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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을 켜지 마세요 (41)화 (41/122)

제41화. 7장. 운명과 페널티 (2)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도 알다시피 데스티니는 마법의 바이올린이야. 그렇다는 건 이후에 아티야가 사랑에 빠지는 남자들은 전부 맨정신이 아니라는 거지. 물론, 몇몇은 그렇지 않았지만 다른 목적이 있었고.”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남자의 말에 연달아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게임 속에서 아티야의 연애는 전부 데스티니에 의해 발생된 것들이었다.

물론 이후에는 데스티니가 없어도 연애 이벤트는 발생했지만, 그 이벤트가 생기기 위해서는 데스티니로 호감도를 올려 줘야 했다.

결국 대부분 내가 본 공략캐들과의 결말은 겉으로 보기에 해피엔딩일 뿐, 실제로는 진심인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뜻이었다.

‘전혀 생각 못 했어….’

게임이었기 때문에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현실에 대입하게 되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충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자는 진실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아티야의 미래를 불행하게 여겨 처음부터 데스티니와 접점을 없애려고 했다.

그것은 곧 내가 어떤 일을 당하는지 알면서도 외면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하지만 지금껏 내가 겪은 일들은 전부 아티야가 겪을 일이었다.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인 내가 짊어지기엔 너무도….

생각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이어질 수 없었다.

“으…윽!”

머리를 관통하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에 나는 신음을 토했다. 이를 시작으로 온몸에 통증이 퍼져 나갔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아프긴 했지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불길하게 깜박이던 붉은 글씨를 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경고! 페널티 발생! 이 이상 대화를 이어 가면 기절할 수 있습니다.]

‘놀고 있네! 지금도 기절할 것처럼 아파 죽겠는데.’

강약 조절이라곤 일절 없는 통증에 나는 시스템창을 향해 엿을 날렸다.

하필이면 시스템창이 있는 위치가 남자의 앞인지라 본의 아니게 애먼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뭐, 애초에 저놈도 지렁이보다 못한 놈이니 애먼 사람은 아닌가?’

이러다 죽겠네 싶으면서도 남 욕할 정신이 있는 걸 보면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한마디는 확실하게 해야지.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티야를 지키고 싶다고 괜히 애꿎은 사람 휘말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티라노 발톱의 때만도 못한 자식아…!”

한층 더해진 통증과 함께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필사적으로 다른 손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엿 먹고 죽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  *  *

힘들다.

그냥 힘든 정도가 아니고 정말 죽을 만큼 힘들다.

원래 세계에 있을 때도 힘들었지만 그때 힘들었던 이유는 가난이었다.

물론 무시하는 놈들도 있었고 뒤통수를 치는 놈들도 있었지만, 무엇 하나 없는 처지인 사람에게 쏟아지는 악의는 배고픔에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 세이딘이 되었을 때, 당황스러웠지만 그보다 기쁨이 훨씬 컸다.

더 이상 춥고 배고프지 않아도 되는 사실에 안심했고, 더 이상 누군가에게 가난으로 손가락질당하지 않게 되었음에 감사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들뜬 마음으로 저지른 실수에 처음으로 누려 보는 행복들이 짓밟히는 것이.

“거지 같아….”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내 의사 표현은 확실했다.

조금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여기저기 저릿저릿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 페널티의 영향이었다.

‘아니, 뭘 했다고 페널티야? 엑스트라의 휴일 지속 기간이 다 된 것도 아닌데!’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할 뿐이었다.

페널티를 받게 된 원인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던 중이었다.

“세이딘.”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아직 의식이 또렷하지 않아 누구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꽤나 간절하게 부르는 것이 부모님인가 싶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댁의 딸이 사실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고, 적응해서 잘 사는가 싶었더니 데스티니를 얻으면서 게임 시스템을 보게 되었고,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었다고.

그래서 데스티니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쪽은 미래를 알고 있는 웬 놈이 그 사람을 지키겠답시고 도주를 시키는 상황이었다고.

‘거기다 시스템은 그거 좀 들었다고 페널티네 뭐네 하면서 사람을 기절시키질 않나.’

다시 한번 생각해도 참 뭣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이제는 누구에게 가야 이걸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울지 못해 그저 허허 웃고 있는데 어떤 손길이 이마에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줬다.

조심스러움이 가득한 행동에 불처럼 날뛰던 가슴이 조금씩 진정됐다.

원래 세계에선 이런 식으로 대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가슴께가 조금 간질거리기도 했다.

‘이래서 부모가 있는 게 좋다고 하는 거구나.’

모든 부모가 다 자식에게 헌신적이고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그러니까.

한참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어느새 멈췄다.

익숙해질 참이었던지라 괜히 아쉬움이 밀려왔다.

“미안해.”

누군가가 속삭였다.

의아했다. 부모님은 내게 잘해 줬으면 잘해 줬지 단 한 번도 사과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다음에 들리는 목소리 역시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네가 다른 남자들이나 내게서 도망갈 정도로 싫어할 줄 몰랐어.”

어라?

남자들이라는 단어에 머릿속에 의문이 차올랐다.

“다른 여자들처럼 대하면 될 줄 알았던 내가 멍청했어.”

고해처럼 이어지는 말에 나는 정신이 맑아졌다.

저 사람은 내 부모님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넌 그 누구와도 같지 않았는데.”

그는….

‘레이프?’

신기한 일이었다.

고작 이름을 떠올린 것만으로 저릿거리던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으니까.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 나는 깜짝 놀랐다.

레이프가 내 손을 꼭 잡은 채 옆구리 근처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여긴 또 어떻게 알았고?

“세이딘?”

의심이 땅콩줄기처럼 줄줄 따라 나오는 사이, 레이프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는 호박빛 눈동자가 물결을 따라 일렁거리는 달처럼 흔들렸다.

너무나도 간절한 눈빛에 할 말을 잃고 있을 때였다.

“세이딘, 내가 누군지 알겠어?”

내가 어떻게 너를 모르겠니.

“레이프잖아.”

왈칵 얼굴을 찌푸리고 대답하자, 먹구름이 가득했던 레이프의 앳된 얼굴이 해처럼 환해졌다.

“그 표정을 보고 싶었어!”

“…너 누구한테 맞았어?”

“세이딘, 내가 누구한테 맞을 사람으로 보여?”

“그건 아닌데….”

왜 이상한 짓을 하고 그래?

그렇게 물어보기에 레이프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뻐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라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나이대에 퍽이나 어울리는 것 같아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몸은 어때? 어디 불편하거나 그런 데 있어?”

“두통이 조금 있는 것 외엔 괜찮아. 그런데 네가 왜 여기 있어?”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이었다.

엑스트라의 휴일의 효과로 붕 날아 다른 나라까지 온 상황이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여기에 있는지 알려면 한참이 걸렸을 터였다.

“에이브가 연락했어.”

“에이브? 그게 누구…. 아.”

레이프를 따라 고개를 돌린 나는 얼굴을 굳혔다.

아티야를 지킨답시고 남에게 가는 피해도 모른 척하는 분홍머리 새끼였다.

좋지 않은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니 말이 절로 험해지는구나.

에이브라 불린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더니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아무래도 개미 더듬이만큼의 양심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 괜찮아?”

“지금 이게 괜찮아 보여요?”

“…아니.”

알면서 왜 물어봐?

“댁 얼굴 별로 보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는 게 어때요?”

“그건 안 돼. 설명할 게 있어.”

기가 막힌 놈일세.

괜찮냐 물어볼 만큼 미안해하면서 할 말은 해야 한다고 하고.

얼굴을 왈칵 구긴 나는 고민 끝에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그러자 에이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선 이번 일에 대해서 사과할게.”

에이브는 허리를 깊게 숙였다.

“네 말대로야. 아티야를 걱정하고 생각하면서 정작 그 자리를 대신할 너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어. 너도 그녀와 같은 인간인 걸 알면서도 말이야.”

“내 속을 더 긁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더 듣고 싶지 않아지기 전에.”

에이브는 버벅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아주 잘난 듯이 쏘아대던 놈이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니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네가 이렇게 된 건 나 때문이야.”

“잘 아시네요?”

“아니, 쓰러진 거 말고. 선택받은 자가 된 것 말이야.”

귓가에 스며든 말에 사고가 정지했다.

지금 저놈이 뭐라고 한 거지?

이해가 될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서서히 돌기 시작하는 머리로 겨우겨우 에이브의 말을 받아들인 나는 레이프가 있는 것도 잊고 물음을 던졌다.

“그럼 저 병…, 아니 뭣같은 시스템도 당신 짓이에요?”

“시스템?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로 인해 받은 영향 중 하나일 거야.”

[주의! 페널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에이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고창이 떴다.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였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시스템은 내가 모르는 이 세계의 이면에 접근하려 하면 경고를 했다.

마치 네가 알아선 안 된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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