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11장. 진실은 개나 줘 버리라지 (3)
이 양반은 이제 막 일어난 사람한테 불길한 소리를 하고 그래?
“위험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자각이 없는 건가?”
단테는 순식간에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재능이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인내심을 실험하는 상황에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단테, 그렇게 말하면 누구든 못 알아들어요. 그러니 알아듣기 쉽게, 주어를 사용해서 말해요.”
앞으로는 주어를 빼먹는 놈들한텐 대답도 하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을 하며 단테의 답변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푸른 눈동자를 깜박이곤 입을 열었다.
“누군가 네가 깨어날 수 없도록 널 계속해서 꿈속에 머무르게 했었다.”
“아….”
그래서 모르냐고 물어봤던 거구나.
제발 부탁이니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게 왜 쓸데없이 말을 줄여서 두 번 하는 수고를 해?
“눈치채지 못했나?”
“전혀요, 꿈을 꿨던 기억도 없고요.”
내 대답에 단테는 더욱 미간을 좁혔다.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그에게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 상태로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주어 좀.”
짧은 내 대답과 쉴 새 없이 나쁜 말을 쏟아 내는 내 시선에 압도된 단테가 슬쩍 눈치를 보며 대꾸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네 몸속으로 마나를 흘려보냈더니 알 수 없는 힘이 가로막더군. 몇 번이고 튕겨 내는 것이 반복되길래 직접 네 의식 속으로 들어가 보려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어.”
알 수 없는 말들로 이루어진 설명에 나는 그저 난감했다.
그렇게 말한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눈이 빠지라 펑펑 울다 쓰려졌다는 것과 지금 일어났다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군.”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힐끗 나를 본 단테가 말했다.
세상에 어쩐 일이래? 그런 것도 알아채고.
“그러니까 계속 말하잖아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라고.”
내 대꾸에 단테는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전신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묘하게 서운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에이, 설마.’
설마 하는 마음에 단테의 호감도 창을 확인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곳에는 토씨 하나 안 빼놓고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열심히 설명했는데 매정하게 대하다니, 서운해ㅠㅠ]
“뭐 이런….”
저거 뭔데.
왜 ‘ㅠㅠ’가 붙어 있는데?
설마를 넘어선 단테의 상태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한편 방심하다 흘러나올 뻔한 속마음의 파편을 들었는지 단테가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나, 세이딘?”
“아, 아뇨, 아무것도요.”
나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단테의 호감도 밑에는 ‘ㅠㅠ’에서 진화한 ‘(˚ ˃̣̣̥⌓˂̣̣̥ )‧º’로 가득 찼다.
‘혹시 시스템이 맛 간 건가?!’
그 생각도 잠시,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이 세계에서 그렇게 내 편의적이고 희망찬 일이 벌어질 리가 없지.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저것이 진짜 단테가 속으로 하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게 맞겠지.’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음에도 나는 확신했다.
지금껏 숱하게 경험한 어이없는 상황들은 대부분 ‘에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나는 무수히 떠 있는 울음 이모티콘이 단테의 본심이라는 가정하에 질문을 던졌다.
“단테, 저한테 서운해요?”
단도직입적인 말에 침대 모서리를 향해 있던 단테의 눈동자가 곧장 나를 바라보았다.
놀랐는지 미동 없던 푸른 눈동자는 살짝 동그랗게 떠진 채였다.
“어떻게 알았지?”
당신의 호감도 창이 눈물바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만큼은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둘러댔다.
“그…, 어쩐지 느낌이 그래서요.”
“느낌으로 그런 걸 알 수 있나?”
“남자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그래요. 왜, 여자의 촉이라는 게 있잖아요. 촉은 과학이에요.”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여서 그런지 단테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괜한 이야기를 했나 싶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나는 뻔뻔하게 버텼다.
‘뭐,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여자의 촉은 그렇다 쳐도 촉은 과학이었다.
무엇이든 쌔하다 싶으면 피해야지 깨달은 뒤에는 늦는다.
한참 동안 의미 없는 눈싸움을 벌이던 단테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잘 모르겠지만 세이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찌 됐건 맞힌 건 사실이니까.”
“이유를 말해 줄 수 있어요?”
내 말에 단테의 상태는 곧 ‘٩( ᐖ )و’로 바뀌었다.
평소 본인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이모티콘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상태는 거의 바뀌지도 않는데 유독 단테만 이런 걸 보면 참 희한하단 말이야.’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단테는 조금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요즘 마탑에 오지 않았지?”
잘 나가다 왜 뜬금없이 마탑 이야기람?
“이미 약속이 깨진 마당인데 제가 거길 왜 가요?”
“하지만 여명의 지배자와 에메랄드의 상단주와는 잘 만나지 않는가. 그리고 레이프 님과도.”
으윽, 맙소사.
오랜만에 듣는 인소에서 나올 법한 칭호에 손발이 오글거렸다.
특히,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던 린든의 칭호까지 들으니 두 배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보다는 평범했지만 레이프에 대한 존칭도 소름이 돋긴 매한가지였다.
존경하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평소 단테의 모습을 알기에 한편으로는 낯간지럽게 느껴졌다.
그걸 또 지적하자니 나를 보는 단테의 시선이 너무 진지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애써 기억 속 저편으로 보내 버렸다.
“그러니까…. 결국엔 다른 사람들은 만났으면서 당신은 보러 오지 않은 것이 서운했던 거네요?”
“그렇다.”
서운한 걸 대답하면서 뭘 그렇게 당당한데?
하지만 ‘맞아!!!!!!!!!!!’라는 한 마디가 쓰여 있는 호감도 창을 보며 나는 애써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한편 단테는 자신이 얼마나 서운했는지 둑 터진 댐처럼 구구절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나는 네 스승이지 않나? 그런데 날 먼저 보기는커녕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만 보러 다니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하하하…. 죄송해요.”
“괜찮다, 알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러자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다.
―또로롱!
[단테의 호감도가 40 올라갔습니다! (310→350)]
곧바로 오르는 호감도를 보며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고작 이 한마디로도 저만큼의 호감도가 올라갈 정도로 나를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내 이야기는 됐다. 그러니 다시 네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단테는 아까보다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본인이 그렇게 말하는데 토를 달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말을 들을 준비를 했다.
내가 뭐라고 한 것들을 염두에 둔 것인지 단테의 설명은 평소보다 자세하고 꼼꼼했다.
게다가 모든 말에 주어가 들어가 있어서 알아듣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한참 설명을 들은 뒤, 나는 말했다.
“그러니까 요는, 제가 깨지 못하도록 하던 힘은 당신을 막아낼 정도로 강하진 않으면서도 이질적이었다 이거죠?”
“그래, 적어도 마나는 아니었어. 굳이 비유를 하면 생명력에 가까운 힘이었지.”
“생명력에 가까운 힘….”
단테의 말을 따라 읊조려 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애초에 마법의 바이올린을 소지했다는 것을 빼면 평범한 영애에 불과한 내게 뭘 바라는 것부터가 잘못된 거지.
“딱히 뭘 바라고 물어보는 게 아니다.”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한 대답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템 효과 덕에 요즘은 덜하지만, 레이프부터 시작해서 다들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귀신같이 내 생각을 잘 알아차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군.”
단테의 말에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티가 나요?”
“그래, 매우.”
솔직 담백한 대답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별수 있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몇 번이고 이런 일이 있었으니 이젠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지.
“어쨌든 부담 갖지 마라, 세이딘. 내가 물어보는 건 네게 어떤 능력을 기대하기보다 네게서 최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추론해 보려는 것이니까.”
어째 묘하게 기분이 나쁜 건 기분 탓일까?
“그런 거라고 해도 무언가를 알아내긴 어렵지 않을까요? 당신은 제가 꿈을 꿨다고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걸요.”
“걱정 마라.”
평소보다도 나직하고 묵직한 어조에 왠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결코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내 촉은 이럴 때만큼은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단테의 호감도 아래에 나타난 상태에는 ‘해치지 않아요.’라고 적혀 있었다.
미친, 저게 더 무서워.
조금도 가늠되지 않는 단테의 행동이 두려운 나머지 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단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좀 진정하고…….”
“항상 느끼지만 넌 참 흥미로워, 세이딘. 이런 때만큼은 마탑 놈들보다도 훨씬 감이 뛰어나니 말이야.”
―또로롱.
이 새끼는 어떻게 돼먹었길래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뜬금없이 호감도를 올리는 걸까요?
머릿속에 퍼지는 경고음과 동시에 물음표가 파티를 벌이는 한편, 낮게 웃음을 흘린 단테는 오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아나? 비록 계약이긴 해도 널 제자로 들이길 잘했다고 생각해.”
“단테, 알았으니까 불안한 소리 좀 작작 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방금까지 베고 있던 베개를 집어 던졌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비웃듯이 한 번에 베개를 잡은 단테는 각오를 다지듯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니 이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널 돕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