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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21)화 (121/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21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물론이죠. 황녀님은요?”

“저는 공녀님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희 아빠, 아니, 아바마마가 공녀님께서 큰 사건이 있어서 쉬어야 한다고 못 찾아가게 하셨어요.”

“이제는 괜찮으니 찾아오셔도 된답니다.”

“정말이죠? 저, 꼭 찾아갈 거예요!”

그러다 황녀는 내 가슴 위에 달린 브로치를 보곤 활짝 웃었다.

“제가 준 브로치, 하고 오셨네요?”

“건국제 마지막 날에도 브로치를 차고 왔었는데요, 그때 못 보여 드린 것 같아서요. 제가 입은 코랄 드레스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엄청 잘 어울려요! 히히.”

나는 그녀에게 생일선물을 건넸다. 한 손에 가득 들어오는 크기의 상자였다.

“열한 번째 생신 축하드려요, 황녀님.”

“선물이에요?”

“네. 이거 말고도 황녀님께 잘 어울릴 것 같은 드레스 3벌 미리 보내 놨는데요, 이건 직접 드리고 싶어서요.”

기대감에 잔뜩 찬 눈으로 이사벨라는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러자 담백하게 반짝거리는 분홍진주 팔찌가 드러났다.

이사벨라는 기뻐하며 팔찌를 착용했다.

“너무 예뻐요!”

“금으로 된 동그란 펜던트 보시면 하트가 그려져 있어요.”

“오, 정말이네요?”

이사벨라는 하트를 보며 생글생글 웃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공녀님, 볼에다가 뽀뽀해 드리면 안 될까요?”

“뽀뽀요……?”

“뽀뽀하고 싶어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살짝 놀랐지만 허리를 숙여 그녀가 쉽게 볼에 뽀뽀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러고 있으면 될까요……?”

괜히 부끄러워져 눈을 못 마주치니 이사벨라가 내 볼에 쪽, 뽀뽀해 주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키곤 혹여 누가 봤을까 봐 양옆을 힐끗거렸다.

이사벨라는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내 드레스 자락을 잡았다.

“저도 해 줘요. 뽀뽀 받고 싶어요!”

“제가요……?”

감히 이 작고 귀한 아이한테 뽀뽀를 해도 된단 말인가. 황실 근위대에 잡혀가는 건 아닐까, 하고 조금 두려웠지만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이길 수 없었다.

나는 살포시 그녀의 볼에 뽀뽀했다. 입술을 떼고 보니 뽀뽀 자국이 남아 얼른 손으로 문지르며 지웠다.

“헉, 어쩌죠? 제가 화장을 해서 립스틱 자국이…….”

“괜찮아요. 히히.”

이사벨라는 내게 뽀뽀를 받아 기분이 좋은지 나를 안아 주었다.

‘귀여워…….’

머리가 내 가슴에 닿지도 않을 정도로 키가 작아 더욱 귀여웠다.

그때, 뒤편에서 디아고의 부름이 들려왔다.

“이사벨!”

그 부름에 몸을 떼고 나도 이사벨라도 디아고를 바라보았다.

와인빛이 도는 갈색 머리칼이 반짝이며 살랑거린다.

조명 탓도 있었으나 내 의견을 반영한 것인지 정말로 앞머리를 내린 덕분에 평소와는 몹시 달라 보였다. 망나니 황자에서 사교계를 휩쓰는 미남으로 변한 것처럼.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디아고가 원래 저렇게 잘생겼었나?

문득, 그와 예전에 주고받았던 말이 떠올랐다.

‘다음엔 내리고 올게. 그땐 잘생겼다고 해 줘.’

‘음~ 정말로 잘생겼으면요.’

‘정말로 잘생겼을 거야.’

이거,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잘생겼다고 얘기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제대로 차려입으니 그의 미모가 더욱 사는 것 같았다.

우리 앞에 온 디아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로만 바라보고 있으니 이사벨라가 물었다.

“오빠, 왜 왔어?”

이사벨라의 말에 나와 디아고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어머니께서 찾으셔. 켈레샤 제국에서 대신관이 왔나 봐. 신의 축복 기도를 들으라고 하네.”

디아고가 어머니께 가자며 손을 내밀자, 이사벨라는 나와 떨어지기 아쉽다는 표정을 하며 손을 맞잡았다.

“공녀님이랑 더 있고 싶은데…….”

“기도 듣고 오면 되지.”

“힝…… 알겠어.”

이사벨라는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디아고의 시선이 다시 내게 향했다. 그는 쑥스러워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오늘 너무 아름다워, 메이.”

말하고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는지 머리를 헝클이며 이사벨라를 데리고 갔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 내게 말했다.

“다시 올 테니까 거기 있어. 어디 가지 마!”

그러고는 다시 갈 길을 가는 디아고를 보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편, 내 주변 사람들은 켈레샤 제국에서 왔다는 대신관을 구경하기 바빴다.

“대신관님 굉장히 미남이시지 않나요? 저런 분이 축복의 기도를 해 주신다니……. 황녀님이 부러워요.”

그 말에 나는 대신관으로 추정되는 사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디아고와 이사벨라가 그쪽으로 가니 딱히 찾을 필요도 없었다.

저 사람이구나?

흰색 대신관복을 입은 검푸른 빛의 머리칼을 가진 사내였다.

하지만 잘생겼다는 그 대신관도 내 눈엔 그다지 들어오지 않았다. 디아고를 보고난 후여서 그런 듯했다.

다시금 주변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저분, 유부남이실걸요? 켈레샤 제국은 신관도 결혼할 수 있잖아요.”

“맞아요. 아내분이 켈레샤 제국에서 손꼽히는 미인이라고 들었어요.”

“첫눈에 반할 뻔했는데…… 안타깝네요.”

다들 미모의 대신관에게 관심이 쏠려 있었지만 나는 대신관보단 디아고에게 더 눈길이 갔다.

제드 곁에 있어서 몰랐지만 디아고도 말마따나 인기가 꽤 있었겠어. 여자들이 내심 눈물 좀 흘렸을지도.

잘생겼고, 몸도 좋은 나쁜 남자 스타일의 황자이지 않은가.

그런데 제드와 달리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은 없는 걸 보면 역시 성격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앞머리 내린 게 더 낫네.’

디아고를 감상하고 있을 그때였다. 그다지 듣고 싶지 않았던 음성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메이.”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제드였다.

제드가 디아고를 보던 내 앞을 가리고 섰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할 얘기가 있어.”

나는 몸을 틀곤 대화를 거절했다.

“난 너랑 할 얘기 없어.”

“제대로 사과하고 싶어. 자리를 옮기자.”

제드의 보라색 눈동자는 처량함에 잠겨 깊이 가라앉았다. 그는 전보다 생기를 잃은 낯을 하고 있었다.

“사과해도 받아 줄 생각 없으니까 그냥 가.”

“제발…… 부탁이야.”

그가 내게 애원하게 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의 심리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으나 궁금하지는 않았다. 어서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사과하게 해 줘, 메이…….”

어찌해야 할까. 따라가야 하나…….

절대로 애원하는 그의 모습에 흔들리는 게 아니다. 이번만 용서해 주면 더는 이런 일 없지 않을까 싶어서 그를 따라가 주는 것이었다.

“……그래, 가.”

제드는 연회장 밖으로 나와선 나를 어딘가 멀리 데려갔다. 아카 센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디에 가두려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때와는 달리 내게 가문의 힘이 있었다.

그가 감금하더라도 순순히 감금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정말로 감금하기라도 하려는 건지, 그는 나를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황궁 건물 안, 게스트룸으로 데려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에서, 그가 방문을 열고 인도했다.

“내가 빌린 방이야. 들어와.”

그의 속셈이 보이는 것 같아서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서 얘기해. 네가 또 저번처럼 가둘까 봐 들어가기 꺼려져서.”

“……그때는 정말로 미안했어. 너를 좋아하게 됐다는 마음을 알아차리곤 괜히 조급해져서 이성을 잃었던 것 같아.”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기가 찼다.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플로티나의 공녀를 좋아하는 거겠지. 내가 다른 가문의 여식이었으면 관심도 없었을 거잖아, 너.”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지금 당장 네가 노예가 된다고 해도 좋아할 거야.”

“그럴 일 없다고 아무 말이나 내뱉지 마.”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자, 나는 시선을 떨구곤 숨을 내쉬었다.

제드와 말싸움하기 싫다. 괜히 제드 때문에 힘 빼고 싶지 않았다.

제드는 이번에는 진짜로 가두려고 했던 게 아니라며 해명했지만 그 소리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네가 전에 이 방 테라스 경치를 좋아했던 기억이 나서 여기로 데려온 거야. 다른 의도 없이, 테라스에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고백하려고 했었어.”

그러다 테라스라는 말에 고개를 들어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익숙하다 했더니 이 방은 전에 제드가 한 번 데려온 적 있는 방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제드는 거짓 고백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놨었지. 그래서 내게는 달갑지 않은 장소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내가 제드랑 같이 나간 걸 디아고는 알고 있었으려나.’

아, 나도 모르게…….

그 와중에도 나는 순간적으로 디아고를 떠올리며 그때 그가 나와 제드를 신경 썼을지를 궁금해했다.

무의식적으로 디아고를 떠올렸다는 걸 깨닫고는 나는 괜히 숨을 들이켰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드는 계속 제 할 말만 했다.

“네가 방 안으로 들어오길 꺼리니까 여기서 할게.”

그의 고백은 그다음이었다.

“너를 좋아해. 내 내면을 채워 줄 사람이 네가 됐으면 좋겠어.”

“…….”

그 말에 나는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의 고백이 어이없다거나 믿어지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제드는 약간의 초조함을 보이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에게는 그 어떤 감정도 솟아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제드에게 내면을 채워 줄 여자를 만나라고 했던 것은, 진심 어린 조언이기도 했으나 나를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나 말고 다른 여자를 찾아보라는 쐐기.

그런데 제드는 알아듣지 못하고 내게 고백했다. 그렇다면, 내가 보여야 할 반응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네 내면을 채워 줄 사람이 아니야.”

그를 좋아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란 걸, 앞으로도 좋아할 마음 없다는 걸 그가 깨닫기를 바랐다.

제드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잔잔해졌다. 시선을 떨군 그는 체념한 듯 보였으나 그가 불쌍해 보이진 않았다.

“세상엔 좋은 사람 많으니까-”

“디아고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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