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기어이 재화는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이마의 열을 쟀다. 평소처럼 재화의 손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남들보다 확연히 온도가 높은 사람인 게 느껴졌다.
“확실히 이제 열은 없네.”
“다 나았어.”
슬쩍 거의 안겨있는 자세에서 벗어나며 해성이 말했다. 여전히 그런 해성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재화는 표정을 풀지 못했다.
“뭘 그렇게 피해?”
“여기 회사야.”
“회사가 뭐라고.”
“회사에선 이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재화가 픽 웃었다. 그리고 책상으로 걸어가 핸드폰과 지갑을 들어 바지 뒷주머니로 넣었다. 잠시 스쳐 지나간 지갑이 눈에 박혔다. 예전 처음으로 재화에게 선물해 준 지갑과 같은 브랜드였고 디자인이 유사했다.
“그러고 보니 그 지갑은 어쨌어?”
“지갑?”
“내가 고등학교 때 사준 생일 선물.”
“그런 적이 있었나?”
재화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괜한 걸 물었다. 당연히 재화는 그런 건 기억도 못 할 것임이 분명한데.
“밥이나 먹으러 가자.”
시계를 보았다. 이제 겨우 11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물론 딱히 식사 시간에 대한 구애는 없었지만 너무 시간이 일렀다. 하지만 해성은 별말 없이 재화의 뒤를 따랐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왔나 했더니 벌써 상은 음식으로 가득 차려져 있었다. 대부분이 기력 회복을 돋는 음식들이었다.
“이렇게까지 먹을 필요는 없는데.”
“살이 너무 빠졌어.”
5일 가까이 앓아누우면서 확실히 딱 맞던 바지의 허리가 살짝 헐렁해질 정도로 살이 빠지긴 했다. 하지만 이것도 곧 회복될 터였다.
“안 그래도 너무 말랐는데 안는 맛이 더 떨어지면 곤란하잖아?”
결국 본심은 그런 모양이었다. 해성은 입 안에 음식을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어쨌거나 기력 회복을 돕는 것이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토요일 바로 출장 준비해.”
“어디로?”
“속초. 괜찮은 땅을 봐뒀거든.”
“어떤 용도?”
“호텔.”
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광 받는 관광지고 재화가 추구하는 고급화 전력은 터만 좋다면 잘 먹힐 것이다. 어차피 그런 결정을 할 때면 자신은 금화 토건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겠지만.
“토요일에 출발하는 이유는 뭐야?”
“뭐긴, 침대 뒹구는 것 외에 더 있어?”
어차피 이런 관계도 한 달 후면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해성의 입장에서 더는 접촉이 없는 게 더 나은 게 아닐까.
“남 의원님 따님과 데이트 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집안끼리 결정하는 건데, 연애질은 무슨.”
아무리 집안으로 엮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요즘은 대부분이 연애를 한다. 민혁처럼. 하지만 재화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송해성.”
입에 든 음식을 씹으며 해성이 고개를 들었다.
“결혼은 그 여자와 해도 섹스는 너랑 해.”
“그래.”
재화는 해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건 꿈에도 모를 테니 저렇게 착각하고 있는 게 나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자신의 몸이다. 재화의 눈길만 받아도, 손길만 닿아도, 목소리만 들려도 몸이 자꾸 자극을 받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몸정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아무래도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왜 일어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재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이 한정식당은 프라이빗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벗어나면 바로 앞에 그 각 방마다 따로 쓸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 안은 호텔의 고급 욕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몇 번 섹스를 했다고 해서 괜한 마음이 생겨나는 건 곤란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의 입장에서 재화에게 마음이 생기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변기에 휴지를 버리며 옷을 다시 정리했다. 그때 세면대 위에 올려둔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에 무시할까 싶다가 이 핸드폰이 회사 용도로 쓰는 것임을 다시 상기했다.
“네. 금화 토건 송해성입니다.”
[해성이니?]
“네. 누구시죠?”
[섭섭하다? 언니 목소리 벌써 잊었니?]
“시화 언니?”
[그래. 어디야? 언니 지금 한국 들어와서 강남 거의 도착했거든.]
“회사 앞 식당에 있어요. 여기 언니도 알 텐데.”
[메시지 보내. 거기로 바로 갈게.]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해성은 서둘러 메시지를 보냈다. 손을 씻고 막 나가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문을 열자마자 재화가 안으로 들어왔다. 순식간에 뒤로 물러선 해성의 눈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커졌다.
“미쳤어?”
“꼴려.”
“지금 시화 언니 오고 있어.”
그 말에 재화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살짝 짜증이 섞인 얼굴로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그나마 시화가 오고 있어서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럼 조금만 만질게. 벌써 일주일 가까이 못 안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