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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을 켜지 마세요 (90)화 (90/122)

제90화. 15장. 신전에서 천족을 찾아다녔더니 (5)

불안하게 왜 이래?

잊고 있던 불안이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의식하지 않기 위해 더욱 질문을 해야 했다.

“왜 그래? 갑자기 정색을 하고.”

레이프는 곧바로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주먹만 한 크기의 하얀 빛이 떠오르더니 이내 저쪽에 있는 단테를 비췄다.

[무슨 일이십니까. 레이프 님?]

“신성력은 어떻게 감지하는 거지?”

레이프의 질문에 그제야 신성력을 감지하는 방법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었군요. 신성력이 있는 곳에서는 정전기를 느낍니다. 심한 경우, 타닥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소리만 요란할 뿐, 몸에 위험이나 이상은 없으니 안심하….]

타닥!

느닷없이 들려온 소음에 대화가 끊겼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정확히는 기도실 안으로 쭉 뻗은 팔과 손이었는데 그것들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슬그머니 손을 내려놓았다.

단테의 말대로 소리만 요란할 뿐, 통증이라곤 거슬리는 정도의 찌릿거림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란 데다 주목받은 타이밍이 타이밍인지라 밀려오는 민망함은 어쩔 수 없었다.

정신을 추스르던 중, 단테가 진지한 표정으로 눈치가 가출했음을 인증했다.

[세이딘, 다시 한번 손을 뻗어 봐.]

장난해? 난 아직 민망함이 안 가셨단 말이야!

말없이 눈을 부릅뜨는 나 대신 성큼 걸어온 레이프가 기도실 안으로 손을 뻗었다.

타닥!

또다시 울려 퍼진 소리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도 레이프는 그리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야 좀 수확이 있네.”

“레이프, 손은?”

직접 겪어 봤으니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리가 엄청난 나머지 만에 하나라도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되었다.

레이프는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보란 듯이 내 앞에 손바닥을 보여 주었다.

“보다시피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저 소리를 듣고도 그런 말이 나와?”

[미안하다, 세이딘. 확실하고 정확하게 감지를 하려다 보니.]

담담한 단테의 사과에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상당히 요란하긴 하지만 그가 취한 방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좋은 방향으로 노력한 사람을 더는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서둘러 대꾸했다.

“그…, 괜찮아요. 어찌 됐건 도움은 되니까. 적응해 보도록 할게요.”

[이해해 줘서 고맙다. 그럼 우리도 그쪽으로 가도록 하지.]

대답과 함께 통신이 끊긴 것을 확인한 레이프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살피기 위해 기도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타닥!

타닥!

타다다다닥!!

탁, 타다닥! 타다다닥!

신성력이 갈수록 짙게 퍼져 있는 것인지 레이프가 한 발자국씩 움직일 때마다 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더 소란스러워졌다.

“…요란하군.”

앞장선 레이프를 따르던 이티엘이 보다못해 한마디를 던졌다.

이번만큼은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였다.

들키지 않고 에이브를 찾기 위해 모처럼 사제복까지 입었는데 이대로라면 언제 발각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이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소리를 따라 기도실 내부를 빙글빙글 돌다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찾았다.”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제법 음흉했다.

호박빛 눈동자가 머무른 곳은 성서가 놓인 작은 협탁이었다.

“뭘 찾았다는 거야?”

알 수가 없어 질문을 던지자, 레이프는 협탁과 마주한 채로 바닥에 앉으며 대답했다.

“이질적인 신성력. 이 기도실 안에서 느껴지는 신성 중에서도 탁하고 뒤틀린 기운을 띠고 있거든. 누구누구처럼 말이야.”

누구누구가 에이브를 가리킨다는 것쯤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레이프는 성서에 손을 얹었다.

타다다다다다다닥!!!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리가 귓가를 진동했다.

먹먹하다 못해 머리가 어질거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에 정신을 못 차리는 반면, 레이프는 조금도 소리가 방해되지 않는 것처럼 몇 번이고 성서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레이프, 더 알아낼 게 없으면 이제 그쯤에서 끝내는 게 어때? 귀가 얼얼해! 그리고 이러다가 들키면 어떡하려고?”

“그웨니르 영애의 말이 맞아. 소리가 너무 커서 사람들이 몰려올 수도 있다.”

“괜찮아, 확인한 바로는 적어도 이 주변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

“그걸 어떻게 알아?”

“아까 말했잖아? 그린트 일행을 묻어 뒀다고. 그때 겸사겸사해서 그들 중 몇 명을 이 근처에 배치하고 사람들을 탐지할 수 있는 마법을 걸어 뒀어.”

레이프의 치밀함에 절로 혀가 돌아갔다. 대체 언제 거기까지 생각하고 준비를 해 둔 건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티엘도 놀라는 기색을 보였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지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듯했다.

“일반적인 방법은 안 통하는 모양이네.”

한참 동안 성서를 만지작거리던 레이프는 결국 물러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성서가 신성력 덩어리인 나머지 마나가 조금도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눈앞에 고지가 있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조금이라도 의견을 보태기 위해 함께 고민했다.

‘분명 지금 같은 상황에 쓸 만한 게 있을 텐데….’

끙끙대 봐야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었기에 시스템창을 열어 보았다.

아이템 창고에 있는 소지품의 효과를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마침내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성스러운 방울과 마찬가지로 랜덤박스에서 나온 아이템 중 하나였다.

[찬란한 검]

신성력을 품고 있는 검. 마나를 불어넣으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위력은 고위 사제급.

찬란한 검은 상당히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었지만, 마나를 사용할 줄 모르는 내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때문에 랜덤박스에서 얻은 날부터 줄곧 아이템 창고에 처박아 뒀지만 에이브와 대치했을 때 누군가는 유용하게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챙겨 두었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후, 팔지 않길 잘했다.’

H가 부족해서 팔까 고민했던 멀지 않은 과거를 떠올린 나는 충동을 잘 참아 낸 스스로를 칭찬했다.

“저기, 레이프.”

찬란한 검을 사용해 보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운을 떼 봤지만, 어지간히 깊은 생각에 잠겼는지 레이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불렀지만 레이프는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고, 결국 다음 타자에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폐하.”

“왜 그러지, 그웨니르 영애?”

레이프만큼 심취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상념에서 벗어난 이티엘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걸 사용하세요.”

나는 등 뒤에 숨겨 두었던 찬란한 검을 이티엘에게 보여 주었다.

순간적으로 커진 붉은 눈동자는 곧 반달처럼 휘어졌다.

“이것저것 준비를 했다고 하더니 정말이군. 그대 마음은 고맙지만 검은 있어.”

“알아요, 하지만 이건 평범한 검이 아니라서요.”

“평범한 검이 아니다?”

“네,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신성력을?”

의아했던 이티엘의 얼굴은 단숨에 의심으로 물들어 갔다.

느닷없이 검을 들이밀며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수상하게 보는 건 매우 당연했다.

그러나 이티엘이 누구인가.

데스티니 다음으로 높은 호감도를 자랑하는 공략캐였다.

“……영애의 말을 믿어 보도록 하지.”

잠시 고민하던 이티엘은 내 손에 들린 찬란한 검을 가져갔다. 그의 행동에서는 일말의 의심과 흔들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순순한 반응에 당황하고 있는데 찬란한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이티엘이 물었다.

“이대로 휘두르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나?”

“아뇨, 마나를 불어넣어야 해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찬란한 검이 은은한 빛으로 물들었다.

내 손에서는 고철이더니 이티엘의 손에서는 금이구나, 흑흑.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말을 이었다.

“그 상태로 한번 성서를 찔러 보시겠어요?”

내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이티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내디뎠다.

신성력을 감지하는 요란한 소리에 성서를 놓고 생각에 잠겼던 레이프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티엘이 말했다.

“성서를 놓고 잠시 물러나 주겠나, 데스티니?”

“그건…!”

놀란 레이프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군말 없이 이티엘의 요구를 따랐다.

이티엘은 심호흡과 함께 곧장 성서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보다도 신성력 감지 소리가 훨씬 우렁찼다.

마침내 찬란한 검이 성서에 박혔다.

그러자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흰 빛이 작은 기도실을 가득 채웠다.

“세이딘! 레이프 님!”

“그웨니르 영애!”

기도실이 너무 좁아 미처 들어오지 못했던 단테와 린든의 외침이 점점 멀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혼란스러움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것과 비례하게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찬란했던 빛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여긴…?”

마침내 시야를 확보하게 된 나는 몇 번이고 눈을 깜박였다.

좁은 기도실이었던 주위가 한없이 펼쳐진 하늘과 몽글몽글한 구름으로 가득했다.

“하늘이야.”

짧은 대답이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레이프가 서 있었다.

그는 작은 불덩이를 만들어 내더니 무작정 던졌다. 화르륵 타올랐던 불은 얼마 날아가지도 않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레이프의 호박빛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게 아니면 상당히 껄끄러운 곳이거나.”

“껄끄러운 곳?”

대답만큼은 꼬박꼬박 해 주던 레이프였으나 이번만큼은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던 것도 잠시, 주변을 매섭게 쏘아보는 그를 보고 있으니 오히려 긴장감이 밀려왔다.

레이프를 따라 주위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그웨니르 영애!”

다급한 외침과 함께 전신이 강한 힘에 이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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