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88화
“…….”
“그냥 포기하세요. 이참에 저희를 건드리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는 것도 머릿속에 새기시고요.”
나는 정색하며 물었다.
“너희,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이래.”
“저희가 뒷감당할 게 뭐 있어요? 어차피 영영 못 찾을 수밖에 없는 브로치, 공자님께서 저희가 호수에 버렸다고 해도 증거가 없어서 믿지 못할걸요?”
“그러게 왜 저희의 심기를 건드려서 이런 수난을 겪으십니까.”
이기죽거리는 클로빈을 한 대라도 때리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너희들, 나중에 벌 받을 거야.”
나는 그 말을 남기곤 호수에 풍덩 빠졌다.
펜소 남매는 내가 빠진 호수를 보며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 벌 받는댄다. 우리더러 벌 받을 거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서 물에 빠지는 꼴이라니. 건드릴 사람을 건드려야지. 감히 누굴 건드려?”
“내 말이 그 말이야. 플로티나 공작 각하께 친아들이 생기면 바로 버려질 고아 주제에.”
실컷 웃은 클라라는 호수를 떠나려는 듯했다.
“이제 가자, 오빠. 계속 여기에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수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라.”
“그래 가자, 클라라.”
그렇게 호수 근처엔 내 신발만 덩그러니 남았다.
***
한편, 무도회장엔 황족 일가가 입장했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의 등장에 장내에 있던 모든 귀족이 머리를 조아렸다.
“스타시아에 축복이 있기를!”
“축복이 있기를!”
황제는 그의 딸, 이사벨라와 손을 잡고 입장했고, 그 뒤로 황후와 오른팔 잃은 황태자가 등장했다.
이어서 디아고가 제드와 함께 입장했다. 디아고는 호위 기사들 중 한 명한테 턱짓으로 무언가를 명령했다.
호위 기사는 하객들을 제치고 하인드에게 향했다. 그리고 최대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하인드에게 말을 건넸다.
“후작님을 뵙고자 하는 분이 계십니다.”
“나를……?”
“네. 영애님도 함께 가시지요.”
낯선 이가 자신뿐만 아니라 소중한 딸까지 데려가려 하니 하인드는 반사적으로 경계했다. 그는 스텔라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릴 부르는 이가 누구인지 먼저 고하거라.”
“후작님께서 찾으셨던 분입니다.”
“내가 찾았었다고?”
“지금도 찾고 계시는 분입니다.”
스텔라는 드디어 그 소년을 만나는구나 싶어 하인드를 부추겼다.
“아빠가 찾는 사람이래잖아요. 가 봐요.”
“어……?”
하인드는 영문도 모른 채 스텔라에 이끌려 호위기사를 따라가게 되었다.
가는 내내 하인드는 이상한 생각과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자신이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잃어버린 제 아들밖에 없는데…….
설마 밀로일까. 하지만 밀로가 여길 어떻게 오겠어. 아니겠지. 기대하고 부정하기를 반복하니 심장이 쿵쿵 뛰고 손에서 땀이 났다.
스텔라는 그의 손에서 땀이 나도 꼭 잡아 주었다.
무도회장 밖은 안과 달리 사람이라곤 기사들뿐이었다. 그런데 딱 한 명. 어느 소년이 뒤돌아 서 있었다. 번듯하게 차려입은 그는 곱슬거리는 은발을 하고 있었다. 하인드와 같은 머리칼이었다.
하인드는 그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호위기사를 따라 그에게 가는 내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존재했다.
자신과 키가 비슷한 저 건장한 소년이 자신의 아들인가.
스텔라는 그와 아들의 만남에 방해가 되지 않게 손을 놓아주었다.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밀로는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친부와 같은 체리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드디어 하인드와 마주 보았다.
그를 보자마자 우뚝 멈춰 선 하인드는 마치 환영이라도 본 것처럼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불러 보았다.
“밀로……?”
잃어버렸던 아들의 이름을.
밀로는 참을 수 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도 하인드는 믿을 수 없었다.
밀로라니. 그토록 찾던 내 아들이라니.
마지막으로 본 아들의 모습은 키가 자신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두 손으로 들어 올려 비행기 놀이를 해 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아들은, 젖살이 빠져 어른 티가 나는 소년이었다.
모든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하인드의 손이 떨렸다.
“네, 네가, 우리 밀로라고……?”
목이 메고, 코끝이 매워지며 눈물이 차오른다. 밀로는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그들은 서로에게 달려가 포옹했다. 서로를 안아 온기를 느끼고 있음에도 이 상황이 실감 나지 않는다는 듯 꽉 붙잡고 있었다.
얼마간 안고서야 실감한 하인드 먼저 입을 뗐다.
“아빠가 미안해……. 그동안 찾지 못해서 미안해…….”
하인드는 눈물을 뚝뚝 흘려내며 사과했다. 반복해서 사과했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더 빨리 찾았으면……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그럴 때면 밀로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잘못이 아니에요. 아빠 잘못은 하나도 없어요.”
보는 이마저 눈물겨운 상봉 끝에, 밀로와 스텔라의 눈이 마주쳤다.
스텔라는 이 상황에 자신이 끼면 안 될 것 같아 뒤로 물러났으나 밀로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밀로는 스텔라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밀로라고 해요, 누님.”
누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해, 스텔라는 떨떠름하게 물었다.
“나를 알고 있었어……?”
“그럼요. 만나면 꼭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던걸요.”
아버지를 외롭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누님이 아버지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밀로…….”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스텔라는 울컥했다.
밀로가 자신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은 밀로의 친누나가 아니니까. 갑자기 생긴 사람이니까.
하지만 밀로는 전혀 그런 내색하지 않고 첫 만남부터 누이로 대해 줬다.
그 따뜻함에, 끝내 스텔라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고마워, 밀로.”
디아고는 에메랄드홀 중앙, 레드카펫이 길게 깔린 곳으로 이동했다. 레드카펫 끝엔 황좌가 있었다.
홀로 레드카펫 위에 오르니 모두의 시선이 디아고에게로 쏟아졌다.
제드까지 그의 옆으로 오고서야 디아고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친애하는 황제 폐하.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황제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표정엔 ‘저 망나니가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디아고는 호위 기사에게 명했다.
“끌고 와.”
호위 기사가 무도회장 밖으로 나가더니 얼마 안 가 기사들이 20명에 달하는 관세 공무원들을 끌고 왔다. 그들은 모두 밧줄로 포박된 상태였다.
기사들은 관세 공무원들을 레드카펫 위에 무릎 꿇어 앉혔다.
황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나무랐다.
“황자, 이 좋은 날에 무슨 짓이지?”
“오늘만큼 죄인의 죄를 알리기 좋은 날도 없죠.”
“죄인이라고? 저들은 관세 공무원들이 아닌가.”
“맞습니다. 스타시아 제국의 재정 안정을 위해 일해야 하는 저들이 7년간 펜소가의 탈세를 도왔습니다.”
“뭐라?!”
황제가 옥좌에서 벌떡 일어섰다. 무도회장 안이 술렁였다. 디아고의 말을 들은 펜소 백작과 그의 아내, 엘리사는 날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황급히 레드카펫에 올라와 부인했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런 적 없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이를 들은 디아고가 일소하곤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이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올지 모르겠군.”
기사들은 미리 지시받은 대로 가져온 서류를 황제, 황후, 황태자와 펜소 부부에게 전달했다. 주위에 있는 귀족들에게도 나눠 주니 같이 좀 보자며 다들 서류에 관심을 가졌다.
“관세청에서 빼돌린 관세 명세서와 탈세 내역입니다. 펜소가는 필히 내야 할 세금의 100분의 1도 내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 끌고 온 저들은 펜소가의 탈세를 도와주거나 알면서도 눈감아 줬습니다. 뒷돈을 받으면서요.”
사람들은 펜소 부부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펜소 부부는 그 서류를 읽고선 안면이 시퍼렇게 질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뇌물을 받아먹었으면 이런 건 안 걸리게 했어야지!’
펜소 백작이 관세 공무원들을 죽일 듯 노려보자 그들은 얼른 고개를 떨구며 시선을 피했다.
“많이도 빼먹었군그래, 펜소 백작.”
황제의 싸늘한 목소리에 펜소 백작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이번엔 제드가 고했다.
“그뿐만 아니라 펜소가는 제국에서 금지된 마약을 밀반입했습니다.”
제드는 황제에게 증거자료를 제시했다.
“탈세에 마약까지……. 진실이 평생 안 밝혀질 줄 알았나.”
“아, 아닙니다……!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펜소 부인은 극구 부인했지만 황제는 차분하고도 위엄 있게 지시했다.
“사건의 경위가 밝혀질 때까지 저들은 옥에 가두겠다. 끌고 가.”
황명이 떨어지자 황실기사단이 펜소 부부와 관세 공무원들을 끌고 갔다.
“정말로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모함입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폐하!”
펜소 부부가 끊임없이 빌었지만 황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클로빈과 클라라는 백작 부부가 끌려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무도회장에 입장했다. 자신의 부모가 끌려 나갔다는 건 모르는 상태였다.
모두에게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자 그들은 이상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