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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90)화 (90/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90화

필사적으로 달려 도착한 호수엔 메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만 널브러져 있었다.

“젠장……!”

자칫 꿈의 파동으로 인해 꿈을 꾸다가 물속에 잠겨 죽을 수도 있는데 메이는 왜 호수로 들어간 건지. 그걸 알면서 들어갈 만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인지.

그런 것에 대해 자세히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디아고는 망설임 없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호수 안은 깜깜해서 앞의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마력으로 불을 켜니 의식을 잃은 채 호수 바닥에 쓰러진 메이가 보였다.

그녀를 감싼 희미한 빛의 꿈의 파동은 몹시 견고해 보였다. 파동이 견고해졌다는 것은, 메이가 움직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디아고는 초조하게 물속을 가로질러 메이의 손을 잡았다. 그대로 끌어 올려 수면 위로 올라가려 하니 꿈의 파동이 쫓아왔다.

디아고는 꿈에 잠기지 않도록 마력을 써 쳐 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언제부터 물속에 있던 거지? 언제부터 숨을 못 쉬고 있던 거야.

메이를 끌어당기려는 꿈의 파동과 몇 차례 실랑이한 끝에 간신히 수면 위로 메이를 끌고 올라왔다.

디아고는 메이를 눕히자마자 그녀가 숨을 쉬는지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물속에서 나왔음에도 메이에게서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디아고는 작게 욕설을 내뱉곤 바로 심폐소생술에 들어갔다.

서른 번 정도 흉부압박을 가한 후 인공호흡 두 번. 그리고 다시 흉부압박을 하려다가 디아고는 메이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인지 흉부압박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였다. 단추를 다 풀자마자 가슴을 옥죄듯이 두르고 있는 붕대를 발견했다.

‘붕대는 도대체 왜 하고 다니는 거야.’

디아고는 한시가 급해 서둘러 붕대를 푸르다가.

이내 경직되어 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눈동자만 정처 없이 마구 흔들렸다.

제 앞에 드러난 가슴이 남자의 가슴이 아니라서.

디아고는 그녀의 가슴에서 눈을 뗐다가 다시 보았다. 두 눈을 마구 비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잘못 본 것이 아니다. 흰 속살의 굴곡이 절대로 남자의 것일 수가 없었다.

“콜록콜록-”

때마침 메이가 숨을 쉬더니 물을 뱉으며 깨어났다.

메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이 흐릿했다. 누군가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그게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제드……?”

부르고 싶은 이름을 부르다가 제 앞에 있는 사람이 그가 아님을 깨달았다.

“황자님…….”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고, 디아고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어째서인지 그는 놀라서 얼어붙은 듯한 표정이었다.

메이는 상체를 일으키고서야 앞이 허전함을 느꼈다. 셔츠와 붕대가 벗겨져 있는 걸 보고서 황급히 뒤를 돌았다.

‘내, 내가 왜 이런 꼴로 있지……? 브로치를 줍고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불현듯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언젠가 페르시스를 좋아했었다는 여자가 충고랍시고 페르시스에게 내가 친자식이 아님을 알려 주는 꿈이었다.

꿈의 파동으로 인해 물속 잠겨 꿈을 꾼 듯했다.

‘그런 나를 디아고가 꺼내 줬나 보네.’

그런데 어떻게 알고? 궁금했으나 벗어 놓은 신발을 보고 알았나 보다, 하고 대충 넘겨짚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메이는 얼른 붕대를 매고 셔츠를 바로 입었다. 누군가가 오기 전에 얼른 다시 남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뒤편에서 디아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너…… 여자였어……?”

하지만 혼란스러워하는 디아고에 비해 메이는 덤덤히 대답했다.

“……네.”

심장이 멎는 기분에 디아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충격에 빠진 디아고를 두고, 메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다. 뭐 때문에 그 호수 바닥을 기어 다녔는데.

“브로치……! 가져왔나?”

다행히 브로치는 얌전히 옆에 놓여 있었다.

메이는 안도하며 브로치를 주워 셔츠에 달았다. 해바라기 브로치가 달빛을 받아 반짝 하고 빛났다.

물속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왔음에도 아무렇지 않아 하며 척척 할 일을 하는 메이와 달리, 디아고는 움직일 수 없었다.

충격받은 얼굴엔 정확히 무엇이라 답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묻어났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어…….’

뒤통수가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남자인 줄 알고 좋아하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메이에게 멋대로 굴었건만 여자였다니.

자신은 도대체 왜 그녀에게 그런 짓들을 한 걸까.

여전히 넋이 빠진 듯 있는 디아고를 두고, 메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해 주신 건, 사과 대신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여태껏 받은 그의 괴롭힘을 떠올리면 사실 고맙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그러니 사과를 받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는 내게 괴롭힌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사람이니까.

메이는 무정한 말만 남기곤 떠났다. 디아고는 메이가 떠나도 그 자리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이제는 잔잔해진 호수 수면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닐까? 자신이 그를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미친 꿈을 꾸는 것이다.

그렇잖은가. 메이 플로티나가 어떻게 여자일 수 있어.

그 작은 애가…….

마법이 풀린 것처럼 메이를 떠올릴수록 그녀는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누가 봐도 여자였다. 방금 봤던 그녀의 가슴 또한 여자의 것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몰랐을까. 제드가 알려 주기도 했었는데 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남자라 믿었을까. 제드 블로체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메이가 여자인 줄 몰랐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건 그녀를 힘들게 했다는 것이었다.

지난날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녀에게 시비를 걸고, 화를 내고, 그녀를 모함에 빠트릴 계획을 세운 기억들. 기억 속의 자신은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한 거지?’

그 기억 속 자신에게 미치도록 화가 났다.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그러나 정말 스스로가 더 추악하다고 느껴진 건, 이런 상황에서 메이가 여자라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자신이었다. 더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부정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사과해야 해.”

매달려서라도 용서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녀와의 관계를 회복해야만 한다.

메이가 여자인 이상, 절대로 다른 놈에게 뺏겨선 안 된다. 그렇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용서받지 못하면 어떡해야 하지?

자신의 잘못이 크다는 걸 알기에, 그는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

호수에서 나온 나는 곧장 무도회장으로 직행했다. 쫄딱 젖은 탓에 옷에서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다 젖어서 그런가. 추워.’

추워서 양팔을 감싸 안은 상태로 걸어가니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보였다.

스텔라였다.

무도회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날 발견하자마자 큰 목소리로 불렀다.

“메이!”

스텔라는 내게 달려오더니 쫄딱 젖은 내 모습을 보며 걱정했다.

“뭐야? 왜 젖었어? 감기 걸리겠어.”

스텔라는 그녀가 걸치고 있던 숄로 나를 꽁꽁 싸맸다. 숄에서 그녀의 온기가 느껴졌다.

“호수에서 브로치 줍느라. 펜소 남매가 내 앞에서 호수에 던져 버렸거든.”

“미친 거 아냐? 인성 밥 말아 먹었나.”

대신 발끈하는 스텔라 뒤로, 하인드와 밀로도 나를 발견하곤 내게 다가왔다. 하인드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잡았다.

“메이, 밀로에게 얘기는 전부 들었단다.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우리 아들을 구해 줘서 정말 고마워.”

감격에 젖어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를 보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이렇게 기뻐할 줄 알았으면 진작 귀띔이라도 할걸. 그럼 글리우곤에게 복수도 직접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되레 사과했다.

“아녜요. 먼저 말씀드릴 수 없었어서…… 죄송해요. 그리고 직접 복수하고 싶으셨을 텐데…….”

하인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네 덕분에 하루라도 더 빨리 밀로와 만날 수 있었던 거지. 이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구나.”

밀로도 그렇다는 듯 옆에서 고마움을 표했다.

“공자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나는 그들을 번갈아 보며 내심 뿌듯해했다. 원작 속 비극을 해결했다는 생각과 내게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하인드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그런데 메이. 어째서 머리도 옷도 다 젖은 거니?”

하인드의 질문에 잠깐 망설였지만, 나는 이윽고 펜소 남매의 짓이라 얘기했다. 사후전말을 알게 된 밀로가 분노했다.

“나쁜 것들…… 공자님까지 건드리다니…….”

밀로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러고 보니 밀로, 혹시 펜소 남매 어딨는지 알아?”

“황실 감옥으로 갔을 거예요. 분신이긴 하지만 절 노예로 삼아 감금하고 폭행했던 일을 폭로했거든요. 고소 절차를 밟아 큰 벌을 받게 할 예정이에요.”

“그러면 형사 재판이 이뤄지는 건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클로라 펜소는 다른 벌을 받게 하고 싶어요. 후작님과 밀로가 허락해 주신다면 클라라 펜소만 다른 벌을 받게 하고 싶은데 그리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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