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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10)화 (110/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10화

제드가 나보다 강하고, 처음부터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간 바로 질 거란 걸 알기에 나는 직진하는 척, 옆으로 몸을 비틀어 그의 검을 피했다.

씨잉―!

그가 검으로 허공을 베는 소리가 날렵하게 귓구멍에 때려 박혔다.

저거 맞으면 진짜로 죽겠는데……?

식겁한 나는 바로 평정을 유지하곤 그 자리에서 마력의 힘으로 4m 가까이 뛰어올라 위에서 검을 내리쳤다.

불이라도 붙은 듯 마력으로 인해 뜨거워진 검이 내려칠 때, 제드가 위로 팔을 뻗어 검으로 받아냈다.

씨이이이이이잉―

같은 은색 기운이 맞붙는 소리는 철판 데기를 긁어내는 소음과도 비슷했다.

나는 힘껏 아래로 힘을 모았으나 제드의 힘을 못 이겨 튕겨 나갔다.

땅에 착지한 나는 강한 바람에 의해 뒤로 밀려났음에도 발에 힘을 줘 원 밖으로는 나가지 않게 했다.

3cm. 그 이상 뒤로 밀려났으면 거기서 대결은 끝이었다.

나는 바로 달려가 그를 공격했다.

챙, 챙, 챙―!!

내가 내려치는 곳을 제드는 전부 받아냈고, 심지어는 받아내는 힘이 더 강해서 내 몸이 자꾸만 뒤로 밀렸다.

이거 봐. 정면으로는 이길 수 없어.

나는 그의 검을 검으로 막아 견디다 말고 주저앉아 몸을 납작하게 했다.

제드가 위로 검을 들어 내리치기 전에 그의 허벅지에 공격을 가한 후 중앙으로 빠져나왔다.

스탠드에 앉은 기사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빠져나가려고 몸을 숙여 허벅지를 공격하네. 순발력이 대단하군.”

제드는 바로 뒤를 돌아 달려들었으나 나는 막아내고, 피하고를 반복했다.

결국 승부가 나지 않은 채 조교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빅―

“대결 그만합니다. 쉬는 시간 20분 동안 쉬도록 합니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는 스탠드로 돌아갔다. 제드가 괜찮냐고 물으려고 내 이름을 불렀지만 못 들은 척 휙 돌아서서 갈 길을 걸어갔다.

간만에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서 그런지 어깨, 팔, 허벅지…… 근육통이 없는 곳이 없었다. 얼른 가서 잠시 몸을 쉬고 싶었다.

나는 디아고가 다가와 건네는 흰 수건을 받고선 땀을 닦았다.

“수고했어. 대결이 바로 끝날 줄 알았더니만, 잘 싸우던데?”

관자놀이를 적신 땀을 닦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제대로 안 싸웠어요? 하자고 해서 기껏 짝 해 줬더니만.”

물론 나도 그가 다가오지 않았으면 딱히 짝을 할 사람이 없었지만 말이다.

“……다칠까 봐.”

퍽 진지하게 나오는 대답에 나는 헛숨을 내쉬었다.

“저 그렇게 약하지 않거든요? 다음에 대결할 일 있으면 그땐 봐주지 마세요.”

나는 호리병 뚜껑을 열어 입으로 가져갔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자 했으나 물은 한두 방울 떨어지곤 끝이었다.

“뭐야…… 다 마셨나 보네.”

디아고는 기회다 싶었는지 그의 호리병과 바꿔 주었다.

“그거 마셔. 이건 내가 새로 떠 올게.”

순식간에 손에 든 호리병이 그의 호리병으로 바뀌어 떨떠름해하는 사이, 디아고는 급수대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혼잣말했다.

“뭐…… 나쁘진 않네.”

나는 그가 준 호리병에 든 물로 갈증을 해소했다.

디아고는 가져간 호리병에 새로 물을 담아와 내게 돌려주었다. 나도 그의 호리병을 돌려주었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요. 저 혼자서도 떠 마실 수 있어요.”

“기껏 떠왔더니만 사람 힘 빠지는 소리 하는군.”

“시키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떠온 거잖아요.”

디아고는 까칠하게 구는 나를 보며 안도했다.

“그래도…… 전보다는 네가 날 덜 싫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야 싫어할 짓을 전보다 안 하니까 그렇죠.”

실은 그가 걱정했다며 찾아와 우는 모습을 보곤 마음이 약해졌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생명의 은인이니 계속 그를 밀어내며 쓴소리를 할 수 없었다.

“이제 네가 싫어할 짓 안 해. 나인도 해체했어.”

나는 놀라서 토끼 눈이 되었다.

“네……? 나인을 해체했다고요? 왜요?”

“네가 싫어하니까.”

너무나도 간단한 답에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나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긴 했지만…… 내가 싫어한다는 게 해체까지 할 일인가?

디아고의 의중을 읽을 수가 없었다.

“황자님, 혹시 저한테 뭐 바라시는 거 있어요?”

나는 디아고가 나인을 해체한 게 단순히 나를 좋아해서이기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가 나인 해체까지 감행한 이유는 내게 뭔가 원하는 바가 있어서 그런 게 클 것이다.

“당연히 있지.”

내 추측대로 디아고는 바라는 게 있었다.

“너와 연애하고 싶어.”

“……네?”

다시금 눈이 동그래진 나는 작동을 멈춘 기계처럼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연애라니. 그것도 디아고 스타시아와 연애라니. 상상이 가질 않았다.

“당장 연애하자는 건 아니야. 강제로 연애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네가 싫어하는 행동은 전부 하지 않을 거야. 네가 날 좋아할 수 있게. 그러니까 뭘 싫어하는지 말만 해. 전부 안 할 자신 있으니까.”

나는 급작스러운 고백에 얼떨떨했다. 싫어하는 걸 전혀 안 할 자신이 있다니. 빈말인가 싶었지만 기회다 싶어 얘기했다.

“술주정 부리는 거 싫어요. 특히나 제 앞에선 절대로 술주정 안 부렸으면 좋겠어요.”

“술 끊을게.”

……이렇게 바로? 대답이 너무 빨라서 누가 보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줄 알겠네.

“술 좋아하시잖아요. 끊기 힘드실 듯한데 그냥 술주정만 부리지 마요. 아니면 술 먹었을 땐 제 앞에 안 나타나셨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위스키를 뒤집어쓰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이었다. 눈을 반짝이던 그는 내 말에 그때 일을 역시 떠올렸는지 시선을 살짝 떨어뜨렸다.

“……적당히 마실게. 그리고 또?”

나는 또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싶어 잠시 고개를 흔들다가, 이쪽을 힐끔거리는 동료들의 시선을 발견했다.

“우리 둘이 붙어 있으니까 동료들이 쳐다봐요.”

그러자 디아고가 바로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틀었다.

“누구야.”

나와 디아고를 쳐다보던 수호 기사들은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런 디아고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리고 지금 이 모습. 이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성질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 좋아요.”

디아고는 바로 표정을 풀곤 미소를 보였다.

“알겠어. 착하게 굴게.”

그의 미소에 어색함이 묻어났지만 나는 어쩐지 그 모습이 더 좋았다.

“웃는 게 훨씬 낫네요.”

처음 듣는 칭찬에 디아고의 목이 붉어졌다.

***

훈련 후, 메이가 홀로 벤치에서 앉아 있을 때였다. 그녀는 잠깐 눈을 붙이곤 쉬었다.

줄곧 그녀를 바라보던 제드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따라왔다. 쉬는 그녀를 방해할 순 없어 가까이 가진 않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보았다.

혹여 디아고한테 마음을 전부 주는 건 아닐까.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읽고 싶었지만 읽을 수 없었다.

헤스티아의 사망과 동시에 미로카곤은 더는 제드에게 능력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바로 회수했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불어, 작은 나뭇잎이 메이의 볼 위로 떨어졌다.

이를 본 제드는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나뭇잎을 떼어 주기 위해 그녀에게 가까이 걸음을 옮겼다.

그들뿐인 그곳에서, 제드는 손을 뻗어 나뭇잎을 떼어 주었다.

그때, 메이가 눈을 뜨곤 제드의 손목을 낚아챘다.

“뭐 하는 짓이야.”

깨어날 줄 몰랐던 제드는 놀라서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나뭇잎, 떨어졌길래.”

그의 말마따나 그의 손엔 작은 나뭇잎이 있어 메이는 손목을 놔주었다.

“그냥 지나가지 그랬어. 이런 거 떼어 줄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제드는 애처로운 눈을 하며 메이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날 마음을 갖고 논 나쁜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널 좋아했어. 하지만 내가 평민과 연애할 수 없다는 거 알잖아. 더는 귀족이 아니라는 너에게, 거기서 차마 네 마음을 받아 줄 수는 없었어.”

진심을 담아 털어놓는 듯 얘기했으나 메이는 믿어 주지 않았다.

“제드, 방금 네가 한 얘기, 미로카곤한테 진짠지 아닌지 물어봐도 돼? 나, 미로카곤이랑 친해졌거든.”

“…….”

하지만 제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무어라 답할 수 없는 이유는 한 가지다. 거짓말이니까.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녀가 귀여워 보일 때도, 사랑스러워 보일 때도 있었으나 좋아한 적은 없었다.

“……좋아하기는 개뿔.”

메이의 체념조의 음성이 제드의 가슴에 박혔다.

“끝까지 이러는 걸 보면 넌 진짜 사람 마음이 우습나 보구나.”

“…….”

메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와는 마주하지 않았다.

“아니면 내 마음만 우스운 건가.”

그리고 그대로 제드를 지나쳐 갔다.

나는 그가 이제 와서 질척거리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플로티나의 공녀가 되었으니까. 헤스티아 사건으로 인해 내가 플로티나 공작의 딸로 살게 된다는 것도 널리 알려졌다.

그와 어울리는 신분이 되었으니 질척거리는 게 틀림없었다.

“나쁜 놈…….”

표정이 어두워지려할 때쯤, 저 멀리서 걸어가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요 며칠간 만나고 싶어 했던 두 명을 만나 순식간에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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