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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을 켜지 마세요 (80)화 (80/122)

제80화. 13장. 때늦은 중2병은 위험해! (4)

내 물음에 다시 한번 두 사람의 놀란 시선이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나도 조금은 머쓱해졌다.

그래, 나도 안다. 일반적인 영애가 할 만한 생각이 아니라는 거.

그렇지만 그것도 다 체면을 차릴 만한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거지, 나처럼 간절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에게는 있으니만도 못한 것이었다.

나는 조금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시치미를 떼며 대꾸했다.

“그럼 뭐, 지금 상황에서 그보다 수월하게 신전 내로 들어갈 만한 방법이 달리 있어?”

“그런 건 아니지. 하지만 그거론 기도실까지 도달할 수 없어. 내부가 신성력으로 가득 차 있거든.”

“뭐? 그걸 왜 이제 말해?!”

“그래서 말했잖아. 들어갈 수 없다고.”

“아….”

그게 그런 말이었어?

발끈하던 나는 곧 수그러들었다.

하긴, 어떤 제약이 없는 이상, 기도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되긴 하지.

그렇게 되면 또다시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레이프나 단테도 곤란해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신성력에 관련해서는 껄끄러운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마탑과 신전은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신을 두고 생각하는 신전과 달리, 마탑은 타고난 능력과 힘을 가지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하는 것에 가치를 두다 보니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나.

거기다 신성력과 마나는 결이 다르면서도 회복마법을 제외하면 거의 상반된 능력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전과 마탑이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나보고 도우란 소리네?”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 둘이나 마법사다. 그것은 결국 마나의 ‘마’도 모르는 내가 신전에 들어가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의도를 빠르게 파악하자 레이프는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안, 세이딘.”

미안하긴 개뿔, 이미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주제에.

그렇다 해서 마냥 싫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은 에이브의 행적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레이프의 사과를 한 귀로 흘리고 조금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훨씬 수월하게 신전에 잠입할 수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황실과 신전의 사이는 어때?”

느닷없는 질문에 두 대마법사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냐는 듯한 시선에 나 또한 대답 대신 시선으로 답했다.

레이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봉인되기 전에는 사이가 나빴었어. 황실이 마탑을 더 가까이했었거든.”

“지금과는 다르군요. 현 황제는 마탑보다 신전과 더 친교를 쌓고 있습니다. 신년제나 건국제 같은 행사 주최를 신전에 맡길 정도로요.”

단테의 대답에 나는 입가에 짙은 미소를 떠올렸다.

원하는 대답이 나와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럼 됐네요.”

“뭐가 말이지?”

의아해하는 단테와 달리, 내가 하려는 일을 어느 정도 짐작한 레이프는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설마 세이딘, 황제에게도 부탁하려는 건…….”

“응, 맞아.”

담백한 내 대답에 레이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굉장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네.”

“왜? 애초에 나 혼자만의 힘으론 거기까지 도달할 수 없어. 그렇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건데 큰 소란 없이 조용히 신전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이 이티엘 말고 더 있어?”

“그러다 황제가 네게 그걸 빌미로 조건이라도 걸면 어떡하려고?”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않은 채 레이프를 바라보았다.

언제는 이티엘과 잘되는 것도 고려해 보라더니 지금은 노골적으로 그와 얽히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내 시선을 느낀 레이프는 당황할 법한데도 뻔뻔하리만치 태연한 표정이었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황제와 엮이는 거 싫어했잖아.”

“응, 싫어.”

물론 이티엘이 이전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엮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아티야가 제자리를 찾지 않는 이상, 나는 누구든 공략해서 엔딩을 봐야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엔딩을 볼 때까지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엮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설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나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아도 이미 엮일 대로 엮인 상황이거든.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엮인다 해서 손해 될 건 없지 않을까 싶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의아한 빛을 띤 호박빛 눈동자를 보며 나는 아직 말하지 않은 사실을 떠올렸다.

“에이브가 이티엘과 린든에게 접근했어.”

“뭐…?”

경악으로 물들어 가는 레이프의 눈동자를 보며 나는 속으로 깊이 공감했다.

그래, 놀랍지? 나도 엄청 놀랐지 뭐야?

레이프는 깊이 미간을 찌푸렸다. 말은 하지 않아도 속으로 온갖 욕설을 쏟아 내고 있다는 것만큼은 표정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한참 생각을 하던 레이프가 겨우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머리 좀 열어 보고 싶네.”

음, 아무래도 저게 제일 순화된 심정인 모양이구나.

저런 생각이 드는 것도 이해한다.

나 또한 처음 들었을 때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으니까.

머릿속으로 한참 심한 욕을 쏟아 내도 어찌나 풀리지 않던지, 이럴 줄 알았으면 의식 속에서 신나게 두들겨 팼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한편 레이프는 생각을 정리했는지 심호흡을 내쉬었다.

“알았어, 세이딘. 일단은 네 말대로 할게.”

레이프의 대답에 나는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단은’이라는 말이 거슬렸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내가 이티엘을 고집한 이유는 황제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의 체질 때문이었다.

그는 마나를 다룰 줄 아는데도 불구하고 마법 저항이 무척이나 낮았다.

그 대신 신성과 관련된 것들에 내성을 갖고 있어서 주교의 축복조차도 좀처럼 몸에 깃들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이티엘의 배다른 형제들은 그가 어릴 적부터 살수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을 끊임없이 막아낸 결과로 이티엘은 원래부터도 천부적이었던 검 실력이 더욱 일취월장해 15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소드마스터가 되었다고 한다.

뭐, 어찌 됐건 요는 이티엘에게는 신성력이 통하지 않으니 그가 함께 간다면 기도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신성력을 막아내는 마법 도구를 만들어야겠군.”

줄곧 듣고 있던 단테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런 것도 가능해요?”

“신성력이 있는 장소에 가져다 둘 사람이 있으면. 하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고위 사제 이상 들어가는 기도실이라면 상당한 신성이 깃든 곳일 테니까.”

“최대한 짧은 시간에 에이브를 유인해 내야겠네요.”

대답과 함께 나는 시스템창을 켰다.

혹시라도 쓸 만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빠르게 훑은 나는 옅은 미소를 흘렸다.

사람이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제법 적절한 것들이 몇 가지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은 랜덤박스로부터 얻은 아이템이었다.

“세이딘, 무슨 생각을 하는데 허공을 보면서 웃어? 뭐라도 있어?”

레이프의 물음에 나는 서둘러 현실로 돌아왔다.

너무 아이템을 살피는 데 심취한 나머지 주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깜박했다.

“좋은 방법이 떠올라서 그랬어. 성공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위험한 일을 벌이려는 건 아니지?”

레이프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넌 줄 아냐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  *  *

에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다음 날이 되자마자 우리는 이티엘과 린든을 불렀다.

그들은 내가 하루 만에 불렀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레이프와 단테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안에 어린 감정을 읽어 낸 나는 먼저 선수를 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요. 레이프나 단테에게 먼저 에이브에 대해 설명한 게 아니니까요.”

“그럼 두 분은 어떻게 그에 대해 아셨습니까?”

린든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단테였다.

“나는 레이프 님께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레이프 님께서는 데스티니에 봉인된 대마법사시다. 그러니 천족 하나 안다고 해서 놀라울 일이 아니지.”

다소 불친절한 설명임에도 그 누구도 불만을 표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티엘과 린든은 단테의 설명을 곱씹으며 천천히 납득했다.

그들이 들을 준비가 된 것을 느낀 레이프는 자진해 에이브가 던지고 간 의미심장한 내용들을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이 세계가 반복하고 있었다니…, 전혀 그런 느낌은 없는데.”

린든과 이티엘의 반응이 익숙한지 레이프는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곳이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그리 놀랄 일은 아냐. 알아채지 못한 건 단테도 마찬가지니까.”

그 말에 레이프에게 모여 있던 시선들이 자연스레 단테에게로 몰려갔다.

“그래. 내가 눈치챈 건 데스티니를 연주하는 세이딘의 연주가 아주 형편없다는 것 정도일 뿐, 이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

“쓸데없는 말 하지 말아요, 단테.”

나는 곧바로 뾰족하게 대꾸했다.

단테는 잘 나가다가도 꼭 저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늘어놓곤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단테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사실을 말한 것이다만.”

“말했을 텐데요? 사실이라고 해서 다 말해도 좋은 건 아니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부끄럽잖아!

필사적으로 어필을 하는 가운데, 옆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따가웠다.

보지 않아도 이티엘과 린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단하지도 않은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집착 모드라는 것을 갖게 된 것을 떠올린 나는 단테에게 대꾸하기를 포기했다.

사정사정해 가며 집착하는 놈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는 부끄러운 것이 나았다.

연주를 못하는 건 사실이기도 하고.

나는 목을 큼큼 가다듬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하여튼 지금 상황이 이래요. 그래서 그런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무엇을 원하지?”

“말만 하세요, 그웨니르 영애. 저는 당신의 후원자니까요.”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이티엘과 린든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노골적으로 날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는 표정에 나는 부담스러운 나머지 눈을 슬그머니 돌렸다.

하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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