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외전 4_후계자 (2)
티르는 그의 말에 대답하듯 짧게 짖었다.
기척을 숨기고 접근했을 때 마주쳤던 사나운 눈빛은 어느새 순하게 풀려 있었다.
러셀은 칼리아에 이어 티르의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고 나서야 인사를 끝낼 수 있었다.
“보아하니 산책을 핑계로 황궁 구경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내가 함께 가 주마.”
“폐하께서 직접이요?”
“나보다 황궁을 잘 알고 있는 자는 없으니 좋은 안내역이 될 거다.”
씩 웃으며 장담한 러셀은 칼리아를 향해 남은 한 팔을 벌렸다. 안기라는 뜻이었다.
만약 이대로 황제에게 안겨 황궁을 활보한다면 온갖 시선들이 들러붙을 것이 자명했다.
아네타를 닮아 쓸데없이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싫어하는 칼리아는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황제의 말을 거절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건 통치자로서 하는 명령이 아닌 당숙으로서 하는 제안이었다.
그 차이를 아는 칼리아는 고민 끝에 거절하려고 했다.
러셀이 겨우 이런 일에 불쾌해할 리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칼리아의 거절보다 러셀의 말이 더 빨랐다.
“황궁을 다 돌아보려면 그 짧은 다리로는 무리일 거다.”
그는 퍽 장난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
칼리아는 말없이 러셀과 자신의 다리를 번갈아 보았다. 조금 분하지만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그의 보폭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칼리아는 결국 러셀의 제안에 따르기 위해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말에 따르면 황궁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위안 삼은 채였다.
몇 번 와 본 적 없는 곳에 왜 이리도 마음이 가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러셀은 칼리아의 승낙을 눈치채곤 마음이 변할세라 아이의 몸을 안아 올렸다.
칼리아가 거절하려 했다는 걸 알면서도 선수를 친 이유는 하나였다.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니까.
러셀은 양팔에 안겨 있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엘피스는 습관적으로 칼리아의 손을 잡았고, 칼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그 손을 잡아주었다.
한 배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성격은 달랐다.
칼리아가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면, 엘피스는 제 누이의 웃음까지 다 가져간 양 웃고 다녔다.
그러나 러셀은 칼리아에게 아이다움과 웃음을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하다못해 거푸집에 찍어 내는 물건도 저마다의 차이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아이라고 모두 같을 수는 없었다.
러셀에게 있어 칼리아와 엘피스는 그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조카들이었다.
어쩌다 그 징그러운 녀석들 사이에서 이런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태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러셀은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웃고 다니던 칼로스의 얼굴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잘 따라오거라, 티르.”
두 아이를 안아 들었음에도 러셀의 움직임에선 조금의 흐트러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티르는 당부대로 부지런히 그 뒤를 따랐고, 러셀은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이곳저곳을 보여 주었다.
그중에는 칼로스가 딱 칼리아만 했을 때 발견한 숨겨진 장소도 있었다.
그때의 일을 말해 주자, 아이들은 눈을 빛냈다. 특히 엘피스는 태산처럼 커 보이기만 했던 제 아버지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러셀이 아이들을 내려준 것은 황궁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정원에 다다랐을 때였다.
“누님, 여기 보세요. 처음 보는 꽃이 가득 피어 있어요.”
“그러네. 그것도 진귀한 꽃만.”
오직 황족만 출입할 수 있는 정원에 발을 들인 아이들은 조화롭게 관리된 꽃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특히 칼리아는 도감에서나 보았던 꽃들을 보고 흥미를 보이는 듯했다.
러셀은 뒤에 서서 꽃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날이 따뜻해져서 그런지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제법 얇았다. 하늘하늘한 옷감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모습이 마치 나비의 날갯짓 같았다.
주위에 꽃이 깔려 있기 때문일까. 그는 답지 않게 제법 한가로운 감상에 젖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구경을 마친 아이들이 곁으로 다가오자, 러셀이 입을 열었다.
“구경은 끝났나?”
“네.”
“그럼 슬슬 마지막 장소로 가지.”
러셀은 다시 아이들을 안아 들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다른 곳보다 경비가 삼엄한 곳이었다.
기사들이 무장까지 하고 서서 지키고 있는 곳이라면 뻔했다. 칼리아는 러셀이 자신들을 데리고 온 곳이 어디인지 어렴풋이 눈치챘다.
“여기가 국고인가요?”
“그래.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황제의 예고 없는 등장에 국고를 지키고 있던 이들이 놀라 비켜섰다.
본래라면 철저한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출입할 수 있을 테지만, 당연하게도 러셀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이는 없었다.
“뭐든 가지고 싶은 게 있다면 주마. 어디 골라 보거라.”
놀란 것은 국고 내부를 관리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황제가 친히 국고까지 걸음한 것으로도 모자라, 조카를 데리고 마치 상점에라도 온 듯 행동하는 모습에 그들은 가까스로 비명을 삼켰다.
무엇이든 골라보라는 말에도 칼리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눈앞에 펼쳐진 휘황찬란한 광경은 분명 대단했지만, 딱히 욕심이 나지는 않았다.
그나마 엘피스가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만지작거렸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호기심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는 러셀은 헛웃음을 지으며 손수 아이들에게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적당한 것을 찾아 발을 떼었다.
“이게 뭐예요? 깨져 있는데.”
그때, 엘피스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입을 열었다. 아이의 손에는 뚜껑이 열린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깨져 있다고?”
국고에 그런 물건이 있을 리 없을 텐데. 칼리아는 동생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것이 무엇인지 살폈다.
엘피스의 말대로 목걸이 팬던트에 박힌 보석들이 엉망으로 깨져 있었다.
“이거 설마…….”
칼리아는 곧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끝을 흐리자, 러셀이 뒤를 돌아보았다. 눈에 들어온 건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물건이었다.
“통제의 영광이로군.”
러셀이 입을 떼기 무섭게, 티르가 통제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칼리아는 티르를 진정시키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으며 동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엘피. 그거 내려 놔. 지지야.”
“네, 누님.”
엘피스는 천사 같이 웃으며 탁, 소리가 날 만큼 거칠게 상자를 닫았다.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손길도 그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러셀은 불결한 걸 만졌다는 듯 손수건으로 손을 닦는 엘피스를 보며 가까스로 웃음을 삼켰다.
아이는 대체로 순한 편이었지만, 가끔 저리 성깔이 나오는 걸 보면 그 피가 어디 가진 않는 모양이었다.
“통제의 영광과 그 주인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군. 후작과 공작이 벌써부터 그런 걸 말해 주었을 리 없을 텐데.”
아네타가 제 손으로 독을 마셨다는 말을 어린 자식들에게 할 리가 없었다.
러셀의 예상대로 아이들에게 통제에 대해 알려 준 사람은 다른 이였다.
“로펠락 후작 각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엘피스는 곁에 있다가 함께 들었고요.”
칼리아는 제국의 역사나 전술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고, 종종 저택에 놀러오는 테르사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 제법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곤 했다.
많은 이들이 테르사가 몸만 쓸 줄 안다고 생각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녀와 같은 전장에 서 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그 말을 부정할 것이다.
영웅이라는 이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뛰어난 전술가이기도 한 테르사는 머리 쓰는 일에 능했고, 한 치의 보탬도 덜어냄도 없는 사실들로 칼리아의 지식욕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중 하나가 통제의 영광과 그 주인에 관련된 사건들이었다.
부모가 당한 일을 알고 있는 자식 입장에서는 통제의 존재가 달갑게 느껴질 리 만무했다.
결국 러셀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것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국고를 나서서 향한 곳은 황제궁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자신의 침실로 데려가 동화책을 건네준 뒤, 집무실로 향했다.
서류를 가지고 오기 위해서였다.
“얌전히 잘 있었…….”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문을 열고 들어온 러셀은 하던 말을 멈추었다.
분명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칼리아가 엘피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었는데, 돌아와 보니 두 아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서류를 내려놓은 러셀은 소파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잠든 남매에게 다가갔다.
그는 칼리아의 손에 들린 책을 빼낸 뒤, 조심스럽게 한 아이씩 침대로 옮겼다.
“으응…….”
엘피스가 잠투정을 하며 뒤척였다. 러셀은 하는 수 없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자비의 영광을 풀고 엘피스의 곁에 몸을 뉘었다.
몸을 붙인 채 일정한 박자로 배를 다독여 주자, 아이는 언제 칭얼거렸냐는 듯 곤히 잠들었다.
이제 그만 몸을 일으켜도 된다는 걸 알았지만, 러셀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잠기운이 옮겨붙은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워진 까닭이었다.
다행히 오늘 처리해야 할 서류는 급한 것이 아니었다.
러셀은 이대로 잠깐 눈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어린아이 특유의 냄새와 높은 체온은 예민한 그를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한 시간만 눈을 붙여야겠다는 그의 계획은 일찌감치 틀어졌다.
그가 오랜만에 꽃잠을 자는 사이, 먼저 잠에서 깬 사람은 칼리아였다.
눈을 부비며 일어난 칼리아는 낯선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곧 이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아.”
저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뱉은 칼리아는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곁에서 자고 있는 엘피스와 러셀을 발견한 탓이었다.
칼리아가 상체를 일으키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티르가 기척을 읽고 눈을 떴다.
노란빛을 띠는 금안과 시선이 마주친 칼리아는 침대 밑으로 내려와 티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 자.”
최대한 목소리를 죽인 채 속삭이자, 티르는 작은 주인에게 복종하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몸을 일으킨 칼리아는 방 안의 풍경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은 러셀이 침대 옆 협탁에 기대어 두었던 자비의 영광이었다.
평소라면 금방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검집의 중앙에 박힌 보석이 반짝인 것도 같았다.
칼리아는 그 빛에 홀린 사람처럼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을 잡기 위해 손을 뻗은 것은 일종의 충동이었다.
차가운 몸체를 움켜쥐고 나서야 칼리아는 제 행동을 자각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칼리아는 손 안의 것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과 동시에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자비는 칼리아의 심장박동에 맞추어 공기를 울렸다. 마치 심장이 또 하나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몸 안에서 낯선 고동이 느껴졌다.
공명이었다.
“칼리아!”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러셀은 그것을 느끼곤 물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경악 어린 외침과 동시에 황제의 침실에서 일어난 소란을 눈치채고 그림자들이 들이닥쳤다.
얼굴을 가린 그들은 사태 파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황제의 앞을 막아섰다. 그림자들이 칼리아를 경계하듯 서 있자, 어느새 눈을 뜬 티르가 그 앞을 가로막고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하지만 칼리아는 그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물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에게 손대지 말도록.”
러셀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며 명령했다. 주저하던 그림자들은 결국 황제의 명에 따라 뒤로 물러났다.
“폐, 폐하.”
“칼리아. 그대로 가만히 있거라.”
러셀은 당황한 표정의 칼리아를 보고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어른인 자신마저 동요하면 아이는 더 불안해할 테니까.
머리가 차게 식는 것과 동시에 눈을 감은 그는 금방 자비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일순간 러셀의 얼굴이 놀라움에 굳어졌다, 곧 부드럽게 풀렸다.
“자비. 네 의도는 알았으니 그쯤 해 둬.”
러셀이 일갈하기 무섭게 자비의 공명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몸을 사로잡았던 기이한 힘이 사라지자, 칼리아는 자비를 떨어뜨린 채로 안절부절못했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칼리아는 그리 생각하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귓가를 파고든 것은 성난 목소리가 아닌, 안도의 한숨이었다.
“이런 것까지 네 어미를 똑 닮았구나. 한 치도 짐작할 수가 없어.”
러셀은 자비가 전해 온 의사를 곱씹었다. 믿을 수 없는 없지만 현실이었다. 인정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껍기까지 했다.
물론 이런 방법은 아니어야 했겠지만.
“록. 지금 당장 발티모어 공작저로 가서 칼로스와 후작을 불러오도록. 나머지는 물러가라.”
러셀의 명에 물러나 있던 그림자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목소리도 내지 않은 채였다.
“외가든 친가든 당대의 황제와 피가 섞여 있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칼리아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러셀을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러셀은 그 혼란스러운 시선을 느끼고 나서야 아차하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칼리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거라.”
러셀은 칼리아를 무릎에 앉힌 채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러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칼리아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 갔다.
설명의 끝은 제안이었다. 칼리아가 경악하며 그를 보았지만, 러셀은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그사이 황제의 부름을 받은 아네타와 칼로스가 황궁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노크할 정신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칼리아! 엘피스!”
혼란에 빠져 있던 칼리아는 아네타의 목소리를 듣는 즉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러셀의 품에서 벗어나 곧장 아네타의 품에 안긴 칼리아는 그제야 잔존하던 불안감을 떨쳐 내고 안심할 수 있었다.
아네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제게 매달리듯 안겨오는 칼리아를 꼭 끌어안았다.
그사이 칼로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엘피스를 찾았다.
그러다 발견한 것은 이불에 파묻힌 채 혼자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엘피스의 모습이었다.
칼로스는 아이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폐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본론부터 말하자면, 칼리아가 자비의 선택을 받았다.”
“칼리아가 무슨 수로 자비의……?”
충격적인 말로 서두를 뗀 러셀은 앞서 칼리아에게 했던 것처럼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칼리아가 홀리듯 자비를 만진 것은 아네타가 습격 때 관통을 잡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 말은 즉, 영광이 의도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아네타는 이적을 통해 일시적으로 힘을 빌린 것이었고, 칼리아는 영광으로부터 다음 대의 주인으로 선택을 받은 것이었다.
“자비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지. 다음 대의 황제로 지목된 거다. 그래서 칼리아에게 제안했지. 내 뒤를 잇지 않겠냐고.”
“칼리아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강요할 생각이신가요?”
“아니.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맹세하지.”
칼리아의 의사를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말에 아네타와 칼로스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기엔 일렀다.
칼리아와 제국의 미래가 달린 선택이 남아있었으니까.
다행히 러셀은 지금 당장 선택하라며 칼리아를 닦달하지 않았다.
가벼운 문제가 아닌 만큼 천천히 잘 생각해 보라는 말만 건넨 뒤 아이를 돌려보낼 뿐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칼리아가 자신의 선택을 알린 것은 그로부터 수일이 흐른 뒤였다.
아이는 결국 황제가 되겠다는 선택을 했고, 아네타와 칼로스는 그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 소식이 제국 전역에 알려진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러셀은 칼리아가 자비의 선택을 받아 다음 대의 황제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했다.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