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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79)화 (79/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79화

“이런 망할 인간을 봤나!”

“찾았다!”

예상대로 본체가 먼저 반응했고, 나를 공격하려 들었다. 나는 재빨리 글리우곤의 목을 향해 광선을 쐈다.

퍼엉!! 촤아아악―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목이 잘려 나갔다. 목이 잘린 글리우곤은 비틀거리다가 쿵!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글리우곤의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어떻……게…… 나……를…….”

마지막 물음에 친절히 답해 주었다.

“어떻게 너를 죽였냐고?”

내게 어떻게 이만한 마력이 있느냐고 묻는 거라면, 운 좋게 마력을 많이 받은 것뿐이라고 대답해야겠네. 마력 부여로 받는 마력의 양은 랜덤이니까.

그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용기를 내서 널 혼자 죽일 생각을 했냐고 묻는 거라면.

“이렇게 생각했거든. 네가 정말로 강한 녀석이라면 굳이 분신 따윈 쓰지 않았을 거라고.”

강하면 직접 상대해도 문제없지 않은가. 굳이 나 하나한테도 분신술을 사용하는 걸 보고 본체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예상했다.

“처음부터 네가 후작님께 공격당해 날개를 못 쓰는데다가 몸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둔해졌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도 하고.”

그래서 나 홀로 너를 죽일 생각을 했던 거야. 진짜로 이리 간단히 죽을 줄은 몰랐지만.

“S급 마물, 별거 아니네. 너 솔직히 말해 봐. S급이 아니라 B급이지?”

꼼짝도 못 하고 당하는 게 아까 봤던 B급 마물, 하트 원숭이랑 똑같잖아.

“으…… 어…….”

글리우곤은 내 도발을 듣고도 뭐라 하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 사살도 잊지 않았다.

펑―!

심장까지 터트리고 나서야 글리우곤이 정말로 죽었음을 받아들였다.

나는 조금 허탈해졌다. 내가 글리우곤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하루라도 더 빨리 찾아오는 건데.

***

메이는 글리우곤의 사체와 핏물을 피해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갔을 땐 밀로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 밀로.”

메이는 그에게 달려가서 몸을 받쳐 줬다.

가까이서 보니 상처가 말이 아니었다. 마치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산꼭대기에서 굴린 것처럼 크고 작은 상처들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글리우곤 나쁜 새끼……. 더 잔인하게 죽였어야 했는데…….”

밀로와 아무런 사이도 아닌 내가 봐도 가슴이 찢어질 듯 마음이 아픈데 하인드가 보면 오죽할까.

메이가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니 밀로의 창백한 입술이 열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하나도 안 괜찮잖아.”

“공녀님께서 구하러 와 주신 덕분에 괜찮아졌습니다.”

“거짓말…….”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밀로가 위태로워 보였다.

“치료하러 가자.”

메이는 밀로 발목에 묶인 족쇄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손에서 나온 은색 기운이 족쇄를 잘라냈다. 철컥―

“세상에…….”

족쇄에 풀려난 발목을 본 메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발버둥 치다가 찢어지고 짓무른 살가죽에서 피와 진물이 흘러나왔다. 그 주위는 퍼렇고 노란 멍으로 가득했다.

다른 데는 몰라도 이곳은 피가 흐르니 지혈을 해야만 했다.

“어쩌지…… 지혈해야 하는데…….”

밀로는 자신의 발목이 어떤 상태이든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을 안아 준 소녀에게만 집중했다.

그녀가 자신을 구하러 와 줬다는 게 꿈만 같았다.

밀로는 과거 일을 회상했다.

글리우곤에게 납치된 후, 글리우곤이 잠들 때마다 몰래 산에서 빠져나와 필사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꼬맹아. 마물이 너를 납치했다니.’

‘설령 납치했다고 해도 우리한테 도움을 구해 봤자 해 줄 수 있는 게 없단다, 애야.’

글리우곤은 강하니까 그들이 도와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저를 향한 멸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쯧쯧, 고아 녀석이 부모 밑에서 못 자라서 미쳐 버렸구나. 납치를 당했으면 어떻게 여기에 있냐?’

‘어린 녀석이 거짓말은.’

‘여보, 상대하지 말고 그냥 가요.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후로 밀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마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마음의 담을 쌓았다. 그저 어떻게서든 혼자서 복수하여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누군가가 밀로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밀로……?’

백금발에 바다보다 푸른 눈을 가진 소녀. 그 소녀가 명랑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납치된 후로 그를 이름으로 불러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는데 말이다.

‘밀로 맞지?’

오랜만에 저를 알아보고 불러준 이라, 자신이 밀로가 맞다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이미 복수의 계획을 세우고 있던 때라 그러지 못했다.

‘미안, 내가 사람을 착각했나 봐.’

그러자 소녀는 한 발짝 물러났다. 대신 밀로 손에 있던 소라에 관심을 가졌다.

잠깐 바람을 쐴 겸 바다로 나왔다가 생각 없이 주운 파스텔 색감의 소라였다.

‘와아- 예쁘다.’

예쁘다. 사람에게 말을 걸면 항상 부정적인 말만 들었던 밀로는 그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예쁘다는 말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 소라를 향한 거란 걸 알면서도.

밀로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소녀가 고마웠고, 그래서 소라를 선물했다. 소라뿐만 아니라 뭐든 다 주고 싶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자신의 마음까지도.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그때 눈에 담았던 소녀의 맑은 미소는 잊히지 않았다. 매일 떠올랐고, 떠올렸다. 그만큼 그녀와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한편으로는 아쉬워했다.

‘이름을 물어볼걸.’

이름을 물어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나중에 모든 복수를 마치면, 그때 찾아가 물어보리라.

그녀의 이름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좋아하는 사람은 있는지.

없다면 자신이 좋아해도 되는지.

물론, 그녀가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밀로는 회상을 끝내고 내 볼에 손을 뻗었다. 조심스레 닿은 그의 손이 자그맣게 떨렸다.

발목에 있던 메이의 시선이 그의 고운 얼굴로 옮겨졌다.

“왜? 많이 아파?”

“꿈만 같아서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당신이 날 구해 줘서.

***

“꿈…… 같다고?”

그 말에 나는 그의 상태가 몹시 걱정스러워졌다.

“어떡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현기증이 나나 봐.”

“네? 현기증은 아닌…….”

“어서 지혈해야 해!”

나는 급히 지혈할 것을 찾아보았으나 근처엔 당연하게도 마땅한 것이 없었다.

“어떡하지…….”

그러다 문득 내가 붕대를 두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참, 이게 있었지?

나는 망설임 없이 서둘러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밀로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래다가 질끈 눈을 감았다.

“고, 공녀님, 갑자기 옷은 왜……!”

“내가 남장 중이라 가슴 압박 붕대를 하고 다니거든.”

“서, 설마 그걸로…….”

나는 뒤를 돌아 빠르게 압박붕대를 푸르고 다시 셔츠 단추를 채웠다.

“불쾌하겠지만 제대로 치료할 때까진 참아 줘.”

그 붕대로 밀로의 발목을 감아 지혈했다.

“공녀님…… 이, 이래도 되는 거예요……?”

가슴을 감싸고 있던 붕대라 그런지 밀로는 몹시 부끄러워했다. 눈도 아직 못 뜬 상태였다.

“사람 구하는 일인데 못할 게 뭐 있어.”

“공녀님께선 붕대…… 안 하셔도 괜찮으신가요……?”

“정신계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 괜찮아. 붕대는 혹시나 해서 하고 다녔던 거였어.”

나는 밀로를 부축해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고, 귀가 새빨갰다.

“눈 계속 감고 있을 거야? 이제 산에서 내려가야지.”

밀로는 조심스레 눈을 떠서 정면을 응시했다. 쑥스러운지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가자, 밀로. 아픈 데 있으면 언제든 좋으니까 얘기하고.”

“……네.”

우리는 동굴 밖으로 나와서 천천히 걸었다.

“읏…….”

산 바닥엔 날카로운 게 많았고, 맨발이었던 밀로는 걷기 힘들어했다.

“밀로, 우리 강물 타고 내려갈까?”

“강물이요?”

나는 밀로를 데리고 근처 절벽으로 향했다.

절벽 끝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대략 40m 아래에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 여기가 생각보다 높구나…….”

나는 고민되어 멀거니 아래만 내려다보았다.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마력으로 튜브를 만들어서 물 위를 동동 떠내려 갈 생각이었는데…….”

뛰어내리기엔 고소공포증이 없는 나도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로 따지면 17층에서 밖으로 뛰어내려야 하는 것과 같은 높이였다.

“어쩌지…….”

“저는 괜찮습니다.”

다행히 밀로는 뛰어내리는 걸 무서워하지 않았으나 내가 문제였다.

과연 내가 떨어지면서 마력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마력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엔 그대로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

“마력을 제대로 써 본 건 오늘이 처음이라 걱정되네…….”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제가 구해 드릴게요.”

“음…… 그래. 해 보자. 글리우곤도 죽였는데 겨우 튜브 하나 유지하는 걸 못 할까.”

나는 밀로의 빠른 치료를 위해서라도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

내 손에서 나온 은색 기운이 판판한 뗏목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위에 올라타 앉았다. 놓치는 일 없게 손잡이도 꽉 붙잡았다.

“자…… 내려간다?”

“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곤 눈을 질끈 감았다.

“꽉 붙잡아!!”

우리는 그대로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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