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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95)화 (95/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95화

얼마 후, 메이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스텔라는 메이를 소파에 눕힌 후 하녀에게 담요를 가져오라 명해 덮어 주었다.

메이가 방문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찾아온 밀로가 들어와 스텔라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 주제는 그들 옆 소파에서 곤히 자는 소녀였다.

“그러면 이제 공녀님은 플로티나에서 탈적되는 건가요?”

묻는 밀로의 시선은 메이에게 꽂혀 있었다.

“아닐걸. 키운 정이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절연 선언을 하긴 했어도 공작님이 메이를 호적에서 빼 버리진 않을 거야.”

“공녀님께서 다시 플로티나로 돌아가실까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네. 공작님과 그쪽 수호신이 잘못을 빌면 언젠가는 돌아가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게 언제가 될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메이도 그녀의 아빠와 수호신에게 쌓아 온 정이 있으니 언젠가는 그들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할 게 확실하다.

‘절연했다는 슬픔에 펑펑 울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지.’

“친부가 제3기사단 소속 마테로진 키셀 남작이라고 했었죠.”

밀로의 표정이 좋지 않자 눈치 빠른 스텔라는 그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님을 감지했다.

“왜? 메이의 아빠로서는 별로인 사람이야? 난 처음 들어 보는데.”

“제가 아는 게 맞다면…… 헤스티아가 가장 총애하는 남자일 거예요.”

“헤스티아가……?”

스텔라는 놀랐는지 그녀의 눈이 자못 커졌다.

“헤스티아에게 복수하려고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했었죠.”

“그랬었지. 헤스티아의 스파이가 되어 펜소가에 잠입했었다며.”

“그때 알아낸 사실이 있어요. 헤스티아는 세간이 퍼진 소문보다 훨씬 더 남자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미남을 좋아해 기사단도 미남으로만 꾸린다는 소문은 듣긴 했지. 그런데 그보다 더 남자를 좋아한다고?”

“그때 제게 123번째 첩이 될 생각이 없냐고 했었거든요.”

“123번째 첩이라고?”

스텔라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했다. 황당해서 헛웃음만 나왔다.

“자기가 의자왕이야 뭐야…….”

“의자……왕이요?”

밀로가 그게 누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자 스텔라가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그건 그렇고, 이곳 스타시아 제국 황제도 첩을 안 거닐거늘, 헤스티아는 첩이 뭐 그리 많아? 3기사단 수호 기사들은 다 첩이래?”

“다는 아니지만 3분의1 정도는 그런 것 같아 보이더라고요.”

“하긴, 미남 노예를 얻으려고 펜소가와 거래해 이웃나라에 폭발마법까지 설치하고 온 사람이니…… 말 다 했지.”

이로 인해 켈레샤 제국과 전쟁이 나기라도 한다면 헤스티아가 수호신이래도 전범에 대한 벌을 받게 해야 한다.

밀로의 안면에 근심이 서렸다.

“키셀 남작은 헤스티아의 제일 큰 총애를 받는 이인데 그런 사람이 공녀님의 친부라 걱정돼요.”

아무래도 좋은 아버지가 될 사람은 아닐 터였다.

“걱정돼도 메이한테는 얘기하지 마. 안 그래도 메이 머릿속이 복잡할 텐데 더 복작하게 만들고 싶지 않거든.”

자신의 친부가 누군가의 첩이라니. 절대로 메이가 알고 싶어 하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밀로는 자신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메이가 친부를 받아들일지 말지 잘 결정하리라 믿었다.

“그럼요. 공녀님께서 잘 판단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반면에 스텔라는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짚었다.

“플로티나 공작도 부모로서는 별로였어서 메이가 집을 떠난 게 속이 시원하긴 한데 막상 내 품에서 우는 걸 보니 가족이 있어야 할 것 같네. 되도록이면 빨리 화해했으면 좋겠는데 메이의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적어도 공녀님이 친부의 존재 때문에 플로티나에 돌아가는 걸 망설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스텔라가 울다 지쳐 잠든 소녀를 바라보았다.

“잘 판단하겠지, 우리 메이…….”

“어떤 선택을 하든 행복하기만 하다면 전 충분할 것 같아요.”

“나도 그래. 다만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상처만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상처는 차고 넘치게 받았으니까.

이젠 행복해져야지.

***

열여섯 살이 된 지 3주가 지나던 날.

제1, 2, 3 수호 기사단 모두 기사 선출을 마쳐 신입 기사 합숙 훈련이 시작되었다.

수호 기사가 되면 한 달간은 필히 합숙 훈련을 거쳐야 했다.

“수호 기사의 존재 의의는 스타시아 제국 백성들의 삶을 이롭게 하는 데에 있어. 그러니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도록!”

입소식이 끝난 후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첫날은 기초 체력 단련에 매진했다.

1기사단, 2기사단 신입은 확실히 수호 기사로서의 자질이 있는 이들만 뽑아 여유롭게 단련했으나 외모만 보고 뽑은 3기사단은 죽어났다.

“무리야, 무리!”

겨우 기초 체력 단련일 뿐인데도 도중에 포기하는 이들을 보며 몇몇 이들이 혀를 찼다.

“저래 갖고 수호 기사 하겠어? 전쟁 터지면 민간인들은 어떻게 구하려고 저래?”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겠지, 뭐. 황태자 전하 오른팔 잃은 사건도 유명하잖아.”

“내 쌍둥이 동생은 수호 기사 되고 싶어서 훈련을 하루에 7시간씩 했는데도 선출되지 못했는데 저들은 겨우 외모 잘났다고 뽑히다니…….”

그중 한 기사가 제일 앞에서 달리고 있는 제드 블로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 보면 블로체 공자님은 다 가졌네. 외모, 실력, 신분, 재산…… 뭐 안 갖춘 게 없어.”

그러다 디아고가 그를 따라잡아 제일 앞서게 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2황자님도 그렇지. 오히려 몸도 신분도 2황자님 쪽이 더 좋잖아.”

그러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를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세상 참 불공평해…….”

넓은 훈련소를 열 바퀴나 돌고서야 점심시간을 가졌다.

훈련소 식당은 벌써 친해진 기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느라 시끌벅적했다.

내 주위에 앉은 기사들은 힐끗힐끗 홀로 밥을 먹는 나를 쳐다보기 바빴다. 아무래도 내 성별을 알지 못하게 하는 정신계 마법을 풀어서 쳐다보는 듯했다.

나를 향해 수군거리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면, 내가 여자로 보이는 것에 몹시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플로티나의 수호신이 정신계 마법을 잘 다루니 아들로 키우기 위해 그에 맞는 정신계 마법을 걸었다가 푼 건 아닐까, 하는 예리한 추리를 했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정신계 마법을 풀었는가에 대해선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궁금해도 나한테 직접 와서 물어보진 못하는 걸 보니 플로티나가 위엄 있긴 하구나, 새삼 느꼈다. 그들은 내가 더는 플로티나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것 같지만.

그러다 어떤 건들건들한 녀석이 내게 다가왔다. 밥을 먹던 내가 올려다보니 썩소를 짓는 두 놈을 더해 총 세 놈이 내 앞에 있었다.

“저기요, 플로티나 공자님. 아니, 이제는 그냥 메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대장으로 보이는 건들건들한 녀석이 내게 예의 없게 물었다.

“혹시 플로티나 각하께 파양당하셨어요?”

“……뭐?”

예의 없고도 개념 없는 물음에 내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녀석은 내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갑자기 정신계 마법을 푼 게 이상해서요. 딸은 가주 자리도 못 주는데 왜 그랬나 싶고요. 기분 나빠하진 마시구요.”

기분 나쁘게 굴면서 기분 나빠하지 말라니. 어이없는 소리에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난 녀석이 입고 있는 상의에 달린 배지를 확인했다.

보라색 배지……. 3기사단이구나.

헤스티아가 인성 안 보고 기사를 뽑는다더니. 진짜였어.

“네 알 바는 아닌 것 같은데?”

“알아야 대우를 달리하죠. 설마 파양당하셨는데 플로티나 공자를 향했던 것과 같은 대우를 원하는 건 아니시죠? 파양당했으면 평민이잖아요. 아니면 노예이신가? 입양 전에 신분이 어떠셨는지 모르겠네요.”

녀석의 말에 함께 따라온 두 놈이 킥킥 웃어 대는 그때였다.

“으아악-!!”

내 뒤편에서 은색기운이 휘몰아쳐 오더니 내게 시비 걸러 온 세 놈의 발목을 감싸곤 천장에 밀어 붙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대롱거렸다.

“사, 사람 살려……!”

그 은색 기운의 주인은 디아고였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만 디아고는 여유롭고도 고고하게 걸어왔다.

그는 보란 듯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첫날부터 이런 소란을 만들다니. 아니, 애초에 더는 그와 엮이기 싫다고 했는데 왜 또 내게 다가왔냔 말이다.

디아고는 내가 아닌, 대롱대롱 삼총사에게 시선을 꽂았다.

곧 그의 입에서 황당한 말이 튀어나왔다.

“누가 주제도 모르고 내 사람을 건드리길래.”

내 사람이라니. 아니 누가 네 사람인데?

내가 황당해하든 말든 디아고는 거만하게 팔짱을 끼곤 다리를 꼬았다.

“너희를 어떻게 해 줄까. 발목을 부러트릴까?”

발목을 감싼 은색 기운에 힘이 세게 가해졌다. 놈들은 기겁하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죄,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글쎄다. 그러기엔 너희가 내 심기를 제대로 건드려서.”

식당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꽂혔다.

‘이게 뭐람……? 부담스러워서 밥을 못 먹겠잖아.’

더는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먹지 못한 식판을 들고 나가려던 그때.

“잠깐만.”

디아고가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놈들한텐 사이코처럼 굴더니만 날 돌아본 그의 눈빛은 순한 양이 따로 없었다.

“쟤네들한테 사과는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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