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롭히게 해줘-34화 (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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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는 지우가 사료를 주며 키우게 된 길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고, 키우고 있던 웰시 코기 종이 있었다. 해성이 고양이들과 개를 귀여워하고 한 번씩 간식을 사 와서 건네주자 지우는 조심스럽게 웰시 코기인 쿠키의 산책을 부탁했다. 해성이 오기만 하면 식빵 같은 엉덩이를 좌우로 크게 흔드는 쿠키를 산책 시키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동갑인데다 백수라는 해성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아르바이트를 하면 안 되냐 부탁을 해왔다. 직장 스트레스로 관두고 모아놓은 돈으로 작은 카페를 차려 직원 하나도 두지 못하고 벌써 1년 가까이 한 번도 휴일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지우는 어쩐지 살짝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 해성은 적은 시간이라도 상관없다면 괜찮다며 허락했다. 그렇게 카페 ‘봄’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째였다.

해성은 굳이 아르바이트비를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지우는 그것만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해성은 사정이 좋지 않아 현금으로밖에 받지 못한다고 했고 지우는 그것까지 허락했다.

“멍!”

웰시 코기는 중형견으로 짖는 소리가 무척이나 컸다. 해성이 보이자마자 쿠키는 테이블 아래 누워있다 신나게 꼬리를 치며 반겼다.

“우리 쿠키는 아주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어.”

“밥 먹고 와.”

바로 앞치마를 하며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해성이 손을 씻으며 말했다. 해성이 일을 하기 전까지 카페를 비울 수가 없어 바 안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늘 점심을 때웠다던 지우가 제일 좋아하는 점심시간이었다.

“빨리 먹고 올게.”

“천천히 먹어.”

손기술이 꽤 좋아서인지 해성은 3일 만에 그럴듯한 커피를 만들었고 지금은 몇 가지 라떼 아트까지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커피를 만드는 일은 즐거워서 해성도 금세 배운 것일지도 몰랐다.

가게라고는 해도 그렇게 입지가 좋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손님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도 요즘은 여름이라 그런지 시원한 음료가 꽤 잘 팔리는 편이었다. 반명 100m 이내로 카페가 없는 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되었다. 지우가 자리를 비운 건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여섯팀이나 받았다.

한참 스무디를 갈고 있는데 지우가 돌아왔다. 양치도 하지 못하고 지우는 바로 해성을 도왔다. 스무디 4잔에 커피 두 잔까지 모두 나가고 나자 지우는 양치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오후 2시까지는 거의 쉴 틈이 없이 계속 손님이 들어왔다.

“오늘은 그래도 손님이 제법 있는 편이네?”

“그러게.”

원래 손님이 그렇게 한번 몰려들고 나면 어느 순간 뚝 끊기는 때가 있었다. 지우는 커피를 내려 해성에게 건네주었다.

“남이 만든 커피가 원래 제일 맛있는 법이잖아.”

지우가 버릇처럼 말했다. 그래서 해성도 지우를 위해 커피를 뽑아주었다. 날이 더운데도 뜨거운 커피만 고집하는 해성을 지우는 신기하게 생각했다.

“오늘 문 닫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어때?”

“쿠키는?”

“엄마가 6시에 와서 데려간대.”

“그래, 그럼.”

“우리만의 조촐한 첫 회식?”

기대된다는 얼굴로 지우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벌써 몇 번이나 같이 밥을 먹자는 것을 해성이 거절했었다. 하지만 자꾸 거절해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을 반짝이는 지우의 부탁을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거짓말처럼 9시까지 손님들도 바글바글하더니 딱 끊겼다. 두 사람은 이르고 마감을 하고 지우가 자주 찾는다는 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사장님이 엄청 친절하셔. 내가 혼자 가도 그렇게 잘해주신다.”

지난 1년간 혼자서만 회식을 했다며 지우는 외로움을 토해냈다. 오늘 드디어 같이할 동지가 생겨 기쁜 모양이었다.

삼겹살 집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조명이 주황빛으로 어둡고 밥집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술집인 것 같았다. 일단 삼겹살 3인분과 돼지껍데기를 시킨 뒤 소주까지 따랐다.

“카페 대박을 위하여 건배!”

지우가 시원하게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해성은 언제 어디서나 에너지가 넘치는 지우가 신기해 잔을 부딪치며 웃었다. 소주를 한 번에 삼키고 내려놓은 해성은 다시 잔을 채웠다.

“너 술 잘 마셔?”

“못하진 않아.”

“어떻게 소주를 그렇게 한 번에 삼키는데 인상 한 번 안 찌푸려?”

그렇게 말하며 지우는 반찬으로 나온 계란말이를 해성의 입으로 넣어주었다. 그동안 술을 마셔도 딱히 안주를 챙겨 먹었던 경험이 없었다. 회사 특성상 술자리도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양주를 마실 때가 많았다.

“독한 술만 몇 년 마시다 보면 소주는 그냥 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

“설마 술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어?”

어떻게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해성이 저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우는 생각보다 훨씬 쾌활하고 발랄했다. 꼭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팀원들과 함께 회식을 하면서 먹었던 소고기보다 지금 지우와 함께 허름한 곳에서 먹는 삼겹살이 더 입에 맞는 것 같았다. 추가까지 하면서 고기를 가득 먹고 살짝 취기가 도는 듯한 지우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꼭 가는 2차가 있다며 따라갔는데 그곳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칵테일 바였다.

주문한 마티니를 앞에 두고 창밖을 보았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조명은 밝고 모래사장엔 낮과 다르지 않게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 원래 하던 일이 뭐야?”

“건축회사.”

“뭔가 이미지는 전혀 공대가 아닌데.”

지우가 정말 의외라는 얼굴로 해성을 몇 번이나 위아래로 훑었다. 대체적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었다. 물론 거래처에서도 몇 번인가 여자라면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고.

“남자친구는?”

“없어.”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

“없어.”

이어서 없다는 말에 지우는 잠시 생각을 하듯 고개를 몇 번이나 갸웃거렸다. 그리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뜨고 해성을 보았다.

“진짜? 한 번도?”

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적으로 사귄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말도 안 돼. 이 얼굴에 모태솔로? 와, 뭐야. 우리나라 남자들 다 눈이 삐었어?”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해성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와 사귄다는 것 자체를 생각할 인생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사람은 재화였다. 서울을 떠나던 날 아침,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본 건 잠들어 있는 재화의 얼굴이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비친 얼굴은 평소보다도 더 짙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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