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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히게 해줘-8화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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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0대 초반인 이 비서의 시선까지 계속 같이 들러붙었다. 장준과 달리 이 비서의 눈빛을 끈적하고 달갑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눈으로 해성의 옷 뒤로 알몸을 훑는 게 틀림없었다. 별채에서 재화와 섹스를 해야 했을 여자들 몇을 이 비서가 취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동안 재화 녀석하고 계속 붙어 있었지?”

“그렇습니다.”

장준이 힘을 쓰는 건 쉬웠다. 해성이 이 집에 들어오던 순간부터 끝까지 해성은 재화와 같은 반이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여자는?”

“없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사내놈들끼리 하는 그런 장난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확실해?”

“그렇습니다. 우연히 고백을 받는 건 보았지만 도련님은 바로 거절했습니다.”

“사내놈이 괜히 예쁘게 생겨서는, 쯧.”

장준이 혀를 크게 차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 비서가 바로 라이터를 꺼내려 했지만 장준은 바로 손으로 막으며 직접 불을 붙였다. 장준의 입에서 흰 연기가 마치 한숨처럼 길고 가늘게 뿜어져 나왔다.

장준의 말대로 재화는 예쁘게 생겼다는 표현이 맞았다.

쌍꺼풀이 짙고 눈이 크며, 콧대가 무척이나 높다. 두툼한 입술은 무척이나 붉었고 말 그대로 매끈한 작은 얼굴에 틈이 없게 이목구비가 꽉 차 있었다. 키가 굉장히 크고 팔다리가 긴 재화는 마른 편에 속했지만 어깨가 무척이나 넓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면 아마 여자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완섭.”

“네, 회장님.”

“그동안 들여보낸 계집애들이 형편없던 거 아니야?”

“사진 보셔서 아시겠지만 다들 연예인 지망생 중에서도 특A급들입니다.”

“그런 년들이 들어갔는데 사내새끼 하나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

“죄송합니다.”

그건 전혀 완섭이 죄송할 일이 아니었다. 그저 재화의 문제였을 뿐이었다. 딱히 재화는 여자나 섹스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재화의 방은 해성이 청소를 했는데 흔히 말하는 자위 기구나 휴지 뭉치 같은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해성이 너.”

“네, 회장님.”

“남자 경험은?”

순간 해성은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재화의 일거수일투족을 읊은 것을 들으면 알겠지만 그녀에겐 자유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준은 확실한 대답을 원하는 듯했다.

“없습니다.”

그때 뱀처럼 눈을 흘기는 완섭과 눈이 마주쳤다.

“제가 교육을 좀…….”

퍽.

순간이었다. 장준의 재떨이가 날아가 완섭의 머리에 맞았다. 그리고 순간 붉은 피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감히 걸레년을 내 아들에게 먹이란 뜻이야?”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비서, 어떻게 생각해?”

장준이 턱으로 해성을 가리키며 물었다. 완섭이 이마에 흐르는 피를 마치 땀처럼 아무렇지 않게 닦아내고 해성을 보았다.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외모입니다.”

“하긴, 부모가 반반한 얼굴로 유명했으니 당연하겠지. 내가 해성이 널 연예계 쪽으로 보내지 않은 건 말이다 머리가 좋아서야.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그쪽으로 보내서 비싼 값에 네 부모 빚을 다 갚게 만들었겠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누군가의 앞에 나설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또 그럴만한 끼도 없었다. 이미지야 소속사에서 만들어주는 거라고는 하지만 거짓으로 만들어진 것이 지속될 리는 없었다.

“별채엔 오늘부터 해성이 네가 들어가.”

이미 이 방에 들어와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각오했던 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직접적으로 들으니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비서 좀 나가 있어.”

“……네.”

나가고 싶지 않은지 완섭이 살짝 말을 끌며 해성을 한 번 흘겨보고 서재에서 나갔다.

“거기 앉아.”

“네.”

해성은 소파에 가서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준도 그녀의 맞은편에 편안히 앉으며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따로 좋아하는 놈이라도 있는 거냐? 그래서 처음은 남자친구하고 하고 싶은 거냐고.”

“그런 사람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해성은 늘 그렇듯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젠 표정을 지우는 것쯤이야 익숙했다.

“재화 녀석이 그래도 너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 말에 해성이 고개를 들어 장준을 보았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재화는 그녀를 심부름꾼이지만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했었다. 장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를 깊게 마시며 픽 웃었다.

“사내놈들 하는 표현이 그렇지, 뭐. 내가 아무리 그래도 학교까지 압력을 넣어서 계속 같은 반으로 넣으라 참견할 사람도 아니고.”

해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이제껏 계속 같은 반이었다는 건 재화의 뜻이라는 말이었다. 어째서? 재화는 학교에서도 딱히 그녀에게 관심을 두거나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다. 한 번씩 심화반에서 공부를 하며 문제를 물어본 적은 있어도.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학교 내에서 해성이 재화의 개인 비서라는 소문은 늘 돌았었다.

“까다로운 녀석이 그래도 너 하는 건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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