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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을 켜지 마세요 (76)화 (76/122)

제76화. 12장. 정원 밑이 어둡다 (4)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뭘 바라겠어.

이걸 설명한다고 해서 과연 단테가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날 구한다고 고군분투했던 것을 봐서라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일 생각이었다.

“우선 레이프부터 짚어 보자면, 마법사들이 자신의 성에 차지 않으니까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려고 한 것 아니에요.”

“그렇다.”

단테는 대답만큼은 착실했다.

“그거부터 말이 안 돼요. 애초에 하나부터 열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 사람을 바란다는 것부터가 이기적이고 욕심인 거예요.”

내 말에 단테는 매끄러운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그의 얼굴에는 놀란 듯하면서도 불만스러운 표정이 여러 감정과 뒤섞인 채 고스란히 드러났다.

단테는 한참 생각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이딘, 너는 레이프 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저런 결론이 나오는지 알고 싶네, 정말.

‘그리고 왜 내가 레이프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처럼 말을 해?’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하고 싶은 말들이 치솟았지만, 일단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대꾸했다.

“저는 레이프가 왜 이기적인지에 대해 물어서 느낀 대로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하는 말이야. 레이프 님이 왜 인간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를 알면 그렇게 말할 수 없어.”

“단테, 잊었어요? 마법사들이 자기 맘에 차지 않아서 그랬다고 당신이 말했잖아요.”

“그게 대체 뭐가…. 아.”

단테는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좀 이야기가 통하려나 하는 생각도 잠시, 단테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마법사들이 전혀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

이게 또 무슨 소리야?

건성으로 들으려던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을 하지 않다뇨?”

“말 그대로다. 레이프 님은 위대한 대마법사셨지. 그러다 보니 일반 마법사가 며칠씩 걸려서 할 일들을 그분께서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 일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마탑의 마법사들은 게으름을 피웠다. 적당히 못 하는 척을 하면 레이프 님이 알아서 하실 테니까 말이야.”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예요?”

레이프를 좋아하니 무슨 말이든 못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무 지어낸 이야기잖아.

정작 단테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믿든 말든 그건 네 자유다, 세이딘. 하지만 존경하는 분에 대한 말을 지어낼 만큼 나는 무례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민망해지잖아.

괜히 무안해진 나머지 나는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들어 보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말에 단테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당시 대륙은 크고 작은 것들을 전부 마법으로 해결했었지. 그러다 보니 마법사들의 나태는 큰 문제를 일으켰다. 그들이 생각하기를 멈춘 만큼 레이프 님께서 그 자리를 메꿔야 했지. 레이프 님은 어떻게든 마법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길 바랐지만, 그들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

단테에게 미안하지만 어떻게든 진지하게 들어 보려 노력해도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레이프였다.

시크릿 공략캐라는 이유로 독보적인 난이도를 자랑하던 그는 끊임없이 의심했고 그 결과로 수많은 배드엔딩을 자랑했다.

그때의 기억으로 인해 나 또한 처음 레이프를 만났을 때 개구리로 변할까 봐 매우 조마조마했었다.

그런 레이프가 누군가가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얌전히 그 일을 맡아서 한다?

지금껏 봐 온 모습으로는 조금도 상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군.”

이어 가던 이야기를 멈춘 단테가 말했다.

제법 잘 감추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당신을 봐서 진지하게 들으려 했는데 잘 안 되네요. 제가 아는 레이프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렇겠지, 나 또한 그분을 직접 본 것은 최근이니 말이야. 하지만 마탑에 남아 있는 기록이니 거짓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지속되면서 레이프 님이 태도를 달리하셨다고 이제 말할 참이었어.”

“아….”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단번에 납득할 수 있었다.

아무리 선해도 계기만 있으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이었다.

게다가 능력 있고 모든 것을 책임지려 노력하던 사람일수록 더욱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었다.

이해가 되니 조금 레이프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답답해도 좀 내버려 두지 그걸 왜 해 줘서는….”

“대륙 순회 연주회 때문이었다더군.”

“…네?”

“대륙 순회 연주회. 이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레이프 님은 대마법사이자 동시에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바이올린 장인이었다고.”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어, 그러니까 그 말은….

“자기 덕지… 아니, 취미생활을 하러 가려고 남들을 도와줬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요?”

“그래, 이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분이신지…. 나라면 마탑이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우선시했을 거다.”

단테는 무표정이었지만 묘하게 열띤 푸른 눈동자와 옅은 분홍빛을 띠는 뺨은 그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깊이 생각하려 한 내가 바보지.’

나는 심란한 마음을 애써 모르는 척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몇 번이고 언급하지만, 이 세계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곳에서 대마법사가 금기를 범한 이유가 정상적이길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크흡, 이 세계는 미쳤어!’

그 후로도 단테는 레이프가 금기를 어기게 된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밀려오는 회의감으로 인해 아까만큼 성실하게 듣진 않았다.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내 결론은 처음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어찌 됐건 둘 다 이기적이에요.”

그런 이유로 지치지 않는 인간을 만들려고 한 놈이나, 그놈이 인간을 다 만들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금기를 범했네 어쨌네 한 놈이나, 내 눈에는 그놈이 그놈이었다.

덕분에 나는 더욱 굳은 의지로 저들과 엮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런가.”

한결같은 내 태도에 단테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레이프에 대한 변호를 할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시선이 마주친 단테는 무척이나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듣기 전이라면 모를까, 들었는데도 같은 의견이라면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뭔데요?”

“최근 느끼는 거지만 내 설명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중이다.”

참 일찍도 깨닫는다.

뜬금없는 자기성찰에 나는 헛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건 좋다.

문제가 있다면 그걸 왜 내게 고해성사를 하듯이 말하냐는 거지.

‘설마 이거 이벤트….’

―또로롱!

하하하, 거참.

한 치의 기대도 저버리지 않는 알림음이 참 얄궂기만 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강제로 시작되어 버린 이벤트는 단테가 구구절절 어린 시절을 늘어놓는 것으로 시작했다.

게임에는 없던 이벤트였지만 이것과 비슷하게 과거를 이야기하던 이벤트는 있었기에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다.

단테는 산에서 홀로 자라 왔다.

부모는 어떻게 되었는지, 왜 그런 곳에서 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억이 있을 때는 이미 단테는 그곳에 살고 있었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마법을 구사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마탑에 가게 된 것은 12살이 되던 해, 산을 지나던 마법사 때문이었다.

마법사는 어린 소년이 홀로 어떤 배움도 없이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놀라 단테를 곧장 마탑에 데리고 갔다.

단테는 마법사들과 제법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도 그의 실력이 월등히 높아지면서 잠잠해졌고, 마탑주에 오르면서는 더욱이 그런 말을 들을 상황은 일절 없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중, 네가 나타났지.”

이어지던 설명의 방향이 느닷없이 내게로 틀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정색하다가도 곧바로 납득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벤트였다. 어떻게든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 작정하고 이루어진 상황을 막으려 해 봐야 소용없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너처럼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 처음에는 그저 신기했는데 이제는….”

단테의 시선이 내게서 멈추었다.

푸른 눈동자는 선명한 날씨와 어우러져 투명한 바다처럼 반짝였다.

“많이 의식되고 신경 쓰여.”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단테를 바라보았다.

‘하, 이 무서운 호감도.’

처음에는 오히려 공격적이어서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호감도가 오를수록 저렇게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니 괜스레 설레었다.

그러나 나는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 모든 관심은 전부 아티야 대신 받는 것들에 불과했다.

내가 그녀와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일지라도 공략캐들에게는 한없이 신선하고 자극적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만약 이 세계가 게임 속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여주인공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이 상황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으려나?’

진지한 시선과 마주하던 중, 무심코 떠오른 자문에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습다고 생각했다.

만약이라는 생각은 실제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니까.

정적과 함께 이어진 단테의 시선은 조금도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여주인공이었다면, 아티야였다면 그럴듯한 대답을 했겠지만 나는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러니 분위기를 잡는 것은 이쯤에서 끝이었다.

“아, 그…, 칭찬인 것 같으니 고맙게 받아들일게요.”

그윽하게 쳐다보던 푸른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칭찬이 아니면?”

“…생각 안 해 봤는데요.”

이 상황이 이벤트인 걸 아는데 네가 나한테 욕먹을 짓을 하겠니?

게다가 단테는 직설적인 만큼 돌려서 말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런 놈이 내게 저런 식으로 빈정거린다고? 하늘이 뒤바뀌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단테는 내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몇 번이고 눈을 깜박였다.

한참을 그러던 그는 입가를 슬그머니 끌어 올렸다.

꽤나 능글맞은 미소였다.

“정말 솔직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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