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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히게 해줘-26화 (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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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현 여당 실세 남상천 의원 여식이야.”

생각보다 거물급에 재화가 돌아서려던 걸음을 멈췄다. 이대로 자리를 끝낸다면 여러 가지로 곤란해질 거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대단하신 분이 깡패 새끼와 사돈을 맺으려고 하시는 걸 보니 끈이 다 된 모양이군.”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재화가 혀를 찼다. 장준은 흐뭇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방 잡고 기다려.”

결국 쉽게 넘어가기는 글렀다. 재화가 재킷 단추를 채우며 복도를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긴 다리를 이용해 순식간에 장준으로 앞으로 걸어간 재화가 몇 마디를 나누더니 열려진 문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아무래도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사라져야 할 것 같았다. 해성도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장준을 향해 걸었다. 아직 다리 사이에 위화감이 느껴져 그것을 참기 위해 입 안쪽 살을 깨물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그래. 송 과장이 수고했어. 잠깐 들어가서 인사하고 돌아가지.”

“아닙니다. 나중에 또 뵐 일이 있겠죠.”

“그런가? 그래, 오늘 애 많이 썼어.”

장준이 완섭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들었다. 미리 준비했던 건지 완섭은 품에서 봉투를 꺼내 해성에게로 내밀었다.

“괜찮은 차로 한 대 바꿔.”

“감사합니다.”

어차피 장준은 거절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분명 비서를 향해 차를 바꿨는지도 물어볼 것이다. 해성은 딜러에게 연락해 가격에 맞는 적당한 차종으로 준비하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만족한 듯 웃으며 장준이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문이 턱, 소리를 내며 닫혔다. 분명 복도도 밝은 조명이었지만 문이 닫히자 확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요즘 재미가 좋은가 봐?”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년이 대가리가 컸다고 이제 막…….”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던 해성의 목덜미를 잡은 완섭이 순간 말을 멈췄다. 목에 남겨진 흔적을 본 것이 틀림없었다. 거칠게 완섭이 손을 치워냈지만 이미 완섭이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요새 재화 녀석이 멋대로 놀리는 걸 관뒀다더니, 송 과장에게 빠져서 그런 거였어?”

완섭의 능글능글한 눈동자가 해성을 위아래로 빠르게 몇 번이나 훑어 내렸다. 심지어 손목 안까지 키스 마크가 있어 말 그대로 해성은 얼굴을 빼놓고 모든 몸을 가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참, 같이 쓰자니까. 네 맛이 꽤 괜찮은가 봐? 웬만한 여자는 일주일 이상 못 가는 새끼 아니야.”

가까이 들러붙은 완섭이 해성의 어깨를 두르며 말했다. 비슷한 키라 오히려 어깨를 두르는 게 버거워 보였는데 완섭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러지 마십시오.”

“뭘 그렇게 비싸게 굴어? 아무한테나 다리 막 벌리는 주제에. 나 하나쯤은 별거 아니잖아? 금방 끝내줄게. 5분이면 된다니까?”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렇게 태화에게 한 번 혼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완섭은 아직 해성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옛날부터 널 보면서 침을 질질 흘렸거든. 개새끼처럼.”

“놓으십시오.”

그날 이후 태화는 해성에게 스스로 몸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며 호신술을 배우게 했다. 그때 꽤 운동에도 재미를 붙여 새벽엔 직접 관장을 집으로 불러 배웠고, 대련도 꽤 수준급이었다. 해성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완섭을 넘길 수 있었지만 일단은 보는 눈들이 있으니 참기로 했다.

“뭘 그렇게 비싸게 굴어, 이년아. 팔려 온 주제에. 넌 그냥 공공재야.”

공공재라는 말에 해성이 픽 웃었다. 그때 어깨를 타고 내려온 손이 해성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하는 수 없이 손목을 잡아 비틀려던 순간이었다.

“삼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해성이 잠시 굳었다. 재화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크게 높낮이가 있지 않았다.

탁.

문이 닫히고 재화가 천천히 걸어왔다. 얼굴엔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직 완섭의 손은 해성의 가슴을 감싸고 있었고 재화의 시선이 그곳으로 떨어졌다.

“한번 먹어보려고. 꽤 먹음직스러워 보이잖냐.”

“예전부터 아버지가 가르치신 것 같은데.”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재화의 표정을 보며 완섭은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여전히 욕망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지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재화는 팔을 뻗어 마치 더러운 거라도 짚는 듯 손가락으로 완섭의 옷을 잡고 떨어지게 만들었다. 직접 재화가 움직일 줄은 몰랐다는 듯 완섭이 당황한 얼굴로 뒤로 살짝 물러섰다.

“아, 찝찝한 거면 네가 질려서 버린 뒤에 내가 먹고.”

살짝 완섭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얼굴은 살짝 굳어있었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재화의 얼굴에선 이미 웃음이 사라졌다.

“남의 거 탐하지 말라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나 보네.”

“재, 재화야.”

“어떻게 해야 우리 이 부장님이 정신을 차리실까, 어?”

재화가 검지로 완섭의 어깨를 뒤로 밀쳤다. 힘이 없이 완섭이 뒤로 물러났다.

“나이 60이나 처먹고 지금 사리 분별이 안 돼? 이거 멍청한 거야, 눈치가 없는 거야.”

낮은 목소리는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데시벨이 무척이나 낮아 귀에서 울리며 퍼질 정도였다. 완섭이 얼굴이 퍼렇게 질려가는 게 보였다. 실질적으로 앞으로 금화 토건을 이을 사람은 재화고, 재화의 힘이 태화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켜볼 테니까 앞으로 몸 잘 사리고 다녀요, 예? 삼촌.”

“그, 그래.”

잔뜩 주눅이 든 채로 고개를 주억이는 완섭을 보며 해성이 낮게 숨을 뱉었다. 재화의 날카로운 시선이 돌아왔다.

“송해성.”

말문이 막혀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재화만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재화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자 돌아선 재화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저 말을 하기 위해 다시 잠깐 나온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완섭을 힘으로 누르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다. 해성은 고개를 틀어 아직 기에 질려있는 완섭을 버러지 보듯 보며 그대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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