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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23)화 (123/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외전 1화

죽은 헤스티아와 관련된 일을 모두 처리하고 드디어 여유가 생긴 아이리스와 카시우스는 온실 화원에서 느긋하게 티타임을 가졌다.

“3기사단 해체 반대 시위를 하던 기사들이 순순히 물러나 줘서 다행이네.”

먼저 말문을 연 아이리스는 따뜻한 차로 목을 축였다.

“그냥 물러나는 편이 체면에 좋았을 테니까. 이적하고 싶은 기사단의 기사들 중 한 명을 지목해 대련해서 이기면 이적시켜 주는 조건을 내걸었더니 다들 비교적 약할 수밖에 없는 신입 기사를 뽑아도 이기지 못했잖아. 헤스티아가 실력이 아닌 외모만 보고 선출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메이를 지목한 기사도 있었지? 경기가 3초 만에 끝나니 믿을 수 없어 하던데. 안됐지만 우리 기사단 내에서도 메이를 이길 수 있는 기사는 많지 않으니까.”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지.”

메이를 생각하니 아이리스와 카시우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메이가 주는 긍정적인 기운이 강하여 생각하기만 해도 절로 미소 지어졌다.

“다들 신분 때문에 메이한테 잘 못 다가가던데, 알게 모르게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지?”

“많지. 우리 기사단에도 몇 명 있어. 훈련하다가 너희 기사단이랑 동선 겹칠 때마다 볼 빨개지는 애도 있거든.”

“귀엽네.”

아이리스는 눈을 접으며 살풋 웃다가 손에 쥔 찻잔을 바라보았다. 향긋한 꽃물에 아이리스의 아름다운 얼굴이 비쳤다.

“우리 메이, 좋은 사람 만나야 할 텐데…….”

“메이가 결혼할 때면 기분 이상할 것 같아. 우리가 처음 봤을 땐 열 살짜리 아기였잖아.”

“그러니까. 메이는 누구랑 결혼하려나?”

“소문엔 최근 디아고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던데. 훈련 때 자주 붙어 있기도 했고.”

아이리스는 몰랐다는 듯이 화들짝 놀랐다.

“어머, 정말? 우리 아가가 만나는 사람이 있었단 말이야?”

“소문이 그렇다는 거야. 확실치는 않아.”

“궁금한데…….”

아이리스가 궁금해하니 카시우스가 찻잔을 내려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려 봐, 내가 미로카곤을 데려올게.”

“정말로?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행동력 있는 카시우스는 아이리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하여간 몸은 빨라서…….”

10분 후, 카시우스는 정말로 미로카곤을 그의 금색 기운으로 포박한 채 데려왔다.

미로카곤은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사, 살려 줘……! 이대로 죽기 싫단 말이다……!”

“몇 번을 말해. 죽이려는 게 아니라 궁금한 게 있어서 데려온 거라니까?”

카시우스의 말에 아이리스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미로카곤은 안정을 찾았다. 눈물도 쏙 들어갔다.

미로카곤은 얼른 용건만 해결하고 돌아가고픈 마음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궁금한 게 뭐지?”

카시우스는 미로카곤을 테이블 옆에 내려놓곤 소파에 앉았다.

“메이가 미래에 누구랑 결혼할지 궁금해.”

“메이 플로티나? 그 애라면…….”

미로카곤은 진실을 보는 눈을 사용해 메이의 미래를 예측해 보았다. 미래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현재를 토대로 예상해 볼 수는 있으니까.

“이대로라면 디아고 스타시아와 결혼할 거다.”

“어머, 정말로 메이가 디아고한테 마음이 있나 보네?”

“그 애뿐 아니라 황자도 마음이 있지. 애초에 황자가 먼저 좋아하고 매달린 거야.”

아이리스와 카시우스는 그사이에 있었던 그들의 연애 스토리가 궁금했다.

“그래서, 어떻게 관계가 발전하게 되는데?”

***

디아고가 떠난 지 4년이 되었다. 스무 살의 메이는 언제 아들로 키워졌었냐는 듯이 우아하면서도 고고한 영애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친모인 비체와 똑 닮은 얼굴로, 단지 비체와 달리 굽이치지 않는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채, 메이는 나제트가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메이는 오랜 친우인 스텔라와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래서, 내일부터 사냥이 있어서 주말에 나랑 피크닉 못 간다고?”

찻잔을 들어 올리는 메이의 손짓엔 기품이 묻어났다.

“응. 다음 주 주말에 가자.”

“이번 주가 벚꽃이 만개해서 제일 예쁠 때인데……. 아쉽네.”

“후작님과 밀로랑 다녀와. 다음 주에 나랑 또 가고. 다음 주에도 벚꽃 남아 있을 거야.”

“흠……. 아빠는 바쁘니까 밀로랑 다녀와야겠다.”

“좋은 생각이야.”

메이가 나긋이 미소를 짓고 차를 음미하자 스텔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꿈의 호수에서 진실을 보고 온 후부터 대략 4년 반. 

그간 페르시스의 적극적인 의견 피력으로 딸도 가문을 물려받을 수 있게끔 법이 개정되었다. 덕분에 메이는 가문을 물려받을 수 있게 되어 플로티나의 정식 후계자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여전히 수호 기사로 지내며, 여전히 딸바보인 페르시스와 플로아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늘 아침 식사 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자신에게 알리라며,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처리해 주겠다는 페르시스와, 그녀에게 들어오는 구애 편지는 전부 불태우고 있다는 플로아를 보면 사랑은 앞으로도 한결같을 듯 보였다.

다행히도, 그들은 4년 전과 별반 차이 없이 건강하다. 자신도 그렇고.

4년 반 전부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지만, 디아고와 입을 맞춘 후엔 연애 전선에 문제가 생겼었다.

디아고와 입을 맞춘 궁극적인 이유는 모험을 하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메이는 전생부터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보단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하길 바라 왔었다. 

짝사랑을 할 때가 많았고, 그렇기에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많았었는데, 자신의 짝사랑으로 재미를 보려는 제드에게 상처받은 것을 계기로 바뀌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 보기로.

해 본 적 없던 일을 시도하는 것이 모험. 

물론 단순히 모험하려고 키스한 것은 아니고, 디아고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기도 했다. 비록 제드를 좋아했었던 것만큼 좋아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한번 해 보자’라는 가벼운 생각의 메이와 달리 디아고는 몹시 진지했다. 

그녀에게 키스를 받은 직후,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애써 잠재우며 결혼식은 언제 올릴지, 아이를 낳는다면 몇 명을 나을지 등 결혼 계획을 세웠다. 그만큼 메이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디아고의 결혼 계획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지고 말았다. 메이에게 결혼 얘기를 꺼냈다가 결혼할 생각 없다는 얘기를 듣고 만 것이었다.

‘저, 아직 열여섯밖에 안 됐어요. 결혼하기엔 너무 일러요.’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신은 열여섯이든 열다섯이든 상대가 메이라면 언제든 결혼했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그녀는 약혼조차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 이제 세 번째 데이트인데 너무 성급하지 않나요? 약혼 같은 진지한 만남을 하려고 황자님 마음 받아 준 거 아니에요. 평범하게 교제하고 싶었던 것뿐이라고요.’

그때 디아고는 ‘진지한 만남을 하려고 마음 받아 준 게 아니다’라는 말에 크게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럼 가볍게 만나려고 했던 거냐며. 자신을 진정 좋아하는 건 맞냐며.

오히려 메이는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는 디아고가 이해되지 않아 단호한 말만 내뱉었었다.

‘가볍게 만나려고 했던 거 맞고, 좋아하긴 하지만 황자님이 저를 좋아하는 만큼은 아니에요.’

이에 디아고는 그럴 바에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며 자리를 떠났었다. 

그 후 그는 수호 기사 활동 때마다 같은 기사단 소속인 메이와 마주치는 게 껄끄러워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장기훈련을 떠났었다.

그렇게 디아고는 무려 4년 동안이나 장기훈련을 하게 된 것이었다.

메이가 잠시 화창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스텔라가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장기훈련이 오늘 끝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내일 사냥 때 보겠네?”

처음 메이와 디아고의 교제 사실을 들은 스텔라는 미친 거 아니냐며 괴롭혔던 사람 만나지 말라며 뜯어말렸으나, 4년간 다른 남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디아고만 기다리는 메이를 보곤 서서히 생각이 달려졌다.

그렇게나 좋아하면 응원해 주겠다는 방향으로. 하지만 또 메이를 괴롭게 한다면 필사적으로 교제를 뜯어말릴 각오로.

“응……. 내일 만나겠지.”

메이의 표정이 사뭇 어두워졌지만 제 앞에 앉아 있는 단짝 친구가 걱정하지 않게 표정을 감췄다.

***

다음 날, 정규 사냥이 있을 르라트 산에 도착한 메이는 디아고를 볼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2기사단으로 이적해야 하나…….’

그녀는 디아고에게 무정한 말을 내뱉고 후회했다. 좀 더 따뜻한 방향으로 얘기했어도 됐을 텐데, 하며. 

하지만 딱 그 정도. 후회되는 정도일 뿐, 그를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결혼과 약혼을 거절하는 건 똑같을 테니까.

디아고가 고민한다는 이유로 4년 동안 얼굴 한 번 안 비치니, 알량한 자존심에 이젠 메이도 그를 보기 껄끄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르라트 산 입구엔 수호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시끌벅적했고, 그 가운데엔 야성미가 물씬 느껴지는 사내가 있었다.

키도 몸도 더 커지고, 전보다 더 성숙해진 분위기를 내뿜는 디아고 스타시아였다.

어렵지 않게 그를 발견한 메이는 그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멈춰 서선,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청승맞은 얼굴로 그녀를 떠나던 열아홉 디아고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스물셋의 디아고는 존재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지는 황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황자님, 더 멋있어지셨습니다. 옥체에서 빛이 납니다!”

“장기훈련을 가실 줄 몰랐습니다. 힘들어서 중도 포기한 기사들도 많은데 4년을 꽉 채우시고 돌아오시다니, 역시 황자님이십니다!”

그의 주위로 몰려든 수호 기사들이 칭찬을 퍼부으니 그는 옅은 미소만 보였다. 그러다 그는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틀었다.

“!”

메이는 디아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디아고를 기다린다던 스텔라의 추측은 틀렸다. 메이는 디아고에게 차인 이후 그를 포기한 지 한참 되었고, 단지 종종 떠오르는 그의 생각에 다른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기다리지 않았다. 마주치면 서로 어색할 걸 아니까.

메이는 무기력한 낯을 하다가, 몸에 닿는 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사냥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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