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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을 켜지 마세요 (53)화 (53/122)

제53화. 9장. 그들과 나의 눈치 게임 (2)

대체 어떻게 하면 친구가 남편으로 과대해석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공존하는 가운데,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친구라고 말했지 남편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요.”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관계가 친구지.”

예의를 차리는 건 둘째 치고 이쯤 되면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폐하, 연애 관련으로 듣는 이야기라도 있으세요? 아니면 관련 책을 읽는다든가.”

“과연 그웨니르 영애, 잘 알고 있어. 안 그래도 관련 서적을 추천받아 읽고 있다. 그 외에도 시종장에게 물으니 이것저것 알려 주더군.”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으쓱거리세요?

하고 싶은 말은 늘어나는 가운데, 나는 겨우 추스르고 말했다.

“그런 말 듣지 마세요. 해로워요.”

“그웨니르 영애, 지금 날 걱정해 주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지금 하시는 말씀들은 상당히 걱정이 되네요.”

가뜩이나 자기 생각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저런 이야기들로 머리를 채우면 엉뚱하게 발전하기 마련이었다.

이티엘은 그가 생각하는 걱정과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그저 감격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대가 이렇게 걱정해 줄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군.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 기뻐.”

아니, 저기요? 그거 아니라니까?

조금 전만 해도 내 철벽에 비련의 남주인공처럼 아련하던 이티엘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그저 지금 이 상황이 기쁘다는 듯 햇살처럼 눈부시게 웃을 뿐이었다.

덕분에 집착 게이지는 빼꼼 핑크빛을 보였지만 내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이라도 잘못을 잡기 위해 입을 열었다.

“폐하, 제가 걱정된다 말씀드린 건 어디까지나 연애를 잘못된 정보로 배우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래, 충분히 이해해. 그대는 부끄러움이 많은 듯하니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겠지.”

“…누가요? 제가요?”

진심 어린 말 한번 잘못했다가 이렇게 되는구나. 거기다 살다 살다 부끄러움 탄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보네.

함부로 호의를 베풀면 안 된다는 말이 마음 구석구석에 깊이 스며들었다.

나는 철벽 반사를 실험해 보겠다는 생각을 잠시 접어 두고 소신 있게 말했다.

“폐하, 지금 단단히 오해하시는데 정말 아니거든요? 제가 부끄러운 게 있다면 지금 폐하의 행동이에요.”

내 딴에는 굉장히 용기를 낸 발언이었지만 이티엘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한 발자국 더 내게 다가와 눈을 반짝였다.

하도 이런 상황을 겪은 탓일까, 나는 상대를 보면 상대가 마법에 걸린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알 수밖에 없는 것이, 날 보는 눈이 또렷하지 못하고 몽롱했으니까.

그 증거로 이티엘이 그랬다. 방금 전까지 진지했던 시선은 나를 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흐릿해져만 갔다.

“어쩐지 조금 알 것 같아.”

풀린 붉은 눈동자 위로 번뜩임이 스쳐 갔다.

이제 나는 이티엘이 이 이상 얼마나 더 무서운 소리를 할지 감이 오면서도 오지 않았다.

“그대는 린든보다 나를 더 마음에 두고 있어, 그렇지 않나?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날 신경 쓸 리 없어.”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설령 지적을 한다 해도 제대로 들을 리 없는 사람에게 지적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까는 조금씩 올라가던 집착 게이지가 지금은 올라가기는커녕, 다시 바닥을 치고 있었다.

‘어쩐지 유독 질척댄다 싶더니!’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상황이 한 번에 이해 갔다.

더는 이티엘을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생각한 나는 시스템창을 열어 아이템을 뒤졌다.

집 나갈 때를 대비해서 사 뒀던 것들 중 지금 상황과 딱 맞게 쓸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몰니르]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망치처럼 보이지만 대상을 향해 휘두르면 전기가 나간다.

이상한 사람 퇴치용으로 쓰기 좋다.

모 신화의 신이 들고 다니던 무기의 짭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쓸 만해 보여서 구매했던 것이었다.

‘설마 이렇게 쓸 줄은 몰랐지만.’

아이템 선택을 누르기가 무섭게 몰니르가 손에 쥐어졌다.

나는 이티엘이 볼까 싶어 서둘러 뒤로 숨기며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폐하는 어쩜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세요?”

집착도 집착이지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지.

아니나 다를까 이티엘은 굉장히 의외인 대답을 했다.

“자신감?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군. 나는 그렇게 자신감 있는 사람이 아니야, 영애. 언제나 그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

‘넌 내게 관심 있잖아.’라고 하던 방금 전의 모습을 던져 주고 싶다.

이러한 내 마음만큼 이티엘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나를 비추는 붉은 눈동자에 얼핏 광기 비스무리한 것이 스쳤다.

‘아니, 아무것도 안 하는데 왜 점점 심각해지는 건데!’

속으로 현 상황에 대한 적신호를 외친 나는 이티엘에게 다가갔다.

이 이상 아침드라마급으로 발진을 서슴없이 하는 그를 내버려 두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웨니르 영애?”

눈을 휘둥그레 뜬 이티엘이 나를 불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가 먼저 이렇게 다가간 적이 없으니 퍽이나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이티엘에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경계가 아닌 의식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밤을 스치는 바람처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뭐…?”

이티엘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져 나갔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뒤에 숨긴 몰니르를 휘둘렀다.

제발 이 순간만큼은 이티엘의 미친 신체 능력이 둔하게 반응하기를!

이티엘의 머리를 향해 달려가는 몰니르가 영원처럼 천천히 궤적을 그렸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서둘러 팔을 들어 막아 보려 했지만 그뿐이었다.

홀린 듯 바라보던 눈동자가 무겁게 눈꺼풀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쿵!

근육으로 둘러싸인 몸이 미미하게 떨리며 무너져 내렸다.

“어, 어떻게…?”

놀란 마음이 고스란히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몰니르는 이티엘의 머리에 조금도 닿지 않았으니까.

“상당히 유쾌한 수였어, 세이딘.”

머릿속에 하나둘 퍼져 나가는 물음표는 곧 안개처럼 사라졌다.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았다.

“하지만 그대로 황제에게 돌진했다간 팔 하나는 잃었을지도 몰라. 최악의 경우는 목이 날아갔겠지?”

어제 잠시 단테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오지 않았던 레이프가 창가에 기댄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무시한 말 하지 말아 줄래?”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레이프의 말이 맞았다.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망치를 휘둘러 기절시키려고 한 시점에서 이미 큰 도박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상당히 빈궁한 핑계였다.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어.”

기댄 몸을 뗀 레이프는 성큼성큼 걸어서 이쪽으로 왔다.

고작 하루 사이인데도 키가 큰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나는 스스로에게 헛웃음을 던지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물음을 던졌다.

“이티엘은? 부르르 떠는 것 같던데.”

“목숨엔 지장 없어. 그냥 전기 충격으로 기절한 것뿐이야. 네가 하려던 것처럼.”

“그건 어떻게….”

몰니르를 가리킨 레이프를 보며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보기에는 평범한 망치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눈치였다.

놀라는 나를 향해 레이프가 말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대체 어디서 난 거야? 이건 내가 아주 오래전에 만든 발명품 중 하나거든.”

레이프의 말에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몰니르라는 이름을 지은 거지가 너였습니까…?”

“몰니르? 그게 뭐야?”

“이 망치 말이야!”

“흐음, 몰니르라고 하는구나.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름까지 지어 줬나 보네.”

활짝 웃으면서도 번뜩이는 호박색 눈동자가 어찌나 살벌하던지 나는 못 본 척 외면했다.

“그래서? 이건 어디서 난 거야, 세이딘?”

다시 돌아온 질문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시스템창에 있는 상점에서 유용해 보이길래 샀습니다.’와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며칠 나가 있을 때 호신용으로 필요할 것 같아서 샀어.”

“이걸 가게에서?”

눈을 가늘게 뜬 레이프는 내 말이 미심쩍은 듯했다.

마법이 실용화가 되었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마법 도구는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없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떳떳하게 시선을 맞받아쳤다. 구체적인 구매처를 말하지 않았을 뿐, 틀린 말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나를 바라보던 레이프는 곧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잘 샀네. 혼자 돌아다니려면 최소한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어야지. 뭐, 그런 용도로 만든 건 아니지만 말이야.”

무슨 용도로 만들었는지 궁금했지만 레이프의 웃는 위로 스쳐 간 분노를 보니 알고 싶지 않아졌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나와 시선이 마주친 레이프는 얼굴을 굳히는가 싶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뭐지?

“나는 상관없지만 세이딘은 곤란할 수 있으니 옮겨 둘게.”

뜬금없는 말과 함께 레이프는 마법으로 이티엘을 들어 소파에 늘어놓았다.

사람이 힘없이 축 늘어진 상황에서도 저렇게 잘생길 수 있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뜬금없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런데 레이프, 넌 언제부터 있던 거야?”

분명 어제 그렇게 집을 나간 후로 안 돌아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련하고 진지했던 순간들이 꿈이었던 것처럼 레이프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얼마 안 됐어. 이티엘이 네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할 때였나?”

그러니까 아주 엑기스만 콕 짚어서 봤단 말이었다.

“그럼 진작에 도와줬어야지….”

“하지만 섣부르게 판단했다가 네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는걸. 만에 하나라도 좋은 분위기였을 수도 있고.”

“그 상황을 보고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니 놀랍네.”

있는 힘껏 비아냥거리는 내게 레이프가 예쁘게 눈을 접었다.

“칭찬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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