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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71)화 (71/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71화

‘클로빈의 짓일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갈리와 비르타는 몰라도 클로빈은 메이를 꼭 이겨야만 하는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나제트 영애?’

‘네.’

내 포대를 훔쳐 간 범인이 클로빈일까?

확실한 증거도 없이 의심하는 건 좋지 않다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클로빈은 내 포대를 훔치려 한 전적이 있지 않은가.

내가 클로빈을 주시하고 있으니 그가 우습다는 듯 조소했다.

“플로티나 공자님, 29위 축하드립니다. 순위권에 들어 행복하시겠습니다?”

적대감을 숨길 생각이 없는지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나도 듣고만 있진 않았다.

“클로빈 너도 순위권에 들 줄은 전혀 예상 못 했어. 첫날 저녁에 봤을 땐 포대 속 구슬이 180위도 못할 만큼의 양이었잖아.”

내 말을 들은 클로빈은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입가에 맺혔던 조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안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왜 제가 꼭 남의 구슬을 훔쳐다가 18위를 한 것처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비약이 심하네.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포대를 잃어버려서 아무한테나 시비를 거시는 겁니까? 제가 만약 공자님의 포대를 훔쳤다면 저는 18위가 아니라 3위 안에 들었어야겠죠. 포대가 무려 2개였잖습니까.”

“모르지. 남들의 의심을 사지 않게 일부는 버리고 나머지를 가졌을지 누가 알아?”

쾅―! 클로빈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봐 봐요. 지금 공자님은 저를 도둑으로-”

나는 클로빈의 말을 싹둑 잘랐다.

“흥분하지 마, 클로빈. 네가 과민하게 반응할수록 의심스러워져.”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잖아?

클로빈은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뭐, 네가 아닐 수도 있겠지. 제드랑 황자님도 내 포대를 노리고 있었다니까.”

듣고 있던 제드와 디아고가 놀란 눈으로 내게 주목했다.

“셋 중엔 도둑이 있겠지. 누가 이런 개념 없는 짓을 했을까?”

디아고가 황당하다는 어조로 반박했다.

“나를 왜 포함해? 내가 말했잖아. 난 아니라고.”

“나도 아니야, 메이.”

디아고와 제드가 범인을 추리하는 대화를 들었기에 그들이 범인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난 그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다들 알리바이가 없잖아. 아닌 척 내 천막에 들어와 포대를 훔쳤을지 누가 알겠어.”

제드는 일전에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디아고가 메이를 괴롭히려고 존재하지도 않은 글리우곤의 비늘 도둑으로 몰았을 때.

그는 이리 말했었다.

‘기억나. 내가 공자를 배웅했었어. 공자가 건물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메인룸으로 돌아왔었지.’

‘맞아. 기억나는구나!’

‘그런데 그게 공자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주진 못해.’

‘……어째서?’

‘나간 후에 다시 들어왔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때의 제드처럼 굴었다. 일종의 복수였다.

“범인이 누구인진 모르겠으나, 이건 꼭 알아 뒀으면 좋겠네.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없다는 거.”

이번엔 절대로 구슬을 뺏기지 않는다.

나는 그리 경고하곤 밝은 표정으로 이사벨라에게 보드게임을 권유했다.

“황녀님, 저와 보드게임 하지 않겠습니까? 땅 사고 통행료 지불하는 게임이 재밌어 보이던데요.”

이사벨라는 좋다며 제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공자님이랑 하는 게임은 뭐든 좋아요!”

디아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메이, 죄 없는 사람을 도둑으로 몰고는 이사벨한테 보드게임 하자는 말이 나와? 이 상황에 보드게임이 하고 싶어?”

“그게 보드게임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군요. 도둑맞은 사람은 보드게임도 하면 안 되나요?”

“죄 없는 사람을 도둑으로 몰았잖아.”

아무 죄 없는 나를 도둑으로 몰았던 디아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웃겼다.

“한때 저를 존재하지도 않는 도둑으로 몰았던 황자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군요.”

그래서 복수라도 하겠다는 거야? 라고 묻고 싶은 듯했으나 디아고는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하지 못했다.

제드가 차분하게 대변했다.

“우리는 정말로 범인이 아니야. 네 포대를 버릴 나쁜 계획을 세운 건 맞지만 결국엔 손대지 않았어.”

“그러면 범인은 클로빈인가?”

내가 클로빈에게 눈길을 주니 그는 눈동자를 떨었다.

보아하니 그가 범인이 맞고, 이런 후폭풍이 올 줄은 몰랐던 듯 보였다.

클로빈의 목소리도 떨렸다.

“저는 아닙니다……! 제 능력으로 구슬을 모았단 말입니다.”

내가 제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봐, 다들 아니라는데 내가 누구 말을 믿어.”

그러자 디아고가 정색하며 클로빈을 불러냈다.

“클로빈, 너 따라 나와.”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클로빈도 디아고를 따라서 나가자, 나는 제드에게서 몸을 휙 돌리곤 이사벨라 쪽으로 갔다. 이사벨라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누가 공자님 거를 훔쳐 갔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네. 그런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젠 그 무엇도 도둑맞지 않을 거니까요. 신경 쓰게 해서 죄송해요.”

이사벨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녜요. 범인 찾으면 제가 혼쭐을 내 줄게요!”

“고마워요, 황녀님. 우리는 또 보드게임 하러 가요!”

“네!”

***

제드는 이사벨라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며 놀아 주는 메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디아고가 메이의 포대를 갖다 버릴 계획을 세웠다는 건 디아고가 밝힌 건가.’

일이 어그러졌다. 디아고의 명령을 따르며 메이의 마음도 사로잡으려 했다가 둘 다 망쳤다.

생각해 보면, 메이가 나인에 가입한 이유도 디아고가 그녀를 도둑으로 몰았던 것에 대한 복수 때문이다.

자신에게 첫눈에 반해 줄곧 좋아하길래 복수 따윈 잊은 줄 알았더니만 아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복수 따윈 관두게 만들 수 있을까.

한편, 클로빈을 복도로 불러낸 디아고는 핏대를 세우며 입을 열었다.

“메이의 포대를 훔쳐 간 범인, 너잖아. 아니야?”

모른 척하거나 아니라고 시치미 떼려던 클로빈은 디아고가 무서워 자백했다.

“……제가 한 게 맞습니다.”

“근데 왜 아니라고 우겨. 너 하나 때문에 내가 도둑으로 몰리는 거 안 보여?”

“하지만 플로티나 공자가 저희를 도둑으로 몰아 봤자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고, 오히려 저희한테 복수하려는 자작극이 아니냐고 몰아붙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제정신이야? 걔 내 앞에서 울기까지 했어. 너 때문에.”

클로빈은 디아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플로티나 공자가 운 게 저희랑 무슨 상관입니까?”

“뭐?”

“그렇잖습니까. 애초에 플로티나 공자가 수호 기사가 되지 못하게 하려던 저희가 왜 그가 우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하냐 이 말입니다.”

“…….”

클로빈의 말이 맞다. 메이가 1라운드에서 탈락하길 바랐던 나인 회원들 입장에선 그가 울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울면 더 통쾌한 일이었다. 낙심하라고 포대를 훔치려 들었던 입장들이었으니까.

클로빈이 디아고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십니다. 그런 걸 신경 쓰시는 겁니까?”

“…….”

“괴롭히는 대상의 기분을 생각하는 분이 아니시잖습니까.”

“…….”

“메이 플로티나가 운 걸 걱정하기보단 끈질기게 구슬을 모아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는 것에 분노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

클로빈의 말에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어서 이만 악물었다.

디아고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정말로 메이를 좋아하기라도 하냐는 말이다.

그때, 메이가 메인룸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메이의 맑고 푸른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디아고는 좌절하며 깨달았다.

“황녀님께서 다 같이 게임 하고 싶으시대요. 같이 하시겠어요?”

처음부터 자신은 그에게 관심이 있어서 접근했던 것임을.

처음 본 메이 플로티나는 특별함 그 자체였다. 유일하다 할 정도로 아이리스와 카시우스에게 총애를 받으며, 용감하게 폭발마법이 설치된 거대 피그링을 쓰러트렸다.

그러나 디아고에게 더 특별하게 와닿았던 부분은 메이의 외모였다.

눈에 띄게 사랑스럽고, 예쁘고, 아름답다.

메이는 소문난 미인도 따라오지 못할 순백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디아고는 메이에게서 저도 모르게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꼈다. 분명 메이는 남자일 터인데도.

디아고는 흥미를 못 이기고 메이에게 다가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여장남자의 유혹에 넘어가 한동안 아버지께 조롱당하며 성생활을 못 하게 되었으면서도 또다시 여자같이 생긴 남자에게 흥미를 가진 자신에게.

디아고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메이에게 푼 거다. 수호 기사의 자질이니 뭐니 별의별 같잖은 핑계를 댔지만 실은 화풀이였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방어책이기도 했다.

‘제드는 전부 다 알고 있었나.’

진실을 보는 눈을 사용할 수 있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전부 알 터.

‘어쩌면 내 감정이 질투라 했던 것도, 메이가 대놓고 제드만 좋아해서 그런 걸지도.’

메이는 제드를 좋아하고, 자신은 메이를…….

“안 하실 거면 제드와 셋이 하겠습니다.”

메이가 다시 메인룸으로 들어가자 디아고는 얼른 뒤따라가 닫히는 문을 붙잡았다.

“아, 아니.”

놀란 메이가 뒤돌아보았다.

“하실 거예요?”

디아고는 잠깐 메이의 미모에 넋을 놓았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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