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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62)화 (62/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62화

씻고 나온 나는 제드의 방 앞에 당도했다. 그의 방은 내 옆옆방이었다.

어쩐지 긴장되어 침을 꿀꺽 삼키곤 노크하려는데, 내 손이 닿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렸다.

“까, 깜짝이야…….”

제드가 나를 맞이했다. 방 안엔 제드 혼자만 있는 듯했다.

“들어와.”

“……실례할게.”

내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제드는 문을 닫고 나를 테이블 쪽으로 인도했다.

“다른 회원들은?”

“전부 메인룸에 있어. 황녀님도.”

그가 내게 의자에 앉으라 손짓했다.

“앉아.”

“응.”

나는 의자에 앉아서 제드를 마주 보았다.

“할 얘기가 뭐야?”

“그 전에, 나한테 궁금한 거 있지 않아?”

“아…… 있지. 욕실에 나와 황자님이 같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

“디아고가 샤워하러 가겠다고 나가니까 황녀님이 너도 샤워하고 있을 거라고 말하더라고.”

“아, 맞아. 식사 끝나고 황녀님께 샤워하러 가겠다고 했었어.”

사실, 제일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황자님이 말하길, 네가 나더러 여자라고 했다던데…… 사실이야?”

“사실이야.”

원래부터 여자인 걸 알고 있다고 밝힐 생각이었는지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래서 욕실에 찾아가서 디아고를 내보냈던 거고.”

“여자인 거 어떻게 알았어?”

“패션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알았어.”

제드는 첫 만남부터 내가 여자일 것이라 예상했고, 아이리스의 생일파티에서 확신했다고 밝혔다.

“이상하네……. 정신계 마법이 안 통할 리 없는데.”

“정신계 마법으로 진짜 성별을 알아차릴 수 없게 한 거지?”

“응. 그런데 너한텐 안 통하는 게 이상해. 플로아보다 더 강한 마력을 보유하면 안 통할 수 있는데 너한테 마력이 없잖아.”

그러다 내가 눈을 번쩍 뜨고 물었다.

“설마…… 너 혹시 마력 있어?”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있다고? 너 아직 수호 기사 아니잖아.”

원작에서 그는 수호 기사가 되기 전까지는 마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로 인해 원작과 현실이 달라졌다고 해도 내 영향이 제드에게까지 미치진 않았을 거 아냐.

그러나 나비의 작은 날갯짓으로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었다.

“수호 기사가 아니어도 마력을 얻을 방법은 많지.”

“그렇긴 하지만 플로아보다 강한 마력을 얻기는 힘든데…….”

수호신을 괜히 수호신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수호 대상을 어떠한 경우에서도 지켜 낼 수 있을 만큼 강하기 때문에 수호신이다.

그런데 제드가 플로아보다 강한, 어쩌면 아이리스와 카시우스와 비슷할지 모를 마력을 보유하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네 수호신보다 강한 마력을 가진 건 아닐 거야.”

“그래? 그렇다면 왜 정신계 마법이 안 통했을까?”

“그게 내가 보유한 마력의 특별 능력이니까.”

“특별 능력……?”

특별 능력이라는 말은 S급 마물에게만 쓰는데……?

궁금해서 더 이것저것 알아보고 싶었지만 그는 내가 무언가를 더 묻기도 전에 화제를 바꿔 버렸다.

“할 얘기가 있다고 했지? 우리는 스파이를 찾고 있어.”

우리? 스파이?

“스파이의 이름은.”

그의 입에서 내가 아는 이름이 나왔다.

“밀로.”

밀로라면…… 원작에서 언급됐던 하인드의 잃어버린 아들이잖아.

아니면 동명이인?

“S급 마물의 특징은 다른 마물과는 달리 저마다 보유한 특별 능력을 사용할 수 있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거야. 이건 잘 알려져 있으니 너도 알고 있겠지.”

“응. 알고 있어.”

“그것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특징도 있어.”

“그게 뭔데?”

“사람에게 마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거.”

마물이 사람에게 마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그의 설명에 따르면, S급 마물은 사람에게 마력을 부여할 수 있단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마물들이 굳이 자신들의 적인 인간에게 마력을 부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그렇기에 마물에게서 마력을 부여받았다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밀로의 경우가 흔치 않은 사례 중 하나야. 밀로는 S급 마물에게서 마력을 부여받았지.”

“밀로라는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2년 전, 켈레샤 방제선 침몰 사고 때.”

2년 전, 이웃 나라인 켈레샤 제국에서 초대형 방제선 침몰 사고가 일어났었다.

방제선은 켈레샤 전 황태자가 기획한 조선 사업의 결과물로, 열 손가락이 넘는 가문이 사업에 거액을 투자했었다.

그러나 방제선은 완성 당일 바다에 띄우자마자 침몰했다.

다행히 방제선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아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방제선에 투자했던 수많은 가문이 거액을 날려 우후죽순 파산했었다.

나는 그 사건을 유디프 부인의 수업 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었다.

“그 사건 알아. 침몰 원인은 부실 제작으로 판결났었지.”

“그거, 경쟁 사업체가 벌인 짓이야. 방제선에 몰래 잠입해서 폭발 마법을 걸어놨어.”

“정말로? 경쟁 사업체라면…….”

“스타시아에서도 조선 사업하면 떠오르는 가문이 있지?”

“설마…… 클로빈네가?”

“맞아. 펜소가가 그랬어. 조선 사업 세계 3위 안에 들기 위해서.”

“그건 어떻게 안 거야?”

그때, 방문이 달칵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디아고가 서 있었다.

다행히 이번엔 제대로 차려입은 상태였다.

내 질문에 디아고가 대신 답변해 주었다.

“클로빈이 술에 취해 나와 제드한테 한 말이야. 조사해 보니 사실이었고.”

겨우 술 때문에 절대 흘려선 안 될 기밀 정보를 흘린 것이었다.

디아고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클로빈이 큰 실수 한 거야.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스타시아와 켈레샤 간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어.”

앉을 의자가 없어서 디아고는 옆에 있던 침대에 앉았다.

제드가 디아고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고 여기로 오신 겁니까?”

“네가 날 욕실에서 내보내는 게 조금 이상했어야지. 혹시 메이 플로티나에게 이 얘길 하려고 하나 싶어서 찾아왔더니만 정답이었네.”

덕분에 술 좀 깼어. 그는 담백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디아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들을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어. 초대형 방제선 사업을 기획한 전 황태자는 노동자 무임금 착취, 아동 착취, 하루 18시간 노동에 필요하면 살인까지 저지른 사람이니까.”

“하지만 투자자들은…….”

“투자자들도 똑같아. 황태자파 귀족들이었거든. 전부 알고 투자한 거야.”

무임금 착취를 하든, 한창 커야 할 아이를 착취하든, 밤새 굴리든, 살인을 저지르든.

“자신들과는 상관없었던 거지. 그저 돈만 불리면 끝일 뿐.”

그들은 벌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그렇다고 펜소가를 옹호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우리는 펜소가의 몰락을 원해.”

“어째서인가요?”

“걔네도 똑같거든. 경쟁 사업체에서 한 쓰레기 짓 그대로 하고 있어.”

그저 원작 내용 때문에 안 좋게 봤지, 펜소가가 이 정도로 글러 먹은 줄은 몰랐다.

“몰락시키는 게 목표라면 펜소가의 만행을 세간에 밝히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만 하면, 몰락하는 건 시간문제일 터.

디아고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간에 밝힐 생각은 없다고 했다.

“펜소가의 만행이 세간에 밝혀진다면 켈레샤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어.”

디아고는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 정확히는, 전쟁으로 인해 죄 없는 목숨이 희생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전쟁하고 싶지 않으니 전쟁에 대한 빌미를 우리 쪽에서 먼저 만들지 말자는 거야.”

디아고는 제드에게 눈길을 줬다.

“제드, 메이한테 밀로에 대해서 설명했나?”

“이제 설명하려고 합니다.”

제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장에서 사진 두 장을 꺼냈다.

밀로라고 불리는 자가 나온 사진 두 장.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그것을 내게 건넸다.

“이 사람이 밀로야.”

“어……?”

나는 사진을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얼굴 기억난다. 예전에 플로아와 르라트 해변으로 기차 여행 갔을 때 만났던 남자애.

밀로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던 애다.

르라트 해변에서 만났을 때 밀로를 이렇게 표현했었지.

곱슬거리는 은발에 체리색 눈동자를 소유한 잘생긴 소년.

사진 속 밀로는 이젠 소년이 아닌 사내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많이 성장했다.

디아고가 밀로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이는 나와 제드와 같은 열여덟. 헤스티아가 펜소가를 감시하려고 보낸 스파이야.”

“헤스티아……?”

“아직 정식 수호 기사는 아니야. 헤스티아가 밀로를 신뢰하는 걸 봐서는 이번 선출 때 기사단으로 들이겠지만.”

제드가 입을 열었다.

“아까 펜소가에서 켈레샤 조선 사업체에 폭발 마법을 설치해 파산시켰다고 했잖아. 그런데 폭발 마법은.”

내가 이어서 말했다.

“헤스티아 님이 잘 구사해 내는 마법이잖아…….”

플로아가 정신계 마법을 잘 구사하는 것처럼, 헤스티아는 폭발 마법을 잘 구사한다. 아이리스의 생일 파티에서 피그링에 폭발 마법을 설치해 둔 것도 헤스티아였다.

디아고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헤스티아는 외모가 출중한 남자를 좋아해. 그래서 그녀의 기사단도 전부 각 지역에서 이름 날린 미남들이지.”

그러나 헤스티아는 기사단만으론 만족하지 못했다. 더더욱 많은 미남을 원했다.

이를 간파한 펜소가는 경쟁 사업체를 망하게 하는 대가로 미남 노예를 사들여서 바치겠다는 거래를 제안했다.

워낙 많은 노예를 사들이는 펜소가였기에, 미남 노예를 바치는 건 일도 아니리라 판단한 거였다.

“헤스티아는 펜소가의 거래를 수락했고, 약속대로 방제선을 침몰시켜 망하게 했어.”

펜소가의 노예라고 하니 원작 메이가 떠오른다. 펜소 백작가의 영애한테 맞아 죽은 가여운 메이.

그와 비슷하게 수많은 노예가 펜소가의 장난감이 됐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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