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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인간이었어 (3/126)

2장. 인간이었어

전날의 수모를 겪고, 신라는 장롱 속에서 오래 꺼내 보지 않았던 낡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귀신에게 잘 들리는 체질인 그녀를 위해 선물하셨던 각종 퇴마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얇은 염주를 손목에 차고 학교로 향했다.

“유신라!”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같은 과 친구인 서영이 달려와 힘차게 팔짱을 꼈다. 스스로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으려는 신라에게 살갑게 먼저 다가와 준 고마운 친구였다.

“웬일이야?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수척해? 밤새웠어?”

“뭐, 비슷해.”

“설마… 또 몽유병?”

서영이 주위를 둘러보며 소곤댔다.

“응, 비슷해.”

“맨날 비슷하기만 하대!”

“사실대로 다 얘기하면 네가 기절할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서영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다 손뼉을 치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어떡해? 오늘 고고학 쪽지 시험 보는 날이잖아!”

“…아… 망했다….”

신라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제저녁에 공부할 생각이었건만, 그 난리를 겪는 통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떡하니. 한 교수님, 쪽지 시험이라도 이름이랑 성적 다 불러주는 고약한 성격인데.”

“…몰라. 시험 못 본다고 죽이진 않겠지.”

어제 그 귀태처럼.

“풋! 하긴~ 시험을 잘 보긴 힘드니까 아예 못 봐서라도 관심 한번 받아봤으면. 난 출석 불릴 때에도 막 흥분된다니까?”

“잘났다….”

신라와 서영은 강의 시작 5분 전 언제나처럼 셋째 줄 가장자리 즈음에 앉아 가방을 풀었다. 한 문제라도 더 맞겠다고 열심히 범위를 정독 중인 학생들이 보였다. 대부분 헛된 기대를 품고 있는 여학생들이었다.

신라는 그중 유일하게 태평한 모습으로 턱을 괴고 핸드폰을 했다.

10시 반 정각, 앞문이 열리고 강의실로 한 교수가 들어섰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능력을 인정받아 대학교에서 거의 모셔오듯 했다던 사학계의 초특급 엘리트. 뛰어난 명강의로 방송을 탄 적도 있어, SNS상에서는 미남 강사로도 유명했다. 비인기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학과에서 교양 강의로 집어넣어 수강 신청 경쟁률부터 어마어마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시험 어렵게 내신 거 아니죠~”

맨 앞줄에 앉은 여학생들이 콧소리를 섞어 말을 걸었다.

강단에 올라 학생들을 한번 찬찬히 훑어본 한 교수는, 안경을 치켜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쪽지 시험이 있으니 출석은 시험지로 대체합니다.”

“빵점이어도 출석은 인정되는 거죠~”

흥미 없는 표정으로 창가를 쳐다보던 신라는, 남자가 웃는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두 눈을 키웠다. 안경을 벗어 닦는 한 교수가, 누군가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출석은 인정되겠지만, 성적은 크게 감점될 수 있습니다. 제가 어제 한 여성에게 차이는 바람에, 아주 힘든 하루를 보냈거든요.”

여학생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그를 향해 질문 세례를 퍼부을 때였다.

타앙!

60여 명이 넘는 학생들 틈에서,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긴 머리의 여학생이 책상을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잠깐의 정적 후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교수를 몰래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흥분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리에서 일어선 당사자 여학생과 그녀와 눈이 마주친 한 교수는 서로를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넌….”

한 교수가 보기 드물게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신라는 입술을 꾹 깨물고 점차 가빠오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당신… 당신이 어떻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신라를 보고 뒤늦게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서영이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야, 유신라. 왜 그래? 귀신 본 사람처럼. 설마 지금도 보이는 거야?”

신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서영이 다급하게 물었다.

“어. 보이다마다.”

신라는 한 교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 말뜻을 이해했을 리 없는 서영은 뒤따라 일어나며 한 교수를 향해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교수님. 신라가 자주 빈혈이 오는 지병이 있어서요. 잠시 병원 다녀와도 될까요?”

한 교수는 다시 안경을 낀 채 표정 없는 얼굴로 신라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두 분은 감점 없이 재시험에 참석하도록 하시죠.”

“우왓, 감사합니다!”

신라는 서영의 손에 이끌려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면서도 끝까지 한 교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덕분에 볼 수 있었다. 허탈하게 미소 지으며 중얼거리는 그의 입술을.

‘인간이었어?’

* * *

고고학 강의가 끝나고 얼마 후, 한 교수의 사무실 문이 노크도 없이 불시에 열렸다. 사무실 한가운데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한 교수가 불청객에게 물었다.

“‘지병’은 언제부터였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그가 어이없게 느껴진 신라는 일단 문부터 닫았다.

“무슨 지병을 물으시는 건지.”

“빈혈…을 묻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

한 교수는 커피를 내려놓고 신라를 향해 다가갔다.

“귀신이 잘 달라붙는 체질…. 뚜렷한 명칭은 없지만, 간혹 연월일시를 잘못 타고 태어나 귀력이 흘러넘치는 화수분이 생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교수직을 맡아도 되는 건가요?”

“귀신을 그렇게 홀리는 몸이면 세상 어지럽히지 않도록 당장에 불당에 들어가 보호를 받아야지.”

“교수가 학생 몸에 손을 대고 입까지 맞췄는데, 이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사이 한 교수는 신라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신고하려면 ‘살인미수’로 해. 만약 끝까지 갔다면 네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을 테니.”

탁- 갑자기 손목이 허전해지는 느낌이 들어 신라는 손을 들어보았다. 오늘 아침에 차고 나왔던 염주의 끈이 저절로 끊어져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기죽지 않았다. 지금은 낮이고, 소리를 지르면 문밖에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들을 수 있었으니까.

한 교수가 미소 지었다.

“그런데 어쩌지. 증거가 없을 텐데.”

분명 CCTV가 있는 길가였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기계를 먹통으로 만드는 것쯤 일도 아닌 듯했다.

“맞아요. 어둑시니인지 귀태인지, 인간도 아닌 놈한테 잡아먹힐 뻔했다고 말해봤자 믿어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겠죠.”

“용케 내 정체에 대해 알아 왔군.”

“‘친구들’이 좀 많아서요.”

한 교수는 안경을 벗어 셔츠 가슴팍에 꽂아 넣고, 바닥에 흩뿌려진 염주의 알들을 내려다봤다.

“그 ‘친구들’이 이것도 알려주던가?”

“뭘…”

그가 어떤 말을 하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신라는 갑자기 말을 잃었다. 한 교수가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신라를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신라의 두 손이 한 교수의 가슴팍에 닿았다. 경계심으로 물들어 있던 눈빛이 몽롱하게 풀리고, 마치 딴 사람처럼 열기에 가득 찬 눈빛을 한다.

‘아름다워….’

눈앞에 있는 매력적인 존재에게 온몸을 내던지고 싶었다. 함락하는 것이 기쁠까, 함락당하는 것이 기쁠까? 고민할 새도 없이 성급한 손은 먼저 그의 셔츠 단추를 풀어 내리고 있었다.

‘더, 더 빨리.’

가만히 웃고만 있는 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당장 입술을 부딪쳤다. 살면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갈구해본 경험이 없었다. 특히 육체적으로.

신라는 오감으로 그의 존재를 오롯이 받아들이며 황홀함을 만끽했다. 세상 가장 매력적인 존재가 눈앞에 있고, 그를 만질 수 있고 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이게 다야?”

도발하는 듯한 그의 말은 마치 평생 옥죄고 있던 수갑이 풀린 듯한 해방감을 줬다. 신라는 그의 가슴팍을 밀쳐 그대로 소파에 드러눕게 만들었다.

흐트러진 셔츠 깃 사이로 손을 넣어 탄탄한 가슴 근육을 매만지고, 고개를 숙여 그의 쇄골,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소중한 듯 뺨을 감싸 쥐고 입술에 여러 번 입을 맞추니, 귀엽다는 듯 고개를 당겨 알아서 혀를 내어주는 그였다.

“더 해도 좋아.”

그는 친절하게도 신라의 손을 덜 풀린 단추 쪽으로 끌어당겼다. 눈에서 이채를 띤 그녀의 손이 재빨리 그 단추를 집었다.

“……”

한 교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신라의 모든 동작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냐.”

신라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뭐라고?”

“아냐.”

짝-! 뺨을 때리는 소리가 교수실을 크게 울렸다. 짝! 짝!! 신라는 본인의 뺨을 빨개질 정도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것도 모자라 주먹까지 움켜쥐는 것을 보고 한 교수가 급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꽉 감고 있던 신라의 눈이 조심스레 떠졌다. 그녀는 눈을 천천히 깜빡여보며 상황을 판단했다. 그리고 본인의 이성이 돌아왔음을 깨닫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

한 교수는 기가 찬 표정으로 신라를 쳐다봤다.

‘인간이면서, 이 유혹을 떨쳐냈다고?’

성별, 나이, 종족 불문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라면 모조리 매료시킬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그였다. 여태 마음먹고 홀린 존재 중에 이 능력에 굴복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한 교수로서는 눈앞의 여인이 마치 처음 보는 기이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말도 안 돼.”

허무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신라는 한 교수 위에서 내려와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토록 완벽하게 홀린 적은 처음이라는 듯이.

서로가 서로를 기이하게 여기는 동안 정적이 흘렀다. 먼저 그 정적을 깬 것은 신라였다.

“그날 당신이 날 건들지 않았어도 내가 알아서 당신한테 더한 짓을 하게 할 수도 있었다는 소리인가요?”

“좀 더 이성을 잃게 했다간 본인 손목이라도 잘랐겠어.”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부러뜨리긴 했을 것 같네요.”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한 교수는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다시 일어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교수실 안은 조용했다.

“그 정신력은, 귀력에서 빌리는 건가?”

“다룰 줄 아는 힘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험하게 살아오지는 않았겠죠.”

“그 ‘친구들’이 평소에 많이 괴롭히는 모양이군.”

“타고난 게 이래서.”

“도와줄까?”

한 교수가 그림 같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의 매력적인 미소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 신라는 짧게 고개를 털었다. 확실히, 귀태이기 전 그는 ‘본업’이 퇴마사라고 했었다. 그런데 왜 그가 도와주려고 하는 걸까? 무엇을 목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순수한 의도는 아닐 것 같았다.

“순순히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못 믿을 건 뭐지?”

“솔직히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여기 온 거거든요. 정체를 아는 날 또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왜 왔지?”

“도망치면 끝이 없을 테니까. 이 전공인 이상 당신을 평생 피해 다니기도 힘들 거고.”

한 교수는 생각에 잠긴 듯 구둣발을 탁, 탁, 천천히 굴렀다. 벽걸이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신라의 목덜미에서 식은땀 한줄기가 흘렀다. 솔직히 두려웠다. 벌건 대낮에 정신을 바짝 차린 상태에서도 그의 능력에 속수무책 당해버리고 만 순간부터 그가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한 교수는 주의를 환기시키듯 숨을 가볍게 뱉어냈다.

“네가 원하는 건 뭐지? 이대로 모른 척 지내길 바랐나?”

“그게 가능하다면요.”

“너처럼 재미있고 특별한 존재를 모른 척해라?”

“날 가지고 놀거나 해치고 싶다면 별수 없죠. 하지만 뒷감당은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부터 1시간 안에 내가 온전히 이 발로 걸어 나가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교수에게 성적을 빌미로 유린당하고 버려진 여대생이 삶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국의 모든 매체에 뿌려질 테니까. 물론 대학 이름과 교수의 신상도 함께 낱낱이.”

한 교수는 감탄의 눈빛을 만들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이 여인이 위태로운 체질을 갖고도 여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가공할 만한 정신력과 함께 머리도 제법 재치 있게 굴릴 줄 알았던 것이다.

“서로 더 이상의 오해는 하지 않기로 하는 게 어때? 유신라 양이 어제 일을 꿈으로 치부하고 잊어버린다면 난 단순히 당신한테 교수이면서, 위급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텐데. 이를테면, 보호자…랄까.”

“……”

‘보호자’라는 말에 신라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그녀 자신과 가장 인연이 먼 단어이면서, 가장 필요로 하는 단어였으니까.

그녀가 꽤 긴 시간 고민에 잠겨있는 동안 한 교수는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물론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자가 갑자기 보호자가 되어주겠다는 말을 해도 진심으로 와닿지 않겠지. 비장하게 유서를 써놓고 왔을 정도니.”

“네.”

“걱정 마. 낮에는 귀신을 미치게 만드는 냄새가 덜 풍기니까. 나 정도면 충분히 자제할 수 있어.”

“그럼 밤에 만나면 또 그렇게 잡아먹으려고 덤빌 거라는 소리인가요?”

“보는 눈이 있을 때 그런 소리를 한다면 나도 뭔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어.”

“네?”

그녀는 한 교수의 시선이 향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 옆문이 열린 틈으로 한 교수 연구실의 조교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다행히, 저 친구들은 나에 대해 다 알고 있어.”

“저분들이 그걸 다 안다… 아니, 믿는다고요?”

“무늬는 대학원생이지만, 나와 같이 퇴마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이거든.”

“…네?”

조교들은 민망하게 웃으며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신라에게 다가간 한 교수가 그녀의 턱을 검지로 살짝 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유신라 양.”

한 교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짙었다. 그 경계심조차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 지은 한 교수가, 이내 말을 이었다.

“나와 거래를 한번 해볼까?”

* * *

한신후. 늘 잘 정돈된 포마드 헤어에 값비싼 맞춤 정장을 빼입는 그림 같은 남자. 은테 안경을 벗으면 교수라기보다는 모델에 더 가까운 비주얼이다. 모든 여대생, 심지어 여교수들에게까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알려진 사생활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교수가 본업이 아니고 퇴마사가 진짜 직업인, ‘귀신이면서 인간’인 존재라고 한다.

‘뭐, 귀신이라는 존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딱 이 정도까지라면 납득할 수 있어.’

신라는 사무실 문가를 마뜩잖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곳에는 팔짱을 낀 남자가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은 도무지….’

시선은 바로 근처 맞은편으로 옮겨졌다. 평소 멀게만 느껴졌던 대학원생 조교들이 코앞에 앉아 무언가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일단은 면접이니까, 몇 가지 간단한 질문만 하도록 할까?”

우직해 보이는 짧은 머리칼의 남자가 본인도 민망한 듯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순한 외모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아니, 먼저 소개부터 하자. 어차피 우리랑 같이 일하게 될 것 같으니까.”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신라에게 악수를 건넸다.

“오며 가며 봤지? 이름은 민우선이야. 한 교수님 방에서 박사 과정 밟고 있고, 지금은 연구실의 대표인 랩장. ‘실습’ 나가면 주로 귀신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속박하는 역할을 맡아.”

아무렇지도 않게 귀신의 존재를 내뱉는 민우선 조교를 보고 신라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선은 자상한 성격과 준수한 외모 탓에 학부생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편이었다. 그저 먼 발치에서 후배의 입장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똑같이 실체가 없는 존재를 보고 있었을 줄이야.

“안녕하세요. 선배…님.”

신라는 얼떨결에 손을 맞잡았다. 다음으로 손을 내밀어 온 것은 처음 운을 뗐던 장신의 남자였다.

“반갑다. 난 차동주야. 우선이랑 같은 기수고, 파트너로 협동해서 귀신을 제령시키거나 봉인해.”

“유신라입니다.”

마지막으로 벌떡 일어선 여인은 한 눈으로 봐도 부유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녀는 사학과의 패셔니스타 조교로도 유명해서, 따로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안녕! 안 그래도 널 눈여겨보고 있었지.”

자신감 있게 걸어온 그녀는 신라와 악수하는 척하더니 그대로 일으켜서 불시에 꽉 포옹했다.

“윽!”

“박혜령이야. 두 사람보다 한 기수 높고, 주로 원거리에서 달아나는 귀신들을 꼼짝 못 하게 하는 역할을 맡아. 앞으로 널 위협하는 놈들은 내가 먼저 없애줄 테니까, 이 언니만 믿고 따라와. 알겠지?”

“네….”

“후훗. 귀엽네.”

혜령은 신라 너머로 한 교수를 쳐다봤다.

“굳이 면접 같은 거 진행할 필요 있나요? 그간의 행적을 보면 어떤 ‘존재’까지 몸에 불러들일 수 있는지 파악했잖아요.”

그동안 말없이 있던 한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 빙의력이 과연 이로운 귀신을 골라 불러들이는 것인지, 유해한 놈들을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 되는 것인지, 확인해 봐야지.”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신라를 향해 걸어왔다.

“만약 후자라면….”

왠지 뒤에 남긴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신라는 그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한 교수는 굳이 뒷말을 마무리 짓지는 않았다.

신라는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 들어오면 앞으로 뭘 해야 하는 거죠? 제 아르바이트 시간까지 빼앗기지는 않겠죠?”

“아르바이트는 그만두도록 해. 그 이상으로 월급을 줄 테니까.”

“…얼마나요?”

질문에 답한 건 여러 아르바이트 경력이 있는 차동주였다.

“뭐, 시급으로 쳐도 최저 시급의 두 배가량은-”

“하시죠.”

한순간 태도가 바뀐 신라를 보고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조금 민망한 듯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 신라였다.

“오늘부터 바로 시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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