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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69)화 (69/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69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수호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거 안다. 아이리스 님은 나를 기사단으로 들이겠다고 약속하셨고, 약속을 어기실 분이 아니니까.

하지만 몇 없는 수호 기사 자리를 실력이 없는 상태로 차지하는 건 싫었다. 또한 수호 기사가 된다 한들, 그 직책을 내가 과연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 이유로 지난 5년간 플로아와 검술 훈련을 하며 검술 실력을 기르고 체력을 단련해 왔다.

그래서 수호 기사가 돼도 손색없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질이 없다고 주장하는 디아고의 말에 충격을 받아 아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다짐했다.

널리 알리고 싶었다. 나, 수호 기사가 될 만한 사람이라고.

절대로 인생 날로 먹는 사람 아니라고.

그래서 열심히 구슬을 모았건만, 누군가 악의를 품고 훔쳐가 버렸다.

내 눈물은 그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니 디아고는 몸을 굳혔다. 그는 답지 않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그의 멱살을 놓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 냈다.

“제 구슬 포대…… 어디에 버리셨습니까? 제발 알려 주세요. 제발요…….”

디아고는 미간을 좁히다가 시선을 피했다.

“나 아니라고.”

디아고는 몸을 틀어 똑바로 앉았다. 그가 비켜 주니 나도 상체를 일으켰다.

“천막에 들어왔던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부정하실 겁니까?”

“그래, 네 천막에 들어가긴 했었어. 네 포대를 버리려고.”

“역시……!”

“그런데 버리진 않았어. 제드한테 물어봐. 제드와 함께 한 계획이어서 끝내 안 가져갔다는 걸 걔도 알 테니까.”

예상치 못한 데서 제드의 이름이 거론되자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제드도…… 제 포대를 버리려고 했다고요……?”

“아까 8시에 제드가 널 불러냈지? 네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버리려고 시간 끌게 한 거야.”

“그렇다는 건…….”

‘왜 부른 거야?’

‘…….’

‘할 얘기라도 있어?’

‘…….’

그러고 보니 왜 불렀냐는 말에도 그는 말이 없었었다. 말할 수 없는 거라 대답하지 못한 줄 알았는데 그에 아니라 애초에 목적이 불순해서 말할 수 없었던 거였나? 그럼…….

‘네가 여자여서 정말 다행이야.’

아까 제드가 내게 했던 얘기는 진심이 아니라 그저 시간 끌기 위한 용도였다는 건가.

제드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아니까, 그 점을 이용하면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제드가 내게 갑자기 이성적 호감이 생겼다는 게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할 때 빠져들었다기엔 제드는 여자의 스킨십에 의의를 두는 타입이 아니다. 원작에서도 그랬고.

나인에 처음 갔을 때를 떠올려 봐라. 술에 취해 초면인 내 어깨를 잘도 빌리지 않았는가.

그가 내게 친해지고 싶다고 했던 것도 진심이 아니었고, 내가 도둑으로 몰렸을 때도 뻔히 도둑이 아닌 걸 알면서도 선을 딱 잘라 그었다.

전부 디아고를 위한 행동이었다.

‘이번에도 디아고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거겠지.’

어쩌면 제드도 나를 아니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나인 회원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것도 모르고 제드에게 부끄러워하고 그에게 좋아한다며 한껏 마음을 드러냈던 내 자신을 떠올리니 이토록 허탈할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디아고에게 선포하듯 말했다.

“2라운드에 진출할 겁니다.”

“포대 사라졌다며.”

“다시 처음부터 모아야죠.”

디아고는 그게 가능하겠냐는 듯이 쳐다봤다.

“대회 종료까지 9시간도 안 남았어.”

“그래도요.”

“…….”

“꼭 30위 안에 들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

디아고는 메이가 나간 곳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스스로가 황당했다.

“내가 미친 건가……?”

걱정스럽기는, 뭐가 걱정스러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무리하는 거? 무리해도 30위 안에 들지 못할 수 있다는 거?

‘그게 내 알 바야? 오히려 바라던 바잖아.’

그런데 신경 쓰인다. 젠장, 울지 않을 것 같던 애가 우는 걸 봐서 그런가 보다.

메이가 밑에 깔려 우는 걸 봤을 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작정하고 괴롭힐 생각으로 그 애를 도둑으로 몰았을 때도 미안한 마음은 먼지만큼도 들지 않았었는데.

그런데 우는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메이와 눈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디아고는 낮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었다.

“어떤 새끼가 훔쳐 간 거야…….”

***

나는 약 9시간 동안 쉬지 않고 뼈다구를 무찔렀다.

내려치고, 구슬을 주워 담고.

또 내려치면, 주워 담고.

휴식 없이, 뼈다구만 보면 전력을 다해 달려가 같은 행동을 수십, 수백 번을 반복했다. 동이 텄을 즈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종료 10초 전.

참가자들은 전부 게이트를 달려서 아카 센터로 돌아왔다. 10시 정각에 게이트가 닫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하아- 하아-”

나는 2초 남기고 아카센터에 도착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도착하자마자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회 종료합니다. 참가자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행 요원에게 포대를 제출해 주십시오.”

나는 내 포대 세 개에 이름을 쓰고 진행 요원에게 제출했다. 새벽 내내 무리해서였는지 이름 쓰는 손이 떨렸다.

포대를 제출한 후엔 긴장이 풀리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다가 이내 주저앉고 말았다. 숨은 차고, 몸엔 힘이 들어가지 않고, 정신은 몽롱하다.

마찬가지로 구슬을 제출한 디아고는 나를 보고는 눈살을 구기며 다가왔다.

“플로티나는 맨바닥에 앉아도 된다고 교육하나?”

“…….”

“잡아. 앉을 거면 맨바닥에 앉지 말고 관객석에 앉아.”

그러나 그의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집하고는.”

디아고는 내 팔을 덥석 잡아 끌어올려 관객석에 앉혔다. 힘이 굉장했다.

“그래서, 구슬은 많이 모았어?”

나는 보면 모르겠냐는 듯이 째려보곤 다시 고개를 떨궜다.

“막무가내로 가는군. 제국 황자를 그렇게 째려보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포대를 훔친 범인은 내가 아니야.”

그때 구슬 포대를 제출하고 온 제드가 내 옆에 앉았다.

“누구 포대가 없어졌습니까?”

디아고가 나를 향해 턱짓했다.

“자는 사이 도둑맞았대.”

“클로빈의 짓일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갈리와 비르타는 몰라도 클로빈은 메이를 꼭 이겨야만 하는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나제트 영애?”

“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힘들고, 지치고, 눈이 자꾸만 감겨서 대화에 낄 여력이 없었다.

결국 잠들어 버렸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제드 어깨에 기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드는 나를 내치지 않았다.

그대로 얼마간 잠들어 있던 것 같다. 순위 집계할 동안 나인 회원들이 떠들어 댔지만 아무런 말도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다만, 순위 발표는 잠결에 들었다.

사회자는 1위부터 발표했다. 1위는 제드가 차지했다.

“1위, 제드 블로체.”

역시, 제드가 1위구나.

남주인공이니 그가 1위 할 거라 예상했었다. 어제 저녁에 구슬 양이 제일 많았기도 하고.

저녁 식사 때 나인 회원들의 포대 속 구슬 양을 눈으로 확인했다. 제드는 그때부터 구슬 포대가 3개였으니 1위 할 만했다.

당시 꽉 채운 구슬 포대가 2개였던 디아고는 4위에 올랐다.

“4위는, 디아고 스타시아 황자님이십니다.”

구슬이 많지 않아 순위권 밖일 줄 알았던 클로빈은 18위였다.

“18위, 클로빈 펜소.”

짝짝짝짝― 다른 참가자들이 쳐 주는 박소 소리에 심취한 클로빈이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나를 경계하듯이 말하는 게 잠깐 들렸다.

“나제트 영애가 이 자리에 있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 순위인 19위, 20위…… 25위…… 28위가 되어서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나는 떨어졌나 보다, 체념할 때였다.

“다음은 29위입니다. 29위는…….”

“너일 것 같아, 메이.”

제드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29위에서 이름이 불렸다.

“메이 플로티나.”

그와 함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클로빈은 언짢아했고, 디아고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기어코 2라운드에 올라가는군.”

다행이었다. 2라운드의 진출할 수 있어서.

나는 안심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

30위까지 불리고, 2라운드를 간략 소개한 후. 참가자들은 우르르 아카 센터를 나갔다.

비르타와 갈리, 클로빈은 기분이 상해 먼저 떠난 뒤였고, 디아고와 제드는 메이 곁에 남아 있었다.

디아고가 제드에게 명했다.

“깨워, 가야지.”

“먼저 가십시오.”

“왜?”

어차피 잘 거라면 천막 안에서 자거나 돌아가서 자는 게 더 편할 텐데 왜 굳이 안 깨우는 거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곁에 있어야 제게 감동할 것 같습니다.”

“메이가 너한테 감동해서 뭐 하려고. 아~ 갖고 놀겠다 했었나?”

“황자님은 관심 없다 하셨고요.”

묘한 신경전이 일었다. 정확히 어떤 신경전인지는 디아고는 알지 못했다.

제드가 다시 입을 뗐다.

“한 달 전에 헤스티아를 만났었습니다.”

“……뭐?”

제드는 3기사단에 들어오라는 헤스티아의 권유를 거절했다가 그녀가 데려온 미로카곤에게서 강제로 능력을 부여받은 일을 디아고에게 들려주었다.

“왜 내게 바로 말하지 않았지?”

“숨기고 싶었던 능력이었으니까요. 저도 이런 식으로 마력을 얻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는 진심이었다. 제드는 외모에 눈이 멀어 아무나 수호 기사로 임명하는 헤스티아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렇군…….”

“S급 마물에게 마력을 부여받으면, 그 마물과 똑같은 특별 능력을 쓸 수 있습니다.”

“알아. 미로카곤의 특별 능력은 진실을 보는 눈이지.”

“그래서 말입니다. 지금 제게 보이는 황자님의 감정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감정인데?”

제드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질투.”

“질투……라고?”

제드는 메이 앞에 서 있는 디아고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디아고, 왜 나를 질투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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