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91화
“다른 벌?”
“네. 다른 벌.”
밀로는 흔쾌히 수락했다.
“클라라 펜소가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한 합당한 벌만 받는다면 괜찮습니다. 공자님 뜻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밀로가 괜찮다고 하니 나도 네 의견을 따르마.”
“감사합니다, 후작님. 고마워, 밀로.”
스텔라는 한술 더 떠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 참교육 현장, 나도 따라갈래.”
스텔라의 말에 밀로도 손을 들었다.
“저도 가고 싶어요.”
나는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 같이 가자.”
***
어두운 황실 감옥 안. 기사들은 클로빈과 클라라를 한 감옥에 밀어 넣었다.
철푸덕― 바닥에 넘어진 그들은 자존심이 상해, 되는 대로 지껄였다.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딴 식으로 대우해!”
“너희 다 죽고 싶어?! 여기서 나가면 너희부터 싹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러나 기사들은 들은 체 만 체하며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옆방에 있던 백작 부부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쇠창살을 붙잡고 자식들을 보고자 했다.
“클로빈, 클라라니?”
“아빠……?”
“너희가 왜 여기에 있어……!”
제 부모 목소리에 펜소 남매도 기어가 쇠창살을 붙잡았다.
“엄마, 아빠야말로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게…….”
서로의 상황을 알게 된 그들은 탄식하며 쭈그려 앉았다.
“이제 어쩌면 좋니…… 어쩌면 좋아…….”
백작 부인, 엘리사가 찔끔 나온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클로빈은 클라라 옆에서 덜덜 떨었다.
“우리 설마 평생 옥살이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 그렇게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오빠, 약해 빠진 소리 할래? 어떻게 해서든 탈옥해야지.”
그러나 창문 하나 없는 이 스산한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란 쇠창살에 묶인 자물쇠를 푸는 것뿐이었다.
클라라는 쇠창살과 자물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정도 간격의 창살이라면…… 자신의 팔 정도는 통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벽이 되자 감옥에서 보초를 서던 기사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클라라는 기사들이 안 보는 사이 쇠창살 사이로 팔을 빼 자물쇠를 잡았다.
“지푸라기 엮은 거로 과연 풀릴까……?”
“열쇠가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클라라는 감옥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푸라기 엮은 것으로 자물쇠를 풀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간신히 구멍에 맞춰서 넣었으려나 싶으면, 지푸라기가 힘없이 꺾여서 안에서 헛돌았다.
“이거 왜 이렇게 안 돼?”
슬슬 짜증이 올라올 무렵, 어디선가 은색 기운이 들어오더니 자물쇠 줄을 끊어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를 모르는 클라라는 갑작스럽게 난 찰칵 소리에 반색했다.
“어? 끊겼다……!”
“진짜로?”
클로빈이 클라라 곁으로 와서 쇠창살 문을 밀자 잘만 열렸다.
“다행이야……!”
“신이 우릴 도왔어!”
그들은 갑자기 자물쇠가 왜 끊겼는지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탈옥할 생각에 신이 났다.
펜소 부부는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어떻게 열었니? 클라라, 클로빈, 우리도 꺼내 다오.”
“알겠어요. 잠시만요.”
복도로 나온 클로빈은 잠든 기사들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옆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편 클라라는 이러다 기사들이 깨서 다시 감옥에 들어가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클라라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오빠, 엄마랑 아빠 구해 줄 시간이 어딨어? 이러다 기사들 깨면 답도 없어!”
“아, 그렇구나……?”
클로빈이 펜소 부부 방 자물쇠를 내려놓고 클라라에게 돌아가자 펜소 부부는 황당해했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엄마 아빠를 두고 가려고?”
“엄마 아빠도 구해 줘야지……!”
클로빈은 기사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저희도 살아야겠고…….”
엘리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게 무슨 소리냐며 쇠창살을 흔들어 댔다.
클로빈의 말을 들은 백작은 뒷골이 당겨 뒷목을 잡았다. 엘리사는 눈을 부릅뜨고 질책했다.
“클로빈, 내가 널 그리 가르쳤니? 가족이면 다 같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서로를 구하기 위해 힘써야지!”
“하지만 엄마 아빠는 저희랑 죄질이 다르잖아요. 탈세에, 마약 밀반입에, 무임금 착취, 아동 착취……. 이게 다 엄마 아빠가 주도한 일이잖아요. 저희랑 비교하면 안 되죠.”
“하! 죄를 지었으면 다 똑같은 죄인이지 죄질을 운운하는 게 어딨어? 그리고, 너흰 결국 다 내 자식이야. 똑같은 펜소가의 일원이라고!”
“엄마 말이 맞다. 어서 우리도 꺼내 주렴, 클로빈!”
클로빈은 이에 대해 반박하려 했으나, 클라라가 제지했다.
“오빠, 이러다 진짜로 기사들 깨겠어. 그냥 가자.”
“그래, 가자.”
“엄마랑 아빠도 잘 빠져나오시길 바랄게요.”
클라라의 말을 끝으로 펜소 남매는 감옥을 떠났다.
“이것들이……!”
엘리사는 제 자식들이 괘씸해서 쇠창살을 붙잡은 양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 주지 않은 이들을 순순히 탈옥하게끔 보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엘리사가 잠든 기사들이 전부 깰 정도로 아주 큰 목소리로 외쳤다.
“탈옥이야! 내 새끼들이 사라졌어!”
기사들은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다. 소리가 난 백작 부부 쪽을 돌아본 그들은 펜소 남매가 탈옥한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깊은 밤하늘 아래. 감옥 밖으로 나온 클라라와 클로빈은 전력을 다해 뛰었다.
“클라라, 이제 우리 어디로 가야 해?”
“몰라, 일단 황궁부터 나가야지!”
“기사들이 따라오려나?”
클로빈이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기사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젠장! 클라라, 벌써 우릴 잡으려 따라오고 있어!”
“망할!!”
펜소 남매와 기사들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이대론 잡히겠다 싶어 그들은 흩어져서 숨었다.
클라라는 건물 입구 뒤쪽에, 클로빈은 수풀에 몸을 숨겼다.
“하아- 하아-”
클라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발목이 아파서 드레스를 살짝 올려 보니 구두로 인해 살이 까져 피가 나오고 있었다.
‘망할, 이 고귀한 내가 왜 이런 신세가 된 거야?’
하지만 아파도 기사들한테 잡히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어디로 가야 안 잡히고 황궁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는 그때, 정체불명의 은색 기운이 클라라를 휘감았다. 은색 기운은 클라라를 공중 부양시켜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놀라서 소리를 꽥 지를 뻔했으나 잡혀서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던 클라라는 목소리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한편, 기사들은 클로빈이 있는 수풀 근처를 수색했다.
“샅샅이 찾아. 더 멀리 도망가진 못했을 테니까.”
“네!”
클로빈은 잡힐까 봐 두려워서 덜덜 떨며 기도했다.
‘오, 신이시여.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할 테니 이번만은 안 잡히게 해 주소서. 제발 저들이 빨리 꺼져 줬으면 합니다…….’
그러다 클라라가 어디에 숨었는지 궁금해졌다. 잡혔다면 바로 알았겠지만 클라라의 목소리나 클라라를 잡았다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얘는 안 잡혔겠지? 서로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할 텐데…….’
클로빈이 클라라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슬며시 고개를 위로 내밀었다.
바로 그때! 휴대용 램프 빛이 클로빈의 안면을 직격했다.
“찾았다! 클로빈 펜소를 찾았습니다! 여깁니다!”
클로빈은 재빨리 뒤쪽으로 달렸으나 사방에서 기사들이 모여들어 포위했다.
“도망쳐 봤자 소용없습니다. 순순히 감옥으로 가시죠, 공자님.”
클로빈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
그사이, 클라라는 은색 기운 덕에 아무도 몰래 황궁 담을 넘을 수 있었다.
“역시 신은 내 편이라니까?”
은색 기운은 어느 마차로 인도했고, 클라라는 망설임 없이 그 마차에 올랐다.
“날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나 보네. 어떤 사람인지, 만나면 칭찬해 줘야겠어.”
마차는 마치 그녀가 타길 기다렸다는 듯, 지체 없이 출발했다. 마차는 꽤 넓고 시트는 푹신해서, 새벽까지 한숨도 못 잤던 클라라는 크게 하품했다.
“하암- 한숨 잘까? 도착하면 마부가 깨워 주겠지.”
그렇게 클라라는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잠이 들었다.
“야, 야-! 안 일어나?”
동이 트는 시각. 누군가 발로 툭툭 치자 클라라는 눈을 떴다.
잠이 덜 깨 눈만 껌뻑거리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차가운 땅. 클라라는 자신이 맨바닥에서 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어떻게 된…….”
“드디어 일어났네. 탈옥자가 잠잘 여유가 있을 줄은 몰랐어.”
클라라는 고개를 들어 올려 앞에 있는 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스텔라 나제트, 메이 플로티나, 밀로 나제트.
그들을 보고선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클라라는 매서운 눈초리로 경계했다.
“그 은색 기운으로 날 데려온 게 너희들이었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스텔라가 삐딱하게 서선 팔짱을 꼈다.
“그럼, 너같이 사악한 애를 집에 친히 데려다줄 사람이 있을 줄 알았어? 어차피 갈 집도 없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갈 집이 없긴 왜 없어.”
“너희 펜소 가문, 전 재산 몰수당하는 거 몰라? 뭐, 몰수해 봤자 이렇다 할 큰 재산도 없겠지만.”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이번엔 밀로가 대답했다.
“무도회 마지막 날에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걸 내가 미리 고용인들과 노예들한테 알려 줬었어. 지금쯤 전부 한몫 챙겨서 달아났겠지.”
“뭐…….”
믿을 수 없는 일에 클라라는 멍청히 눈동자를 떨었다. 불행하게도, 믿을 수 없는 일들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