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롭히게 해줘-32화 (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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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성 수준에 맞추는 게 쉽지 않네. 워낙 잘나서.”

“하긴, 우리 해성이 봐. 예쁘지, 능력 있지, 성격 좋지. 위재화 옆에 도망 안 가고 그렇게 붙어 있는 것만 봐도 성격은 정말 증명한 셈이야. 안 그래?”

“그러게. 잘 버텨주고 있네.”

입술을 쓸던 손이 내려와 테이블 아래의 해성의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살짝 다리를 피해 보려고 했지만 커다란 손은 허벅지를 감싸듯 힘을 주어 쥐었다. 재화는 해성의 왼쪽 다리를 자신의 오른쪽 다리와 맞닿게 끌어당겼다. 자연스레 다리가 벌어지며 다리 사이에 자극이 갔다.

점점 올라오는 재화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힘으로 재화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막 다리 사이로 재화의 손이 닿을 때였다.

“와, 아버지 귀신. 여보세요? 이제 들어왔어요. 대체 어떻게 아셨대? 비밀로 하고 들어왔는데.”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재화가 손을 치웠다.

“알았어요. 지금 갈게요. 안 그래도 회사 앞입니다. 해성이랑 재화 같이 밥 먹고 있어요. 네. 진짜 딸이 뱃가죽이 등에 붙겠는데.”

전화를 끊은 시화가 작은 경단을 한 번에 입으로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성도 일어나려고 했는데 서둘러 손을 뻗었다.

“마저 먹고 와. 하도 지랄 중이시라 나 먼저 올라갈게.”

입 안에 워낙 떡을 많이 넣어 웅얼거리며 말하곤 시화는 바로 방에서 나갔다. 어쩐지 태풍이 한번 훅 몰려왔다 지나간 느낌이었다.

*

컨디션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재화는 섹스를 할 때면 콘돔을 잊지 않았고 해성은 아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뒤로 피임약을 먹지 못해 잠시 중단했다. 속초에 도착함과 동시에 생리가 터져 재화가 당연히 불만을 터트릴 줄 알았다.

“그래서 어젯밤에 그렇게 송해성이 잡아먹을 듯이 날 집어삼켰던 거네.”

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생리가 시작되기 전에 여자의 성욕이 강해진다고는 들었다. 그런데 해성은 그게 자신에게도 있을 일일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젖는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별장으로 들어와 재화는 다시 한번 해성의 이마를 확인했다. 보통 생리를 할 땐 체온이 약간 올라가긴 하지만 그걸 알아차리는 건 힘들었다. 아무래도 아직 감기 몸살 때문에 컨디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데다 생리까지 해서 더 힘든 건 아닌지 체크하는 것 같았다.

“자꾸 환자 취급 안 해도 돼. 남들 다 하는 거 하는 건데.”

“컨디션 그렇게 오래 안 좋은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서.”

재화의 손이 눈 밑의 그늘을 스쳤다. 그동안 워낙 몸을 오래 담은 곳이었고, 말 그대로 20대를 모두 쏟아붓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정리해야 할 게 많았다. 그럭저럭 몸무게도 돌아왔고, 체력도 좋아졌는데 피부의 윤기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아직은 초췌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수면시간만 좀 충분하다면 컨디션도 완벽히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신경 쓰는 편도 아니었잖아.”

“그러게. 몸정이라도 들었나.”

재화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소파에 앉았다. 별장 안의 공기는 이미 조정되어 훈훈했고 완벽한 방음이 되어 있어 바로 앞에 있는 바다의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큰 부지에 덩그러니 있는 별장은 외부의 방해를 받을 일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재화도 굳이 강릉의 호텔을 찾지 않고 별장을 머무를 장소로 정했을 것이다.

“돌아오자마자 바빠 보이던데.”

그래봤자 그제와 어제 이틀이었다. 되도록 야근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틀 내내 10시 가까이 야근을 하다 보니 그게 재화의 신경을 거스른 모양이었다.

“3일이나 회사 쉬었잖아.”

“일을 좀 줄일 필요가 있겠네. 뭘 그렇게 서 있어. 앉아.”

해성은 잠시 고민을 했다. 재화의 앞으로 앉아야 할지, 옆으로 앉아야 할지. 하지만 답은 재화가 내놓았다. 턱으로 바로 앞자리를 가리켰다.

“옆에 앉으면 생리든 뭐든 그냥 잡아먹을 것 같거든.”

해성은 대답을 하지 않고 앞으로 앉았다.

“이럴 줄 알았음 진작 송해성하고만 할 걸 그랬어. 편하고, 좋은 상대가 있었는데 괜한 짓만 했네.”

편하고 좋은 상대라. 재화는 몇 번 잤다고 애인이라도 되는 듯 구는 여자들을 못 견뎌 했다. 그때마다 여자들을 정리하는 건 늘 해성의 차지였던지라 그들을 안쓰럽게 보았다. 그 안쓰러운 여자가 자신이 될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뭘 그렇게 웃어?”

“정리하던 게 생각나서.”

“내 침실?”

굳이 답하지 않았지만 바로 알아들은 모양인지 재화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늘 재화의 침실은 엉망이었다. 짙고 거북한 향이 날 때마다 숨을 참아야 할 만큼. 게다가 재화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여자 혼자만이 아니었다. 꽤 유명하고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부터 재벌 3세들이나 정계 사람들도 있었다.

말 그대로 섹스 파티를 벌이기 위해 마련된 집인 것 같았다. 일 때문에 잠시 올라갔을 때 슈트를 완벽히 걸쳐 입은 재화가 위스키를 손에 들고 뱀처럼 뒹구는 사람들을 바보 바라보듯 한심한 눈으로 보던 것도 기억났다.

“꽤 난잡하긴 했지.”

대리석 테이블 위로 두 다리를 교차해 올리며 재화는 편하게 몸을 소파에 기댔다.

“얼마나 개 같든지. 시팔 새끼들.”

낮게 한숨을 뱉은 재화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대한 장식을 이루고 있는 술들 중 하나를 꺼내 열고는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투명한 병의 3분의 1이 고스란히 사라졌다. 인상을 찌푸린 재화는 온더락 잔을 들어 반쯤 채운 뒤 해성에게 건네주었다.

“요즘 술 너무 자주 마시는 것 같은데.”

잔을 받아들며 해성이 말하자 그대로 바라보며 다시 위스키를 꿀꺽 삼켰다.

“분기에 한 번 정도만 했잖아.”

“한두 잔쯤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지독한지 눈을 살짝 가늘게 뜬 재화는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별장 안의 온도는 꽤 덥다고 느낄 정도로 올라갔다. 창가로 걸어간 재화는 보조 창문을 열고는 걸어와 그대로 해성의 옆으로 털썩 앉았다. 해성이 살짝 옆으로 비켰다.

“안 잡아먹어.”

“뭔가 먹을 거라도 가져올게.”

“됐어.”

술병을 잔에 부딪친 뒤 다시 입으로 가져가 크게 삼키는 소리가 나며 크게 한 모금을 삼키자 이제 병 안의 술은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크게 표정 변화가 없었다면 그저 물을 마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약한 파도 소리가 열린 창틈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이제야 정말 바닷가 근처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해성은 잔을 내려두고 입고 있던 캐시미어 코트를 벗었다. 아무래도 온도를 좀 내려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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