸어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머리맡에 앉은 그를 신라가 멍하니 올려다봤다.
“꿈을 꿨는데… 그 남자 꿈이었어요.”
“느낌이 지나치리만큼 생생했겠지.”
“네…. 마치 꿈이 아니라 오래전 ‘기억’ 같았어요. 저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본인이 직접 느꼈다면 더는 숨겨봤자 의미 없는 일이었다. 신후는 조곤조곤 앞뒤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강 현의 방어 주술을 완성시키기 위한 영혼의 조각으로 선택당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결국 그의 마지막은 그가 바랐던 대로 그녀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었다.
“보주가 오른쪽 눈을 고칠 방법을 찾아온다고 했으니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
“네….”
사실 흐릿해진 한쪽 눈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강 현을 검으로 찔러 죽이는 상상이 그녀의 머릿속에 거듭 반복됐다. 벌써 양손에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듯한 끔찍한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