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67)화 (67/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67화

어느덧 해가 저물어 저녁 시간이 되었다. 참가자들은 급식소에서 식사를 했다.

나는 나인 회원들과 함께 식사했다. 내 왼쪽 자리엔 제드가 있고, 내 앞자리엔 디아고가 앉았다. 디아고 양옆엔 클로빈과 갈리. 갈리 앞엔 비르타가 앉았다.

나는 편하게 먹기 위해 구슬이 둔 포대를 내 뒤에 두었다. 구슬을 많이 모아 포대가 두 자루였어서, 누군가 감히 그걸 훔치려고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저녁 메뉴는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나는 저녁 메뉴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했고, 마물을 잡느라 허기가 진 상태였다.

그래서 허겁지겁 스파게티를 먹느라 뒤늦게 눈치챘다. 비르티와 갈리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내 뒤에 둔 구슬 포대를 쳐다보는 것을.

비르타와 갈리는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수대에서 물 좀 마시고 오겠습니다.”

“저도 갔다 오겠습니다.”

내가 신경 쓰지 않는 척 힐끗 뒤를 보니 그들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조심스럽게 내 포대를 하나씩 챙기고 있었다.

구슬이 테니스공 무게와 비슷했기에 포대 하나도 들기 무거웠다.

그들이 낑낑 힘들게 훔쳐 가는 그 순간.

“멈춰.”

내가 포크를 탁-! 테이블에 내려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뒤돌아서선 팔짱을 꼈다.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봐 주었다.

“너흰 할 게 그렇게 없니? 남의 구슬이나 훔치고 말야.”

비르타와 갈리는 다시 시선을 교환했다. 딱 봐도 그대로 자루를 쥔 채 도망칠 심산인 듯했다.

비르타와 갈리가 뛰어가자 나는 한 번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 수호 기사가 될 마음이 없는 거야?”

“……?!”

내 말에 그들은 멈춰 섰다.

“아이리스 님과 카시우스 님은 내 실력을 알고 계셔. 그런데 내가 내 실력에 턱없이 못 미치는 포대를 가져간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지 않겠어?”

비르타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저희랑 무슨 상관입니까?”

“옳소, 옳소!”

“아주 상관있지. 아이리스 님과 카시우스 님이 내게 왜 구슬을 못 모았냐고 물으시면 너희들이 훔쳐가 버렸다고 사실대로 털어놓을 거거든.”

“헉……!”

비르타가 큰일이 났다는 표정을 갈리에게 지어 보였다. 갈리는 그거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갈리는 또박또박 대꾸했다.

“공자님 말씀엔 큰 오류가 있습니다. 한창 수호 기사단 선출 시기에 공자님을 신경 쓸 겨를이 있을까요?”

“오류는 네 말에 있는데? 수호 기사단 선출 시기이니 다른 때보다 내게 더욱 신경 쓰시겠지. 내가 수호 기사로서 적합한지 아닌지 판단하기 확인해 봐야 하잖아?”

물론 나는 수호 기사 확정이나 다름없지만 거기까진 얘네는 모르니까.

“그렇다 해도 저희가 그랬다는 증거가 없잖습니까.”

“그럼 버려.”

“네……?”

“버리라고. 누구 말이 맞나 시험해 보자.”

그들은 내가 그리 말할 줄은 몰랐는지 움찔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머리를 굴리는 듯했으나 큰 수를 두는 나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는지 꼬리를 내렸다.

그들은 다시 내게로 와서 포대를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미쳤었나 봅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사죄하자 나는 만족해했다.

“그래. 다음부턴 안 그럴 거지?”

갈리와 비르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됐어. 밥 먹자.”

갈리와 비르타는 일을 실패한 것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다시 식사를 이어 갔다.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고, 갈리와 비르타는 내 물건을 훔치려다 실패하고는 같이 앉아서 밥을 먹는 게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클로빈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클로빈의 시선이 자꾸만 내게 닿았다.

왜 계속 쳐다보지? 혹시 얘도……?

나는 그를 시험해 볼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드, 내 포대 지켜 줘. 물 마시고 올게.”

“응.”

물 마시러 가는 척 자리를 비웠을 때, 클로빈이 어떻게 행동할지 시험해 보는 거였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클로빈도 내가 가자마자 내 포대에 손을 댔다.

“킥킥, 이것만 없애면 플로티나 공자는 수호 기사도 바이바이, 나제트 영애랑도 바이바이다!”

나는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돌아와서 혀를 찼다.

“이번엔 클로빈이야? 너흰 그렇게까지 하고 싶니?”

클로빈 역시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더니 에라 모르겠다며 냅다 포대 두 개를 들고튀었다.

“그걸 몰라서 물으십니까?”

그러나.

“아야야야-!”

당연하게도 무거운 포대 두 개를 들고 가는 클로빈보다 내가 훨씬 빨랐다. 나는 아주 손쉽게 클로빈의 귀를 붙잡았다.

“감히 도망을 가?”

난 있는 힘껏 당겼다.

“아-!!!”

“방금 전에 갈리랑 비르타가 고개 숙여 사과하는 걸 보고도 훔치고 싶디?”

나는 클로빈을 귀를 잡은 채로 끌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에게 명령했다.

“포대 내려놔.”

“귀, 귀 먼저 놓으시면…….”

“포대.”

“넵…….”

작전이 안 통하자 클로빈은 얼른 포대를 내려놓았다.

나는 클로빈의 귀를 잡아당기며 그의 자리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클로빈을 앉히면서 귀를 놔줬다. 놔줄 때 순순히 놔주진 않았고, 탱탱볼 튕기듯 당기며 놓았다.

“아악!”

클로빈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귀를 매만졌다.

“스텔라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스텔라가 보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퍽이나! 어떻게 남의 포대를 훔쳐서 버릴 생각을 할 수 있니?”

클로빈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대꾸했다.

“버리려는 게 아니라 내 포대에 넣으려고 했는데…….”

“그건 더 나빠. 이 쓰레기야.”

그에게 경멸 어린 눈빛을 보낸 후 경고했다.

“또 이러면 그땐 짝짝이 귀가 될 준비 해야 할 거야.”

“넵…….”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스파게티 면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

대회 참가자에겐 천막이 하나씩 주어졌다. 천막 안엔 마물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쉴 수 있다.

천막에서 쉬던 나는 8시가 되자 밖으로 나왔다. 제드와 만나기 위함이었다.

저녁 식사 끝난 후, 제드는 내게 8시에 느티나무 앞에서 만나자고 했었다.

왜 만나자고 한 걸까. 따로 할 말이라도 있나? 하지만 할 말이 있었으면 아까 했어도 시간은 충분했다.

왜 굳이 따로 불러내는 거지……? 설마…….

좋아하는 상대인지라 기대를 하게 된다.

“고백……하는 건 아니겠지? 히히…….”

어쩌면 반대로 좋아하는 거 티 내지 말라고 선을 그을 수도 있다.

오늘 내가 힐끔힐끔 제드를 자주 쳐다보긴 했지. 이건 뭐, 좋아하는 거 소문내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눈길이 자꾸 가는 걸 어떡해.

기분이 이랬다, 저랬다. 부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약속 장소엔 제드가 먼저 와 있었다. 그는 느티나무에 기대앉아 있었다. 나는 밝게 그를 부르며 달려갔다.

“제드!”

“왔어?”

나도 그의 옆에 앉았다. 곳곳에 우뚝 서 있는 가로등이 영롱하게 빛을 냈다.

“왜 부른 거야?”

“…….”

그는 내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없어서 다시 물어보았다.

“할 얘기라도 있어?”

“…….”

“음…… 혹시 내가 오늘 널 너무 많이 쳐다봤니? 그래서 부담스러웠다면 미안해…….”

내 사과에 제드는 잠시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갑자기 웃어서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왜, 왜 웃어?”

그가 웃음을 멈추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과를 받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미안하면 어떻게 해 줄 건데?”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그러자 제드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15cm, 친구 사이엔 더 가까워지면 안 될 거리였다.

“눈을 자주 마주쳐 줘. 가끔 피하던데 그러지 말고.”

나는 떨려서 슬쩍 시선을 피했다.

“내, 내가 언제 피했다고…….”

“지금도 피하잖아.”

“야, 다른 사람한테도 해 봐. 누가 안 피하나. 아마 황자님도 피할걸?”

절대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고 변명했다. 여전히 눈은 못 마주치는 상태로.

“그리고…… 네가 진실을 보는 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난 아니까. 그래서…….”

“창피해?”

그가 살풋 웃으며 묻자 나는 뾰로통해졌다.

“알 수 있으면서 묻기는……. 짓궂어.”

나는 그를 피해 상체를 앞으로 숙여 두 다리를 감싸 안았다.

제드는 그런 내 뒷모습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러면 좀 공평하려나?”

“응?”

“네가 원할 때마다 내 감정을 들려줄게.”

“어……?”

제드의 얼굴이 다시금 내게 가까워졌다. 그는 천사 같은 얼굴을 하며 내게 말했다.

“네가 여자여서 정말 다행이야.”

내가 여자라서 다행이라고……?

“무슨 뜻이야?”

“아, 이건 네가 듣고 싶은 게 아닌가?”

어째서 내가 여자인 걸 다행스럽게 느끼는 걸까. 제드는 내게 궁금증만 심어 놓고 어물쩍 발을 빼려고 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다시 물어보았다.

“너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야?”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어쩌다가?”

속으로만 생각했어야 할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궁금해. 네가 내 어떤 점에 반해서 좋아하게 됐을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한다니. 어떻게 그런 기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제드는 그의 긴 팔을 뻗어 내 손을 가져갔다.

제드가 시선을 손으로 떨어트림과 동시에 눈꺼풀이 내려갔다. 그의 속눈썹은 길고 가느다랬다.

“네가 약속하자며 손가락을 걸었을 때.”

제드는 그때처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때 느껴진 온기가.”

그의 눈꺼풀이 올라가고 짙은 보라색 눈동자가 다시금 내 얼굴을 쫓아 왔다. 새끼손가락을 걸던 손은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깍지를 꼈다.

“계속 생각나더라.”

“…….”

이래서 원작 제드를 순정파 직진남이라 표현했던 걸까. 매혹적인 얼굴로 내게 호감 표시를 하니 떨려서 미칠 것만 같았다.

불현듯 제드가 진실을 보는 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떠올라 황급히 손을 뗐다. 내가 몹시 떨려 한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끄럽단 말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 사람들이 쳐다보겠다. 나, 이만 가 볼게.”

제드도 따라서 일어났다.

“메이.”

나는 절대로 부끄러워서 도망치는 건 아닌 척했다.

“구, 구슬 포대가 걱정돼서 가 보려는 거야! 다르게 오해하진 마.”

“…….”

“가 볼게……!”

나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가다가 두 번이나 넘어질 뻔한 건 비밀로 하고 싶었으나 제드는 전부 봐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