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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25)화 (125/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외전 3화

깨어났을 땐 이미 동이 튼 후였다. 메이도, 뒤에서 그녀를 안고 누워 있는 디아고도 옷이라곤 입고 있지 않았다. 메이는 허리가 아팠지만 원인 제공자의 온기 덕에 조금은 덜 아픈 듯했다.

메이는 어젯밤 처참히 벗어 던진 채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잠도 제대로 못 잤네…….’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그와 숨을 나누는 내내 끝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 안 그래도 낮에 사냥해서 체력을 많이 소모했지 않은가.

웃긴 건, 힘들어도 좋았다는 것이었다.

‘디아고가 떠난 지 딱 2년 넘었을 때였나? 스텔라가 나더러 디아고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었지.’

그땐 인정할 수 없었는데 4년간 그 어떤 남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젯밤이 좋았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

좋긴 했지만.

“일어났어?”

뒤에서 느지막한 디아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디아고는 메이보다 더 빨리 깨어났지만 더 안고 있고 싶어서 그대로 누워 있었다.

메이는 디아고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몸을 틀려고 했으나 디아고가 끌어안고 있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약혼, 결혼. 까짓것 얼마든 기다릴 수 있어.”

그것들이 메이에게 부담이 되어 또 멀어질까 봐 미리 일러두는 것이었다.

“난 그냥 네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좋으니까.”

“결혼하려면 앞으로 6년을 기다려야 하는데도요?”

“그게 네 뜻이라면 기다려야지. 그런데 왜 6년이지?”

메이가 뒤를 돌아 디아고를 마주 보았다.

“그 전엔 아빠가 허락을 안 해 줄 것 같아서요. 열여섯 살 때, 아빠가 저더러 10년 후에야 결혼 허락해 주겠다고 했었거든요. 스물여섯까지 6년 남았으니 6년이에요.”

물론 그때 가서도 페르시스가 결혼을 불허할 수도 있으나, 그때도 서로의 마음이 변함없다면 사랑의 도피를 떠나서라도 결혼식을 치를 생각이었다.

“기다릴 수 있어.”

디아고가 메이의 이마에 살포시 키스했다.

6년이든, 10년이든, 평생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디아고는 메이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 사랑받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으니까.

“기꺼이 기다리지.”

“지켜볼게요.”

메이는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자 디아고도 따라서 미소했다.

***

“처음엔 플로티나 공작이 그 둘의 결혼을 반대하지만 끝내 허락하게 되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게 딱 이 상황일 것 같군.”

미로카곤으로부터 메이와 디아고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리스는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디아고가 순정파네. 들려준 대로라면 메이의 행복은 걱정 없겠어.”

카시우스 또한 메이의 짝이 디아고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장기훈련을 갔다 올 정도로 강하다면 메이의 남편으로 인정해야지.”

아이리스는 카시우스의 말에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제드를 떠올렸다.

“아, 그러면 제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전에 봤을 때는 제드도 메이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카시우스의 눈이 커다래졌다.

“제드도 메이를 좋아해?”

“사냥 때마다 메이한테 눈을 못 떼더라고.”

아이리스가 제드는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미로카곤이 답해 주었다.

“모든 짝사랑이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메이를 포기하게 되겠지.”

메이가 디아고만을 바라보고, 디아고가 늘 곁에 있으니 제드는 다가갈 수 없다. 결국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서서히 포기하게 될 운명이었다.

“만일 디아고가 메이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메이 또한 디아고를 좋아하지 않았을 테니 제드와 결혼했겠지만.”

아이리스와 카시우스는 이에 흥미롭게 들었다.

“정말로? 신기하네.”

“어쩌다가 제드와 결혼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런 방향으로 결혼하게 될 거다.”

***

제드는 언제 어디서든 메이를 바라보았다. 다만 다가갈 순 없기에 거리를 두고서.

메이는 애써 제드의 시선을 무시해 왔으나 같은 기사단이기에 마주 볼 일이 잦았다. 이 때문에 단둘이 있을 상황도 발생했는데, 그럴 때면 메이는 그를 무시하기 힘들었다.

더는 그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와 자신이 아무 사이가 아닌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메이가 수호 기사 생활을 3년째 이어 가던 때, 수호 기사 업무를 수행하던 중 산속에 제드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메이는 사냥에만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제드를 신경 쓰다가 마물의 공격을 피하지 못해 무릎에 상처가 나고 말았다.

“읏!”

더 큰 공격을 받기 전에 마물을 쓰러트린 후 무릎을 보았을 땐, 이미 찢어진 바지 사이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런……!”

기사가 된 지도 벌써 3년이나 됐는데 이런 얕은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다니. 메이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지만 일단은 지혈하는 게 우선이었다.

메이가 근처 바위에 앉고선 긴 머리칼을 묶고 있던 흰 리본을 풀어 지혈하고자 할 무렵.

“괜찮아?”

메이가 다친 걸 본 제드가 급히 달려와 그녀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메이가 거부하기도 전에 다리를 붙잡고 상처 부위를 핥았다.

“!”

따뜻한 따끔함은 메이를 움찔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돌발 행동에 메이가 몹시 놀랐을 걸 알아도 제드는 멈추지 않고 계속 핥았다.

“너 미쳤어? 뭐 하는 거야?”

발버둥 쳤지만 힘으로는 제드를 이길 수 없었다.

“치유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그의 입에선 치유 마법이 나왔고, 덕분에 메이의 무릎은 언제 상처가 났었냐는 듯이 깔끔하게 회복되었다.

간혹 마력을 부여받으면 부여해 준 사람이 잘 쓰는 기술을 똑같이 쓸 수 있다던데. 제드는 아이리스의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던 것이었다.

‘남자 주인공의 특혜인가…….’

메이도, 다른 수호 기사들도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데 제드만 혼자 가능하니 말이다.

제드가 입에 묻은 피를 손가락으로 닦고선 메이를 올려다보았다. 메이는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치료해 준 건 고마운데, 다음부턴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멋대로 내 몸 만지는 거 불쾌해.”

돌아오는 대답은 한껏 처량했다.

“내가 너와 가까워질 수 없다면, 나를 이런 용도라도 사용해 주면 안 될까. 그 이상은 바라지 않을게.”

“그것조차 너한테 기회를 주는 것 같아서 싫어. 내가 다치든 말든 상관하지 마.”

메이는 제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떠나가는 메이의 뒷모습만 멀거니 보는 제드는 이미 속이 엉망이었다. 메이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은 후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그녀가 절대로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지난 3년간 메이가 아닌 다른 것엔 관심도 두지 않았고, 오로지 그녀만 바라보았으니 그녀 또한 시선을 느꼈을 터.

그럼에도 메이는 꿋꿋이 그를 무시했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특별 능력을 가진 마물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찾아가 되돌렸을 텐데.

그녀가 순수하게 자신만 좋아했던 그때로 돌아가 자신 또한 순수하게 사랑을 나눴으리라.

절대로 못난 마음으로 그녀를 싫어하지도 않고, 그녀의 마음을 이용하려 들지 않고…….

하지만 그 무엇하나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점점 더 피폐해졌다.

메이의 무릎을 치료해 주고 나서 얼마 후, 산속을 거닐던 제드는 운명처럼 S급 마물을 마주치게 되었다.

늠름한 푸른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르토곤. 비록 그가 원하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마물은 아니었지만 아르토곤은 저주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나와 마주친 인간이여, 그대는 어떤 저주가 필요하지?”

크고 웅장한 목소리에, 근처에 있던 메이도 제드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메이는 시야에 아르토곤이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아르토곤이잖아……?”

글리우곤과 미로카곤 이후 S급 마물을 발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야 하지? 잡아야 하나?’

수호 기사들은 인간에게 악한 능력을 발휘하는 마물은 죽여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아르토곤의 특별 능력이 ‘저주’이기 때문에 무찔러야 맞다.

‘혼자서는 힘들 것 같은데…….’

글리우곤이야 혼자서 죽였다지만 아르토곤은 글리우곤과 달리 S급 마물 중에서도 강한 편이었다.

여차하면 아르토곤이 끔찍한 저주를 내릴 수도 있었다.

‘제드는 강하니까 같이 싸우면 쓰러트릴 수 있을 거야.’

메이는 제드와 힘을 합쳐 아르토곤을 무찌를 생각이었으나.

제드는 다가온 메이를 지그시 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아르토곤에게 청했다.

“내가 함부로 메이를 건들 때마다 육신이 비틀어지는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해.”

메이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설마 제드가 자기 자신한테 저주를 걸어 달라고 할 줄은 몰랐으니까.

‘지금 쟤가 뭐라는 거야……?’

미쳤나?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메이가 말리고자 가까이 달려오자 제드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게 평생 메이만을 사랑하게 되는 저주를 걸어.”

메이가 그들에게 도착했을 땐 이미 아르토곤이 제드의 청을 들어준 후였다.

“알겠다. 그리하도록 하지.”

아르토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기운이 제드를 감쌌다.

“제드, 안 돼!”

메이는 저주를 막으려고 아르토곤에게 공격했지만 아르토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푸른 기운은 제드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메이는 충격 받은 얼굴로 제드를 바라보며 미쳤냐고 물었지만 제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제드는 메이가 자신을 바라봐 줄 방법이 이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저주를 갖고 있다면 적어도 그녀는 자신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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