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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 재결합기-43화 (43/122)

43화. 사냥 (7)

힘이 필요하느냐는 물음에 긍정하는 순간, 아네타는 투명한 결계와 같은 무언가가 제 몸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놀라 한 걸음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그녀를 찾아든 것은 명백한 거부감, 그리고 이 정체불명의 결계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확신이었다.

아네타는 자연히 결계의 주인이라 여겨지는 에레즈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그러자 불현듯 찾아온 확신이 착각이 아님을 일러 주듯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희미하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설마 이 목걸이가 이적의 영광이었나?’

아네타는 떠오르는 가정 하나에 헛숨을 들이켰다. 목걸이의 박동에 맞추어 그녀의 가슴도 둥둥 울렸다.

굳이 다른 가정을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지금의 기이한 현상을 설명할 길은 그뿐이었다.

목걸이에 손을 올리자, 박동은 더욱 거세졌다.

증거는 충분했다.

모든 영광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나, 영광의 능력이 발현되는 조건은 주인과의 접촉이다.

둘, 영광은 가문 내에 존재하는 아주 오래된 물건이다.

지금 그녀가 목에 걸고 있는 엘레나의 목걸이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아네타는 눈앞에 드리워진 결계를 바라보았다.

결계의 주인이 에레즈라면 본능적인 거부감을 자아내는 이것은 필히 통제의 영광이 지닌 능력일 것이다.

‘깨트려야 해. 깨트릴 수 있어.’

모든 영광을 무력화시키는 통제의 능력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 그리 말했고, 아네타는 저도 모르게 결계를 깨트리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 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다루었던 물건의 사용법을 떠올리듯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행한 일이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무의식적 행동은 당장 눈앞의 현실에 영향을 끼쳤다.

시작은 결계의 막이 진동하듯 흔들리는 것부터였다.

눈꽃이 내려앉듯 실금이 번지던 결계는 이내 산산이 조각나 머리 위로 빛나는 파편을 흩뿌리며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눈에만 비치는 것임을 증명하듯 어느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튀어 오른 파편에 상처 입는 일도 없었다.

아네타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였다. 제게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결계를 깨트린 후 몸을 내리누르던 중압에서 벗어났지만, 그뿐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건 자신을 둘러싼 결계뿐이었고, 그것을 깨트린 후에도 다른 이들은 영광의 능력을 되찾지 못했다.

아네타는 그것이 제 능력의 한계임을 깨달았다.

‘능력에 대한 실마리를 잡기도 전에 한계부터 깨닫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네타는 안타까움에 탄식하며 혀를 찼다.

그때였다.

챙! 챙!

유독 날카로운 쇳소리가 연이어 귓가를 파고들었다. 파열음과 흡사한 이명에 어지러이 흩어졌던 정신을 다잡자, 동시에 두 개의 검을 막아 내고 있는 테르사가 보였다.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은 살수들이 악을 쓰며 검에 힘을 실었지만, 그에 맞서는 이는 보통 실력자가 아니었다.

테르사는 두 명을 상대로 검날을 맞댄 채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조금도 밀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테르사가 힘을 주어 살수들의 검을 쳐올리자, 그 반동으로 인해 등에 매고 있던 관통의 영광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영광은 주인의 허락 없이는 손을 댈 수 없는 존재. 테르사는 다시금 달려드는 적들에게 맞서기 위해 과감히 관통을 외면했다.

발치에 떨어진 관통에 시선이 붙들린 것은 오히려 아네타였다.

두 눈에 또렷이 박혀온 관통이 시선을 움켜쥐자, 불어온 바람을 타고 다시금 밀려든 목소리가 그녀를 충동질했다.

[관통을 잡아.]

하나하나 이유를 따지고 들 시간이 없었다. 아네타는 이제 본능에 몸을 내맡겼다.

힘을 원한다는 염원에 반응하여 나타나 주었으니, 그에 걸맞은 힘이 제게 깃들었으리라.

아네타는 그리 믿으며 혹시 몰라 챙겨 두었던 화병 조각 하나로 거치적거리는 드레스 단을 뜯어내고,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던졌다.

아네타가 맨발로 땅을 딛고 서자, 세르세의 얼굴에 의문이 번졌다. 그 의문이 경악으로 번지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잠깐, 아네타. 지금 뭐 하는…… 그쪽으로 가면 안 돼!”

“너까지 오면 더 위험해지니까 절대 따라오면 안 돼, 세르세.”

아네타는 당황하여 손 뻗는 세르세를 뒤로한 채 관통을 향해 내달렸다.

저도 모르게 올려다본 단상 위에서 칼로스가 경악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아네타는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거리가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관통과 이적은 더욱 거세게 공명했다.

역시 영광의 가주들을 노리는 게 맞는지, 아네타를 보는 즉시 방향을 튼 살수들은 테르사를 돕던 그림자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테르사의 곁으로 다가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네타가 관통을 잡기 위해 몸을 굽히는 사이, 그녀를 노리던 살수의 검을 쳐 날려 보낸 테르사는 당황한 낯빛을 하면서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네타, 무슨 일이야?”

테르사는 아네타의 돌발 행동을 힐난하지 않고, 등 뒤로 감춘 그녀에게 침착한 음성을 내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할게요, 테르사. 미안하지만 관통이랑 화살 좀 빌려주세요.”

테르사는 관통이 아네타의 말에 동의하듯 공명하고 있음을 주인으로서 느낄 수 있었다. 능력이 막히는 순간 빛을 잃었던 자줏빛 장식은 몸체가 그녀의 손 안에 들어가는 순간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영광이 주인이 아닌 타인에게 반응한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건 아네타였다.

테르사는 그림자들에게 눈짓해 잠시의 짬을 만들어 낸 뒤 가지고 있던 화살통을 거리낌 없이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아네타 너니까 빌려주는 거야. 믿고 있으니까. 알지?”

“네. 고마워요.”

테르사 로펠락이 알고 있는 아네타 아데나워는 이유 없이 괜한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다. 그러한 믿음하에 타인에게 영광을 빌려주는, 상당히 이례적인 선택을 한 테르사는 또다시 달려드는 살수의 검을 쳐 냈다.

“관통으로 뭘 하려고 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말고 어서 해.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관통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 잇따라 들려오자, 아네타는 가슴 한구석에 자리했던 불안을 떨쳐 내고 화살 하나를 빼어 들었다.

그사이 수차례에 걸친 공격 시도가 있었으나, 접근을 허하지 않는 테르사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히기 일쑤였다.

가장 우선시하며 보호해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황제다.

아네타는 떨리는 손으로 황제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을 향해 관통을 겨누었다.

아군을 꿰뚫지 않으려면 살수만이 몰려 있는 곳의 가장자리를 노려야 했다.

시위를 당기는 건 생각보다 많은 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네타는 그것이 관통의 배려가 아닐까 짐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력과 거리가 먼 그녀가 활시위를 제대로 당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리 던져서 맞추는 것에 능숙하다지만, 활을 쏘아 맞추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아네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화살의 끝머리를 노려보다, 시위를 놓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곧 수백 개로 불어나 허공을 갈랐다. 검은 새 떼가 날아들듯 허공을 수놓던 그것은 낮은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리꽂혔다.

날카롭게 벼려진 화살촉은 단번에 살수들의 살갗을 찔러들었다.

아네타는 꿰뚫린 신체를 붙들고 고통 어린 신음을 뱉어 내는 살수들을 보며 관통을 든 팔을 내렸다.

팔 힘이 모자란 탓인지, 화살은 아쉽게도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네타는 자신이 정말 관통의 능력을 발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놀란 채였다.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막상 이루어 내니 어안이 벙벙했다.

심증과 확증은 확연히 다른 감상을 안겨 주었고, 그것을 통감한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정말 대단한데!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진짜 발현될 줄이야!”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는 아네타의 주의를 끈 것은 테르사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그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넋을 잃었던 이들 역시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회장은 전과 다른 소란으로 가득 찼지만, 그에 굴하지 않은 테르사는 발치에 쓰러진 이를 걷어차며 입을 열었다.

“계속해. 네 앞은 내가 지킬 테니까.”

“알겠어요.”

능력의 발현으로 인해 살수들의 시선이 몰리자 공격을 쳐 내는 테르사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졌다.

그에 가세하듯 그림자들이 엄호를 하자 아네타는 한 번 더 화살을 쏠 수 있었다.

처음의 발현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아네타가 쏘아 올린 화살은 또 한 번 수백의 포물선을 그리며 적을 꿰뚫었다.

도무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광경에 경외를 품지 않는 귀족은 단 한 명뿐이었다.

에레즈 바우터. 그는 본격적인 대치가 이루어지기 전, 살수 한 명이 아네타가 속한 무리를 가리키는 것을 보곤 그들이 타깃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우연히 목격한 장면은 섣부른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지목된 이들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은 없었다.

아네타만 없앨 수 있다면, 곁에 있는 세르세나 테르사 따위는 어찌 되든 좋았다.

에레즈는 결국 황제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통제의 능력을 사용했다. 누구도 아네타를 보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에레즈는 아무런 능력도 없어야 할 아네타가 통제의 능력을 무시하고 능력을 발현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분노했다.

에레즈가 아네타를 보며 이를 득득 가는 때에, 죽음의 그림자는 그에게도 찾아들었다.

살수 중 하나가 뒤늦게 그를 발견한 것이다.

질투에 눈멀어 있던 에레즈는 거칠게 뻗어진 손에 의해 우악스레 머리채를 휘어 잡혔다.

그의 앞에 있던 귀족들은 다가오는 살수를 보고 기겁하며 몸을 피한 지 오래였다.

“악!”

타깃이 영광의 소유자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던 에레즈는 제게 무력을 행사해 온 이가 살수임을 확인하곤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에레즈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도 그때였다.

통제의 능력은 주인이 느끼는 극심한 공포에 밀려나 해제되었다.

혼비백산한 에레즈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일시적으로 봉인당했던 능력이 돌아오자, 귀신같이 변화를 감지한 러셀의 눈동자가 위험스레 번뜩였다.

단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러셀은 에레즈가 감춰 왔던 능력을 발현한 이유는 물론, 모든 정황에 대한 파악을 마쳤다.

그사이 살수의 손에 잡혀 있던 에레즈를 구한 사람은 귀족으로 분장해 있던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에레즈가 다치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살수를 상대했지만, 에레즈는 오히려 그 망설임 없는 대응 덕에 상처 하나 없이 구출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아쉬움 가득한 눈초리로 지켜보던 러셀은 황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네타의 예상치 못한 능력 발현에 이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했으니 이제 그만 상황을 마무리 지을 요량이었다.

“칼로스, 루이사. 기사들을 물려라. 나머지는 내가 처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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