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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을 켜지 마세요 (77)화 (77/122)

제77화. 13장. 때늦은 중2병은 위험해! (1)

나는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단테를 향해 눈만 끔벅거렸다.

방금 한 말 취소. 누가 단테가 빈정거리지 못한답니까?

아니, 그래. 빈정거린 건 아니다. 놀린 거지.

나는 한마디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런 것보다도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 부모님에 관한 것이었다.

“일단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저 꽃에 대한 것들은 먼저 부모님께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단테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화제를 돌리는 나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강요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조금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에 대해서는 조금 더 두고 보는 것이 어떻겠나?”

“부모님께 물어보는 것 말인가요?”

“그래, 우선 조사를 해 본 뒤에 물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어쩐 일인지 단테는 평범하게 제대로 된 의견을 내놓았다.

나도 그에 딱히 이견은 없던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부모님이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경우라면, 섣불리 물어봤다가 의심을 사도 곤란했으니 말이다.

생각만으로도 몰려오는 피로감에 나도 모르게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부모님마저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나?”

“며칠 전까지 일어나지 못했던 거 잊었어요?”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그 외에도 더 있는 것 같은 뉘앙스여서 말이야.”

단테의 대답에 나는 당황했다.

나를 신경 쓴다는 것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단테는 놀라우리만치 예리했다.

‘평소에는 안 이러면서….’

그러다 보니 나는 괜히 투덜거리기 바빴다.

공략캐들이 낯선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뭐라고 설명하기도 참 어려웠다.

이 세계에 대한 것이나 신, 그리고 아티야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떻게 말해도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저것들에 대한 조사는 내가 하도록 하지.”

다행이라 해야 할지 단테는 나를 바라볼 뿐, 더 묻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라 그런지 그 행동이 나를 배려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어 더욱이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었다.

“조사는 얼마나 걸릴까요?”

나는 애써 괜찮은 척 표정을 추스르며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단테는 정원을 향해 가볍게 팔을 휘저었다. 그의 손길을 따라 퍼져 나간 은빛은 정원을 가득 메웠다.

반짝이는 나무와 꽃들을 꼼꼼하게 살핀 단테는 정원에 어린 빛들을 거두며 대답했다.

“정원을 오간 사람들이 제법 있군.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

“고마워요. 그러면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 줘요.”

대화는 단테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산책을 할 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방에 들어가 봐야 생각만 깊어질 뿐이었기에 그 후에도 나는 산책을 강행했다.

그 대신 장소는 정원이 아닌, 저택 주위를 도는 것으로 바꾸었다.

‘부디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저택을 도는 내내 나는 속으로 바람을 중얼거렸다.

무척이나 긴 일주일의 시작이었다.

*  *  *

정원을 산책한 날로부터 이틀이 흘렀다.

아티야에게 다녀온다던 레이프는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은 데다가 정원과 관련된 결과 또한 감감무소식이었다.

가뜩이나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스트레스로 쓰러지면 안 되는 일인지라 의식을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노력 중이었다.

오늘은 오전에 저택 안을 돌아다니다가 오후가 되고 나서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독서라 그런지 몰입하며 잡념을 떨치고 있을 때였다.

“아가씨, 여명의 지배자께서 오셨는데 어떡할까요?”

노크와 함께 문 너머로 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의 공략캐들은 어떻게 된 게 하루가 멀다 하고 쫓아오냐.

가뜩이나 클라이맥스를 읽고 있던 터라 지금 들어온 방해가 무척이나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쉰 뒤, 건성으로 답했다.

“자고 있으니 오늘은 돌아가시라고 전해 드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데, 그웨니르 영애.”

아, 거기 계셨구나.

나는 당황하긴 했어도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새삼 이런 일마저도 적응했다는 사실이 슬퍼질 따름이었지.

“이제 막 일어나서 회복 중인 건 알고 있네. 하지만 긴급한 일이야.”

차분한 이티엘의 설명에 나는 슬그머니 비웃음을 던졌다.

그렇게 말하고 어떻게든 얼굴을 보고 싶었다는 식의 말을 하려는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문 너머에서 짙은 침묵을 깨고 또다시 말을 이었다.

“에이브라는 자를 알고 있나?”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이름이 왜 거기서 나와?

덕분에 머릿속을 누비던 백마 탄 기사인 책 속의 주인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자에 대해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전신을 타고 올라오는 긴장감이 더 이상 독서에 몰입을 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

그와 함께 저만치서 밀려오는 불안감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이티엘은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옅은 미소를 피워냈지만, 내 침대맡에 앉아 마법 관련 서적을 읽던 단테를 보고 심히 미간을 찌푸렸다.

“은의 현자도 있었군.”

결국 이티엘의 입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기분이 나빠도 어쩌겠니, 날 보호하신다는데.

단테는 읽던 책에서 시선을 떨어뜨리곤 이티엘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여명의 군주. 나는 그저 간호를 할 뿐이니 신경 쓰지 마.”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대답이었지만 이티엘과 단테가 누구인가, 무려 공략캐릭터들이었다.

거기다 호감도가 너도나도 질주를 하고 있었으니 서로를 신경을 쓰면 썼지 결코 무시할 위인들이 아니었다.

서로를 응시한 채로 날 선 분위기를 자아내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땅이 꺼지라 한숨을 뱉어 냈다.

“폐하, 이러려고 오신 거면 돌아가 주세요. 단테도 마찬가지예요. 자꾸 그러면 레이프가 뭐라고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돌려보낼 거예요.”

내 한마디에 두 사람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것을 멈추었다.

나는 방 안에 흐르는 공기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이티엘을 바라보았다.

“에이브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죠?”

“역시 그대도 알고 있었군.”

“폐하는 어떻게 에이브를 알고 계신 거예요?”

“오늘 아침에 느닷없이 집무실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더군.”

“이상한 소리요…?”

저만치서 있던 불안이 지척까지 다가와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이 세계가 반복되고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것을 막을 사람이 그웨니르 영애, 그대뿐이라고 말이야.”

한참의 고민 끝에 이어진 이티엘의 말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웃음도 나지 않았다.

‘대체 왜?’

스스로를 향해 던진 질문에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에이브였다.

아티야를 지키기 위해서 내 의식까지 쳐들어오는 놈이니 이티엘에게 저런 말을 했다 해서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해를 입히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지.

이티엘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나를 보더니 천천히 표정을 굳혔다.

“영애는 무언가 알고 있는 모양이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지금은 말할 수 없어요.”

이티엘은 답답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어떤 대답을 해도 설명이 길어지는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도 이 일은 내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 나를 보며 이티엘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마음의 준비가 되는 대로 말해 주었으면 해.”

어라, 어쩐 일로 이렇게 순순히 물러난담?

눈을 휘둥그레 뜬 나를 보며 이티엘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웨니르 영애?”

아니라고는 차마 할 수가 없어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 기별도 없이 찾아오실 정도였으니 좀 더 이것저것 물어보실 줄 알았어요.”

“기별 없이 오는 것은 평소에도 자주 하던 일이다만.”

“…폐하, 그거 자랑 아니에요. 자랑처럼 말씀하지 마세요.”

나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요즘 이티엘이 얌전해서 잊고 있었지만, 초창기의 그는 호화로운 선물을 줄줄이 보내는가 하면 예고도 없이 저택에 찾아오는 것을 서슴없이 했다.

그때야 쫄아 있었고, 어떻게든 호감도를 쌓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때였으니 말을 못 했다고 하지만, 누구든 엔딩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된 지금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한편 이티엘은 그런 말을 듣고도 조금도 기분이 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 영애.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어.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하지.”

오히려 이티엘은 깍듯하게 사과를 했다.

어쩐지 그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가는 것같이 보였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방금 전 에이브에 관한 이야기로, 겨우 달래 놓은 심신에 스트레스가 쌓여 갔으니까.

“그럼 그웨니르 영애, 나는 이만 가도록 하….”

“아가씨! 손님이세요!”

성으로 돌아가려던 이티엘의 말을 끊은 것은 앤이었다.

문 너머로 들리는 앤의 목소리는 묘하게 들떠 있는 느낌이었다.

앤에게 대답하기 전, 나는 우선 이티엘에게 사과했다.

“아무래도 말하는 소리를 못 들었나 봐요. 제 하녀를 대신해서 사과드려요.”

“사과하지 말게, 신경 쓰지 않으니. 그나저나 그, 손님이라 했나?”

이티엘의 대꾸에 앤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퍼뜩 사과했다.

얼마나 안절부절못하던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방 안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폐하! 제가 너무 조심성이 없었습니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그보다, 다시 묻게 할 셈인가?”

이티엘의 물음은 담담했기에 더욱이 압박으로 다가왔다.

문 너머로 심호흡하는 소리와 함께 앤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메라…, 아니 린든 브누아 후작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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