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그리움의 조각 (1)
아네타가 수도로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엘레나의 방을 다시 꾸미는 일이었다.
그녀는 가구를 옮기는 일을 제외하고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텅 비어 있던 방을 손수 채워 나갔다.
사용인들은 주인의 기행을 입에 올리며 걱정하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일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엘레나의 유품이 있는 방에 출입이 허락된 사람은 이사벨이 유일했다.
이사벨은 이미 죽고 없는 이를 놓지 못하는 아네타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삭여야만 했다.
주인에게 무어라 간언할 수 없는 건 그녀가 어머니에게 애착을 가지게 될 때까지의 오랜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끝났네.”
마지막을 장식한 건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거울이었다.
아네타는 섬세한 양각을 더듬던 손을 거두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거울 속엔 어미의 손길을 받으며 웃던 아이도, 그 아이의 어리광을 받아 주던 여인도 보이지 않았다.
비추어지는 건 아이에서 여인이 된 그녀 하나뿐이었다.
스멀스멀 발끝을 타고 오르던 허망함이 빈 공간을 더욱 확연히 비추었다.
“초상화를 가지고 올까요?”
“부탁할게.”
행여 상하기라도 할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 둔 초상화는 거울 맞은편에 있는 벽에 걸렸다.
거울은 자연히 아까와 다른 모습을 비추었다.
아네타는 자신과 엘레나의 모습이 한데 담기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함께할 수 없다는 건 이리도 잔혹하고 비참하다.
처음부터 의도한 일이었지만 쓰린 속을 달랠 수 없었다.
“영지에 있던 방과 구도가 거의 흡사해서 다행이야.”
가까스로 시선을 돌린 아네타는 방 안의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여실히 느껴지는 빈자리가 그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찔러 왔다.
“어머니의 그림들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어머니가 머물던 공간을 그대로 재현했는데, 그녀와 그녀의 그림 자리만 텅 비었다.
그 사실이 못내 아쉽고 분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어머니의 목걸이를 되찾았다는 것이었다.
아네타는 돌아온 이후 한시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은 목걸이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목께로 손을 가져가니 보석이 박힌 팬던트가 만져졌다. 초상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아네타는 목걸이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덕분에 엘레나를 향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진 상태였다.
아네타는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공허함을 느꼈다. 뻥 뚫려 버린 그곳을 잠시라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이사벨. 마차를 준비해 줘. 갤러리로 갈 거야.”
“예.”
이사벨을 보낸 아네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을 보냈다.
못 박힌 듯 서 있던 그녀마저 문을 닫고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방 안을 채우는 것은 기묘한 침묵이었다.
일순간 그녀가 떠나간 자리의 공간이 기이하게 비틀렸다. 그 사이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온 빛은 곧장 초상화를 향해 쏘아졌다.
모든 것을 지워 버릴 듯 번뜩이던 빛이 사라진 자리엔 처음과 같은 침묵만이 덩그러니 남아 맴돌 뿐이었다.
***
“아네타.”
그녀를 온전히 이름으로만 부를 수 있는 사람 중 갤러리에서 마주칠 만한 이는 오직 세르세뿐이었지만, 오늘로써 한 사람이 더 추가된 것 같다.
아네타는 자신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칼로스를 발견했다.
“드디어 왔네. 기다리고 있었어.”
“드디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건데.”
“세 시간쯤 전부터.”
“내가 오늘 여기 올 거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
예정에도 없던 충동적인 선택이었기에 말이 새어 나갈 틈도 없었다. 아네타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칼로스는 익히 알려진 사실을 말하듯 태연히 답했다.
“당신 도피처잖아, 여기.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아서 하루 빌렸어.”
“통째로?”
“통째로.”
아네타는 자신도 해 본 적 없는 일을 벌인 그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이제야 발을 들이게 됐지만, 항상 이곳에 와 보고 싶었어.”
“왜?”
“그래야 당신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눌 건수가 생길 테니까.”
또다. 또다시 맹목적인 애정이 머리 위로 흩뿌려졌다. 아네타는 날이 갈수록 거침없어지는 표현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처음처럼 마냥 거부감이 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쉼 없이 밀려드는 그의 마음에 서서히 젖어 들기라도 한 것일까. 힘없이 웃어 버린 아네타는 칼로스가 내민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세 시간 동안 멀뚱멀뚱 앉아만 있었던 거야?”
“아니.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을 보냈어. 이곳에 있는 그림을 한 차례 둘러보고, 한 점 구매하기도 했지.”
“그럼 앞에서 기다리려고?”
“당연히 같이 들어가야지. 그러려고 기다린 건데.”
그는 그녀의 손을 단단히 그러쥐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봤다며.”
“당신과 함께 있으면 다른 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미리 봐 둔 것뿐이야. 그림 대신 당신에게 집중하면 돼.”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인 칼로스는 아네타를 안쪽으로 이끌었다.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각하.”
“오랜만이에요, 마담 리페.”
칼로스가 이끄는 대로 익숙한 복도를 걷던 아네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기다리고 있던 마담 리페와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리페는 굳이 데릭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언제나 그랬듯 조용히 뒤로 따라붙었다.
칼로스가 곁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었다.
그는 아네타를 방해하지 않았고, 있는 듯 없는 듯 서서 그녀의 걸음에 발을 맞출 뿐이었다.
아네타는 천천히 걷다 멈추는 걸 반복하며 그림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풍경과 인물부터 무엇을 그린 건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그림까지. 세세히 살피며 후원할 이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는 가운데, 어느 순간 그림 하나가 눈에 박혔다.
화가의 이름 넉자를 포함한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네타는 머릿속에 든 모든 것이 새하얗게 지워지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아네타?”
칼로스의 부름도 듣지 못한 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니. 봐서는 안 될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서둘러 걸음을 옮긴 아네타의 낯빛이 희게 질렸다.
눈앞에 놓인 그림은 믿을 수 없게도 어머니와 흡사하다 못해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한 화풍을 지니고 있었다.
아네타가 가느다란 헛숨을 내뱉자, 칼로스는 서둘러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리하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에 그의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칼로스의 불안감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자, 아네타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리페.”
아네타는 자신을 감싼 칼로스의 팔을 붙잡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놀라 다가온 리페의 이름을 불렀다. 거의 신음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네, 각하. 말씀하세요.”
갑자기 호명된 리페는 충격에 물든 눈길이 제게로 향하자 의문을 느끼면서도 착실히 부름에 답했다.
“저 그림, 대체 누가 그린 거죠?”
“아, 저건…… ‘엘렌’이라는 이름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에요. 남성 화가의 그림이지만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가서 들여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엘렌…….”
누군지 모를 이의 이름이 아네타의 입에서 탄성처럼 새어 나왔다.
엘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가슴이 어지러이 술렁였다. 아네타는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뻣뻣하게 굳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엘레나의 애칭과 같은 이름을 지닌 화가가 그녀와 같은 화풍을 지니고 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문득 떠오른 의문이 머릿속을 검게 물들이자, 아네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진실을 왜곡하려 드는 무언가가 그녀의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이건 분명 우연이다. 성별이 다른 건 선례가 있으니 둘째 치더라도, 엘레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아네타는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던 엘레나의 죽음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러자 작은 움직임을 보이던 무언가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다.
아네타는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래, 단지 우연일 뿐이야.’
한결 나아진 안색으로 한숨을 뱉자, 단단한 손으로 등을 쓸어 주던 칼로스가 물었다.
“괜찮아?”
“응.”
긍정하던 아네타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그녀는 손을 거두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
“아무렇지도 않아.”
칼로스는 팔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저와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주물러 주기 바빴다.
“아팠겠어.”
칼로스는 그녀가 해야 할 말을 자신이 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말해 줄 수 있어?”
“……그림의 화풍이 어머니의 것과 상당히 흡사해서 놀란 것뿐이야. 걱정 마.”
칼로스는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도 거듭 물음을 건네지는 않았다. 다만 날카로이 빛나던 금안에 섭섭함이 스밀 뿐이었다.
“오늘은 저 그림을 살게요. 그런데 리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 말씀만 하세요.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돕겠어요.”
지금껏 받아 온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리페는 진지한 얼굴로 아네타의 말을 기다렸다.
“우선 저 그림을 그린 화가의 소재를 알아봐 주었으면 해요.”
돌아가는 즉시 길드로 사람을 보낼 테지만, 이쪽으로 발이 넓은 리페에게도 부탁해 두는 것이 좋을 듯했다.
“알겠어요. 정보를 얻는 즉시 서신으로 알려 드릴게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이 정도는 각하께서 해 주신 일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걸요.”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칼로스는 지금껏 그래 왔듯 그녀가 하려는 일을 도울까 고민했다. 하지만 끝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돕겠다고 말하기엔 이상하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네타와 칼로스는 각자 다른 감정을 떠안고 갤러리를 나섰다. 남은 그림에 통 집중하지 못하던 아네타는 칼로스와 헤어져 마차에 오른 뒤에도 줄곧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엘레나의 눈이 감기기가 무섭게 가장 먼저 불살라진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그림이었다.
아네타는 시린 눈을 깜빡이며 과거의 기억을 회상했다.
불타오르는 수십 점의 그림. 흥겨운 듯 깔깔거리는 여자들의 웃음소리. 그 사이를 비집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것을 이제야 치우게 되었다며 즐거이 외치던 아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스운 구경거리를 보듯 조롱 섞인 말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 아네타는 남몰래 숨어 그림들이 색을 잃어 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쉴 새 없이 흐르던 눈물이 괴롭게 일그러진 얼굴을 적셨다.
혹여 그들에게 들킬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면서도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마치 엘레나가 죽어 가던 과정을 보는 것만 같아서.
그때의 무력감, 그때의 자괴감이 되살아나 그녀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아네타는 괴로움에 몸을 떨며 눈을 감았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