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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을 켜지 마세요 (70)화 (70/122)

제70화. 11장. 진실은 개나 줘 버리라지 (5)

“배팅 센터…?”

혼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리는 에이브를 보고 퍼뜩 깨달았다.

이 세계엔 배팅 센터가 없지, 참.

“그런 게 있어.”

무심하게 대꾸한 나는 가볍게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위협적인 소리가 날 때마다 에이브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뭐, 뭐야! 설마 그걸로 날 때릴 셈이야?!”

허허, 저놈 보소.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네.

내가 깡패도 아니고 사람을 왜 패?

물론 저놈은 천족이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패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 두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기에 나는 에이브를 향해 활짝 웃었다.

“글쎄, 어쩌려나?”

“무, 무식한…! 이 세계의 진실을 듣겠다고 기절하고 깨어나는 걸 반복할 때부터 알아봤어! 너 제정신 아냐, 알고 있어?!”

저 또라이가 지금 뭐라는 거야?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먼저 남의 의식까지 찾아와서 죽이려던 주제에 그거 하나 막아냈다고 피해자인 양 구는 에이브의 행동이 그저 우스우면서도 아니꼬웠다.

‘때릴까?’

저렇게 사람 속을 박박 긁어대는데 한 대 정도는 정당방위로 때릴 수 있지 않을까?

에이브의 머리를 두고 이리저리 저울질을 하던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의식에 날 붙들어 놓으려는 게 너야?”

“그, 그걸 어떻게…!”

경악으로 물드는 황금빛 눈동자에 나는 한심함을 감추지 못했다.

진심으로 몰라서 저러는 건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쳐다보는데 혼란스러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에이브가 외쳤다.

“레이프! 아니면 단테, 그자가 알아챘구나!”

확신에 가득 찬 태도를 보니 어쩐지 기운이 빠졌다.

천족이라고는 에이브 외에 본 적이 없지만, 다 저런 놈들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어 대답을 하지 않자, 에이브는 구겨진 종이처럼 얼굴을 구기며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하하! 그래, 그들이라면 충분히 눈치챌 수 있어. 흉흉한 막대기나 휘두르는 저런 무식한 여자가 그런 걸 알아챌 리가 없잖아?”

“저게 진짜…….”

야구방망이를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진심으로 저놈 머리를 후려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참을 인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것이 심증이고 추론인 가운데 이제 막 질문 하나를 했을 뿐이었다.

에이브의 입으로 직접 이유를 듣기 전까지는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충동을 느껴도 이겨 내야 했다.

나는 턱을 끌어당기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

“왜 그런 짓을 계획한 거야?”

입에서 흘러나온 물음은 내가 듣기에도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높낮이가 없이 차가웠다.

에이브도 마찬가지였는지 작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말… 못 해.”

“그렇겠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

그 한마디에 에이브는 안색을 바꿨다.

새하얀 눈처럼 질린 그는 나를 샅샅이 훑었다. 혹여나 자신의 치부를 들킬까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태도가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의심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그럼 내가 한번 말해 볼까?”

내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에이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엿보였지만 나는 외면했다.

“내가 깨어나지 않으면 아티야가 더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했잖아.”

내가 깨어나지 않으면 데스티니는 봉인이 완전히 된 것도, 풀린 것도 아닌 상태로 머무르게 된다.

그 상태에서 아티야가 데스티니와 접촉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더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 안에 내가 죽지 않는다면.

이제 에이브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조차 못했다.

미미했던 몸의 떨림은 점차적으로 커져 사시나무처럼 눈에 띄게 떨었다.

“어, 어떻게…….”

“이제 바보 같은 질문은 그만할래? 언제까지 모른 척, 놀란 척할 셈이야? 끝까지 천족으로서의 고귀함은 지키고 싶다, 뭐 그런 거야?”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퍽이나 안쓰러울 모습이었음에도 나는 감흥 없는 시선으로 에이브를 바라보았다.

억지로 여주인공 자리를 떠맡다시피 했다.

거기다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아티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네 방식은 잘못됐어, 에이브.”

아티야의 자유와 행복은 얼마든지 바라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이유로 타인의 자유와 행복을 빼앗는 것은 비틀린 호의였고, 동시에 자기만족에 불과한 이기심이었다.

“…그……라….”

무거운 침묵 속에서 에이브가 작게 읊조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던 나는 좀 더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몇 차례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이어진 뒤, 에이브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독기 어린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거렸다.

“난 그런 거 몰라!”

외침과 함께 에이브의 눈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피, 피해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머리는 좀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공격을 막을 방패를 만들어 냈을 때는 이미 에이브의 빛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과 함께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제정신이 아니네.”

그 목소리는 아득하게 느껴지던 모든 것들을 단숨에 현실로 돌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좀처럼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렇지, 세이딘?”

듣기 좋은 저음이 내게 동의를 구했다.

“이제 괜찮아. 그러니 눈을 떠도 돼.”

상투적일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눈에 준 힘을 풀고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새카만 공간 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레이프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꿈인가?”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여기는 내 의식 속이고 바라는 것은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었으니까.

레이프가 나타난 것도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떠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상황을 이해해 보려 끙끙대고 있을 때였다.

“꿈이었으면 좋겠나 봐?”

부드럽지만 동시에 능글거리는 물음이 귓가에 스며들었다.

고개를 들자, 레이프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데 아쉽게도 꿈은 아냐.”

“어…, 어떻게?”

그 모습은 어떻게 된 거고?

힘을 조금 되찾은 레이프는 10대 소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레이프는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놀라는 내 반응에 레이프는 자신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 이거 때문에 그런 거구나? 아무래도 여기서는 이 모습이 훨씬 편해서 말이야. 마나도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왜? 어린 쪽이 취향이면 바꿔 줄까?”

야살스럽게 접히는 호박빛 눈동자에 나는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일 없어요!”

“그렇게 부정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겉으로 조금 나이 차이가 날 뿐 아무 문제 없어 보인다고 해도 어린애에게 열광하는 취미는 일절 없었다.

의지로 가득한 매서운 시선에 레이프는 장난스레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 더는 농담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보지 마.”

“…….”

“진짜야, 난 더 이상 미움받고 싶지 않아.”

진지한 대답에 문득 레이프의 품에 안겨 울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모든 것이 진절머리 나고 지쳐 울던 그때도 그는 저렇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아아…!’

온몸의 열기가 얼굴로 몰리는 것이 느껴져 재빨리 레이프에게서 등을 돌렸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느닷없이 훅 치고 들어온 기억과 그와 함께 뒤섞인 여러 가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세이딘? 갑자기 왜….”

“가까이 오지 마!”

“그렇게 말해도 이유를 모르면….”

“쪼, 쪽팔려서 그래!”

오, 맙소사. 실화입니까?

멋대로 튀어나와 버린 말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대로라면 계속해서 헛소리를 할 가능성이 많았기에 필사적으로 숨을 골랐다.

‘하아, 한결 낫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었다.

“내가 엄청 울었잖아. 그게 생각나서 그래. 물론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티야의 행동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기어코 다가와 자신을 두고 떠날 거냐던 레이프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그 또한 잘못했다고는 느끼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알았어.”

레이프의 말은 한참 뒤에 들려왔다. 

이제 좀 붉어진 얼굴을 정리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한 찰나, 그가 말했다.

“하지만 괜찮겠어? 그러고 있으면 제대로 지켜 줄 수 없는데.”

“그게 무…,”

슨 말이야?

물음이 완성될 새도 없이 나는 느닷없이 허공에 붕 떴다.

그리고 의지를 벗어난 비명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으아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 지금 던져진 거야? 그런 거야?

중력을 무시하고 떨어지는 감각이 점점 또렷해질수록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프가 날 던졌다.

“이 나쁜 새…!”

확신하는 순간, 무언가가 허리를 감쌌다.

단단한 힘과 함께 나는 더 이상 추락하지 않았다.

“잘 안 들려서 그러는데.”

평온을 되찾은 내 귀에 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친 레이프는 완벽하고 눈부신 미소로 나를 반겼다.

“뭐라고 했어, 세이딘?”

뭐라고 했냐고?

순간 울컥한 나는 곧장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레이프의 어깨 너머로 에이브가 배를 부여잡고 굴러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머릿속으로 방금 전 상황과 에이브의 연관성을 깨달은 내가 말했다.

“끼…! 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상냥한 레이프 님,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아무 말 대잔치인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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