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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13)화 (113/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13화

분명히 그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심심풀이로 이용하려고 했었고. 내 말 틀렸어?”

메이는 미로카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치유 마법 덕에 멀쩡히 깨어난 직후, 미로카곤은 혹여 그녀가 공작저를 돌아다니는 자신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 먼저 다가와 제드의 속마음을 들려주며 경계를 풀도록 했다.

‘어이, 인간. 제드 블로체의 속마음을 알고 싶지 않나?’

메이는 처음엔 다 끝난 일이니 안 듣겠다곤 했지만 그간 그의 행동들이 여간 이상했던 게 아니었던 지라 결국 들려 달라고 했었다.

‘들었을 때 충격이 컸었지…….’

단순히 플로티나여서 잘해 줬고, 플로티나가 아니게 돼서 선을 그은 줄 알았는데 그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

제드는 입을 다문 채 시선을 피했다. 메이는 그에게 똑똑히 알려 주었다.

“너 별로야. 그래서 네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든 널 받아 줄 생각 없어.”

메이는 그 말을 끝으로 관중석에서 내려와 다시 훈련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정신 못 차린 제드는 계속해서 마력을 쏘며 그녀를 방해했다. 그럼에도 메이는 꿋꿋이 대체 훈련에 임했고, 실패하면 재시도했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오기를 부리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자리 잡힌 그녀의 성격이었다.

절대로 네게 굴복하지 않는다. 누가 방해해도 나는 내 갈 길 간다.

그런 다짐으로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훈련하니 결국 체력을 많이 소모해 숨 쉬는 것도 버거운 상태에 이르렀다.

메이는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힘겨워하며 제드의 공격을 피했다.

“그만해, 메이. 넌 통과 못 해.”

자신이 끝까지 방해할 테니 하는 말이었다.

그러다 그의 큰 공격이 직격으로 날아왔고, 메이는 그 공격을 막으려다가 그만 뒤로 밀려나며 튕겨 나갔다.

쿵― 털썩.

“윽…….”

그대로 벽에 부딪히곤 떨어져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제드는 그녀가 튕겨 나갈 거라곤 예상 못 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놀란 얼굴이었다.

“메이!”

그가 그녀에게 달려가서 몸을 낮추곤 바라봤을 땐 그녀는 눈을 감고 쓰러진 채 숨만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하아- 하아-”

3시간 동안 제대로 쉬지 않고 뛰어다녔으니 숨이 차는 건 당연했다.

“내가 그만하라고 했잖아.”

메이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제드의 머리를 콩, 쥐어박아 주고 싶었으나 그럴 힘이 없어 포기했다.

제드는 그녀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숨이 찼던 건지, 그녀의 들숨과 날숨이 여전히 거칠었다.

“내가 그렇게 싫어?”

황당한 질문이었다. 3시간 동안 공격해 놓곤 무엇을 바라길래 저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디아고는 용서해도 나는 용서 못 하겠어?”

“…….”

메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숨이 차서 무어라 말을 하기 힘들었다.

“메이, 나는 평생 너만 사랑해 주며 살아갈 수 있어. 그런데 디아고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알잖아, 예전에 문란하게 살았던 거.”

“…….”

“그러니까, 네가 현명한 사람이라면 나를 선택해야 맞아.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고르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

“난 너한테 부족함 없는 배우자가 될 수 있어.”

숨소리가 작아진 메이는 눈을 뜨곤 그를 바라보았다. 바로 앞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제드의 눈은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자신을 더욱 완벽하게 해 줄 수단을 바라는 눈이었다.

“제드, 내 생각엔 말야. 넌 지금 연애할 때가 아닌 것 같아.”

숨을 고르고 힘겹게 내뱉은 말에 제드의 안면이 굳어졌다. 일순간에 눈빛도 차가워졌다.

“외면엔 부족함이 없겠지. 너는 외모도 잘났고, 집안도 좋고, 아카대회에서 1위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을 갖고 있으니까.”

드러누운 바닥이 차갑다. 다친 곳은 없으나 무리해서 몸살 나듯 온몸이 쑤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면은 아니야. 내면은 보통 사람보다 부족한 게 많은 것 같아.”

부족함이라니. 그런 소릴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제드는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네 내면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부족한 만큼 채워 넣어. 그게 연애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야.”

“…….”

“만일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부족함이라면 그 부족함을 채워 줄 여자를 찾아봐.”

넌 다른 부분은 대부분 다 잘났으니 네 내면만 채워 줄 여자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곤 메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힘들어서 조금만 자고 난 후 일어나고 싶었으나.

쾅―!

입구 쪽에서 벽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드가 만들어 놓은 은색의 벽을 디아고가 마력을 사용해 간단히도 부수고 들어온 것이었다.

“벽은 누가 만들어 놓은 거야? 거추장스럽게.”

***

디아고는 메이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가 대체 훈련을 한다는 걸 알고는 찾아가기로 결심했었다. 조교에게 장소를 물으니 조교는 아카센터라고 알려 주며 자기 대신 제드가 확인받으러 갔다는 사실도 알려 줬었다.

그때는 이런 장면을 상상하지 못했는데.

디아고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쓰러진 메이를 발견하곤 놀라서 황급히 달려갔다.

“메이……!”

그 부름에 메이는 눈을 뜨곤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황자님이 여긴 왜…….”

달려온 그는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아 메이의 양팔을 붙잡고는 다급히 물었다.

“왜 쓰러져 있던 거야. 다치기라도 했어?”

그는 그녀의 몸을 훑으며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안 다쳤어요. 훈련을 열심히 해서 쉬고 있었던 거예요.”

제드가 공격했다고 말하면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부러 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디아고는 제 앞의 소녀가 다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안도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순한 눈빛은 싸늘하게 달라지더니 일어나서 제드를 마주 보았다.

디아고는 제드가 자발적으로 메이와 둘이서만 있을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도, 메이를 바닥에 누워 쉬도록 놔뒀다는 것도 불쾌했다.

“조교를 대신하여 올 줄은 몰랐어. 내가 안 왔으면 계속 둘이 함께 있을 뻔했겠네.”

“그런데 아쉽게도 황자님이 오셨네요.”

“아니지. 와서 다행인 거지. 메이는 너랑 단둘이 있길 원하지 않거든.”

“그렇다고 셋이 함께 있기를 바라진 않았을 겁니다.”

팽팽한 기 싸움을 느낀 메이는 이 상황이 불편해서 디아고를 불렀다.

“황자님, 저 좀 일으켜 주시면 안 될까요?”

디아고와 함께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이에 디아고는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며 메이가 제드가 아닌 자신을 택했다는 것에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군. 메이는 나랑 단둘이 있길 원해.”

……내가?

메이가 자신이 언제 원했냐는 듯이 쳐다보니 디아고가 몸을 낮추곤 공주님 안기로 그녀를 들어 올렸다.

“……황자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내려 주세요!”

“이대로 가. 일으켜 달라는 걸 보니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 같은데.”

갑작스레 공주님 안기를 당한 메이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저 걸을 수 있어요. 내려 줘요.”

“내가 내려 주는 법을 몰라서.”

디아고는 민망해하는 메이를 보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메이는 내려 달라며 발버둥 치려다가 그의 말대로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결국 그가 해 주는 대로 있기로 했다.

“……창피하니까 어서 가요.”

“그래.”

디아고는 제드를 힐끗 쳐다보며 승리자의 미소를 보이곤 아카센터 밖으로 나갔다.

메이는 제드가 따라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선 디아고에게 물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조교한테 물어봤지.”

“설마 저 보려고 온 거예요?”

“너 아니면 누굴 보러 가겠어.”

담담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는 말이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벽은 어떻게 부순 거예요?”

“아까 그거? 그냥 부수니까 부서지던데? 왜?”

“절대 안 부서질 것처럼 생겼었거든요.”

디아고는 걷다가 우뚝 멈춰 섰다.

“……설마 제드가 널 가둬 놨어?”

표정을 숨기는 이들이 많은 황궁에서 생활해서 그런가. 눈치가 100단이었다. 하지만 메이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디아고가 대신해서 화를 내는 것도 원하지 않아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가둬 놨었구나?”

그의 얼굴에 분노가 서리자 메이는 그의 화를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괜찮아요. 가둔다고 해서 계속 그곳에 있을 생각도 아니었고……. 저, 강하잖아요.”

멋쩍게 미소라도 보였으나 그의 화를 잠재우기엔 부족했다.

“그 자식을 어떻게 족쳐 놓을까.”

“족쳐 놓다뇨……. 예쁜 말 써 주세요.”

“……어떻게 혼내 줄까.”

“혼내지 마요. 안 그래도 고백 거절했거든요. 지금 상태 많이 안 좋아서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화가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대차게 차였을 제드를 생각하니 굳이 지금 나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마차로 걸어가며 말했다.

“제드가 또 곤란하게 만들면 언제든 날 불러. 언제든 족쳐…… 아니, 혼내 줄 준비 되어 있으니까. 다시는 못 다가가게 만들어 줄게.”

“웬만하면 안 다가올 거예요. 연애 전에 내면의 부족함부터 채워 보라고 했는데…… 그런 말을 난생처음 들어 봤는지 충격받은 얼굴이었어요.”

메이의 말에 디아고는 풉, 하고 웃었다.

“제드 성격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 같군.”

“어쩔 수 없었어요. 제가 싫다는 티를 내도 정신 못 차리고 연애하자고 하니까요.”

“잘했어. 제드도 이제 정신 차려야지.”

“제드‘도’라고 하는 걸 보니, 황자님은 정신 차렸다는 거예요?”

“나? 정신 차렸지. 널 좋아한 이후로는 나한테 접근하는 여자들한테 말 걸지 말라고도 해 뒀는데?”

메이는 디아고에게 접근하는 여자가 많을 정도로 그가 인기가 많다는 부분에서 놀랐다.

“황자님, 인기 많아요?”

“많지. 잘생겼잖아.”

자기 입으로 잘생겼다고 하다니. 메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왜 반응이 없어? 네 눈엔 나 별로야?”

아니, 뭐, 객관적으로 잘생긴 편이긴 한데…….

메이는 괜히 그의 반응이 궁금해 떠보고 싶어졌다.

“별로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헤어스타일이 별론가. 앞머리를 내려 볼까?”

별로라고 해도 그에겐 별 타격이 없는 듯했다.

“내려도 괜찮을 것 같아요.”

디아고는 메이를 향해 살풋 미소했다.

“다음엔 내리고 올게. 그땐 잘생겼다고 해 줘.”

“음~ 정말로 잘생겼으면요.”

“정말로 잘생겼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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