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장. 트랩 (82/126)

81장. 트랩

「다음 뉴스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사건의 수가 최근 들어 국내에서 급증하고 있습니다. 각 관할구역 담당 경찰들은 현재로서 사망자들의 정확한 자살 동기가 없다며, 자세한 것은 수사를 더 진행해야…」

건우가 컴퓨터로 틀어놓은 뉴스를 듣고 다들 그의 자리로 몰려들었다. 타의적인 살인이 아닌 자살의 건수가 늘어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 되네. 베르테르 효과인가?”

건우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컴퓨터로 기사를 검색하던 혜령이 고개를 저었다.

“최근에 목숨을 잃거나 한 연예인은 없어.”

“곧 수능이라서?”

“사망자들 연령대가 다양하다잖아.”

“현실에서 이유를 찾을 수 없으면 결국 우리 쪽 일이라는 건데….”

“아니길 바라야지.”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동주는, 창가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 우선을 발견했다.

“민우선!”

“…어?”

우선이 한 박자 늦게 동주를 돌아봤다. 그 모습을 보고 다들 웃음을 흘렸다.

“뭐야, 너도 시험 봐?”

“아…. 어제도 잠을 설쳐서.”

“이번에는 또 왜?”

“라디오 듣다가.”

“요새 라디오에 푹 빠졌구나?”

“응…. 잠 좀 깨고 올게.”

한 차례 마른세수를 한 우선은 힘 빠진 걸음으로 연구실을 나갔다.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건우와 혜령은, 동시에 동주를 마뜩잖게 쳐다봤다. 움찔한 동주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들?”

“요새 우선이 안 챙기지? 애가 얼굴 꼴이 말이 아니잖아.”

“저만큼 우선이 챙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어서 따라 나가본다, 실시.”

“…넵.”

동주는 뒤늦게 건물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건물 근처 어디에도 우선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고개를 갸웃하며 그의 기척을 쫓던 동주는, 문득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고개를 들고 건물 위층을 올려다봤다. 무언가 발견한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

밖에 나온 줄 알았던 우선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께름칙한 기분이 느껴졌지만, 동주는 일단 긴 팔을 휘휘 저어 우선의 시선을 끌었다.

“거기에서 뭐 해-!”

동주를 뒤늦게 발견한 우선이 정신을 차렸는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옥상을 바라보던 동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교양 수업을 듣고 강의실에서 나온 신라는, 창가에 기대서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표정을 굳혔다. 그도 막 강의를 끝내고 왔는지 손에 자료 같은 것들이 들려 있었다.

“어머, 아는 사람이야? 설마 교수?”

같은 과 여학생이 신라의 뒤로 달려와 캐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강 현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는 오빠입니다. 의대 쪽에서 강의하고 있거든요.”

“헐, 대박!”

신라는 날이 선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 여유로운 미소로 답한 강 현은 신라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얼른 가자. 오빠가 오랜만에 밥 사 줄게.”

“……”

복도 코너를 돌아서자마자 신라는 그의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

“그만 하세요.”

“이러려고 이 학교에 취직한 건데. 생각보다 재미있네.”

강 현이 웃으며 벽에 비스듬히 기대섰다. 신라는 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려 했다.

“어서 가세요. 얼굴 마주보기 힘드니까.”

“왜 마주보기 힘든데요? 우리 그렇게까지 비틀어진 사이는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시간이 갈수록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어져요. 이해할 수 없으면 공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다가오는 거고요.”

“왜 나를 이해할 수 없죠?”

“……”

“난 어둑시니의 손에 날 죽게 만들려고 했던 당신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니 당신도 좀만 더 노력해줄 수 없을까?”

끝까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신라를 보고 점차 웃음기를 잃은 강 현은, 입술을 꾹 다물고 할 말을 골라내다가 결국 먼저 돌아서 그 자리를 떠났다.

신라의 가라앉은 눈빛이 뒤늦게 그의 자취를 따라갔다.

가장 늦게까지 연구실에 남아 있다가 불을 끄고 나온 동주는 앞을 가로막는 익숙한 실루엣에 눈썹을 비틀었다.

“장 형사?”

“반말 찍찍할래?”

발끈해서 외친 장 형사는 답지 않게 먼저 감정을 추스르고는 진지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 왔다.”

“궁금한 거요?”

“그래. 최근에 자살 사건이 급증한 거 뉴스 봐서 알지? 그 원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 말이야.”

“원인이라면 저희 쪽도 궁금하던 차인데요.”

“그게…. 뭔가 억지 같고 괴담 같긴 한데, 자살한 사람들이 하나 같이 밤마다 라디오 듣는 게 하루 일과였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낮에는 잠을 못 잔 것처럼 멍하고, 상념에 잠겨있고. 그, 목소리에도… 그런 힘이 있는 사람이 있나 해서.”

“라디오라… 사람이 아니라면 가능할 법도 하네요.”

사람이 아니라는 표현에 장 형사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렇지만 디제이가 꽤 연차 있는 가수라서.”

“그건 상관없어요. ‘빙의’라는 현상도 있으니까.”

“……”

“…가만.”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동주가 미간을 좁혔다.

“그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이 뭐죠?”

“ 「달에 사는 남자」, 라던가.”

‘우선이가 즐겨 듣는다는 프로그램 같은데.’

동주의 미간이 더 패였다.

“그 프로그램 방송 시간이 좀 불규칙하지 않나요? 밤새도록 특집 방송을 할 때도 있다고 하던데….”

“뭐? 그런 거 없었어. 근 1년 동안 같은 시간 같은 길이로 방송했다고. 그 뒤로는 음악만 흘러나오는 무인 방송이야.”

“…특집 같은 게 없었다고요?”

“그래. 단 한 번도.”

단번에 심각한 표정으로 변한 동주를 보고 장 형사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뭐야, 뭔가 아는 게 있는 거야?”

“우선이도… 그 방송을 요새 듣거든요.”

“뭐?”

“제길….”

동주는 시계를 한번 확인했다. 우선이 퇴근한 지 어느덧 1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그는 고민할 새 없이 복도를 달려 나갔다. 얼떨떨하게 그를 돌아본 장 형사도 혀를 차며 그를 쫓아서 달렸다.

우선은 연구실에서 퇴근한 뒤 서울 시내에 있는 한 방송국 건물을 찾았다. 막 인기 프로그램의 녹화가 끝났는지 연예인의 팬들이 시끄럽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홀린 사람처럼 방송국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비원의 눈을 따돌리는 것쯤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김여욱… 김여욱….”

그는 라디오 녹화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녔다. ‘달에 사는 남자’의 방송 시작 시간은 앞으로 약 30여 분 정도 남아 있었다.

“…찾았다.”

우선이 멈춰 선 곳은 ‘김여욱 대기실’이라고 써 붙여진 문 앞이었다. 그는 문에 대고 노크한 뒤 대답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명문대 출신으로 가수 겸 라디오 디제이로 활동하고 있는 김여욱은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인기 연예인이었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고 대기실에 들어온 낯선 인물을 쳐다봤다.

“누구시죠?”

우선은 김여욱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여욱 씨 방송을 즐겨 듣고 있는 팬입니다. 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아, 그러세요? 물론이죠.”

여욱은 우선이 내민 수첩에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부터 즐겨 들으셨어요?”

“사실 찾아 듣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우연히 들었는데 말씀을 재치 있게 잘하시더라고요.”

“아무리 방송을 재미있게 들어도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팬은 드물거든요.”

“꼭 직접 만나 뵙고 싶었어요.”

“어째서죠?”

여욱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웃고 있는 눈에서는 딱히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죽음을 도의적이고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표현하신 부분은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저런…. 그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네요.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일반인 게스트로 출연해주실 수 있을까요? 청취자분들도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의 말을 직접 듣게 된다면 많은 위로를 받을 것 같군요.”

여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선의 어깨를 위로하듯 두드렸다. 여욱의 발에서 뻗어져 나온 검은 그림자가, 우선의 사각에서 그를 온통 에워싸고 있었다.

한편, 장 형사의 낡은 승용차가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조수석에 앉은 동주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차의 천장을 두드렸다.

“아저씨, 빨리요! 빨리!”

“야! 내가 왜 아저씨야? 형사님이라고 불러!”

“시간이 없다고요!”

“그런데 왜 하필 방송국이야? 진짜 믿고 달려도 되는 거야?”

“확실해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점점 기운이 가까워지고 있거든요.”

“거참 귀신이 곡할 노릇일세….”

이제는 장 형사도 우선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의 능력을 어느 정도 믿고 있는 눈치였다. 장 형사를 슬쩍 돌아본 동주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혹시 우선이가 걱정돼서 연구실로 온 거예요?”

“뭐?”

“수사가 완전히 진행된 것도 아닌데, 자살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연구실에 찾아온 게 형사님답지 않아서.”

“그냥 갑자기 그 녀석이 생각났을 뿐이야. 만약 연관돼 있다면 더더욱 수사하기 편할 테니까. 걱정은 무슨….”

“…뭐, 어쨌든 감사해요. 눈 뜨고 당할 뻔했는데 덕분에 알아챘으니까.”

“짐작되는 범인이 있기라도 한 거야?”

차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입술을 뜯던 동주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라디오를 통해 전달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을 정도의 자살귀(自殺鬼)라면 그리 종류가 많지 않아요. ‘그슨새’라는 놈이 아닐까 생각 중이에요.”

“제길, 뭐가 뭔지.”

장 형사는 시계를 보고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김여욱의 ‘달에 사는 남자’가 오프닝 멘트를 띄우고 있었다.

「오늘은 인사에 앞서, 평소 좋아하는 시인인 정호승 씨의 시 한 구절을 읊어보겠습니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달에 사는 남자, 김여욱입니다. 흘러가는 대로 살고, 외로움이 느껴지면 그 외로움을 평범한 것이라 여기고 받아들이라는 소리 같죠?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세상에는 나 말고도 외로움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겁니다.

오늘은 특별히 일반인 게스트 한 분이 라디오 부스를 찾아주셨습니다. 소개 한 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다음 들린 귀에 익은 목소리에, 동주와 장 형사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크게 뜨였다.

「안녕하세요. 스물일곱 살 평범한 성인 남자, 민우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이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장 형사의 발이 악셀을 더 세게 눌렀다. 동주는 다급히 우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무음으로 해 놓았는지 도통 받지를 않았다.

「안녕하세요, 우선 씨. 우선 씨는 평소에 우울감에 사로잡히면 어떤 생각들을 하나요?」

「스스로가 한없이 부족하고, 죄 많다고 생각하죠.」

「그 기준이 따로 있나요?」

「법으로는 정해지지 않는 저만의 기준이 있긴 합니다.」

「그럼 그 우울감을 어떤 식으로 해소하려고 하나요? 가령, 사람을 만난다든지, 맛있는 걸 찾아 먹는다든지.」

「우울감을 해소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차피 또 찾아올 테니까요.」

「저런…. 그럼 그 우울감은 끝이 없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살아 있는 한, 끝은 없겠죠.」

김여욱은 곰곰이 생각하는 것처럼 긴 추임새를 넣었다.

「음-. 그 말은 즉, 살아 있지 않고 죽게 되면, 우울함의 끝이 찾아온다는 소리겠군요.」

조용히 듣고 있던 장 형사의 입에서 먼저 욕이 터져 나왔다.

“이거 뭐, 방송 심의 따위는 무시하기로 했나 보지!?”

“젠장, 저 자식 뭔 일 칠 것 같아. 더 빨리 달려요, 아저씨!”

“이미 규정 속도는 훨씬 넘은 지 오래라고!”

「우선 씨…. 그러면 우리, 오늘 이 지독한 우울감을 청취자분들과 함께 없애버리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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