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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15)화 (115/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15화

“<마법진으로 다른 차원 가기> 이게 우리가 찾는 책인 것 같군. 그런데…….”

<마법진으로 다른 차원 가기>라는 책 제목 옆에는 분실이라 쓰여 있었다. 그에 사서도 함께 안타까워했다.

“분실된 책 몇 개 없는데……. 찾고 계신 책이 분실된 책이었군요…….”

“분실되면 찾을 수 없는 건가?”

“네……. 여기서 오래 일한 저도 이 책을 본 적이 없는 걸 보니 아주 오래전에 분실된 책인 것 같아요.”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책이 분실되었다니. 플로아는 그 자리에서 실의에 빠져 버렸다.

아이리스와 카시우스는 레드 박사가 연구했던 자료가 있지 않겠냐며 그거라도 보여 달라 했으나 그가 죽은 이후 그의 집에 불이 나 자료는 없을 거라고 했다.

아이리스와 카시우스는 허탈한 낯으로 플로아를 바라보았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물었으나 플로아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하나만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제 답은 하나뿐이다.

‘찾아야 한다.’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그 사람을.

***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엘렌과 조안에게 쿠키를 선물하기로 했다.

쿠키 두 봉지를 뒤로 숨긴 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엘렌과 조안에게 다가갔다.

“엘렌, 조안!”

내 부름에 그들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줄 거 있어!”

나는 뒤로 숨겼던 것을 보여 주었다.

“짜잔, 쿠키 만들어 왔어!”

엘렌과 조안은 내가 만든 쿠키를 보며 칭찬했다.

“어머, 쿠키가 예뻐요.”

“맛있어 보여요.”

나는 그들에게 한 봉지씩 나눠 주었다.

“선물이야. 엘렌을 생각하면 왠지 가을이 떠올라서 단풍잎, 은행잎 모양 쿠키를 넣었고, 조안을 생각하면 왠지 여름이 떠올라서 수박, 옥수수 모양 쿠키를 넣어 봤어. 다르게 꾸몄을 뿐이지, 맛은 똑같아.”

“어머, 아가씨. 저 수박이랑 옥수수 좋아하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맛있게 먹을게요.”

“저도 사계절 중에 가을을 제일 좋아해요. 감사해요, 아가씨.”

“응!”

취향에도 맞는 듯 보여 더욱 뿌듯해졌다.

나는 쿠키 두 봉지를 챙겨 페르시스가 있을 집무실로 향했다.

문 앞엔 요한이 서 있었다.

“아가씨를 뵙습니다. 안에 주인님 계십니다. 아가씨께서 오셨다고 알릴까요?”

“그 전에 유디프 경한테 줄 게 있어요.”

나는 그의 손을 가져와 쿠키 한 봉지를 쥐여 주었다.

“이건…….”

“쿠키 만들었어요. 유디프 경한텐 아빠 때문에 미안한 일이 많아서 선물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선물 상자 모양 쿠키예요.”

요한에게 준 쿠키는 리본 장식이 된 선물 상자 그림이 그려진 쿠키였다. 요한이 피식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쿠키가 귀여워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네요.”

“아빠한테 들키면 아빠가 또 심술부릴 수도 있으니까-”

달칵―

몰래 먹으라는 말을 하기 전에 집무실 문이 열리고야 말았다.

“내가 심술을 부린다고?”

갑작스러운 페르시스의 등장에 나는 놀라서 크게 움찔했다.

“까, 깜짝아……. 아빠, 놀랐잖아요.”

“내가 무슨 심술을 부린다는 거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는 나를 바라보다가 요한이 든 쿠키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그가 또 요한에게 심술을 부리기 전에 얼른 하트 모양 쿠키가 든 봉지를 그에게 건넸다.

“아빠 거는 하트예요. 저, 하트 아무한테나 안 주는데 아빠만 하트 주는 거예요.”

아무한테나 안 준다고 해서인지 그는 부드럽게 미소하며 쿠키를 받았다.

“고마워, 메이.”

“그러니까 괜히 유디프 경한테 심술부리지 마요.”

“내가 언제 심술부렸다고 그래.”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뻔뻔스러움이었다. 페르시스가 뻔뻔한 태도를 보이니 요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맛있게 드세요.”

나는 손을 흔들곤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남은 사람은 플로아뿐. 그에게도 얼른 쿠키를 전달해 주고 싶었으나 외출했을 가능성이 커서 나중에 발견하면 주기로 했다.

“간만에 한가해졌으니 밀린 소설 읽어야겠다.”

수호 기사단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주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었었다. 최근 들어 일이 많아 취미 생활에 소홀해져 있었다. 새로 나온 도서들도 구비해 놨다고 들었는데…….

소설을 읽을 생각으로 도서실에 가니 의외로 플로아는 그곳에 있었다. 덩그러니 소파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는 플로아 옆엔 제국어 사전이 있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를 불렀다.

“플로아, 여기서 뭐 해요? 책은 찾았어요?”

플로아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인데 분실됐다고 하더라고요. 오래전에 분실된 거라 찾을 수도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아…….”

그가 실망스러워하는 게 눈에 보여,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위로해 주려고 했다.

파사베아는 돌아올 거라고. 미로카곤도 확신했으니까 다른 차원으로 가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거라고.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손을 잡기도 전, 나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다.

“그런데…… 메이 님.”

“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거요?”

플로아는 옆에 있던 제국어 사전을 들어 내게 보여 주었다.

“어째서 제국어 사전을 열심히 공부하신 겁니까?”

단기간에 제국어를 습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처럼.

그의 마지막 말에 나는 굳은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세계에서 처음 눈 떴을 때의 내게는 메이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의 언어를 몰라 사람들과 대화가 불가능했고, 간신히 표정과 행동으로 눈치껏 상대의 뜻을 파악하며 한동안 벙어리처럼 살아가야만 했다.

다행히도 본래의 메이가 조용한 아이였는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답답하기도 했고, 누군가가 말 못 하는 나를 이상하게 여길까 봐 두려웠던 나는 언어를 습득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작정 여러 분야의 책과 사전을 읽었다. 내 처지에서 언어를 빠르게 습득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운이 좋게도 제국어는 영어와 비슷했고, 메이의 머리가 언어 쪽으로 잘 발달하여 있었다.

두 달 만에 메이 또래들만큼, 그리고 1년 만에는 성인만큼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빙의자라는 걸 들킬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내 앞의 눈치 빠른 사내가 명백히 나를 의심하고 있다. 내가 그, 미로카곤이 언급한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임을.

그러니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말 잘하는 사람을 동경하게 되어 열심히 공부한 척, 태연스럽게 대답해야 한다.

분명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 그냥…… 공부하려고…….”

누가 봐도 당황한 사람처럼 말을 더듬기까지 해 버렸다.

실수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플로아의 짙은 회색 눈동자에 이채가 돌더니 그가 확신하는 듯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으니까.

“어째서 공부하려고 하셨습니까?”

“그냥 하고 싶어서…….”

“왜 하필 다른 언어도 아닌 제국어였습니까?”

“그땐 아홉 살밖에 안 돼서 모국어부터 공부하려고…….”

“그럼 평범했던 일상은 언제를 말하는 겁니까?”

“……네?”

플로아는 사전에 쓴 내 글을 보여 주었다.

평범했던 일상으로 제발 돌아가게 해 달라며 애원을 하고 있었다.

“이건…….”

빙의 후 향수병에 걸렸을 때다. 빙의한 지 3개월쯤 됐을 때였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곳에서의 삶이 마냥 평탄하진 않았지만, 낯선 타지에 홀로 내버려진 내겐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장소였다.

“이 글은 언제 쓰신 겁니까? 고아원에 가기 직전에?”

아니다. 그때는 사전을 꺼내 볼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으니 거짓을 고했다.

“그건 그냥 어느 소설을 읽다가 등장인물에 몰입해서 써 본 글이에요.”

“…….”

그제야 플로아는 질문하는 걸 멈췄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 같진 않았지만 적어도, 미로카곤이 말한 인물이 아닐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같았다.

다시 생각에 빠진 플로아를 뒤로 나는 주춤주춤 자리를 비켰다.

“저는 할 일이 생각나서 가 볼게요, 플로아.”

책을 읽겠다는 목적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나는 그를 두고 도망치듯이 도서실에서 나왔다.

***

도서실에서 플로아와 만난 이후 나는 불안했다. 불안함을 떨치고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음에도 잠은 오지 않고 생각만 가득해졌다.

플로아는 눈치가 빠르니까 어쩌면 모든 걸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상상이 되지 않아 더욱 불안하다. 지금 이대로가 행복하고 좋아서, 지금과 달라지는 미래는 마냥 두려웠다.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제일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페르시스였다.

그와 함께 저녁 식사 중, 내가 음식을 입에 넣지 않고 깨작거리기만 하니 이상하게 여긴 듯했다.

“메이, 너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으면 속에만 쌓아 두지 말고 언제든 말해. 아빠가 전부 해결해 줄 테니까.”

든든한 말이었으나 전부 털어놓기는 힘들었다. 빙의자라는 사실을 알렸다간 미친 사람 취급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아빠, 만약에요. 제가 원래의 메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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