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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장. 재물귀 (75/126)

74장. 재물귀

장 형사는 돈이 급했다.

딸의 진료비와 곧 필요할지도 모르는 수술비 때문에 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돈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았다. 직업 때문에 알게 된 조폭들을 들쑤시는가 하면, 예전에 돈을 빌려줬던 사람들에게 반강제로 그 돈을 받아냈다.

‘돈 귀신에 씌었나 봐.’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쑥덕거렸다. 그런데 그 말은 사실 틀린 게 아니었다. 재물귀인 나주연은 요기를 형상화한 애완귀를 장 형사의 몸속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것은 추병귀가 일전에 꾸며놓은 일들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장 형사가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잘 꼬셔서 혼의 매개체를 삼키게 했다.

장 형사 몸속의 요괴는 수중에 돈을 넣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주는 척하면서 장 형사의 물욕(物慾)을 먹고 서서히 자라났다. 그것도 모르고 장 형사는 기가 막힌 방법을 생각해내는 요괴의 잔꾀에 신이 났다.

“그래…. 그 절이 있었지.”

그는 알고 있는 산속의 절로 한달음에 향했다. 우선의 양아버지 진해 대사는 기꺼이 안채를 내어주고 그가 쉬어가게 해줬다.

하지만 장 형사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몰래 값비싼 금 재질의 물건들을 훔쳐 달아났다.

“이런…!”

다음 날 아침, 진해 대사는 엉망으로 어질러져 버린 법당을 발견하고 사색이 되었다. 고민하던 그는 일단 우선에게 연락을 취했다. 우선은 학교에 출근해 있다가 곧장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장 형사가 이렇게 하고 간 것 같구나.”

우선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장 형사가 망나니 기질이 있다고 해도, 물욕에 눈이 뒤집혀 이런 짓을 저지를 만한 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것은 엄연히 범죄였다.

“아무래도 그 치한테 무슨 사정이 생긴 것 같아요. 제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신고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물론 네 뜻을 따르마. 요괴의 짓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그럴 확률이 크니까요.”

“만일 몸에 숨어든 요괴가 점차 힘을 키워 가는 종류의 요괴라면, 지금쯤 그자를 잡아먹을 기회만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겠죠.”

우선은 병문안을 왔던 장 형사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 책임지지 못 할 말이면 내 앞에서 안 하는 게 좋아. 그게 저 녀석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바라던 거 아니었나?

그렇게 서로를 미워했어도, 어느새 가장 잘 이해하는 관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절에서 내려오며 핸드폰을 꺼내 장 형사의 번호를 눌렀다. 따로 이름을 저장하지는 않았지만,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오는 바람에 외우기 싫어도 절로 외워졌다.

「이게 누구야? 칼빵은 다 아물었는가 보지?」

목소리에서는 별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어디세요.”

「왜? 니들 사정을 눈감아준 데 대한 답례라도 하게? 난 돈이 좋을 것 같은데!」

“그날 밤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증거 있으세요?”

「하! 건방진 놈….」

도저히 말본새가 좋게 나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우선은 일단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일을 수습해보기로 했다.

“돈은 왜 필요하신 거예요? 왜 하필 절의 물건을 가져가요?”

「하! 그새 양아버지한테 쫄래쫄래 달려갔나 보군? 네가 병원 신세를 진 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아주 지극정성이야!」

“일단 만나요. 지금 당장 학교로 오지 않으면 아저씨가 이 절의 금품을 훔쳐 간 사실을 신고하러 그대로 경찰서에 갈 거니까.”

「협박이냐!」

“계속 경찰로 살고 싶다면 늦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전화를 먼저 끊은 우선은 서둘러 계단을 마저 내려가 택시를 불렀다.

* * *

두 남자의 싸움은 도저히 근처에도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고 치열했다. 온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었다가, 푸른 벼락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신라는 그들의 기운에 짓눌려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깨어나 보니, 주위에서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흙바닥에서 일어나 몸을 털 새도 없이 두 사람이 격돌했던 장소로 달려가 보았다. 드넓은 평야에 한 사람이 석상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신라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녀가 다다름과 동시에 무릎이 접힌 남자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큭….”

“교수님-!”

신라는 그를 받아내며 함께 바닥에 몸을 앉혔다. 단정했던 옷가지는 생채기와 먼지투성이였다. 분명 의식은 있지만,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은 거예요? 그 남자는요?”

“사라졌어…. 결판을 내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많이 다쳤어요?”

“누가?”

“……”

신라의 심각해진 눈빛이 하얗게 질린 신후의 얼굴에 닿았다. 신후는 눈을 뜨고 있을 힘도 없는지 힘겹게 눈꺼풀을 닫으며 말을 이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돼. 저 녀석에게 널 빼앗기고, 두 손 놓고 있었던 건 나니까.”

“…일어나요. 돌아가야죠.”

“정말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를 부축해 일으키던 신라가 그 질문에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반문했다.

“무슨 후회요?”

“날 따라서 돌아가는 것에 대한 후회 말이야.”

“그런 게 걱정이면 당신 때문에 돌아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어쨌든 지금은 대학생으로 사는 게 내 의무이자 터전이니까. 당신은 그곳의 교수일 뿐이고요.”

“……”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될까요? 지금은 저도 너무 지쳐서 쉬고 싶어서요.”

못 본 새 더욱 야위어버린 신라를 보고, 신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강원도 강릉 부근이었다. 마침 근처에 기차역이 있어 그것을 타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갈 때 두 사람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신후만이 많은 감정이 담긴 눈길로 신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장 형사를 학교로 부른 우선은 제령 의식을 준비했다. 연구실 바닥에 한문으로 가득한 진을 그려놓고 부적을 들고 있다가, 장 형사가 들어서면 단번에 그 몸에 들린 악귀를 쫓아내고 동시에 제령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밖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의식을 준비하던 동주가 기척을 숨긴 채 문을 열고 나가봤다.

바깥 복도에는 여러 명의 장정들이 서 있었는데, 다름 아닌 장 형사를 포박해 끌고 가고 있었다. 검은 양복 차림인 것을 보니 경찰이라기보다 조폭 쪽에 가까운 비주얼이었다.

“우선아, 일이 틀어진 것 같은데.”

“뭐?”

우선도 급히 복도로 나왔다가 상황을 목격하고 뒷목을 쥐었다. 아마도 무리하게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조폭들도 건드린 모양이었다.

“못 본 척하면, 내 죄가 하나 더 늘겠지?”

우선답지 않은 말에 동주가 웃음을 흘렸다.

“나는 네 편이야. 네가 못 본 척하면 같이 못 본 걸로 해줄게.”

“하아… 저 아저씨를 진짜.”

결국 두 사람은 장 형사를 끌고 가는 조폭들의 뒤를 쫓기로 했다. 그들은 보는 눈이 적은 주차장에서 장 형사를 검은 승합차에 억지로 태우려고 했다.

“이거 놔-! 이 조폭 새끼들이, 내가 누구인 줄 알아!?”

“누구긴.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큰돈을 빌려 간 우리 소중한 고객이지.”

“니들 콩밥 먹어볼래!?”

“이미 주기적으로 많이 먹고 있수다. 우리 콩밥보다는 당신 콩팥이 더 구미가 당기는데.”

“…!”

장 형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의 몸 안에 있던 요괴가 숙주에게서 더는 욕망을 잡아먹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스물스물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장 형사는 시꺼멓고 거대한 그 요괴를 직접 목격하고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볼 수 없었겠지만, 귀혼의 매개체를 삼킨 덕에 잠시나마 요괴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흐이익! 귀, 귀신이다! 귀신이야!”

“이 늙은이가 미쳤나….”

조폭 중 하나가 바르작대는 그에게 주먹질을 하려 했다. 그걸 보고 우선이 자기도 모르게 숨어 있던 차 뒤에서 달려 나갔다.

“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버렸기 때문에 딱히 대책은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동주를 돌아봤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동주가 우선을 뒤따라 차 뒤에서 걸어 나왔다.

“저 자식들은 뭐야?”

그들을 발견한 조폭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아저씨들… 그렇게 멋대로 살다가 다음 생에 날파리로 태어나는 수가 있어요.”

우선이 진지하게 말했다. 진심 어린 조언이지만 사내들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 말이 그들의 화를 돋우는 격이 됐는지 몇 명이 위협적으로 우선과 동주에게 다가왔다. 동주가 우선에게 속삭였다.

“날파리가 요새 얼마나 각광받는 직업인지 알아? 옆 건물 실험실에서 태어나면 밥 주지, 배우자 주지, 맨날 집 갈아주지, 장난 아니야.”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네가 방금 한 말이 더 농담 같았거든? 봐봐. 저런 부류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마침 손찌검을 해 오는 장정의 팔뚝을 가볍게 낚아챈 동주가 그의 몸을 회전시키며 밀쳐냈다. 굉장히 가벼운 동작처럼 보였지만 커다란 몸집은 거의 2미터 정도를 날아갔다.

“뭐, 뭐야! 쳐-!”

덕분에 긴장한 조폭들이 이번에는 동시에 달려들었다. 여유롭게 사내들을 때려눕히는 동주의 뒤에서, 우선은 장 형사에게 들린 요괴를 안전하게 빼낼 수 있는 진을 그렸다.

그때였다.

타 아 앙 - !

마치 철근이 떨어지듯 커다란 소리가 울리며 화약 연기가 허공에 뿜어졌다. 반 정신이 나간 장 형사가 요괴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한 것이다. 혀를 찬 우선이 재빨리 장 형사에게로 달려갔다.

“귀, 귀신아! 저리 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타앙-! 타앙-!

우선은 장 형사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탄창을 모두 비워버렸다.

“정신 차려요, 형사님.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그렇게 말한 그는 손에 귀력을 담아 장 형사의 등을 강하게 쳐냈다. 상황이 급박하니 다소 충격이 가더라도 극약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쿨럭-!”

장 형사의 입에서 구슬이 토해져 나왔다. 우선은 그 귀혼의 매개체를 발로 밟아 깨뜨려버렸다. 그리고 허공에 떠돌고 있는 요괴를 붙잡아 제령시키려 했다. 하지만 약삭빠르게 그의 손에서 벗어난 요괴는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주인인 나주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두려움에 떨던 장 형사가 갑자기 환해진 시야에 눈을 마구 비볐다.

“어, 어디 갔지? 분명히 저기 있었는데! 무시무시하게 생긴 게…”

“뭐가요?”

우선이 무감정한 얼굴로 반문했다.

“너, 너도 봤잖아!”

“도대체 뭘 봤다고 하는 거예요? 항상 날 미친놈 취급하더니, 이제 같이 미치기라도 하신 거예요?”

“…아….”

장 형사의 눈빛이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아직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그를 보고 한숨을 토해낸 우선이 말을 이었다.

“없어요, 이 근처에는.”

“…정말로? 갔어?”

“그보다, 왜 돈이 필요했던 거예요? 절간의 금품을 훔쳐 가면서까지.”

“나도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유는 별거 없어.”

우선은 장 형사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갔다. 그곳은 한 작은 병원이었다. 좁은 병실에 한 소녀가 누워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었다. 소녀는 장 형사의 하나뿐인 딸이었다.

“병의 원인을 알 수가 없대. 그냥 이렇게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검사비만 수십 수백이 깨져나가. 내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지. 그래서 뭐에 씌었었나 보군.”

“……”

“이유를 알았으면 돌아가. 내가 훔쳐 갔던 건 제자리에 돌려놓을 테니까.”

우선은 속으로 혀를 찼다.

‘병명이 찾아질 리가 없지.’

소녀의 침대맡에는 질 나쁜 잡귀들이 즐비했다. 장 형사에게 귀혼의 매개체를 먹인 자가 그에게서 나는 피와 시체 냄새를 퍼뜨려 잡귀들을 유인한 게 틀림없었다.

우선은 진지한 모습으로 소녀의 근처로 다가갔다. 나지막이 주문 같은 것을 외운 그는, 소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양손으로 쥐어 허공에서 세게 털어냈다.

“사라져라.”

그의 살기 어린 한마디에 소녀의 무의식을 붙잡고 있던 잡귀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버렸다.

장 형사는 멍한 얼굴로 우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빠….”

소녀의 입이 작게 열렸다.

“아이고, 내 딸-!”

장 형사는 감격하며 달려가 딸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소녀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보고 우선은 조용히 돌아서 병실을 나갔다. 딸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던 장 형사가, 우선이 나간 문가를 잔뜩 여운이 남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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