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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 재결합기-108화 (108/122)

108화. 재결합 (5)

아네타는 크리스와 버논이 돌아가고 나서야 받은 선물을 풀어 보았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케이스를 열자, 나오는 것은 머리 장식이었다.

황금을 세공해서 틀과 잎을 만든 머리 장식에는 마퀴즈 컷의 작은 다이아몬드와 진주가 장식되어 있었다.

아네타는 겹잎의 긴 나뭇잎이 휘어진 모양의 그것을 바라보았다.

화이트 다이아몬드의 의미는 고귀, 불변, 영원한 사랑. 선물한 사람의 의도는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네타는 크리스의 선물을 결혼식 때 착용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손끝으로 표면을 더듬었다.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아네타, 나 왔어.”

그때 마침 외출 중이던 칼로스가 돌아왔다.

안으로 들어선 그는 인사를 건네다 눈에 들어온 물건을 보며 물었다.

“그건 뭐야?”

그가 서 있는 쪽에선 케이스 안에 든 내용물이 보이지 않았다.

아네타는 들고 있던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며 대꾸했다.

“크리스가 준 선물이야. 돌려준 돈으로 하고 싶었던 걸 하라고 했더니, 모조리 내 선물 사는 데에 쓴 것 같아. 정말 못 말린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은 그녀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큰일이네.”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와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칼로스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가?”

“당신이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인데, 자꾸 질투가 나.”

“크리스를 상대로 질투하는 거야?”

“내가 말 안 했던가? 데번 남작이 내 최대의 라이벌이야.”

어떤 면에선 세르세 라폴리보다 더 위협적이지. 뒷말을 삼킨 칼로스는 투정을 부리듯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남작에게 약해도 너무 약해.”

“걱정 마. 난 당신한테도 약해.”

“……정말 못 당하겠다니까.”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태연히 꺼낸 말에 칼로스는 헛기침을 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져 그녀의 눈을 마주볼 수 없었다.

“그 말, 전에도 들은 것 같은데. 어차피 이길 생각도 없잖아, 당신.”

“그건 그렇지.”

칼로스는 순순히 긍정했다. 여전히 눈을 맞추지 못하는 채였다. 그걸 보고 아네타는 그가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질투할 만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네.”

“그게 무슨 말이야?”

역시나 칼로스는 언제 시선을 피했냐는 듯 곧장 반응했다. 휙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춘 그는 눈빛으로 대답을 닦달했다.

“선물이 하나 더 있거든.”

“누가 뭘 또 줬어?”

“아직 받은 건 아니지만, 세르세가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주겠대.”

“라폴리 자작이?”

“응. 친구로서 해 주겠다는데 계속 거절할 수는 없어서 받겠다고 했어.”

아네타의 긍정에 칼로스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아네타가 고백을 듣고도 자신에게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세르세의 드레스를 입고 입장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판단이 서자, 세르세가 아네타에게 드레스를 선물하는 건 그녀를 포기하기로 한 것과 같은 의미임을 절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만들어 주겠다고 나선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웨딩드레스였으니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칼로스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세르세를 향한 예의였으니까.

“사실 나도 당신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는데.”

칼로스는 아네타가 오기 전, 미리 가져다 놓았던 물건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신도?”

아네타는 놀라면서도 가슴 한편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요즘처럼 자신이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절감한 적이 없었다.

“가지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 줘.”

칼로스는 그대로 제 책상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의자 안쪽에 숨겨 두었던 것을 꺼내 든 그는 곧장 아네타의 앞으로 다가와 상자를 내밀었다.

“이거야.”

“지금 열어 봐도 돼?”

“열어 봐.”

아네타는 그에게서 건네받은 상자를 감싼 리본을 풀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던 매끄러운 감촉이 떠나기 무섭게 뚜껑을 열자, 흰빛으로 반들거리는 새틴 천이 보였다.

곁에 서 있는 칼로스는 긴장이 되는지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천에 가려진 내용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네타는 형태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손을 뻗어 천을 젖히자 금빛의 웨딩 슈즈가 드러났다.

금실을 짜 만든 레이스가 발을 감싸는 형태인 구두는 앞코가 트여 있었고, 발등엔 화려한 장식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구두의 진가를 보여 주는 것은 앞이 아닌 뒤였다. 금빛 금속으로 만든 얇은 굽을 휘감으며 올라오는 덩굴 모양 장식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섬세했다.

“마음에 들어?”

“응.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아네타는 진심을 담아 대꾸했다.

“다행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그제야 긴장을 푼 칼로스는 아네타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스스럼없이 몸을 낮춘 그는 곧 아네타의 발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친 손은 손쉽게 가느다란 발목을 감싸 쥐었다.

아네타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고 있던 구두를 벗기는 칼로스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칼로스는 벗겨 낸 구두를 한쪽에 가지런히 내려놓은 뒤, 그녀의 허벅지 위에 놓여 있던 상자에서 웨딩 슈즈 한쪽을 꺼냈다.

구두를 신겨 주는 일련의 과정은 쉽게 깨어질 것을 만지듯 조심스러웠다.

구두는 발에 꼭 맞았다. 칼로스는 하얀 발등 위에서 빛나는 금빛 구두를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더 정확히는 만족스럽다 못해 목이 탔지만, 능숙하게 갈증을 삭였다.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면 멀리 도망가 버린다고 하던데.”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아네타는 앉은 채로 가볍게 발을 구르며 농담조로 말했다.

기겁할 거라고 생각했던 칼로스는 의외로 그 말을 듣고도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그럼 그 말도 알겠네. 좋은 신발은 주인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말. 그 구두는 분명 당신을 내 곁으로 데리고 와 줄 거야. 나보다 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사람은 없으니까.”

“자신 있나 보네.”

“없었으면 감히 당신 곁에 머물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

칼로스는 그녀의 드러난 발끝을 어루만졌다. 무엇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는 듯 애정을 담은 손길이었다.

“나는 매 순간 당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전할 거야. 그럼 그 구두를 신은 당신이 내 곁을 떠날 일은 없겠지.”

이윽고 그는 고개를 숙여 잡고 있던 그녀의 발등 위로 입을 맞추었다.

그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맹세하듯 속삭였다.

“사랑해, 아네타. 내 숨이 멎는 한이 있어도, 당신을 향한 사랑이 끝나는 일은 없을 거야.”

***

마침내 기다리던 날이 밝았다. 사용인 몇 명만을 대동한 채 아침 일찍 공작저로 온 아네타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세르세의 드레스와 크리스의 머리 장식, 칼로스의 웨딩 슈즈는 일부러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아네타가 선물을 준 세 사람이 자신 몰래 작당이라도 한 게 아닐까 의심하는 사이, 이사벨은 뒤에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아네타는 쉬이 눈물을 거두지 못하는 이사벨을 안아 주려 했지만, 드레스가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지 오래였다.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각하.”

눈물 자국으로 얼룩덜룩해진 손수건을 꾹 쥔 채로 이사벨은 말했다.

“이전에도 느낀 거지만, 언제 이렇게 커서 혼인을 하시는지…….”

목이 메이는지, 목소리 끝이 갈라진 채 들려왔다.

이사벨은 아네타와 칼로스의 재결합을 기뻐하면서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그녀를 걱정했다. 그것이 무엇에서 기인된 감정인지 모를 수 없었다.

아네타는 이사벨이 자신을 보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이사벨. 이제 내 나이도 곧 스물여섯이고, 온갖 수난을 겪어 온 만큼 더 단단해졌어. 더는 그때 그 방황하던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때의 일을 잊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이사벨은 고개를 저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슴은 다른 말을 하더군요. 각하께서 훗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시고, 지금보다 더 나이가 많아진다고 해도 당신은 제게 있어 늘 제 손길이 필요한 아이일 겁니다. 제가 눈을 감는 날까지 말입니다.”

이사벨은 여전히 눈물이 고인 채였지만, 한 치의 흐릿함 없이 또렷한 눈빛으로 아네타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각하를 걱정하고, 또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이 제 삶에 남은 마지막 낙입니다. 아무리 각하라고 해도 제게서 그것을 앗아가실 수는 없습니다.”

부모라고 해서 모두가 부성애나 모성애를 가진 게 아닌 것처럼, 꼭 제 배 아파서 낳은 자식에게만 그와 같은 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이사벨은 자기 자신보다 아네타가 더 소중했고, 지금껏 그녀를 제 자식처럼 돌봐 왔다.

아네타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결국 무어라 말을 더하는 것이 아닌, 이사벨을 품에 안아 주는 것을 택했다.

이전엔 그저 크게만 보이던, 어머니 같은 존재는 무리 없이 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사벨은 여전히 그녀에게 하해와 같이 크고 깊은 존재였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

울컥하는 감정에 아네타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를 본 이사벨은 주름진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눈물은 제가 각하 몫까지 다 흘리겠습니다. 그러니 각하는 울지 마십시오. 좋은 날이지 않습니까.”

이사벨은 앞으로 그녀의 인생에 행복한 일만 가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웃어 달라는 다정한 어름에 아네타는 눈물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입장할 시간이 되었다.

공작가의 시녀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왔다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대자, 이사벨은 아네타의 등을 밀어주었다.

“이제 그만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공작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분이 각하의 행복이니, 가서 두 손으로 단단히 붙들고 다시는 놓치지 마세요.”

아네타는 이사벨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을 기다리는 시녀에게로 가기 위해 걸음을 떼었다.

그러다 문 밖으로 나서기까지 딱 한 걸음 남았을 때, 잠시 멈추어 서서 인사를 남긴 뒤 멀어졌다.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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