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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76)화 (76/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76화

“제드, 부여받을 마력이 기대되지 않아? 빨리 마력 부여 날이 왔으면 좋겠어. 기사 선출이 다 끝난 후에 한꺼번에 마력 부여를 해 주신다고는 했는데 그게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니까 기다리기 더 힘들어.”

“그러게. 많은 양의 마력을 부여받아야 수호 기사 생활이 편할 텐데. 부여받는 마력의 양은 랜덤이라 걱정되네.”

“제드 넌 걱정할 필요 없어.”

원작에서 수호 기사 서열 1위였으니까!

……라고 말하려다가 원작 얘기를 꺼내면 상황이 난감해진다는 걸 알고 다른 이유를 댔다.

“너는 운이 좋은 편인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해 주니 안심이네.”

제드가 내게 부드럽게 미소했다.

나와 제드가 부쩍 친해 보이자 갈리와 비르타는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볐다. 디아고는 이마를 짚던 손을 내리고 나를 응시했다.

제드와 떠들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니 그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디아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위스키병을 잡았다.

그리고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병에든 위스키를 내 머리에 부어 버렸다. 촤악―

순식간이었다. 내 머리에서 위스키의 알싸한 향이 풍기게 된 것이.

툭, 툭. 머리칼에 맺힌 위스키 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돌발 상황에 모두가 움직임을 멈춘 가운데 디아고는 복도로 나가 버렸다.

나는 정신을 붙잡고 얼른 뒤쫓아 갔다. 그의 뒤로 외쳤다.

“저를 왜 그리 싫어하십니까?”

디아고는 걷다 말고 멈춰 섰다.

“제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합니까?”

그는 무엇 때문인지 격양되어 있었다.

“뭐를 잘못했냐고?”

디아고는 뒤돌아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내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너 때문에 내가-!”

멱살을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내가…….”

디아고는 말을 잇지 않고 멱살을 놓았다.

“젠장…….”

그가 나인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제드가 뒤따라왔다. 제드는 젖은 내 옷을 보더니 시선을 휙 돌리곤 누가 못 보게 내 등을 가렸다.

“옷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아.”

나는 위스키에 젖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셔츠가 다 비쳐 붕대가 훤히 보였다.

“옷 없는데 어떡하지? 주말이라 사오라 할 시종도 없고…….”

“나 여분 옷 있어. 내 옷 입어.”

그는 내 손을 잡고 그의 방으로 인도했다.

옷을 받은 후, 욕실에서 씻고 나온 나는 제드의 방으로 들어갔다. 제드 옷은 커서 품이 많이 남았다.

“남의 옷 훔쳐 입은 것 같지 않아?”

제드는 보지도 않고 괜찮다고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그의 옷을 입고 있는 나를 보곤 입을 다물었다.

“왜…… 그래? 많이 이상해……?”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해 주었다.

“……아니.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잘 어울린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 이런 상황에서도 실실 웃음이 나왔다.

무얼 할까 하다가 제드와 함께 있는 김에 밀로를 찾을 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나는 펜소가에 잠입하자는 의견을 냈다.

전에 사람을 고용해서 펜소가에 잠입시켰더니 밀로의 분신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일단은 밀로 본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분신이라도 만나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분신과 대화해 보면 본체 위치에 대한 전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글쎄. 분신은 본체의 위치를 모를 가능성이 크긴 한데 우리에게 가진 정보가 없으니…… 네 말 따라 잠입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

“좋아. 그럼 잠입하는 거로 결정.”

우리는 내일 밤에 펜소가에 가 보기로 했다.

***

모두가 잠든 새벽. 나와 제드는 새까만 옷을 입고 펜소가의 담을 넘었다. 담이 높아서 내겐 넘기 버거웠지만 제드의 도움으로 넘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간략히 그려진 펜소 저택의 설계도를 외우고 왔다.

설계도에 어떤 방을 누가 쓰는지까진 나와 있지 않아도 식당, 화장실, 마구간 위치 등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저택 밖에서 찾아볼 테니 넌 저택 안을 찾아봐. 무슨 일이 있으면 다시 이곳으로 와. 혹은 소리라도 지르면 내가 구하러 갈게.”

“아마 소리 지를 일은 없을 거야. 무슨 일 생기면 나 먼저 담을 넘어 도망칠게.”

“그래. 잡히지만 않으면 되니까.”

제드는 내가 쓰고 있는 까만색 베일을 올려서 얼굴이 더욱 보이지 않도록 했다. 이 까만색 베일은 제드가 쓰고 있는 것과 같았다.

“조금 이따 봐.”

“응.”

나는 대답 후 펜소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대부분 잠들어 있을 시각이라 저택 안은 어두컴컴했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까만 옷차림으로 걷고 있으니 도둑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차라리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었으면 쉽지, 사람을 찾는 거라……. 이 큰 저택에서 사람을 찾으려니 막막해졌다.

안 그래도 다들 잠들어 있고, 어두워서 얼굴도 보이지 않는데 찾을 수 있으려나…….

막상 들어와 놓고 어떻게 찾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짜악― 짜악!

‘웬 채찍 소리지?’

복도를 걷다가 채찍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나는 곳은 살짝 열린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방이었다.

가까이 가니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메이 플로티나가 오빠를 완전 개무시했다, 이거지?”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 까랑까랑해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

“응. 나제트 영애와 친하다고 어찌나 잘난 척을 해 대는지. 나를 마물 앞에 던져서 죽이려고도 했어.”

이번엔 익숙한 목소리다. 다름 아닌 클로빈의 목소리였다. 클로빈이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는 걸까.

혹시 그의 여동생? 원작 메이를 때려죽인 그 여자와?

나는 클로빈과 대화하는 여자가 누군지 보기 위해 열린 방문 틈으로 방 안을 훔쳐봤다.

클로빈은 의자에 앉아 있고, 클로빈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

놀라는 바람에 소리를 낼 뻔한 입을 틀어막았다.

노예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무릎 꿇고 일렬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두 살, 열세 살? 전부 나보다 어려 보였다.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쓰러진 채 채찍에 맞고 있는 은발 소년이었다.

짜악― 짜악― 여자는 소년을 채찍으로 마구 때리고 있었다.

“오빠를 무시한다는 건 우리 펜소가를 무시하는 것이고, 결국 나를 무시하는 거지. 절대로 가만 안 둬.”

아플 텐데도 소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에 상처가 가득했는데도.

두려움과 걱정스러움에 방 안을 계속 살피다가 그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체리색 눈동자.

하인드와 같은 눈동자색. 그가 밀로였다.

“읍-”

그때, 누군가 내 입을 막고 끌어당겼다. 그 누군가는 나를 벽에 밀친 후 도망칠 틈도 없이 목에 칼을 겨눴다.

하인 복장을 한 사내. 방에서 나오는 빛이 그의 머리칼을 비추니.

“넌 누구지? 헤스티아가 보냈나?”

은발이었다.

“밀로……?”

하지만 방 안에서 채찍을 맞고 있던 남자도 밀로였잖아. 어떻게 된 거지? 분신이었나?

사내는 내 베일을 벗겨 얼굴을 확인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코와 입이 드러나자 사내는 멈칫했다.

“당신은…….”

그 역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가 내 목에 겨눴던 칼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더는 날 경계하지 않는지 칼을 검집에 넣었다.

“……따라오세요.”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따라서 저택 밖으로 나왔다.

그는 순찰 도는 기사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곳에서 뒤를 돌아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체리색 눈동자가 은은하게 반짝였다.

틀림없다. 그는 밀로다.

밀로는 내 생각보다 키가 더 컸고, 잘생겼으며, 인상이 차가웠다.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

“플로티나 공녀님이시죠.”

“맞아. 플로티나 공녀…… 어? 공녀라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되물었다.

“방금…… 공녀라고 했어?”

“네.”

“……어떻게 안 거야? 정신계 마법으로 내 성별을 감췄는데?”

“마물의 마력을 보유하면 정신계 마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마물에게는 정신계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밀로는 마물의 마력을 보유해서 마물처럼 정신계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성별은 그렇다 치고, 내가 플로티나 사람인지는 어떻게 알았어?”

페르시스와 닮은 것도 아니고, 옷에 플로티나 문양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알 방법이 없었을 터. 어떻게 안 걸까?

“원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제트에 자주 방문하시는 것도 봤고요.”

“나제트가에 몰래 자주 찾아갔었구나…….”

밀로는 분신을 사용해서라고 덧붙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린 너를 찾고 있었어. 네 아버지께서 너를 몹시 보고 싶어 하셔. 나제트에 가자, 밀로.”

때마침 제드도 우리를 발견했다.

“메이.”

제드는 내 옆으로 와선 밀로에게 눈길을 줬다.

“빨리 찾았네.”

“응.”

나는 제드와 밀로를 번갈아 보았다. 검푸른 생머리의 사내와 곱슬거리는 은발의 사내.

둘 다 차가운 인상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제드가 얼음과 같은 단단한 차가움이라면, 밀로는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차가움이었다.

제드가 냉미남의 정석이긴 하지.

내가 제드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가 나를 보며 살풋 미소했다. 부끄러워서 시선을 피하니 이번에는 밀로와 눈이 마주쳤다. 밀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지금 집에 가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거야? 복수 때문에?”

“……본체가 글리우곤에게 잡혀 있어서 아직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잡혀 있다고?”

“제가 헤스티아의 명을 받아 이곳에 왔다는 건 아시나요?”

“응. 들었어.”

“헤스티아가 시키는 대로 펜소가에 잠입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분신 둘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채찍을 맞고 있던 밀로도, 지금 내 앞에 하인 복장으로 서 있는 밀로도 본체가 아닌 분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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