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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을 켜지 마세요 (19)화 (19/122)

제19화. 4장. 여주인공을 찾아서 (2)

“신경 안 썼는데요.”

“다 안다.”

알긴 뭘 알아?

“어련하시겠어요.”

무심한 얼굴이 묘하게 흐뭇하게 보이는 건 내 착각이길 바랄 뿐이다.

“데스티니는 어디에 있지?”

심란한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날아드는 질문은 조금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잠시만요.”

나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마법의 바이올린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참 징글징글해요.

“세이딘, 그렇게 싫어하는 티 내면 슬픈데.”

이런, 잘 안 숨겨진 모양이네.

나는 레이프가 과장되게 상처받은 척하는 걸 무시하고 단테에게 건넸다.

“자요.”

곧장 받을 줄 알았던 단테는 손조차 내밀지 않았다. 표정이 거의 없는 눈동자에 결심 비슷한 무언가가 스쳐 가는 듯하더니 마침내 데스티니를 받았다. 유리 세공품을 다루는 듯한 손길이 나와 무척 상반됐다.

단테는 데스티니를 받은 그 상태로 한참 지나서야 겨우 입을 달싹였다.

“……아무 일도 없어.”

“고작 그 한마디 하려고 그렇게 데스티니 노래를 부른 거예요?”

“그럴 리가. 조금 놀랐을 뿐이다. 희대의 대마법사의 바이올린이니 선택받은 자 외의 인간을 겨냥한 마법 정도는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이런, 그 생각을 못 했네.”

그런 건 아쉬워하지 마, 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담담하게 대꾸한 단테는 가볍게 바이올린을 쓸었다.

별것 아닌 동작에 그의 전신에는 옅은 은빛이 감돌았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음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 것은 빌어먹을 놈의 바이올린 때문이 분명했다.

한참 동안 단테의 주위를 감싼 빛이 서서히 안개처럼 흩어졌다. 줄곧 데스티니를 응시했던 푸른 시선이 멈춘 시간이 움직이듯 천천히 깜박였다.

“흥미롭군.”

단테가 레이프의 광신도라는 건 알았으니 단테의 감탄은 예상 내의 반응이어서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보다 담백한 태도여서 당황스러웠지.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마나가 조금도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 좀….”

내 말이 조금도 들리지 않는지, 단테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채로 중얼거렸다.

“역시 대마법사 레이프 유클리드. 마나가 없는데 마법을 구현하는 바이올린이라니. 전부 위대하군. 평생을 들여서라도 해체하고 싶을 정도야.”

“세이딘, 들었어? 날 해체한대! 세상에, 무서워라!”

데스티니를 향해 이채를 넘어선 광기를 드러내는 단테와 꺅꺅대며 무섭다고 호들갑 떠는 당사자 레이프는 냉탕과 열탕처럼 온도 차가 극명했다.

그리고 그걸 전부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나는 피로만 차곡차곡 모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한숨 섞인 불만을 터뜨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흉흉한 말 하지 말아요.”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을 뿐이다만.”

“너무 솔직하면 독이 될 수 있고요.”

“독?”

표정이 미미한 단테의 입가에 확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정도의 독이라면 귀엽지.”

단숨에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방금 전 대사는 단테의 연애 이벤트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호감도가 어느 정도 쌓여야 볼 수 있는.

‘대체 왜 여기서 이벤트 대사가 나와? 그냥 평범한 대꾸였는데?’

황당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이해를 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이를 모르는 단테는 혼잣말을 이어 갔다.

“독에 장기가 다 타들어 가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야.”

레이프 다음으로 나온 첫 대마법사는 마법사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단테를 배척했는데, 그중 하나가 독살이었다.

‘하나도 안 궁금해!’

나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싶었다.

스크린 너머로 게임을 하고 있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현실이 된 지금은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단테.”

나와 시선이 마주친 단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줄곧 이성에게 잡혀 있던 본심이 입을 탈주했다.

“조건만큼만 해요, 우리.”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두 남자의 시선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지만, 이때다 싶었는지 한번 터진 입은 신나게 돌아다니기 바빴다.

“사제지간이라고 해도 목적 때문에 뭉친 것뿐이잖아요. 과거사까진 알 필요 없다고 보는데.”

“지금껏 몰랐는데 우리 아가씨는 의외로 단호한 면도 있구나?”

괜히 호들갑을 떨며 꺅꺅대는 레이프가 거슬렸지만, 그보다도 거슬린 건 알림음이었다.

[단테의 호감도가 증가했습니다! (150→160)]

이놈들의 감정선이 미쳐 돌아간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이젠 놀랄 일도 아니었다.

대체 어떤 심리로 호감을 갖게 된 건지 들어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팔짱을 끼자, 단테가 한결같은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게 호기심조차 갖지 않는 사람을 본 건 처음이다.”

얼씨구.

“그리고… 나쁘지 않군.”

그러시겠죠.

“고맙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귀를 의심하는 것이 무색하게 단테의 얼굴에 봄 같은 미소가 번졌다.

“쟤 웃을 줄도 아네.”

‘그러게.’

웃는 얼굴을 종종 보긴 했지만, 저렇게 순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네 생각은 잘 알았다, 세이딘 그웨니르.”

눈을 곱게 접은 단테가 말했다. 멋대로 호감을 갖고 그런 말을 해 봐야 썩 긍정적으로 들리진 않았다.

“앞으로는 선을 잘 지키도록 하지. 그 경계가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지만 말이야.”

단테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짙어지면서 단숨에 도발적으로 바뀌었다.

‘아, 망했다.’

멋대로 승부욕을 불태우는 푸른 눈동자를 보니 착잡해졌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왜 날 멋대로 여주인공으로 대하는 건지.

‘그 와중에 왜 저렇게 잘생겼어?’

그러면서도 생각과 분리된 마음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공략캐의 화사한 미소에 두근거리고 있었다.

“너무하네, 세이딘. 나한테는 그런 반응 잘 보이지 않더니.”

나는 레이프를 살짝 흘겨보았다. 부러워할 걸 부러워해라, 좀.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겠다는 생각에 미친 나는 잊혀졌던 화제를 심폐소생시켰다.

“뭐, 그렇다고 해 두고요. 그래서 뭐 좀 알아냈어요?”

“데스티니는 완벽한 바이올린이다.”

아, 네. 그러시겠죠.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마나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지.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겠나?”

“마법 외의 힘이 개입되었다?”

단테는 대답 대신 푸른 눈을 예쁘게 접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훈련을 훌륭하게 마친 개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호감도가 안 올라서 다행이네.’

기분은 나빴지만 거슬리는 알림음과 시스템창보다는 훨씬 나았다.

스스로를 도닥이는 한편, 단테는 흐뭇한 표정을 추스르고 설명을 이었다.

“네 말대로야.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마나의 반응을 가지고 그 정도 영향을 끼치는 마법이 구현된다는 것은 만든 자의 역량이 뛰어나거나 혹은 그 외의 힘을 사용한 경우다. 데스티니의 경우는 신의 권능이 깃들었으니 두 가지 경우에 다 포함이 된다 보면 되겠군.”

나야 이미 게임을 통해 알고 있던 내용이었던 데다, 짐작이라고는 해도 단테 또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별다른 수확은 없네요.”

처음부터 진전을 바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도 시큰둥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

하지만 단테는 칼같이 단호하게 내 말을 부정했다.

“지금껏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것이 사실로 증명됐다.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야.”

어련하시겠어요.

나는 불만스럽게 입을 비죽거렸다.

“그건 당신이 보기에 그런 거죠. 저같이 마법이나 학문에 문외한인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게 보이지 않다니 유감스럽군.”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만 있다면 모두가 마법사를 했겠죠.”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원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그 외에 다른 특이점은 없는 거죠?”

“한 가지 있다.”

“뭔데요?”

“알 수 없는 힘이 데스티니와 연결된 무언가를 차단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쳤다.

‘여주인공이야!’

게임에서 데스티니와 연결된 ‘무언가’는 여주인공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차단되었다고 한다면 더욱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였어.’

동시에 납득이 갔다.

게임상의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을 비추지 않는 여주인공과 차단된 위치.

정황만 가지고 볼 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잡혀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납치당했구나!!’

하루라도 빨리 여주인공과 바톤 터치를 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갈 길이 먼지.

나는 착잡한 마음을 담아 신나게 마른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세이딘…?”

레이프가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갑자기 시큰둥했던 애가 하얗게 질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고 있으니 놀랄 법도 했다.

계속 날아드는 두 남자의 놀란 시선을 무시할 수만 없었던 나는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고 물었다.

“단테, 그 힘이 뭔지 알 수 있어요?”

“왜 그러지?”

“어쩌면 거기에 제가 바라는 것이 있을지도 몰라요.”

“선택받은 자일지도 모르는 사람 말인가?”

나는 강한 의지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따라붙는 레이프의 시선이 끈질겼지만 무시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여주인공이 어디에 있는지였다.

“정확한 위치를 알기는 어렵다.”

단테는 내가 진지한 만큼 고민한 대답을 내놓았다.

“대략적으로는요?”

“그 정도라면 알아낼 수 있을 듯하다.”

“그럼 상관없어요.”

적든 많든 기회가 있으면 잡아 두는 게 좋지.

특히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게임 시스템이 있는 상황이면 더욱 그렇고.

“그래, 알겠다.”

단테의 대답은 간결했다.

“나도 마침 그 힘에 대해 흥미가 있었어. 게다가 세이딘, 네 말대로 그 대상이 데스티니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라면 더욱 지나칠 수 없지. 앞으로의 발견이 기대되는군.”

항상 무심했던 푸른 눈동자가 빛났다.

덧붙인 이유는 짧지 못했지만 어찌 됐건 서로의 이해가 일치했다니 참 다행이었다.

―또로롱.

분명 그랬을 텐데.

[시크릿 이벤트 ― 고대 대마법사의 봉인(2)]

데스티니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힘을 조사해 봅시다.

▷보상 : 단테의 호감도 100 증가 / 데스티니의 호감도 150 증가 / 진실의 거울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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