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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을 켜지 마세요 (75)화 (75/122)

제75화. 12장. 정원 밑이 어둡다 (3)

“…….”

왜 그런 데서 진지해지고 그래? 사람 민망하게.

나는 단테를 불만스럽게 쳐다본 뒤, 정원으로 눈을 돌렸다.

가을빛이 완연한 정원은 그립게 느껴질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그놈의 데스티니만 아니었어도….”

나는 욱하는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생각해 봐야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거고.

평정심을 찾아가던 중, 말없이 쳐다보던 단테가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후회되나?”

이런 건 또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챈대?

나는 즉각 대답했다.

“당연하죠. 목숨까지 위협당하는 거 못 봤어요?”

“…그게 데스티니 때문이었나?”

이런 데선 또 왜 이렇게 둔해?

“그럼 제가 그런 식으로 노려질 만한 다른 이유가 뭐가 있어요?”

“이유라면 많지. 여명의 지배자에게 구애를 받는 거나 내 제자라는 것, 그리고 에메랄드의 상단주의 후원을 받는 것도.”

“전부 데스티니와 엮이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잖아요.”

“…….”

본인이 생각해도 맞는 말인지 단테는 급 침묵을 지켰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별 의미 없는 것들을 말해 봐야 속만 터질 뿐이니 정원이나 보면서 머리를 비우는 것이 최고였다.

단테와 나는 말없이 정원을 거닐었다.

내 정원과 비교하면 공원에 가까운 이곳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취향이 듬뿍 담겨 있었다.

두 분 다 이쪽으로 조예가 깊고 센스도 있으신 터라 다른 곳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꽃과 나무, 그리고 조형물들을 볼 수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내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페르세포네의 꽃이군.”

백합 비스름하게 생긴 자줏빛 꽃을 본 단테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이곳에 있는 꽃들이 흔하지 않다는 것만 알 뿐이었던 나는 자연스레 물음을 던졌다.

“그게 뭐예요?”

“마법약을 만들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다. 보통은 산 깊은 곳에서 발견되지.”

“아….”

“매번 산에 가서 채집해 오는 것이 번거로워서 나도 키워 보려 했지만 환경이 맞지 않는지 금방 시들더군. 햇빛의 양, 바람, 물, 그중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금방 죽어 버려.”

세상에, 그렇게 키우기가 어려울 줄이야.

우리 부모님이 정원을 가꾸는 걸 좋아하시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진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과 별개로 드는 의문이 있었다.

“왜 그렇게 구하기 힘든 재료로 마법약을 만드는 거예요? 대체할 만한 게 없나요?”

“대체품은 있다.”

예상과 다른 대답에 나는 눈을 끔벅였다.

있으면 그걸 쓰면 되지 왜 굳이 구하기 힘든 재료를 찾는 건데?

그에 대한 단테의 대답은 명쾌했다.

“색이 예쁘다.”

“아, 네. 그러시구나….”

너무 황당한 나머지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렇지만 단테에게는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불만스러운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농담같이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이다. 만약 네가 약을 산다면 같은 효능이지만 녹즙 같은 색을 띤 약과 맑고 투명한 붉은빛의 약 중, 어떤 걸 고르겠나?”

“그야… 녹즙은 못 참죠.”

“그래서다.”

나는 떨떠름해하면서도 간결한 단테의 결론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지 단테의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졌다.

“그리고 마법약의 단가가 싸면 오히려 효능이 별로라고 의심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페르세포네의 꽃을 쓰는 거고.”

연애와 판타지로 난무하는 세상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씁쓸해졌다.

마법사들은 마냥 자유롭기만 한 줄 알았더니 의외로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는구나.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아련한 내 시선을 눈치챈 단테가 물었다.

“마법사도 고충이 많구나 싶어서요.”

“어찌 됐건 연구를 계속하려면 수입이 필요하니까. 물론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담담하지만 결국 자신이 잘났다는 소리였다.

그 후로도 정원을 거니는 동안 단테의 감탄은 끊이지 않았다.

“이건 에르메스의 풀…! 저기에 있는 건 판도라의 눈물이군.”

“….”

이쯤 되면 자연스레 의심이 들었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정원을 꾸미고 싶은 게 아니라 마법약에 쓰일 재료들을 재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단테가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그의 등에 신나게 코를 박았다.

“단테! 갑자기 서면 선다고 말을…!”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단테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깨닫고 말을 잇지 못했다.

눈을 반짝이며 정원을 둘러보던 단테는 얼굴이 흙색이 된 채로 굳어 있었다.

“단테…?”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재빨리 단테를 불렀다.

아무런 반응도 없자, 나는 그의 소매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단테? 왜 그래요?”

재촉하는 손길에 단테는 그제야 나를 바라보았다.

맑은 푸른 눈동자는 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진정시킨 단테가 겨우 입을 열었다.

“세이딘, 너희 부모님은 마법에 대해 잘 아나?”

“아뇨, 광산 부자인 것만 빼면 평범하신 분들이세요.”

그야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봐 온 바가 있다 보니 진심으로 진지하게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단테는 나와 다른 의견인지 좀처럼 심각한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이럴 리가 없어….”

“뭐 때문에 그래요?”

내 물음에 단테는 좀처럼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의외였다. 단테가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비장하게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는 꽃들은 전부 레이프 님이 금기를 범할 때 사용했던 것들이야.”

“…네?”

상상도 못 한 이야기에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왜 그런 게 우리 집에 있는 건지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휘몰아쳤다.

‘대체 그 금기가 뭐지?’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가던 중,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껏 금기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은 이 이상 깊게 엮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뜩이나 이 세계 전체가 레이프의 금기로 인해 반복되는 데다가 모든 게임 캐릭터와 엮이는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어찌 됐건 더는 이리저리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저런 것들을 정원에 둔 이상, 금기에 대해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만약에라도 그들이 금기와 관련이 있다면, 그렇게 바라 마지않았던 욜로는 실낱같은 희망조차 사라지는 것이었으니까.

“단테, 궁금한 게 있어요.”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단테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금기에 대한 거라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직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할 말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대답해 주지 않겠다는 것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빈약한 변명이었다.

“아직 제 이야기를 들어 보지 않았잖아요?”

“금기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건가?”

“그건 아니지만….”

“그래서 대답할 수 없다.”

단호한 단테의 말에 원망 가득 담은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았다.

푸른 눈동자는 난감한 듯한 빛이 어렸다가도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흔들림이 사라졌다.

“레이프 님은 이와 어떤 관련도 없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적 속에서 단테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한참 그를 노려보던 나는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왜 저런 말을 꺼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누가 레이프 광팬 아니랄까 봐 단테는 내가 레이프를 의심한다 생각한 것이었다.

‘거참 어이가 없어서….’

나는 기가 막힌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말했다.

“레이프를 의심해서 묻는 게 아니거든요?”

“뭐? 그렇다면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그 금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의심할 대상이 달라지니까요.”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최악의 경우, 레이프가 어긴 금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것이라면 부모님께서 금기를 범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단테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납득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진작 말을 하지 그랬나.”

“말할 기회도 안 준 건 당신이잖아요?”

원망을 담아 쏘아보니 단테는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했다.

아이고, 이 곰 같은 사람아.

그는 턱을 괴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레이프 님께서는 사람을 만들려다 금기를 범했다.”

“사람을…, 만든다고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너무도 판타지스러워서 현실성이 조금도 없는 이유였다.

그야 이 세계에 빙의한 나도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만들다니!

‘시크릿 공략캐라 그런 건가?’

더는 이 세계가 게임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절로 이런 생각이 튀어나왔다.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연 있는 남자는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으니까.

단테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레이프는 전에도 후에도 없을 대마법사였고 괴짜였다.

아무리 설명해도 마탑의 마법사들이 자신이 바라는 수준까지 따라오지 못하자, 그는 지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를 바랐다.

거기서부터 비롯된 생각의 종착지가 사람 만들기였고, 레이프는 본격적으로 연구에 들어갔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레이프는 성공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재료를 넣으려고 할 때, 신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눈을 깜박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레이프고 신이고, 사고방식이 남다른 구석이 있어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이기적이네요.”

“그런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황당함을 고스란히 드러냈음에도 단테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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