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 함정_下
우선의 소식을 접한 신후는 혜령, 건우와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차의 조수석에 탄 혜령이 초조한 표정으로 창가를 내다보고 있었고, 건우도 뒷좌석에서 심각한 얼굴로 말을 아꼈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만난 지하 사자가 이상한 말을 했던 것 같아요.”
혜령이 입을 열었다. 조용히 운전하던 신후가 그녀를 돌아봤다.
“무슨 말?”
“당신들도 저 영혼을 빼돌릴지 어떻게 아느냐고…. 누군가 사자들이 도착하기 전 영혼을 중간에서 빼돌린 일이 최근에 있었나 봐요.”
“보기 좋게 걸려든 거군….”
신후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번 일의 의뢰자는 자신의 얼굴을 직접 드러내기를 꺼렸었다. 방문증도 택배를 통해 보내왔고, 보내는 이의 주소도 가려져 있었다. 이런 의뢰를 하는 사람들이 보통 그런 성향을 갖고 있기에 별 의심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한 것치고 말투는 고상하기 그지없었던 것 같다. 그는 안이했던 스스로를 탓했다.
“차 조교와 신라는 어디에 있지?”
두어 시간이 지나도 취조실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우선 때문에 동주는 폭발 직전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경찰서 안으로 뛰쳐 들어가려는 걸 신라가 겨우 말렸다. 그가 또 들어가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건우와 혜령이 서에 도착했다.
“차동주, 진정해. 이러다가 너까지 같이 끌려가서 취조당하는 수가 있어.”
건우가 동주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혜령도 함께 말렸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 경찰 쪽에도 교수님 인맥이 있으니까, 적당히 하고 풀어줄 거야. 지금 통화 중이셔.”
“지금 ‘적당히’가 아니잖아요…! 방문증도 보여줬고, 날마다 학교 연구실에 있었으니까 알리바이도 충분하다고요! 그런데 옛날부터 호시탐탐 기회만 보면서 시비를 걸던 그 형사 놈이 우선이를 안 놔주고 있는 거라고요!”
“차동주!!”
건우가 큰 목소리를 냈다. 진지하게 화를 내는 일이 드문 건우의 호통에 동주의 움직임이 잠깐 멎었다.
“너 우리 진짜 적이 누군지 잊었어? 왜 저런 인간 형사한테 이렇게까지 분노를 하는 거야? 우리가 지금 가장 화를 내야 할 대상이 누구냐고!”
“형, 그치만….”
“우선이는 금방 풀려날 거야. 교수님을 믿고 기다리자고. 응?”
“……”
동주가 초조하게 입술을 짓이기고 있을 때였다. 서의 유리문이 열리고 가라앉은 표정을 한 우선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모두가 반색하며 그에게 몰려들었다.
“우선아!”
“우선 선배!”
사람들을 발견하자마자 우선이 힘없이 웃었다.
“여태 기다렸네요.”
“당연하지, 임마….”
동주의 미안한 표정을 보고 우선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쳐줬다.
“장 형사가 험하게 안 했어?”
“아무리 날 못 마땅히 여겨도 증거가 없으니까. 본인도 포기한 눈치야.”
그때 서의 문이 열리고 우선을 붙잡았던 장 형사가 걸어 나왔다. 그는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우선을 주시했다. 우선도 묵묵히 그와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이걸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하지 마라. 난 항상 널 지켜보고 있으니까.”
건우가 과장된 행동으로 팔을 쥐었다.
“우우, 소름 돋아. 형사는 스토킹으로 못 잡아가나 모르겠네~”
“뭐? 이 자식이…!”
장 형사가 계단을 걸어 내려오려 하자 이번에는 혜령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요, 형사 아저씨. 형사면 형사답게 물증으로 범인 잡으세요.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우선이 덕분에 실종자들의 시신도 찾았잖아.”
“그러니까, 공범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 두고 봐, 꼬투리라도 잡히면 옛날에 지 부모들을…”
우선의 표정이 사색으로 변하려는 찰나 동주가 달려들어 장 형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씩씩거리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관찰하던 장 형사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 너도 전과자가 될 뻔한 녀석이지? 끼리끼리 아주 볼만하군. 귀신? 그런 게 있으면 어디 자기들 죽인 범인이라도 밝혀보라고 하지 그래!”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지 마…. 당신 사정이 돼서도 그렇게 나불거릴 수 있을 것 같아?”
“하! 내가 그깟 귀신 놀음에 놀아날 때쯤이면 죽을 때가 된 거겠지. 어서 이거 놓지 않으면 현행범으로 끌고 들어갈 거다!”
농담이 아닌지 수갑을 허리춤에서 꺼내 드는 장 형사를 보고 신라가 보다 못해 한 걸음 나섰다.
그런데 그녀보다 더 먼저 나선 이가 있었다. 어느새 그들 사이로 나타난 신후가 신라의 어깨를 잡아 세우고는 대신 동주를 향해 걸어갔다.
“차 조교. 여기에서 이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신후의 목소리를 듣고 동주의 분노가 잠시 주춤했다. 그는 신후를 돌아보며 마지못해 장 형사의 멱살을 놓았다.
“교수님….”
“형사님 말씀이 맞아. 귀신의 존재는 믿을 만한 게 못 되지. 더군다나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봐야 하는 직업을 갖고 계신 분들은.”
장 형사는 선글라스를 끼며 천천히 다가오는 신후를 다소 경계심 어린 눈길로 주시했다. 신후는 그의 앞에 서서 옅게 미소를 지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때 장 형사의 눈이 뭔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찌푸려졌다. 신후의 선글라스가 비추는 자신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신의 어깨 위로 무언가 올라타 있었다.
“…히익!”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장 형사는 질겁하며 어깨 위를 마구 휘저었다. 그가 이성을 잃고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든 신후는 끝맺지 않았던 말을 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존재를 믿게 되는 순간부터… 지옥 같은 공포일 테니까.”
해가 저물 무렵에야 신후가 운전하는 차가 그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조수석에 동승해 있던 신라는 안전벨트를 풀기 전 궁금한 것을 물었다.
“우선 선배도… 부모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내내 심각한 표정이더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신후는 차의 시동을 끄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떤 식으로,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신라는 그가 조교들이 과거에 요괴였던 얘기를 해줬을 때보다 더 뜸을 들이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하셔도 돼요. 본인이 직접 말하는 게 아닌데 알게 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민 조교가 걱정돼서 궁금한 거겠지. 우리와 마찬가지로 양친을 일찍 여의었어. 불의의 사고로.”
“……”
“그 형사는 아마도 그 사고의 원인이 민 조교에게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애도에 젖어 있던 신라의 시선이 놀람을 담고 신후에게 향했다.
“뭐라고요…?”
“그때 당시 담당 형사였거든.”
“말도… 안 돼요….”
“글쎄. 진실은 당사자만 알겠지만.”
“이유가 어땠건, 어린아이가 일부러 부모를 죽게 만들었겠어요? 정말 너무하네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그 상처를 들쑤시다니….”
주먹을 꽉 쥐는 신라를 보고 신후가 작게 웃었다.
“차 조교와 같이 있었다고 그새 화까지 옮은 건가?”
“농담하실 때예요?”
“재미있지 않아?”
“도대체 뭐가요.”
신후는 차 시트에 편히 기댄 채 말을 이었다.
“천 년을 넘게 살았던 과거는 고작 책에 몇 줄로 채워지고 수 초 만에 읽어지지만, 30년도 안 된 인생을 얘기할 때는 이렇게 단어 하나 골라 말하기도 어렵다는 게.”
“……”
“무엇이든 큰 기쁨도, 슬픔도 될 수 있는 게 인생이야. 속죄의 삶을 사는 자로서 인생이 순탄하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겠지. 업보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조금은 편할 거야.”
이해는 될지 몰라도, 마음이 편해질 리가 없다. 좀처럼 안색을 펴지 못하고 있는 신라를 보고 신후는 먼저 차에서 내려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내려. 데려다줄게.”
작게 한숨을 내쉰 신라는 내밀어진 손을 붙잡고 차에서 내렸다. 평소와 달리 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아니라 현관까지 들어선 신후는 신라의 집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수상한 기운이 없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정말 그 영혼들은 미끼였을까요?”
“그 공장을 조사해달라고 한 의뢰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더군. 또 원혼이 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지하 사자의 눈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1차 사망 장소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영혼들을 빼돌렸고, 시신도 그 자리에 옮겨둔 거야. 진짜 범인이 잡히면 더 정확해지겠지만.”
“도대체 누가 그런 끔찍한 짓을….”
“네가 발견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직접 목격했다면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테니까.”
“…전 괜찮아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과 얘기한 시간이 더 많을 정도인데요.”
“그것과는 다르지.”
신후는 아직 현관에 선 채로 신라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아직 불안이 묻어 있어. 살인 사건에 연루되면 누구나 긴장할 수밖에 없는 거야.”
“전….”
“스스로를 너무 모질게 대하지 마. 그러라고 널 그런 데 보낸 게 아니야. 이건 엄연히 내 불찰이었어. 미안해.”
그의 진심 어린 사과에 없던 화도 풀릴 지경이었다. 신라는 허탈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
“전 정말 괜찮아요. 우선 선배나 챙겨주세요.”
“일단은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뒀지만, 그 녀석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거라서.”
“선배가 뭘 두려워하는데요?”
신후는 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본인.”
“본인…. 자기 자신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그 녀석을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건 본인 스스로니까.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속죄의 업보 중 하나겠지.”
“……”
무겁게 시선을 내린 신라는, 다시 고개를 들고 신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궁금한 게 또 생긴 얼굴인데.”
이제는 표정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신라는 신후의 눈동자에 시선을 집중했다.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 새까만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
“당신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적이 있어요?”
신후 또한 진심 어린 여인의 눈동자를 감상하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니. 아직은.”
“이 굴레에 뛰어들게 만든 과거의 자신을 탓해본 적은 없고요?”
“뭐, 있긴 했지. 가끔은.”
“그럼 가장 두려운 게 뭐죠?”
“……”
질문의 답을 생각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명확한 답을 얘기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인지, 신후는 조금 가라앉은 눈빛으로 가만히 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점차, 지나치게 오래 머무르는 시선이 곧 답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달은 신라는 심장이 일렁거리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난… 당신에게 두려움인가요?”
신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렴풋이 미소 지을 뿐이었다.
혜령과 건우는 경찰서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의 카페에 들렀다. 우선과 동주는 같은 방향이기 때문에 함께 귀가한 뒤였다.
작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은 그들은 사뭇 심각한 분위기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심드렁히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던 건우가 먼저 운을 뗐다.
“우리가 나서야겠지?”
혜령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영혼들을 빼돌리고 시신까지…. 작정하고 우리를 엿 먹이려고 한 거야. 그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으면 분명히 단서가 남아 있을 거야.”
“인간을 홀려서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들었겠지. 그렇지 않고선 지하 사자보다 먼저 죽음의 장소로 가서 영혼을 빼돌릴 순 없어.”
“영혼들은 이미 저승으로 인도됐을 거야.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지.”
건우는 조금 남았던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고는 빈 컵을 시원스레 내려놨다.
“사건 현장을 다시 조사해서, 그 뒤의 배후를 쫓는 것.”
두 사람은 호기롭게 서로를 바라봤다. 평소에는 앙숙일지라도 이럴 때만큼은 고고학 연구실의 맏형, 맏언니다운 그들이었다.
혜령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때 인맥을 사용하라고 부잣집에서 태어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