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74화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을까나?”
“한 번만 믿어 주시면…… 정말로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흐음, 못 미더운데 그냥 해골귀신한테 던지고 도망갈까?”
그 말에 클로빈은 깜짝 놀라 기겁했다.
“아,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속사포 랩을 하듯 빠른 템포의 사과를 듣고 나서야 메이는 만족해하며 칼을 거뒀다. 칼을 거두자마자 클로빈은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곧 그는 가까이 온 해골귀신을 보자 퍼렇게 질린 얼굴로 기어서 도망쳤다.
물론, 몸에 힘이 거의 없어 얼마 도망가지 못했다.
클로빈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 꼴이 참 우스웠다.
“클로빈, 수호 기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마물을 보고 도망치면 어떡하니.”
클로빈을 향해 혀를 차곤 해골귀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해골귀신이 적당한 거리에 도달했을 때.
“맞서 싸워야지.”
메이는 해골귀신의 얼굴을 향해 검을 겨누고 달려갔다.
“봐, 클로빈. 해골귀신의 급소는.”
뛰어올라 해골귀신의 안면을 뚫었다.
“얼굴이야.”
검을 내리꽂곤 땅에 착지했다. 얼굴에 검이 관통한 해골귀신은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힘없이 쓰러졌다.
메이는 해골귀신에게 다가가 검을 뽑아냈다. 뒤를 돌아 클로빈에게 가르쳤다.
“몰랐으며 알아 두라고. 뭐, 급소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마물 앞에서 겁먹지 않는 태도지만.”
그제야 클로빈은 몸을 떠는 자신의 모습이 창피했는지 떠는 걸 멈추곤 고개를 푹 숙였다.
메이는 방금 쓰러트린 해골 귀신에게서 하나, 아까 쓰러트린 해골귀신에게서 하나, 총 두 개의 구슬을 꺼냈다.
“볼 일 다 봤으니 간다.”
가려다가 멈추고 다시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참, 콧물 좀 닦아. 더러워.”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아카 센터로 달려갔다.
홀로 남은 클로빈은 인중을 닦았다. 손등에 콧물이 묻어났다.
“x발…….”
***
“삐빅- 2라운드 종료합니다!”
사회자가 대회 종료를 알리자 참가자들은 하나둘씩 아카 센터로 돌아왔다.
대부분 구슬을 못 가져와서 아쉬워하기보단, C급 마물이 얼마나 센지 깨달은 표정들이었다.
“이야, 해골귀신 장난 아니었어.”
“공격이 어찌나 빠른지 하마터면 손 날아갈 뻔했어.”
“구슬을 가져온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
참가자들이 전부 모이니 사회자가 시상식의 시작을 알렸다.
“시상은 아카 대회의 주최자이신 아이리스 님, 카시우스 님께서 진행하시겠습니다.”
아이리스와 카시우스가 중앙 기둥 탑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참가자들은 박수로 수호신들을 맞이했다.
단상에 올라간 그들은 시상을 진행했다.
“다들 수고가 많았다. 구슬을 가져온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1라운드를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해 주고 싶구나.”
아이리스의 따뜻한 격려에 장내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 기세를 이어 카시우스가 발표했다.
“일반인이 혼자서 C급 마물을 무찌르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당장 수호 기사들도 마력 없이는 버거운 일이지. 그래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3명의 참가자가 무려 30분 만에 구슬을 가져왔더군.”
참가자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누구일지 추리하기 바빴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대단하지만 이 3명에겐 다시 한번 칭찬하고 싶구나. 정말 대단하고, 훌륭했어.”
“그럼 먼저 3등부터 발표해 볼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 꼭 모은 두 손에 땀까지 났다.
제발 3등 안에 들게 해 주세요……!
“27분 58초 만에 구슬을 가져온…….”
아이리스는 참가자들을 훑더니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메이 플로티나!”
내 이름이 들려오자 나는 화들짝 놀래며 입을 틀어막았다.
내, 내가 3등이라고……?
감격스러울 틈도 없이 사회자가 나를 단상으로 안내했다.
“공자님, 단상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나는 안내에 따라서 단상 위로 올라갔다.
많은 이들이 내게 박수 쳐 주었지만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몰라 얼빠진 표정을 했다.
아이리스가 내 목에 동메달을 걸어 주고, 카시우스가 꽃다발을 건네주고 나서야 실제임을 실감했다.
“축하해, 아가.”
“너라면 해낼 줄 알았어.”
나는 감격스러워 수호신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메달과 꽃다발을 받은 나는 다음 발표를 위해 뒤로 물러났다.
솔직히 불안했었다. 진행 요원이 내 구슬까지만 받고 경기를 끝내서 3등일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클로빈 때문에 대회에 필요치 않은 시간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목에 걸린 동메달을 보며 생긋 웃었다.
시상은 계속되었다.
“2위는 25분 11초 만에 구슬을 가져온 길버트 알탄!”
2등 참가자가 단상 위로 올라오자 나는 열심히 박수쳤다.
그리고 대망의 1위. 1위는 누구일지 안 봐도 뻔했다.
“1위는 5분 19초 만에 구슬을 가져온…….”
나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들이 헉, 하고 놀랐다.
5분 19초라니. 게이트를 통과하는 데에만 1분은 족히 걸린다. 새삼 제드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남주는 남주구나…….
넘사벽이라는 단어가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나는 단상을 올라가는 제드의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박수를 쳤다.
제드를 마지막으로 메달 수여식은 끝났고, 이후로는 대회 안내장엔 없었던 일정이 시작됐다.
카시우스가 입을 열었다.
“실은 우리도 대회 내내 몰라 함께하면서 너희들의 실력이 어떤지 살펴봤었지.”
참가자들은 몰랐는지 놀란 눈치였다.
“수호 기사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느꼈던 참가자들이 많더라고. 그래서 여기서 수호 기사를 선출하려고 한다.”
장내가 술렁였다.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수호 기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는지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카시우스가 먼저 발표했다.
“에디, 세라, 미카엘. 단상으로 올라오렴.”
호명된 세 명은 얼떨떨한 낯으로 단상에 올라왔다. 진행 요원들은 그들에게 배지를 걸어 주었다.
정식 수호 기사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수호 기사 배지.
카시우스의 마력 고유색인 금색이었다.
“축하해, 너희들은 오늘부터 제2기사단 소속 수호 기사야.”
배지를 단 세 명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 명은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울기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카시우스 님.”
“훌륭한 수호 기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흐윽……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들이 찬 금색 배지를 보았다.
아이리스 님이 이끄는 제1기사단은 은색 배지지? 아이리스 님의 마력 고유색은 은색이니까.
수호 기사 배지는 날개 모양으로 제작되었으며, 색상은 기사단마다 다르다. 해당 기사단을 이끄는 수호신의 마력 고유의 색을 입힌 탓이었다.
마력 고유의 색이란 마력을 사용할 때 시각적으로 보이는 색을 뜻한다.
아이리스의 마력 고유색은 은색, 카시우스는 금색, 헤스티아는 보라색이다.
‘플로아는 붉은색이어서 그의 힘을 부여받은 페르시스도 붉은색 마력을 쓰지.’
나는 얼른 은색 배지를 내 셔츠에 차고 싶었다.
다음으로 아이리스가 말을 이었다.
“나도 3명을 눈여겨봤어.”
참가자들은 제발 자신을 뽑아 달라는 눈빛으로 아이리스를 올려다보았다. 그중엔 클로빈도 있었다. ‘제발 저 좀 뽑아 주세요……. 생신 때마다 거액의 선물을 보냈잖습니까……!’ 하는 눈으로.
그러나 아이리스는 클로빈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바시스, 도로시, 마리나. 올라오렴.”
클로빈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자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나는 호명된 3명을 축하해 주면서도 의문을 가졌다.
왜 메달을 딴 사람은 호명 안 하는 거지……?
그 의문은, 아이리스가 호명된 3명에게 배지를 나눠 준 후 해결되었다.
“마지막으로 아카대회에서 메달을 딴 제드, 알탄, 메이. 너희는 제1기사단과 제2기사단 중 어디에 들어갈지 선택할 수 있어.”
2등 한 알탄은 두 손을 위로 뻗으며 기뻐했다.
나는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저, 정말요……?”
“응. 메이는 내가 이끄는 제1기사단에 올 거지?”
제1기사단. 내가 간절히 들어가고 싶었던 곳. 망설임이 없었다.
“당연하죠!”
마지막으로 제드의 선택만 남은 상황.
제드는 나를 슬쩍 보더니 입을 뗐다.
“저도 제1기사단에 들어가겠습니다.”
이에 카시우스는 크게 아쉬워했다.
“아쉽네.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인데.”
“후훗, 제드, 앞으로 잘 지내 보자.”
“네.”
알탄은 제2기사단 배지를, 나와 제드는 제1기사단 배지를 가슴 위에 달았다.
배지를 보니 괜히 울컥했다.
드디어 정식 수호 기사가 되었다. 5년간 그려 왔던 막연한 내 꿈이었던.
그 꿈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
아카 대회라는 큰 일정을 끝낸 후, 나는 나제트가에 방문했다. 한동안 나인 활동과 아카 대회로 바빠서 스텔라를 만나지 못했다.
집사는 나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스텔라는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스텔라를 보자마자 내 가슴 위에 단 배지를 가리켰다.
“짠! 이 몸이 정식 수호 기사가 돼서 왔다!”
스텔라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배지를 살펴보았다.
은색 날개가 책에서만 보던 정식 수호 기사 배지와 똑같았다.
“와, 진짜네? 대단한데?”
“이제 직업이 생겼으니 내 생계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구!”
“훌륭하네, 메이. 생계를 혼자서 해결할 생각도 하고. 그런데…….”
스텔라는 삐진 얼굴로 팔짱을 꼈다.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 나랑 노는 거 말고도 재밌는 게 많았나 봐?”
흥! 하고 삐진 티를 잔뜩 내며 스텔라가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나는 그녀를 달래 줘야 했다.
“미안해. 바빠서 올 시간이 없었어. 앞으론 얼굴 못 보면 편지라도 자주 쓸게.”
“당연히 그래야지.”
편지를 써 준다는 말에 기분이 풀렸는지 그녀는 나를 소파로 이끌었다. 내가 소파에 앉으니 하녀가 내 앞에 놓인 컵에 레모네이드를 따라 주었다.
“마셔 봐. 너 온다고 해서 내가 직접 만든 레모네이드야.”
“네가 직접?”
“응. 내가 만들어서 엄청 맛있어.”
나는 컵에 따라 준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탄산이 톡톡 터지며 레몬 특유의 시고 단맛이 입안을 감쌌다.
“맛있는데? 요리 실력이 점점 느네.”
스텔라는 우쭐하며 턱을 괬다.
“그치? 나 원 참. 이제 시집가도 손색없다니까? 결혼 상대만 있다면 말이야.”
“음, 그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닐까?”
하녀들은 늘 그랬듯 우리 둘이 편히 대화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하녀들이 나가자 스텔라가 흥미 가득한 눈을 하며 물었다.
“어때? 나인에 가입한 이후에 제드 블로체랑 진전 좀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